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언니, 혹시 오늘 밤11시부터 2시까지 나랑 있어주지 않을래?"
무슨 일인고 하니, 오늘(일요일) 저녁에 GOD를 비롯한 인기가수들 공연이 엑스포 남문광장에서 있단다.
그런데 전날 밤(토요일) 11시부터 좋은 좌석을 배정받기 위해 줄을 서겠다는거다.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1. 행사의 표는 S생명 보험설계사들을 통해 무료로 나누어졌는데, 무료로 주는 표라서 좌석 번호가 없다.
2. GOD가 이번 년말에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GOD를 한번이라도 더 보려는 팬들이 많이 있다.
3. 표가 무료였기 때문에, 경제력이 취약한 10대들이 모처럼의 공짜표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4. 토요일 저녁에 대구에서 있었던 같은 성격의 공연을 위해서, 토요일 새벽 4시 반부터 줄을 섰었다는 정보가 있었다.
5. 토요일 밤 대구 공연을 보고 새벽 2시까지 대전으로 오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이사람은 2시부터 밤을 새서 순서를 기다린다고 했다.
뭐.... 이러게 해서 여동생은 대전서 산다는 이유로, 다른 친한 팬들을 대표해서 줄을 서게 되었다.
근데 처음으로 밤에 줄을 서려니, 혼자 있기가 심심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나보다.
'기다리면서 책 읽는다고 구박하기 없기'라는 조건을 걸고 OK 했다.
10시 반이 되어서 채비를 했다.
긴팔 옷에, 긴팔 가디건을 입고, 읽을 책, 혹시 어두울 것에 대비해서 손전등과 여분의 건전지를 챙겼다.
간식과 음료수도 챙길까 하다가..... 화장실이 마땅치 않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여동생은 옷 네 겹을 입고, 두툼한 돗자리와, 얇은 모포 두개, 그리고 십자수를 들고 나와다.
경험이 많은 다른 팬에게 전화로 또다른 준비물은 필요 없는지 묻는다.
"연필과 종이"가 필요하단다. 마침 내가 가지고 있어서 광장으로 갔다.
그 "연필과 종이"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니,
팬들이 모두 다 순서대로 줄을 서서 밤을 샌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기 때문에,
도착한 순서대로 번호와 이름을 적고, 줄은 서지 않고 앉거나 돌아다니거나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연필과 종이"를 지시한 사람은 여동생이 거의 첫번째로 줄을 서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하고,
뒤에 오는 팬들의 '질서'를 유지하게끔 하라는 뜻이었다.
11시 좀 못되어서 남문 광장에 도착하니, 이게 왠걸!
벌써 10대 여학생들 20명 정도가 광장 바닥에 신문지와 돗자리를 깔고 몰려 있는거였다.
"언니, 쟤내들한테 가서 혹시 줄선건지 물어봐봐~~ . 나 그런거 못하잖아~~"
이럴때만 연약한 척 하기는..... ㅡㅡ;;
애들에게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저녁 6시부터 와 있었다나.......
그리고 학생들이 벌써 볼펜으로 수첩에 번호와 이름을 적고 있었다. 오~ 이게 자생적인 질서유지문화로군!
여동생 번호는 28번, 나쁜 번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상 밖이었다.
몇분에 한두명씩 팬들이 와서 이름을 적고 가거나 옆에 앉았고,
( 이름을 적고 바로 집에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돌아가고 나면 자리가 나중에 취소되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란다. 1-2시간에 한번은 자체적으로 출석을 부른단다. 출석체크시에 그자리에 없으면 이름을 지운단다. 그리고 이름 적고 가라는 기획사의 말만 믿고 돌아갔다가 없던 일로 되어버린 적이 있기 때문에 기획사나 안내자의 말은 절대로 믿지 않는단다.)
나와 여동생은 돗자리에 앉아서 잠시 책을 읽다가....
옆의 여학생들의 대화를 듣다가........
비슷한 나이인 큰애 이야기를 하다가.....
이윽고 우리가 그만할 때의 옛날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엄마 이야기도 하게 되고.......
내가 대학 2학년때, 그리고 여동생이 중3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여동생이 유치원 때부터 엄마는 다시 학교 다닌다고 바쁘셨고,
학교 졸업하고도 트레이닝 과정으로 더 바쁘셨다.
그래서 여동생은 엄마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고 한다.
이해는 되지만, 조금 의외였다.
어떤 면에서, 여동생에게는 내가 보호자였던 적이 많은 것 같다.
방과후에는 부모님 오시기 전까지 개구장이 남동생과 싸워가면서 여동생을 보호했었고,
내 침대에 둘이 누워서 동생이 내 엄지손가락을 빨면서 잠들기도 했었다.
중고등학교때는 같은 학교를 다녔기에 선생님들께는 여동생이 내 동생으로 각인되기도 했었다.
엄마 돌아가실 때 이야기..... 엄마에 대해 기억나는 것들.....
이런 이야기들을 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1시가 넘었고,
기온은 점차 떨어져서 후~ 하고 불면 하얗게 입김이 보이게 되었다.
돗자리도 있고, 옷도 신경 써서 입고 온 우리도 이렇게 추운데,
얇은 옷을 입거나 교복을 입고 온 학생들은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그때, 공무원인 듯한 사람 몇 명이 와서 '학생들, 이게 뭐하는 거야! 집에 가!"
훈계하면서 학생들을 집에 보내려고 했다.
그러다가.... .. .... 나와 여동생을 발견했다.
"아니 연세가 꽤 되신 것 같은데 왜이러세요~~ 다른 할일도 많을텐데~~"
이 말에 여동생이 발끈했다.
"아니, 아저씨, 다른 할일도 있지만 이 일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으니까 이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되지요~! " 하며 따지기 시작했고,
10대들은 "이런 어른도 있구나" 하는 호기심에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거였다.
결국은 '어른'도 있다는 것을 안 관계자들은 물러섰고, 우리의 노숙은 계속되었다.
조금 지나서 대구서 출발했던 일행들이 도착했고,
나는 집에 가서 (집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밖에 안됨) 갖고 있는 코트나 가디건을 다 싸들고 다시 와서
밤 샐 동생 친구와 옆의 학생들에게 빌려주었다.
두시 조금 지나서 여동생과 나는 집에 돌아왔다.
여동생은 새벽에 막내 우유 먹이고 아침 일찍 다시 광장으로 간다고 한다.
아이고~ 지극정성이로고~~!
그래~ 마지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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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퍼를 읽으면 알겠지만, 제가 B군에 대해 기울이는 건 이거에 비하면 새발에 피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