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영역
사쿠라기 시노 지음, 전새롬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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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늘하게 자리잡은 질투[순수의 영역]

 

 

 

질투란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고 반대로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도록 인간을 자극하는 한에서의 미움이다.-스피노자, [에티카]에서

 

감정을 이렇듯 딱 잘라 정의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내가 겪어 보기도 전에 이 감정을 정의한 것을 읽었다면 그 문장에 얽매이게 될 것이고, 겪어본 후에 이 문장을 읽었다면 꼭 같은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을 의아해 하며 내가 정말 '질투'란 것을 한 것이 맞는지 혼란에 빠지게 될 것 같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보아도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좀처럼  딱 떨어지는 자리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 바로 감정이다.

 

사쿠라기 시노는 '질투'의 감정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원래가 남의 일을 두고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성질이 아니다 보니, 무서운 편집자의 다그침에 눈물을 흘리며 질투의 본질에 끝까지 파고들었다,고 했다.

 

 

 

가정주부들의 눈길을 끄는 아침드라마의 필수 요소는 "막장"이다.

주부들의 애환을 그대로 드러내는 시월드, 사랑, 질투, 증오 등등이 뒤섞여 그야말로 불협화음의 이중주, 삼중주를 달리는 것이다.

요즘 아침 드라마에 푹 빠져 살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순수의 영역]은 "질투"라는 감정을 파고들었다고는 하지만 조금은 심심한, 아니 자극적인 요소가 아주 없는 "착한"드라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참, 문학을 이해 못하시는 아주머니네~ 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순수함의 결정체 "준카"를 기준으로 두고 보면 서예가 류세이와 아내 레이코, 준카의 오빠 노부키 등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홍진(紅塵)에 묻힌 분네'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우리네 아침 드라마의 막장 주인공들의 행태에는 한참 못 미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자신들의 감정은 날뛰고 있는 게 느껴지는데도 행동은 그지없이 담담하다.

너무 극과 극을 비교한 탓인가...비교해 놓고도 좀 머쓱해진다.

 

붓끝을 모으고 자세를 잡은 다음 붓을 놀리기 시작할 때에는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여자, 하야시바라 준카.

 

그녀는 류세이가 올해의 한 폭으로 정한 글씨를 한참 응시했다. 오싹하리만큼 맑은 눈동자였다. 과연 행복할까 의심이 들 만큼 정직한 눈빛이다.-16

 

준카는 25살이고 서예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서예에 있어서는 엘리트의 길을 걸어왔으나 공모전에 입상하지 못하고 작은 서예 교습소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고민하는 류세이. 도서관에서 작은 개인전을 연 날, 순수한 그녀 준카를 만났고 그녀로부터 서예에 대한 따끔한 지적을 받으며 마음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남편의 개인전을 보러 온 고등학교 보건교사 레이코는 준카의 오빠인 도서관관장 노부키에게 왠지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류세이 말고 다른 남자를 향해 미소 짓는 레이코를 오랜만에 봤다. 물리 교사가 그녀에게 보내던 눈빛이 떠오른다. 잡생각이라며 어금니에 힘을 준다. -26

 

한때 서예교실을 할 정도로 심미안이 빼어났던 류세이의 어머니는 이제 치매에 걸린 반신불수의 상태로 거동조차 힘들다. 아들 류세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고 아내 류이코에게 전적으로 기대는 삶을 살고 있다. 아내 레이코는 남편 류세이가 지닌 순수함에 대한 동경심과 약간의 경멸감 사이를 오가며 질질 끌려가는 듯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류세이 부부와 준카 남매의 만남은 평온한 나날에 균열을 불러일으켰다.

웬일인지 레이코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갑자기 오빠에게 의탁하게 된 준카를 낮시간동안 보호해주자는 취지로 서예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준카를 서예교습소의 보조교사로 일하게 한다. 이렇게 넷은 서로 얽히게 되는데...

 

류세이에게 불현듯 나타난 질투의 감정.

