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코끼리 (보급판 문고본)
스에요시 아키코 지음, 양경미.이화순 옮김, 정효찬 그림 / 이가서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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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코끼리], 일단 재미있다. 주요 등장인물인 엄마, 아들, 딸의 캐릭터와 그들의 일상이 재미있게 꾸며져 있으니 읽는 동안 재미가 쏠쏠하다.  

어수선하고, 똑 덜어지지 못하고, 철없는 이혼한 엄마는 2% 부족하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존재. 아빠를 대신하는 가족에서 유일한 남자임을 자각하고 때론 애늙은이처럼 구는 아들. 예쁘지만 아직 어려서 철모르는 순진한 딸. 가족구성원의 캐릭터를 억지로 부각시키지 않고도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한 저자의 글재주가 뛰어난 것은 쾌히 인정하나, 너무나 익숙한 시트콤의 인물들과 같은 캐릭터라는 점에 신경이 좀 쓰인다.   

운전면허증을 따기도 전부터 노란 자동차를 떡~하니 사다놓는 철없는 엄마의 에피소드로 시작하여 옛보모를 만날 장소를 누누히 잘못 이야기해주는 엄마때문에 졸지에 미아가 될 뻔한 에피소드로 마치는, 현실에선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것 또한 시트콤에서 가능한, 시트콤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들. 물론 몇몇 사건들-오토바이맨을 엄마의 애인으로 착각했다든가, 차 열쇠를 꼽아둔 채 문을 잠갔다든가 등-은 충분한 개연성을 가져 매우 공감할 수 있고, 특히 엉망으로 끝난 아빠와의 마지막 식사, 그리고 그냥 비를 맞고 가겟다며 돌아선 이야기는 마음 찡하여 가장 마음에 남는 이야기다.

주제넘지만,, 이 소설을 아들의 눈으로 바라본 바와 엄마의 눈으로 바라본 바를 나란히 이중으로 엮었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같은 상황에 대한 두 인물의 다른 생각이 교차된다면 굳이 '노란 코끼리 덕분에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 같은 엄마의 설명이 글로 적혀있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렇다면 보다 풍부한 상황전개와 같은 상황을 해석하는 다른 각도의 시각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었을 것 같은데..... 

[노란 코끼리]는 시트콤같은 재미와 한부모가정의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의미있게 엮어내어 읽어보기에 즐겁고 부담없다. 다만, 내 느낌은 그냥 시트콤같은 재미에 만족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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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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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라는 단어에서 받는 인상은 솔직히 좀 별로다. 혀의 당연한 역할이자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맛보기와 말하기의 기능성 보다는 뭔가 끈적거리고 농밀한, 그냥 쉽게 말해서 에로틱 무드가 더 먼저 연상되는 것은 나뿐 아니리라 믿는다. (-.-) 여하튼, 소설 [혀]는 이 기능성과 에로틱 무드가 보기좋게 어우러진데다 꽤나 색다른 맛까지 갖고 있는 별미와도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차마 좋은 맛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색다른 맛이라고 하는 걸까... 

일단 [혀]에서 미각을 향한 다양한 표현들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주인공은 솜씨좋은 요리사. 요리를 잘 하려면 그 스스로가 맛을 잘 느끼고 표현하는 건 기본기나 마찬가지일 터. 달다, 짜다, 시다 같은 평이한 표현조차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꾸밈말과 비유로써 읽는 이의 미각을 깨어나게 하고, 아마 최고급 음식점에서나 만들고 먹을 특별한 재료와 요리법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자연스레 언급되고 있으니, 주인공을 통해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해봤던 요리와 미각의 세계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비록 생소하긴 해도, 꽤 맛나다. 

