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 가는 길 황석영 중단편전집 2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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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황석영, 까칠한 표정만큼이나 집요한 그의 중단편은 분단과 전쟁, 이념의 대립 속에 휩쓸리는 인간 군상을 재조명함으로써 우리의 정체성과 앞으로의 길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소설이라는 지면의 간극을 넘어 처절하게 궁핍하던 시절을 돌아보며 과연 무엇이 발전했고 무엇이 나아졌는지 씁쓸한 마음으로 오늘을 되짚어본다.

<한씨 연대기>
한국전쟁을 관통하는 한씨(한영덕)의 일대기. 그는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다 한국전쟁을 피해 홀로 남하, 어떻게든 살아보려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간첩이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뿐이었다. 동업을 하던 가짜의사의 모함으로 온갖 고초를 겪은 한씨는 “교수도 의사도 피난민도 아니었고 미친 시대 위에 놓인 한갓 고깃덩이”일 뿐이었다.
위태로운 역사 위에서 상처받은 민초들의 삶이 안타깝게 지나간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만 없었다면 평범하고 단란한 가족을 꾸미고 살았을 한씨 . 그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었던 막막한 상황.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방황하는 바리의 삶을 그린 <바리데기>와 마찬가지로, 황석영이 아니면 그릴 수 없는 아픈 역사의 흔적들이 스쳐간다.

<삼포 가는 길>

 정씨의 삼포 가는 길에 동행하게 된 영달과 백화. 정씨는 오랜 떠돌이 생활 끝에 고향을 찾아 나선 길이고 영달은 밥값을 때어먹고 얼떨결에 나선 길이기에 말동무나 할 겸 그와 동행한다. 그러다 주점에서 도망쳐 남쪽 고향으로 달아나던 여급, 백화를 만난다. 감천까지 가는 길에 영달에게 호감을 갖게 된 백화는 영달에게 자신의 고향에 함께 가자고 권유하지만 그는 삼포 가던 길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개발이 진행되어 일거리가 많을 것이라는 삼포 이야기를 듣자 왠지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린 듯 허탈해한다. 정씨와 영달이 찾아가던 삼포는 더 이상 그들 영혼의 쉼터가 아니었다. 정씨가 그토록 찾아 헤맨 고향이 아니었다.
 산업화 속에 정처 없이 방황하는 우리의 단면을 보여준다. 돈과 물질에 모든 가치가 집중되는 현실이지만 아련하게 떠오르는 마음 속 안식처마저 사라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삼포는 잊혀져가는 우리들의 정신적 고향인 것이다.

<돼지꿈>

돼지꿈이라도 꾼 것일까. 지지리도 궁상맞고 못살았던 그 때, 쥐구멍에 해라도 뜬 것 같이 반짝하는 섬광이 비친다. 물론 오래가지 못할 것은 알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찾아온 '끝빨 선' 날이 아니던가. 하지만 술과 함께 엉망으로 어질러진 좌판처럼 그 끝은 언제나 처량하기만 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위태로운 삶이 한낱 꿈처럼 명멸해간다. 인간의 그 속에서 먹이를 쪼아 먹고 사는 하루살이로 전락해버렸다.

<섬섬옥수>

역사성 짖은 글을 써온 황석영의 작품과는 조금 차별화된 작품 같다. 잘나가던 여대생은 파혼을 결심한 후 울적한 마음도 달랠 겸 관리실 배관공에게 관심을 흘린다. 엄청난 신분차이에서 오는 거리감과 남녀사이의 긴장감을 즐기며 미묘한 감정놀이에 빠진다. 하지만 배관공의 무관심한 듯한 모습을 통해 자신의 지난 날을 되돌아본다.
 "참으로 아늑하고 짧은 잠이었다. 그렇게 축복받은 참에 빠졌던 때가 평생 몇 번이나 있었을까. 나는 관능의 입구를 활짝 열어놓고 내가 여태껏 잘못 길들여왔던 세상의 찌꺼기를 씻어낸 것 같았다."