하나는 서예에 있어 창작은 할 수 없어도 모사에 있어 빼어난 재능을 보이는 준카에 대한 질투.

다른 하나는 도서관 관장이면서 준카의 오빠인 노부키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내 때문에 생긴 남자로서의 질투.

 

얼음 공주같은 순수의 결정체인 준카를 바라보며 서로의 감정 안에 갇힌 채 서 있는 세 개의 얼음기둥이 연상되는 이야기다.

사랑으로 인해 야기되는 질투는 질투를 하는 사람의 내면을 갈갈이 찢어놓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와의 결혼생활에서 증발해 버린 긴장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한 번 틀어진 관계에서 질투를 느낄 수는 있어도 사랑으로 환원할 수는 없는 법. 깨진 채로 서로를 부여잡고 나머지 길을 가야하는 것이 예견된 하룻밤의 일탈은 씁쓸하다.

 

갑작스럽게도 이야기의 중간에 찾아온 준카의 죽음으로 인해 세 개의 기둥은 조금씩 뻗어가던 욕망을 꺾은 채 움츠러들었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반전 때문에 책을 중간쯤부터 다시 읽어야했다.

그 때, 내내 지나치게 냉랭하고 감정의 동요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비춰지던 레이코와 노부키의 드글드글 끓는 감정이 눈에 비쳤다. 아, 이걸 내가 어떻게 놓치고 지나갔을까.

준카를 제외한 세 개의 감정의 기둥은 움츠러든 것이 아니라 계속 위로 치솟으려 하고 있었구나...

 

마지막의 반전은 차라리 통쾌했다.

 

가로수의 가지 끝을 올려다보니둥근 달리 걸려 있다.

달에 구멍이 났네...

나한테 바보라고 한 사람들, 거짓말 한 사람들을 죄다 저 구멍에 넣어 버릴 테야. 하늘에 저렇게 예쁘게 뚫린 구멍에 다 던져 넣어야지.

-282

 

달의 구멍만 빼고는 다 순수의 영역을 벗어났다.

고독하고도 허무한 바람이 달을 스친다.

 

질투의 감정을 다룬 소설이라면 좀 더 빠르고 적대적이고 불꽃튀는 드라마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없이 처연하고 스산하고 차갑다.

그래서 더욱 위험한 질투라는 감정의 성질이 잘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준카를 기준으로 놓고 볼 때 그저 달의 구멍에 던져 넣어버리고 싶은 사람들.

마지막에 가서 그녀의 재능 앞에 무릎 꿇고 마는 류세이에게 찐한 동정을 느낀다.

없었던 일처럼 덮어버리고 살 수 있는 사건이란 없다.

자그마한 일이라도 벌어진 이상, 상처를 남기고 상처는 벌어져야만 아무는 법이다.

심장의 벌어진 상처를 잘 부여잡고 철철 흐르는 피를 주워담아 남은 날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질투라는 감정에 대한 대가 치고는 좀 혹독하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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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나 1997 - 상 - 어느 유부녀의 비밀 일기
용감한자매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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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놀아본 언니들은 달라? [줄리아나 1997 상, 하]

 

간만에 어쩔 수 없이 스릴있는 독서를 즐기게 되었다 .

집에는 방학이라 아이들이 항시 대기중이고, 저녁부터는 남편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려니 괜히 눈치가 보여서다.

첫 장면부터 낯뜨거운...우흡.

어떤 유부녀가 모텔에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벌이는 적끈적한 정사씬이 떡 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이걸 애들 있는 데서 어떻게 보지?

잠시, 덮어두었다가 저녁에 펼쳤는데  옆자리에는 남편이  앉아 있으니...맘 놓고 읽어나갈 수가 없다.

고등학생 때 수업 시간 선생님의 눈을 피해 할리퀸 로맨스를 책 사이에 놓고, 혹은 책상 밑에 놓고 바삐 읽어내려가던 그 때의 짜릿함이 되살아난달까...

