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아 - 참 나를 찾는 진정한 용기
파올라 마스트로콜라 지음, 윤수정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 다소 기독교적 관점으로 서평을 썼음.


오래전 비행기를 처음 탈 때의 경험을 떠올린다. 세상에 태어난 후 가장 먼 거리에서 인간을 바라보게 되었다. 비행기 차창 바깥으로 보이는 인간의 모습은 미세한 모래알과 같이 희미하고 작은 존재였다. 나는 생각했다. 비행기에서 보이는 인간의 모습이 이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데 만약 인류보다 훨씬 뛰어난 과학문명을 갖고 있는 외계가 있다면 그들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지구인들의 아우라는 어떨까. 또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신이 계시다면, 지구라는 자그만 행성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크기가 어떻게 사유되실까. 당시 비행기에서의 내 경험은 인간이 영장임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우주와 자연 앞에서 극히 미세하고 누추한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하면서 인간과 자아를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겸손하게 천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드넓은 우주 속에서 작디 작기만 한 인간의 '크기'는 당연히 겸손할 수밖에 없는 자연적 의무를 안겨준다. 현미경이 아닌 망원경의 시각으로 인간의 존재성을 탐구할 때 깨닫게 되는 이러한 사유는 신 앞에서, 대자연 앞에서, 다른 인간들 앞에서 겸손해야만 하는 근원적 질문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고만고만한 존재들끼리 지구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부디끼며 펼치는 기싸움과 정력 낭비를 바라보고 있는 신의 눈망울에는 과연 얼마만큼의 눈물이 고여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어리둥절하면서도 유의미한 질문이며, 한 인간의 일생에서 한 번 이상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는 명제이기도 하다. 지구상 모든 청소년들의 시기에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번민과 고독의 시간을 갖는다. 각 나라마다의 문화와 습속과 교육 환경이 천차만별이라 할지라도 십대의 나이를 관통할 때만이 겪는 의문과 호기심은 인류의 창조적 유전자 속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신의 흔적이다. 나는 어디서 왔고, 도대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인간 스스로의 존재론적 질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유의 실타래를 엉키면서 세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인간은 다른 어떤 종족보다 힘과 권력에 경도된 특징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인류사는 전쟁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정치는 이미 인류에게 가장 밀접한 키워드가 되어 있다. 타자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길 원하는 상대적 우월 의식, 다스리고 명령하길 원하는 권력과 권위에 대한 인간의 태생적 호기심, 이기利己를 위해 소원하며 힘쓰는 인간의 보편적 자아상 등은 인간이 힘과 권위에 대해 얼마나 큰 집착을 갖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왜 인간들은 극히 시각적인 부문을 강조하며 살아갈까. 60억 인류는 뭉뚱그려진 객체들이 아니라 각기 하나의 소중한 주체이다. 단 한 존재도 동일한 유사성을 성립하지 못하는 고유함으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인간 스스로 창조의 소중한 원리인 다양성의 가치를 배리한다. 눈에 보이는 몇몇 시각적 카테고리 안에서만 특별함의 의미를 부여하고, '다름(different)'과 '틀림(wrong)'의 정의를 혼동하는 인간의 오류와 모순은 인류가 공존함으로써만이 얻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약하게 하는 원흉이 된다.

  과연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미 지구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인간의 무차별한 남용으로 인한 가치 저질화 현상으로 심한 정신적 몸살을 앓고 있다. 사랑이 아니면서 사랑이라 포장된 거짓 사랑의 범람으로 인간은 번민하고 지구는 쓸쓸하다. 신이 설계한 사랑의 신성적 DNA 구조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자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설계도대로 '행'하는 자는 또 얼마일까. 어쩌면 현생 인류가 겪는 고통의 절반 이상은 지구상의 수많은 사랑의 실타래 속에서 신의 요구하는 수준의 아가페(agapē)의 발현을 실행치 못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유럽 문단과 대중의 사랑을 농밀하게 받고 있는 이탈리아 작가 파울로 마스트로콜라는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우화 『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아』를 통해 삶과 자아에 대한 통찰을 훈훈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노란 깃털의 오리의 모험을 통해 앞서 언급한 인간의 고독과 사랑, 권력과 명예, 연약함과 결핍 등 삶의 근본적 주제들을 관통한다.

  자신을 품어 주었던 슬리퍼를 엄마로 알고,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는 오리의 모험을 통해 인간에 대한 다양한 문제제기를 시도하는 작가의 맛깔난 필력이 돋보인다. 일관된 대화체 구성과 왕왕 등장하는 무게감 있는 아포리즘이 조화를 이루며 삶과 자아에 대한 따뜻한 문장을 완성시킨다.

  이야기의 말미, 사막의 고통을 인내하며 그곳에서 친구가 되는 두더지를 통한 깨달음으로 자신이 날개가 있음을 인식하고 하늘을 향한 날개짓으로 떠올라 세상을 조망하는 오리의 모습은 자아를 찾는 용기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극히 아름답게 그려낸 명장면이다. 내가 누구인지 명징화되는 것을 거부할 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성찰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도출하면서 진정한 자아 찾기의 지혜를 따뜻하게 교훈한다.

  인간으로 살아갈 때 경험하는 수많은 질문과 번민, 인간의 지난한 오류와 모순, 나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다양한 역설 등. 이러한 사유를 통해 깨닫고 성찰할 수 있는 게 단 한 가지라도 있을 때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증명된다. 유익하고 재미있으며 깊이있고 많은 생각을 유도하는, 참으로 따뜻하면서도 힘있는 책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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