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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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30년을 반추한다. 어머니 뱃속을 나와 서른이라는 나이에 당도할 때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의 흐름에서 나는 다양한 성장을 이루어왔다. 엄마의 젖가슴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뗄 시기가 있었고, 키가 한 해에 10센티가 넘게 자란 적이 있었으며, 소프라노톤 목소리가 굵은 중저음으로 바뀔 시기가 있었고, 상대방에게 말하기 전에 한두 번 이상 꼽씹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도 있었다. 지난 삼십 년간 겪었던 수많은 경험들과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현재의 모습으로까지 자라왔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많은 성장을 이룬 시기를 나는 중고등학생 시절이라고 고백하는데에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다. 그 시절 나는 정말 많이 '성장'했다. 내가 누군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고,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이 최초로 시도된 시기였으며, 지구에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깨닫는 시기였다. 현재의 내 성격과 사회성은 바로 그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 아름다웠던 내 십대 시절의 편린들이여..

  그 시절 함께 머리를 맞대고 난해한 수학문제를 풀고,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찼던 내 친구들. 야한 외국잡지를 돌려보기 위해 순서를 정하고,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인의 사진만 봐도 가슴을 두근거렸던 그 시절. 학업에 대한 부모의 기대치와 엄연한 현실적 수준 사이에서 발생되는 번민과 스트레스로 하루하루 지난한 시간을 지내야 했던 바로 그 시절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좋다', '나쁘다' 등의 단어로 재단할 수 없는 질풍노도의 그 시절은 존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고결하다.

  최인호의 신작 장편소설 『머저리 클럽』은 바로 그 시절 그 아이들의 초상이다. '질풍노도', '사춘기', '주변인' 등 수많은 사회적 철학적 용어로 대변되는 십대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성장소설이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을 살아야 했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사춘기 고등학생들의 이야기가 흥미있게 펼쳐진다. 작가 최인호는 유머러스한 문체와 깊이있는 문장을 적절히 섞어가며 청소년 시절의 성장담을 매우 유쾌하게 그려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작중 화자 동순이를 포함하여 철수, 동혁, 문수, 영구, 영민이가 머저리 클럽의 클럽원들이다. 이들은 학창시절에 동일한 목적과 활력있는 우정으로 사춘기의 소중한 삶을 채워나간다. 기질과 성정이 각기 다른 여섯 명의 고등학생들이 뿜어내는 우정과 사랑, 꿈과 성장, 번민과 성찰의 생명력 있는 성장드라마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땅의 청소년들과 그 때의 추억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모든 성인들의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사춘기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흥분되는 추억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첫사랑'이다. 사랑을 논하기에는 어린 나이였지만 누군가에게 호감이 가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밤잠을 설치고, 설레임을 감내해야만 했던 그 시절의 짜릿함은 어느 누구나 경험했을 아름다운 추억이리라. 소설 속에서 각 인물들마다 다양하게 발현되는 이성에 대한 순수하고 투명한 열정의 방향성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아 훈훈한 공감이 발산된다.

  무엇보다 사춘기 시절의 가장 큰 아이콘은 자아에 대한 설익은 탐구일 것이다. '대학 입시'라는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키워드를 갖고 있는 한국 고등학생들의 공통된 목표의식은 자아성찰의 가장 순수한 시기를 비효율적으로 낭비하는 안타까움에 내몰리고 있다. 소설 속에서 문수가 일상을 일탈하여 자신만의 시공간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는 행위는 자아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 발산되는 청소년기의 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리라.

  소설의 말미는 고등학교 졸업식으로 끝맺음된다. '끝'은 '시작'을 담보할 때만이 그 의미를 집대성한다. 인간은 종말을 노래하고 종말을 찬미한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끝'이란 없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겨울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새로운 봄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라는 작은 세계를 넘어 보다 크고 넓은 우주로 그들은 '이동'되어질 뿐이다. 도도히 흐르는 강의 종국이 바다라는 넓은 세계와 마주치는 것과 같이.

  최근 한국 문단에서 성장소설이 새로운 키워드로 대두되고 있다. 해외 문학에서는 불멸의 고전부터 현대문학까지 어린 시절의 성장담을 찬란하게 그리곤 했지만 국내에서는 철저히 외면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근자에 들어서야 비로소 소재가 되고 있다. 김형경, 공지영, 황석영, 최인호 등. 그들이 창조해내는 그 시절 그 아이들의 추억 어린 초상은 내 마음속에 깊은 공감과 잔잔한 향수로 잘 저장되었다. 성장소설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최인호의 신작 『머저리 클럽』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시절의 표상들을 무난하게 잘 담아냈다. 유쾌하고 흥미있는 소설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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