속독을 즐기던 습관은 그 때 길러진 것이었고,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피드 때문에 할리퀸은 언제나 내 손을 거쳐서야 다른 아이들에게로 넘어갔던 ...아, 생각난다. 그 때 그 시절.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괜히 손바닥에 땀이 나고, 책 내용을 누가 훔쳐보기라도 할까봐 심장 박동이 바운스 바운스다.

이런 건...여자들만의 비밀스럽고 안전한 장소에서 편안하게 릴렉스하며 읽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낮더위에 많이 힘들어하던 남편에게 영화 예매권을 쥐어 주며 가서 심야 영화 한 편 보고 오라고 쫓아낸 후에야...

분위기를 잡고 조용히 그러나 최대한 후다닥 읽을 수 있었다.

충분히 후다닥 읽을 수 있을 만큼 내용은 재미있었다. 뭐랄까...

20부작 드라마를 2시간으로 요약해 읽는 느낌?

적당히 통속적이고 적당히 멜로와 갈등이 들어 있으며 눈에 거슬리지 않는 매끄러운 문장 덕에 2시간 정도는 후딱 지나갔다.

 

줄리아나.

누군가에겐 추억의 이름이려나?

밤의 휘황찬란한 세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1997년을 주름잡던 줄리아나 나이트클럽을 휘저었던 전설적인 죽순이 오자매의 이야기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언니들은 그러나...지조 있는 죽순이 오자매였다고 한다. 황진이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섹시한 그녀 황진희를 빼고는?^^

왜냐? 그녀들은 이대 나온 뇨자들이었으므로.

 

2013년 영화 [밤의 여왕]이 생각났다. 눈이 땡그랗고 귀여운 배우 김민정이 주연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녀도 왕년의 "여왕"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 과거 비밀이 밝혀지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찡하면서도 재미있게 그려낸 영화였다.  

천사 같은 외모,
 일류 호텔급 요리 솜씨,
 3개국어가 가능한 지적능력까지 겸비한 그녀. 울트라 A급 현모양처 ‘희주’
 대한민국 대표 현모양처인줄로만 알았던 그녀가 알고 보니 "밤의 여왕"이었던 것.

소심한 희주의 남편은 그녀의 뒤를 캐고 어마어마한 비밀을 알아내게 되는데...

언제나 그렇듯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보여주는 영화여서 결말은 뻔하다.

 

왕년의 여왕들, 혹은 놀던 언니들은 잘 살고 있을까?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이어서 얼른 달려들어 읽기는 했지만, 특히나 공감 가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애초에 나와는 완전 다른 세계의 일이어서일 수도 있겠고, 노골적으로는 이대 나온 뇨자들이라고는 해도 일반 이 현실을 살아가는 뇨자들의 이야기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불륜, 막장, 시월드.

요즘 드라마에 트렌디하게 반영되고 있는 이 요소들도 빠지지 않는다.

'지연'이라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나머지 네 여자들의 이야기가 가끔씩 끼어드는 식의 구성으로, 사실은 다섯 개 정도의 드라마를 한 자리에 묶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뻔질나게 보아온 드라마들이 총집합되어 있다.

개개인의 사연 또한 구구절절하다.

여주인공 다섯은 하나같이 예쁘고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매력 덩어리들이다.

이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그녀들의 짝들 또한 어디서 그렇게 세트로 잘도 맞추어 놓았는지.

드라마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없다!!

 

현대판 "여자의 일생"이랄까.

불륜은 선택이 되어 버린 시대.

이대를 나왔어도, 집안이 좋고 멋진 직업을 가졌어도 여자들의 상황은 그놈의 정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남자"에게 속박되어 결코 "남자"와 얽힌 결말이 아니면 해피엔딩이 아니게 되어 버린 시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성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 남편은 안전지대인가?라는 의심을 품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충실한가? 하고.

 

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드라마를 오늘 또 한 편 , 아니 다섯 편 정도 더 본 기분이다.