 황석영이 아니면 써내려가지 못했을 역사가 구수한 사투리를 타고 우리를 관통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한줄기 희망이 숨어있음을 알게 된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처럼 내일을 위한 글쓰기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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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김병준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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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역할과 한계 속에 갈등하며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했고 민주적 국정운영으로 많은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비판과 냉대를 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후에는 <진보의 미래>라는 민주주의 교과서 집필을 통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보다 나은 미래를 구상했지만 검찰과 언론이 봉하마을로 집중되던 2009년 5월, 모든 것을 남겨둔 체 우리 곁을 떠났다.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한다>는 2009년 말, 오마이뉴스 주최로 열린 강독회의 내용을 옮긴 것이다. 10명의 친노 성향 인사들이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의 명암을 집어보고 잘못 알려진 점에 대해 반론한다. <국가의 역할>,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 <슈퍼자본주의>, <더 플랜>, <빈곤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생각의 오류>, 여기에 등장하는 열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그가 생전에 추구해온 평등과 진보, 자유와 복지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에서는 '진보'라는 화두가 어떻게 적용되고 시도되었는지 비중 있게 다룬다. 그래서 보수성향이 강한 사람에게는 다소 불편하고 작위적이라 느껴질 수도, 실패한 정권에 대한 변명이라 매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노무현은 이런 비판에도 당당히 맞서 싸웠다. 미련스러워 보일 정도로 정면승부만 고집했다. 깨어지고 흠집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대통령이라는 권위를 벗어던지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각 속에서 고민했던 참여정부의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빈곤의 종말>에 관심이 컸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절대 빈곤층이 11억 명이나 존재하는 상황에서 저자(제프리 D. 삭스)는 입으로만 빈곤을 떠들기보다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실천했다. 강연을 맡았던 박능후 교수님의 말처럼 "뜨거운 가슴(warm heart)과 차가운 이성(cool head)"을 겸비했기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한비야님이 강력 추천한 <왜 세계의 절반은 굷주리는가?>(장 지글러)와 더불어 읽으면 더욱 좋지 싶다.

 정치인, 자신들의 이권만 챙기며 명패나 집어던지는 선입견에서 어느 정도는 탈피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제를, 복지를, 사회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정치인, 학자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외국의 우수 사례들을 우리나라와 비교해 분석하고, 여기서 얻은 해안을 정치, 경제 전반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의 목소리에서 우리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제대로 실천되고 발현되지 못한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우리의 무지와 일부 권력자, 언론의 사욕으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와전된 것이 어디 한둘이던가. 무엇보다 올바른 정책과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해안, '깨어있는 시민'으로서의 자질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나 정치, 경제를 논하는 이런 비평서들이 일반인의 자성을 촉구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에겐 약간 어렵고 난해한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노무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였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떠나 서민의 편에 서서 국정을 이끌려했던 노력과 눈물이 세삼 느껴진다. 나날이 혼탁해지는 사회를 살면서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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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7-2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가는 책입니다. 이번에도 알라딘 서평단을 하고 계시네요. 왕성한 활동과 리뷰 기대합니다.

프리즘 2010-07-25 00:41   좋아요 0 | URL
서평을 쓰고 싶었지만 어줍잖은 감상만 끄적이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의 글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느끼고 있습니다...
 
