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하게 자리잡은 질투[순수의 영역]

질투란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고 반대로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한에서의 미움이다.-스피노자, [에티카]에서
감정을 이렇듯 딱 잘라 정의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내가 겪어 보기도 전에 이 감정을 정의한 것을 읽었다면 그 문장에 얽매이게 될 것이고, 겪어본 후에 이 문장을 읽었다면 꼭 같은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을 의아해 하며 내가 정말 '질투'란 것을 한 것이 맞는지 혼란에 빠지게 될 것 같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보아도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좀처럼 딱 떨어지는 자리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 바로 감정이다.
사쿠라기 시노는 '질투'의 감정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원래가 남의 일을 두고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성질이 아니다 보니, 무서운 편집자의 다그침에 눈물을 흘리며 질투의 본질에 끝까지 파고들었다,고
했다.

가정주부들의 눈길을 끄는 아침드라마의 필수 요소는 "막장"이다.
주부들의 애환을 그대로 드러내는 시월드, 사랑, 질투, 증오 등등이 뒤섞여 그야말로 불협화음의 이중주, 삼중주를 달리는 것이다.
요즘 아침 드라마에 푹 빠져 살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순수의 영역]은 "질투"라는 감정을 파고들었다고는 하지만 조금은 심심한, 아니
자극적인 요소가 아주 없는 "착한"드라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참, 문학을 이해 못하시는 아주머니네~ 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순수함의 결정체 "준카"를 기준으로 두고 보면 서예가 류세이와 아내 레이코, 준카의 오빠 노부키 등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홍진(紅塵)에 묻힌 분네'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우리네 아침 드라마의 막장 주인공들의 행태에는 한참 못 미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자신들의 감정은 날뛰고 있는 게 느껴지는데도 행동은 그지없이 담담하다.
너무 극과 극을 비교한 탓인가...비교해 놓고도 좀 머쓱해진다.
붓끝을 모으고 자세를 잡은 다음 붓을 놀리기 시작할 때에는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여자, 하야시바라 준카.
그녀는 류세이가 올해의 한 폭으로 정한 글씨를 한참 응시했다. 오싹하리만큼 맑은 눈동자였다. 과연
행복할까 의심이 들 만큼 정직한 눈빛이다.-16
준카는 25살이고 서예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서예에 있어서는 엘리트의 길을 걸어왔으나 공모전에 입상하지 못하고 작은 서예 교습소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고민하는 류세이. 도서관에서
작은 개인전을 연 날, 순수한 그녀 준카를 만났고 그녀로부터 서예에 대한 따끔한 지적을 받으며 마음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남편의 개인전을
보러 온 고등학교 보건교사 레이코는 준카의 오빠인 도서관관장 노부키에게 왠지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류세이 말고 다른 남자를 향해 미소 짓는 레이코를 오랜만에 봤다. 물리 교사가 그녀에게 보내던 눈빛이
떠오른다. 잡생각이라며 어금니에 힘을 준다. -26
한때 서예교실을 할 정도로 심미안이 빼어났던 류세이의 어머니는 이제 치매에 걸린 반신불수의 상태로 거동조차 힘들다. 아들 류세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고 아내 류이코에게 전적으로 기대는 삶을 살고 있다. 아내 레이코는 남편 류세이가 지닌 순수함에 대한 동경심과 약간의 경멸감
사이를 오가며 질질 끌려가는 듯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류세이 부부와 준카 남매의 만남은 평온한 나날에 균열을 불러일으켰다.
웬일인지 레이코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갑자기 오빠에게 의탁하게 된 준카를 낮시간동안 보호해주자는 취지로 서예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준카를
서예교습소의 보조교사로 일하게 한다. 이렇게 넷은 서로 얽히게 되는데...
류세이에게 불현듯 나타난 질투의 감정.
하나는 서예에 있어 창작은 할 수 없어도 모사에 있어 빼어난 재능을 보이는 준카에 대한 질투.
다른 하나는 도서관 관장이면서 준카의 오빠인 노부키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내 때문에 생긴 남자로서의 질투.
얼음 공주같은 순수의 결정체인 준카를 바라보며 서로의 감정 안에 갇힌 채 서 있는 세 개의 얼음기둥이 연상되는
이야기다.
사랑으로 인해 야기되는 질투는 질투를 하는 사람의 내면을 갈갈이 찢어놓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와의 결혼생활에서 증발해 버린 긴장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한 번 틀어진 관계에서 질투를 느낄 수는 있어도 사랑으로 환원할 수는 없는 법. 깨진 채로 서로를 부여잡고 나머지 길을 가야하는
것이 예견된 하룻밤의 일탈은 씁쓸하다.
갑작스럽게도 이야기의 중간에 찾아온 준카의 죽음으로 인해 세 개의 기둥은 조금씩 뻗어가던 욕망을 꺾은 채 움츠러들었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반전 때문에 책을 중간쯤부터 다시 읽어야했다.
그 때, 내내 지나치게 냉랭하고 감정의 동요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비춰지던 레이코와 노부키의 드글드글 끓는 감정이 눈에 비쳤다. 아, 이걸
내가 어떻게 놓치고 지나갔을까.
준카를 제외한 세 개의 감정의 기둥은 움츠러든 것이 아니라 계속 위로 치솟으려 하고 있었구나...
마지막의 반전은 차라리 통쾌했다.
가로수의 가지 끝을 올려다보니둥근 달리 걸려 있다.
달에 구멍이 났네...
나한테 바보라고 한 사람들, 거짓말 한 사람들을 죄다 저 구멍에 넣어 버릴 테야. 하늘에 저렇게 예쁘게
뚫린 구멍에 다 던져 넣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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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구멍만 빼고는 다 순수의 영역을 벗어났다.
고독하고도 허무한 바람이 달을 스친다.
질투의 감정을 다룬 소설이라면 좀 더 빠르고 적대적이고 불꽃튀는 드라마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없이 처연하고 스산하고 차갑다.
그래서 더욱 위험한 질투라는 감정의 성질이 잘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준카를 기준으로 놓고 볼 때 그저 달의 구멍에 던져 넣어버리고 싶은 사람들.
마지막에 가서 그녀의 재능 앞에 무릎 꿇고 마는 류세이에게 찐한 동정을 느낀다.
없었던 일처럼 덮어버리고 살 수 있는 사건이란 없다.
자그마한 일이라도 벌어진 이상, 상처를 남기고 상처는 벌어져야만 아무는 법이다.
심장의 벌어진 상처를 잘 부여잡고 철철 흐르는 피를 주워담아 남은 날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질투라는 감정에 대한 대가 치고는 좀 혹독하긴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