깊이는 아니더라도 조금쯤은 현실을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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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펫 7 - 의리파 기니피그의 출동 좀비펫 시리즈 7
샘 헤이 지음, 사이먼 쿠퍼 그림, 김명신 옮김 / 샘터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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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친구들을 구하라 [좀비펫 7]

 

아직 애완동물을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보여주는 게 아니었어ㅠㅠ

몇 장 넘기지 않아 당장에, "나도 기니피그 갖고 싶어~" 한다.

남매가 의지해서 외롭지 않게 지내고 있다 해도 애완동물 가지기는 모든 아이들의 로망.

애완동물의 존재가 분명 독이 아닌 득이 될 걸 알고는 있지만, 아파트에 사는 형편상 애완동물 키우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나도 어렸을 때 세 자매가 득시글거리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자매는 자매, 애완동물을 애완동물.

고양이나 강아지가 주는 또다른 따스함이 분명 있었다.

먹이를 주고 눈빛을 교환하고 함께 놀아주는 동안 싹트게 되는 애틋한 감정을 한 번쯤 겪어보는 것, 그리고 만일의 경우 상실의 아픔까지 겪어보는 것.

어느 누가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겠는가?

이 책에는 펫은 펫이되, 좀비펫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펫이 나온다.

으스스한가?

사람이 좀비가 된 경우라면 으스스하겠지만 일단은 동물이다.

작고 좀 귀엽다. 공포를 느끼기엔 위험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

 

엄마의 알레르기 때문에 집에서 동물을 키울 수 없는 주인공 조 에드먼즈.

이집트의 부적을 선물받은 후 이상한 좀비펫들이 그의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7권에서는 새로운 주인공으로 기니피그가 나타난다.

크로포드 씨네 집을 방문한 조는 기니피그 세 마리-번개돌이, 바람돌이, 날쌘돌이-가 경주를 벌이는 장면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찍찍 소리가 났다. 그것도 탁자 밑에서.

바람돌이는 털이 젖은 채 달콤한 향이 나는 물방울을 튀기며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 집 부엌에 뱀이 있어!"

뱀을 본 순간 놀란 바람돌이는 세탁기 안으로 숨어들어갔는데, 그걸 모른 엄마가 세탁기를 작동시켰고,,,

바람돌이는 그 길로 꼬로록~

좀비펫이 되어버린 바람돌이는 남은 두 친구들을 주황색 뱀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조를 찾은 것이다.

조는 어떻게든 바람돌이의 소원을 들어주고 저승으로 보내야만 하는 처지이므로 울며 겨자먹기로 바람돌이를 도와야 한다.

 

뱀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일단 평소 친하지 않은 스파이크의 집을 방문하기로 하는데...

둘은 남아 있는 번개돌이와 날쌘돌이를 뱀에게 잡아먹힐 위험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귀여운 동물 기니피그가 주인공으로 나오자 정신을 못 차리고 책에 빠져드는 아이.

왠지 요즘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라나는 환경이 닫힌 환경이다 보니 맘껏 부비대고 애정을 쏟아붓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동물 하나 맘대로 키우질 못한다.

정원 딸린 주택에 살거나 시골집이 가까이 있다면야 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르나...

어찌한다, 부모의 잘못이려나....

좀비펫을 읽으며 눈으로 쓰다듬어주고 애완동물에 대한 갈증을 조금만 삭여 주려무나.

나중에 꿈같은 환경을 가진 곳으로 가게 되면...그 때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게 해 주마.

오늘따라 털복숭이 곰돌이를 꼭 껴안고 잠든 아이가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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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4.8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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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름달 [샘터 8월]

 

 

 

'하늘에서 해가 땅 위에선 가슴이 타는 달'

 

오늘은 아이들 여름방학식이 있는 날이다. 

좀 있으면 "방학이다"를 외치며 들이닥치겠다.

 

아이들에게는 신 나게 뒹굴거릴 수 있는 한 해 중 최고의 날들이 펼쳐지겠지만, 삼 시 세 끼 밥 차려주랴, 두 놈 투닥거리는 걸 지켜보랴...

엄마 입장에서는 가슴이 타들어갈 날들의 시작인 고로,

그렇게 기쁘지만은 않다.

