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작가의 글을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글과 문장으로 질감이 다른 것들을 대비하면 새로운 것들이 느껴지고 보이기 시작한다. 화가는 물감으로 풍경을 그렸지만 작가는 문자와 문장으로 풍경을 그린다.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왼통 풀냄새를 널어놓고 복사꽃을 울려놓고 복사꽃을 울려만 놓고, 
환한 햇빛 속을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 ‘서풍부에서', 김춘수

허리가 굽은 늙은 여자들이나 아이를 업은 젊은 여자들이 

읍내 버스 차부 옆 공터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나물을 팔았다. 

그 여자들의 먼지 낀 좌판은 영세했다. 

농협의 비료포대나 보온 못자리를 걷어낸 폐비닐 자락 위에 말린 마물과 호박오가리, 

검정콩 및 움큼을 펼쳐놓았다. 그 여자들의 좌판은 삶을 영위하는 상행위라기보다는 

밤에 우는 새들의 울음처럼 그 종족의 핏줄 속에 각인된 무늬처럼 보였다. 

외출나온 군인들의 팔짱을 낀 여자들이 가끔씩 좌판을 기웃거렸다.

 - '내 젊은 날의 숲', 109쪽

어두운 산맥을 건너오는 바람이 시간을 몰아가는 소리를 냈다.

바람소리에는 먼 숲을 훑어온 소리와 가까운 솦을 스치는 소리가 포개져 있었다.

바람의 끝자락이 멀리 지나온 시간의 숲까지 흔들었다.

스피커 구멍으로 흘러나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그 바람소리 속에서 앵앵거렸다.

스피커 구멍으로 어머니의 몸이 흘러나와서 내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것 같은 환영이 어둠 속에 떠올랐다.

 - '내 젊은 날의 숲',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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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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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독서는 독자 자신의 잃어버리 기억을 북돋아 주는 순기능이 있다. 소설의 내용이 어떤 것일지는 무관하다. 자신의 삶속에서 흔적없이 사라진 기억을 되살여 준다. 소설을 자주 읽어 봐야 할 이유이다.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문학동네) 은 경기도 포천지역에서 군복무를 했던 나에게는 그 시절의 주변 환경이나 산세 또는 지역의 특유한 분위기를 일캐워 준다. 최근 직장생활 중에 가끔 그곳에 갔었는데 그곳에 대한 그리움이 앞선다. 국립광릉수목원을 지나 물이 맑다는 포천 일동과 이동 지역의 여행이 그리워 진다. 그곳에 사랑한 사람들을 두고 떠나온 고향처럼,


 이 소설속 주인공 여성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에 위치한 국립수목원에서 식물의 표정을 그리는 세밀화가다공무원인 그녀의 아버지는 뇌물죄알선수재로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석방된 뒤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여자의 아버지는 순응적인 공무원이었지만 뇌물을 받은 죄로 징역살이를 한다여자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그 인간이라 부른다.

 

 김훈은 이 소설을 쓰기 전 가을부터 다음 해 초여름까지 휴전선 이남의 여러 지방을 여행했다고 한다. 그 안에서 본 세상과 자연,사람의 풍경을 문장으로 재구성한 소설이다. 세밀화가인 여자의 눈이 포착한 세상의 풍경과 그 풍경을 사유하는 밀도 높은 작가의 문장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경기북부지역의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그 지역의 역사 이미지가 남아 있기 마련인데(광주전남 하면 5.18을 떠올리듯) 분단 현실이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2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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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상상력은 또 다른 이념에서 자유스럽니다. 한 인간의 상상력으로 타인의 취향이나 시점을 함께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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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것들 중에 독서가 있다. 자연광을 받으며 읽으면 더 높아진다. 독서 후 산책을 하면 그 몰입의 여운으로 사물을 좀 더 여유롭게 볼 수 있는 내공이 쌓인다.


 소설책을 많이 읽으면 속이 깊고 힘이 생긴다. 소설 속에 다른 사람의 생을 자기 속에서 살필 수 있다. 자기도 모르게 근육이 생기고 내공이 생긴다. 자신의 어떤 불행이나 밑바닥에 처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기 힘이다. 자기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일상에서 만나는 구체적인 접점을 글로 쓰는 습관이 좋다. 황석영은 분단 이후의 한반도의 역사 현실을 온몸으로 겪어 온 작가다.  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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