반면, 음식과 식욕에 관한 불편한 에피소드를 제공하는 주인공의 삼촌과 숙모, 주인공의 가장 친한 친구, 또 주인공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개발해낸 새로운 레시피는 [혀]를 순진하게 아름답기만 한 미각의 세계로 한정하지 않고 있다. 실은 엽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주변인의 이야기와 주인공의 레시피는 단순히 접시 위에 놓이는 음식이 아닌, 삶의 고통과 분노와 복수까지도 껴안는 일종의 불안정한 정신상태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혀가 가진 미세하고 정교한 감각만큼이나 삶에 대해 날카로운 감각의 날을 세웠다고 해야 할까. 그 날카로움에 일정 정도는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빛나는 날카로움에 매료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서로 사랑을 나누었던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로 떠났지만 여전히 그를 향한 사랑을 놓지 못하는 주인공. 그 사랑을 붙잡고 괴로워하다 결국은 놓아버리는 과정이라고 축약한다면 [혀]에 담긴 더 작지만 꼿꼿하게 들어서있는 이야기들이 서운해할 것 같다. 남자가 남겨두고 간 개 이야기도, 주인공이 일하는 레스토랑의 주방장 이야기도, 소박하지만 정겨운 할머니의 부엌 이야기도.

어쨌거나 [혀]에 대한 내 생각을 종합해보면, 상당히 인상적인 별미로서 끝내준다. 인정. 그러나 끝내주는 별미라고 해서 늘상 먹는 흰 쌀밥처럼 무난하진 않다. 결론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혀'에 말린 묘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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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는 엄마 - 아이의 자신감을 키워주는 육아 코칭
이와이 도시노리, 시도 후지코 지음 / 파프리카(교문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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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익히 알려져있는 사실, 상대가 누구이든 그와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듣기'의 기술은 상호 이해와 공감, 밀착성과 친밀도를 좌우한다. 이것은 성인이 사회생활을 하며 부닥치는 대인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영어공부할 때만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사실을 종종 잊는다는 게 딜레마.  특히 이미 끈끈한 관계가 형성된 사이에서, 아주 친한 친구사이나 부부, 부모사이에서 말이다.

 

각설하고. [들어주는 엄마]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그냥 조금 슬펐다. 내가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엄마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엄마, 제발 내 말 좀 들어주세요."라는 말처럼 엄마들의 마음을 아주 깊게 흔드는 말도 많지 않으니까.

 

이 책에서 '듣기'는 聞이 아니라 聽을 의미한다. 관심있게, 주의깊게, 정확하게 듣기. 즉, 아이의 진심을 얼마나 잘 읽느냐가 부모와 아이의 관계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가를 말하고 있는데, 아이가 하는 말 또는 행동에서 아이의 숨겨진 또는 의도하는 진심을 읽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참고할 만한 방법이며, 수긍할 만하다. 또한, 부모가 '듣기'에 능하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듣기'에 능하게 되어 친구들 사이에서 이른바 인기짱 베스트 프렌드로 꼽힐 수 있으니, '듣기'는 아이의 자신감과 용기까지도 키워주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역시 수긍할 만하다.

 

그런데 이 책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수긍할 만하나, 책의 내용만으로는 평범한 육아서에 그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듣기'를 중심으로 놓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한 전반적이고 일반적인 지침이다. 말하자면 초심자용 육아서라는 느낌. 이미 몇 권의 육아서를 읽어본 부모라면, 또 만일 육아서를 다수 탐독해온 부모라면 이처럼 기초단계의 육아서는 그리 인상깊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역으로 말하면 이제 막 육아서를 읽기 시작하는 부모에게라면 육아의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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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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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작곡가 클라이브, 유력 일간지 편집국장 버넌. 이 두 남자가 우정을 나누기 전인지 후인지는 책 안에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이 한번씩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 몰리의 장례식장에서 [암스테르담]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 여인에 대한 각자 다른 기억을 가진 두 남자가 같은 자리에서 여인을 기리고 있는 이 장면에서 [암스테르담]의 주요 인물이 모두 등장하는데, 도입부 이후 이야기는 실상 클라이브와 버넌, 두 남자가 중심이 되고 있다. 또 몰리가 남긴 사진이 발견되는 것이 이 이야기의 최대위기를 만들어내는 주요사건이긴 하지만, 이 소설은 두 남자에 관한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읽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당장 교향곡을 완성해내야 하는 클라이브. 그는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있다고 자부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어서 어떤 영감을 얻기 위해 산행을 떠나고. 한편 몰리의 사진을 입수해 저조한 구독률의 스트레스를 벗어나 단박에 대박을 터뜨릴 생각에 골몰하는 버넌. 그는 사진공개가 비도덕적이거나 사생활침해라고 주장하는 이들과 싸움을 벌여야 하고.