<간단명쾌한 철학>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간단 명쾌한 철학 간단 명쾌한 시리즈
고우다 레츠 지음, 이수경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고대철학, 중세철학, 근대철학, 현대철학... 연대기라 불러도 좋을 만큼의 철학 사상들이 그림과 함께 시대 순으로 정리되어있다. <간단명쾌한 철학>이라는 제목처럼 간단하고 명료하게...
 하지만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만 집고 넘어가다보니 무엇하나 또렷하게 남는 것이 없다. 평생에 걸쳐 사색하고 토론했을 철학들을 단 몇 페이지로 요약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워낙 방대한 철학사라 한 번에 모든 것을 섭렵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덥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이 책읽기마저 방해했다. 무거워진 책장을 넘기면서 '간단'은 이해가 됐지만 '명쾌'는 잘 와 닿지 않았다. 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베이컨, 데카르트, 파스칼,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로크, 흄, 홉스, 루소, 칸트, 헤겔, 마르크스, 쇼펜하우어, 니체, 프로이트, 베르그송, 야스퍼스, 하이데거... 이름만으로도 질려버릴 것 같은 그들의 철학이 삼국지의 장수들처럼 인해전술로 밀어닥쳤다. 정신을 집중하려 했지만 흙먼지와 함께 달려드는 그들 앞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 책 역시 교양서가 범하는 오류, 전공자에게는 너무 쉽고 일반인에게는 너무 어려운 것은 아니었을까. 지나친 섬세함과 친절이 책을 방대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는 철학사상만 따분하게 늘어놓은 체 흐지부지 끝나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철학의 큰 흐름을 잡은 체 대표적인 철학만을 골라 일반인의 눈으로 집중 조명하는 것은 어땠을까. 철학 자체의 개별적인 의미에 집착하지 않고 수평적 접근을 통해 일상적인 현상이나 사건을 철학적으로 풀어보는 편이 더 의미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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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종료] 6기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평소 읽는 책은 산문과 소설에 국한돼 있었다.
지만 신간평가단을 하면서 인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책을 무더기로 접했다. 평소 같았으면 어렵고, 고리타분하다는 이유로 읽기를 미뤄왔을 책들을 반 강제적으로나마 읽어나갔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어렵다거나 난해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배워나간다고 생각, 어제와는 다른 폭넓은 시선으로 세상과 마주한다는 느낌에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인문학에 대한 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책으로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김원영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 - 정제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 이진우
사색의 즐거움 - 위치우위
간단명쾌한 철학 - 고우다 레츠



신간평가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이 엄중한 내면의 목소리가 언제나 거듭 들린다. "여기서 떠나라! 앞을 향해 나아가라, 방랑자여! 너에게는 아직 많은 바다와 땅이 남아 있다. 네가 누구와 더 만나야만 하는지 누가 아는가?""
(프페드리히 니체의 <유고> 중에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이진우)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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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0-07-10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상치 못한 책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죠, 나름. (아, 물론 괴로움도 있겠습니다만)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독특한 소재와 일상의 평범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열두 편의 단편은 인간 이면에 대한 통찰을 통해 물질문명에 둘러싸인 체 방황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하다. 백마 탄 왕자의 키스라도 꿈꾸는 것일까. 공허함과 자만, 과시욕에 쌓인 체 현실을 부정하는 모습은 재미를 넘어 씁쓸함마저 갖게 한다.

 [마이크로 결사대]의 경우 평소 짝사랑해왔던 여인의 몸, 그녀의 창자 속에서 회충과 싸우며 항문을 통해 탈출할 수밖에 없는 절체적명의 순간을 희화시켜 놓음으로써 사람에 대한 이중성을 묘하게 풍자한다. 아름다운 겉모습 뒤에 숨겨진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은 인간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페이소스로 다가온다.
 또한, 과시욕에 쌓인 이웃 아줌마를 부추겨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여자들의 결투], 보수적이고 무력한 아버지의 핑크빛 과거를 소개한 [우리 아버지] 역시 현실과 양립할 수 없는 인간의 이중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자신을 위해 타인과의 관계를 이용하거나 과거를 묻은 체 살아가는 모습이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현대인을 보는 것 같다. 산업화와 정보화의 미명 아래 점점 부품화 되어가는 인간들의 씁쓸한 반항처럼 느껴진다.

 소소한 반전이 주는 생각꺼리는 입가에 묻은 밥풀을 닦아주던 외할머니의 손길처럼 따뜻했다. 막 걸음마를 땐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고희를 바라보는 어르신의 느긋함을 유쾌하게 풀어낸 소설집 <유모아 극장>.
 고루한 일상을 버텨내게 하는 산들바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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