해가 타는 한여름, 가슴까지 타면 어떻게 될까?

 

배부른 투정~

 

보자, 샘터 8월호에는 무슨 이야기가 실려 있나..

 

시원한 계곡의 폭포 사진과 함께 이홍렬의 사진이 있다.

아~마음의 숲 출판사에서 이홍렬의 자서전 [60초]라는 책이 나왔었지.

스스로 작성한 버킷리스트 중에 자서전 쓰기도 있었다는데 하나하나 실현해나가며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2012년 국토 종단을 떠나 모금한 돈 3억여 원으로 아프리카 남수단에 자전거 2600여대를 기부한 기부 천사. 주례를 서주고 사례비 대신 아프리카 어린이를 한 명 후원하라는 색다른 방법을 제시하며 기부를 널리 알리기도 한다고.

하회탈 같은 웃음이 그저 보기 좋게 꾸며진 인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겠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삶의 흔적들은 얼굴에 알게 모르게 새겨지고 있으니 내 얼굴을 책임지려면 마음을 잘 가꾸는 수밖에 없겠다, 하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기나긴 여름밤.

열대야로 잠 못 이룰 수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방법 하나 알려주겠다는 듯, 책의 탑 위에 올라앉은 하얀 부엉이 그림이다. 화가 안윤모의 그림.

안 그래도 낮에는 피곤해서 낮잠을 자는 통에 밤에 통 잠이 오질 않아 새벽 2시쯤 되어야 까무룩 꿈나라로 향하는데, 저 부엉이를 친구 삼아 으시시한 이야기 책이나 읽어볼까 싶어진다.

'다락방 책꽂이' 코너를 기고하는 양인자 선생은 "성서"를 읽는 중이라 했는데 나는 영~

아직 종교에 마음을 의지할 만큼 세상이 힘겹지는 않은가보다.

 

쭉 넘어가다 보니 얼른 책귀퉁이를 접어두고 싶은 부분이 있다.

서민 교수의 기생충 이야기 중.

<그러다 기생충 될라>

눈에 보이지앟는 기생충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속속들이 캐내 전해주고 있어서 항상 빼놓지 않고 읽고 있는데, 이번에는 좀 따끔한 풍자적 내용이 들어 있다.

인간의 배 속에 들어가 기생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몇 만 년을 그렇게 살아온 기생충의 현재 모습을 보라.

눈이 없고 다리도 없고 뇌가 없고 몸 전체가 생식기가 된 모습. 가장 결정적으로 알벤다졸 한 알에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저세상으로 조용히 떠나야 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 옛날 인간의 몸에 들어가지 말 것을."

여기까지만 보면 지극히 한많은 기생충의 일생이겠거니 하지만, 오호라.

기생충을 "스마트폰 쓰는 인간"으로 바꿔 보라.

다시 몇만 년 후의 미래에 인간은 지독한 근시가 되고 걷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뇌가 작아지고 개체 수가 줄어든다는 충격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흑흑. 인간보다 지능이 떨어졌던 침팬지의 노예로 살게 되는 인간에게 침팬지 하는 말.

"농땡이 부리지 말고 어서 일해!"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만 만들지 않았다면!"

 

 

새벽 1시경, 한 침대에 나란히 앉았으면서도 남편은 스마트폰 게임을, 나는 인터넷 카페 순례를 하며 조용한 시간 속에 묻혀 있었는데 문득, 스마트폰을 내동댕이치며 남편이 말했다.

"스마트폰 때문에 마누라랑 얘기도 못하네."

 

서민 교수의 글을 읽고 난 뒤라 나도 얼른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무안함에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배시시 ~

 

더운 여름에도 살 부대끼며 한 침대에 앉았는데 둘 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참, 열없다.

노예가 되기 직전 탈출한 사람의 심정으로 스마트폰으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는다.

"오늘은 말이야..."

남편과 두런두런 얘기꽃을 피운다.