클라이브와 버넌의 이야기는 따로 또 같이 섞이면서 각자의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두 남자 사이의 이야기는 그것대로 순조롭게 잘 굴러간다. 사실 이 소설의 줄거리로 걸러보자면 한두줄 거리도 안될 이야기인 것을, 작가는 세밀한 묘사와 정교한 관계성을 살리는 데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여 전혀 지루할 새 없이 이야기에 끌려가고 만다. 물론,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두 남자가 암스테르담으로 향해 거기에서 벌어진 사건이 되겠지만, 그들이 암스테르담으로 향하기까지의 이야기는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충분히 설득력있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이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매력이다.  

허나, 이 소설의 주제를 잡아내기는 쉽지 않다. 클라이브와 버넌, 그들의 잘못이라면 각자가 가진 신념과 열정에 의지해 행동했던 것인데, 그것이 옳든 그르든 운명의 장난처럼 두 사람의 우정을 몰락하게 만든-어쩌면 그것도 마지막 우정의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세상의 아이러니를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정말 제대로 그려냈고, 또 만일 그렇지 않더라도 그 아이러니를 바라보는 내내 조바심과 안타까움을 가졌던 꽤 인상깊은 이야기다. 짧은 소설이기도 하지만 속도감있는 글솜씨 덕분에 강렬하다.  감상해볼 만하다.  포인트는 두 남자가 암스테르담으로 향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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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피면 -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4
최인석 외 지음, 원종찬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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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 [라일락 피면].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청소년소설이라 자기정체성을 확실히 표명했고, 흔히 성인대상의 소설을 썼던 이름난 소설가들이 여기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성인인 나 역시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다 읽고 난 지금, 이 책이 표명한 자기정체성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들은 모두 썩 좋다.

10대 학생, 즉 청소년이 단편들의 주인공이다. 그러니 청소년이 겪고 느끼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전부 다 청소년과 교감하거나 그들이 공감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러니하게도 표제작인 <라일락 피면>이 가장 그러한데, 이야기의 배경인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이해가 (아마도) 부족한 청소년에게 과연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물론 광주는 배경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주인공이 연민을 갖는 대상인 옆방 여고생을 포함해 투쟁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친구나 형의 존재 의미와 그들의 행동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이 단편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야말로 청소년의 생생한 입담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각의 전개가 담긴, 가장 청소년소설다운 이야기일 텐데, 거기다 재미까지 크다. 무슨 혈액형은 어떤 성격이라더라, 라는 흔한 이야기가 교실 안 학생들 사이의 설전으로 매우 흥미롭게 펼쳐진다. 혈액형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 긴장되고 치열한 설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니, 짧은 호흡과 통통 튀는 재기발랄함은 이 단편의 미덕.

<헤바>와 <널 위해 준비했어>도 청소년, 그냥 쉬운 말로 요즘 애들(!) 이야기. 사촌누나에게 연정을 품는 동생, 은둔생활을 하며 채팅으로만 소일하는 아이의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환호하는 작가인 성석제의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은 청소년소설이라는 것을 접어두고 읽는다면 역시 성석제다. 두 주인공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전개되는 방식인데, 그들의 과거에 있었던 어떤 중요한 '사건'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잔뜩 조바심을 일으키게 만들더니 막바지에 그 '사건'을 밝히고 나서도 어쩜 그렇게 뻔뻔(?)하게도 능구렁이처럼 막을 내리던지. 성석제,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작가다.

그 밖에 <너와 함께>,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 <쉰아홉 개의 이빨>은 독특한 소재와 주제를 갖는데, 이 책 안에서 상대적으로 덜 특별한 인상이었으나 역시 재미있는 단편들이고. 

굳이 누구를 위한 책이라는 점에 얽매이지만 않는다면, 또 사실 어떤 책을 누가 읽느냐는 순전히 독자의 선택이므로 그림책이든 동화든 청소년소설이든 성인소설(18금이라는 뜻 말고..;;)이든, 즐겁고 의미있는 독서가 된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 [라일락 피면]에 담긴 여덟 편의 단편들, 재미있다. 나는 그래서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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