사라지는 아이들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사라지는 아이들』은 가정의 파괴로 인한 청소년들의 방황과 번민을 그린 소설이다. 부모의 이혼 후 새아빠로부터 받는 학대와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하여 거리에 내앉게 된 소년 링크의 노숙 생활을 처연하게 그리고 있다. 런던 거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소년의 구걸과 노숙의 삶을 매우 생생하게 담아낸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자못 흥미로운 구성을 띠고 있다. 가출하여 홈리스의 삶을 살아가는 링크의 1인칭 시점과 거리의 부랑아를 대상으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정신병자 쉘터의 1인칭 시점이 교차되고 반복되면서 서사를 이끌어간다. 만약 이 소설이 링크의 단선적 시점으로만 서사를 풀어갔다면 그리 힘있고 매력적인 소설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일기와 같은 링크의 이야기와 살인의 작업일지 형식으로 고백하는 쉘터의 이야기를 교차한 것은 서사의 생동감과 긴장감을 더욱 확장시키는 인상적인 구성이다.

  이러한 의도된 구성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 노숙과 이를 외면하는 사회적 시선과 대중의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함의하는 장치가 된다. 전직 군인이었던 미치광이 살인범 쉘터의 광적인 살인 행위를 범죄자의 시각에서 그려냄으로써 극히 위험한 바깥의 시선에서 청소년의 방황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고백하는 암울함과 위험한 외부에서 바라보는 어두움이 교차되며 만들어내는 서사의 조화는 이 소설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매우 잘 뒷받침하는 힘이 된다. 쉘터가 링크의 친구 게일에 의해 검거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확인하기까지 독자로부터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하는 탄탄한 구성이 돋보인다. 

  나는 이 소설에 별 다섯 개를 부여했다. 이러한 내 주관은 평소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신념에 대한 내 의지이자 고백이며 꿈이자 희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철저한 가정예찬론자이며, 결혼제도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기독교적 환경에서 자란 이유도 이유거니와 무엇보다 인간의 불완전한 유동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서부터 내 신념은 출발한다. 이를 풀이하기 위해서는 꽤나 긴 논설이 필요하다.

  인간은 매우 불완전한 종족이다. 사랑과 믿음, 꿈과 인내 등 인간의 모든 정신적 가치들은 나약한 인간상 앞에서 초라해진다. '결혼'이라는 계약은 좁은 의미로 남과 여가 만나서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것으로 정의된다. 좁은 의미에서의 결혼은 당사자들의 사랑이 식거나 문제가 생길 경우 이혼이라는 수단으로 정리하면 그만이다. 사실 작금의 세상에서 이혼은 흠이 아닐 정도로 대중적인 키워드가 되어 있다. 비단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이혼율을 자랑하는 한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혼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계약 철회'의 의미로 수없이 이뤄지고 있다.

  결혼은 넓은 의미로 해석될 때만이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가지는 강력한 힘을 증명할 수 있다. 결혼은, 다시 말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하나가 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훗날의 세대를 창조하는 일이고, 아가페(agapē)를 실현할 수 있는 성스러운 기회의 장이며, 지구라는 공간의 주인을 다음 바톤자에게 물려주기 위한 고결한 패스 작업이다. 우리의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를 창조하고 우리가 만들고 가꾼 시공간을 물려줌으로써 안정된 미래를 보증키 위한 수고와 열정이 결혼이라는 넓은 의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의 가정을 이룬 남녀가 서로 간의 사랑의 열매로 얻는 다음 세대의 존재와 필요성을 인정할 때만이 결혼 제도의 긍정에 대한 힘은 탄력을 받는다. 실례로 수많은 미래학자와 민족연구가들은 현재의 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민족으로 유대인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소수민족 유대인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미국 부의 55%를 차지하고 있고, 각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에게 수여되는 노벨상의 절반 이상을 독식하고 있으며, 세계의 정치는 물론 경제, 문화, 예술, 의학, 사회 등의 전 영역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 내 900만이 채 되지 않은 이들 민족이 어떻게 미국과 세계를 지배하는 집단으로 서나갈 수 있었을까. 유대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에 대해 한결같은 목소리로 답을 낸다. 바로 유대민족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가정상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들 앞에서 절대로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 자녀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원칙. 이 단순한 원칙이 유대인의 가정교육에 가장 중요한 제 일의 원칙이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가 대판 싸우는 광경은 전쟁터에서 가장 친한 전우가 바로 옆에서 죽는 공포감과 동일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 공포는 하루에 600회 정도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면서 아이의 마음을 비좁게 만든다고 한다. 그렇기에 부모의 싸움이 잦은 집에서 자라는 아이는 마음이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고 크고 다양한 것들을 가슴속에 품지 못하게 된다고 아동심리학자들은 얘기한다. 유대인이 다른 민족에 비해 유난히 위인의 출현이 잦은 이유가 바로 이러한 안정감 있는 가정적 환경에 기반한다는 학자들의 연구는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데 충분하다.

  소위 가정이 파괴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편부모 가정의 증가와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의 세계적 확대로 인한 물질만능주의의 만연은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어둡고 굴곡진 곳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 증산되는 경향을 보이면서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현재 세대로부터 바톤을 이어 받아 지구를 경작하고 운영해야 할 젊은 세대들의 방황과 요동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가정이 안정될 때 사회는 행복하고 국가는 번영한다고 믿는다. 이 땅의 청소년들은 그 자체로서 고결하고 존귀한 존재이다. 그들이 어떠한 꿈을 갖고, 얼마만큼의 안정감을 누리며, 어느 정도의 농밀함으로 사랑과 관심을 받는가에 따라 지구의 미래는 결정된다. 이러한 사유는 곧바로 우리의 책임과 의무로까지 연장된다. 우리는 윗세대들로부터 넘겨받은 지구를 잘 가꾸고 운영하여 아랫세대에 넘겨줘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우리의 다음 바톤자들이 지구라는 공간을 더욱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결코 녹록지 않은 사랑으로 보듬어야 한다.

  부모가 서로 싸우지 않을 때, 탄탄한 안정감으로 흔들리지 않는 가정이 될 때, 세상에서의 고민과 아픔을 가정 안에서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을 때 이 땅의 청소년들은 정신이 건강해지고, 가슴이 확장되며, 작은 천국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미래라면 아무런 걱정없이 눈을 감을 수 있는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까. 아랫세대의 행복은 곧 우리의 축복이며, 그것은 바로 안정된 가정이라는 전제를 담보할 때만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행복의 공식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