타오름달도 둘이서 견디면...견딜 만 하겠다. ^^

 

 

마지막으로 책의 말미에 실린 독자 데이트를 보며

한 때 인상깊게 읽었던 [헌책이 말을 걸었다]를 다시 꺼내왔다. 헌책방 운영자 윤성근 씨가 헌책에 쓰여 있는 글들을 모아 펴낸 책인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란 헌책에 끼적인 글의 주인공이 6월호 샘터에 실린 윤성근씨 책 속의 글을 보고 사연을 보낸 것이다 ."어, 저거 내가 쓴 건데.."하면서.

중 1때 책을 읽고 자신을 향해 써내려간 편지란다.

 

책이 돌고도아...다시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내가 쓴 글이 남아 있는 책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사람과 사람을 이렇게도 연결해주는 책이라는 존재, 소중히 다루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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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맥주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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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만끽하는 대단한 방법 [푸른 하늘 맥주]

 

계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

똑같은 질문을 남편에게 한다면...

남편의 대답은 겨울.

 

아이들은 물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좋겠지.

언제나 놀 거리가 있는 한은^^

 

아, 어른들에게 여름이란

찌는듯한 더위에 대비하여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켜면 얼마나 전기세가 나갈까, 하는 냉방비 걱정의 계절이요,

혹시나 장마철이 되면 습기 때문에 빨래가 안 마르면 어쩌나, 꿉꿉한 기운 때문에 짜증이 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의 계절이요,

캠핑이나 물놀이 등 아이들을 데리고 어느 곳으로 떠나야 하나, 사람들이 어딜 가나 바글댈 텐데...하는 지긋지긋한 고민의 계절이요,

안 그래도 지구온난화 때문에 지구가 드글드글 끓고 있는데 일 년 중 가장 더한 고비를 맞이하게 되니 자외선 때문에 얼굴이며 팔, 다리 등이 타지 않을까 심히 예민해지는 계절이요,

더위로 지쳐 입맛 또한 잃게 된 식구들 뭘 먹일까, 열대야 못지 않게 잠 못 이루게 하는 불면의 계절이다.

 

어른이 아닌, 아이였더라면...

눈 내리는 날 차가 노면에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어른의 마음은 꿈에도 모른 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를 받아먹으며 희희낙락할 수 있는 것처럼

여름의 쨍한 햇볕에도

위의 모든, 긁어부스럼인 쓸데없는 생각 따윈 뇌의 주름 안에 끼워넣지도 않고 

그저 시원한 수박 한 입,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깔깔한 대자리와 가슬가슬한 옷차림을 즐기며 하하호호 할 수 있겠지.

 

천진난만한 아이 시절로 거슬러올라가기는 바라지도 않는다.

모리사와 아키오같은 젊은 시절을 보낸 기억이 있다면 그 추억만으로도 한평생 야금야금 밑반찬 삼아 꺼내먹을 수 있었을 텐데...

 

만화영화 원피스의 주인공 해적 루피처럼 밀짚모자를 척 쓰고 거품 촤르르 일어나는 맥주를 한 손 높이 치켜들고 있는 저 모습!!

작가는 "여행을 떠납니다"란 사유와 함께 다니던 출판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노숙여행'을 떠났다.

푸른 하늘과 바다를 다 가진 듯한 젊은이의 완전 대단한 썸머 아웃도어 어드벤처는 여름 더위에 축 늘어져 소파에 기댄 채 책을 읽는 나를 낄낄거리게 만들고 웃음을 약 삼아 다시 불끈 일어서게 만들었다.

 

과연, 젊은이라면,

여름을 이 정도로는 보내야 제대로 보냈다고 할 수 있지!!

 

모리사와 아키오는 현재 [푸른 하늘 맥주]를 썼을 때의 자신보다 10년, 20년 더 나이를 먹은 43세라고 한다.

이제는 추억의 글들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니 참 바보 같은 청춘을 보냈구나, 하며 스스로 한심해지기도 했다고 하지만 그건 겸손의 말씀.

그 누구보다도 젊은 시절을 꽉 차게 보냈다고 박수쳐주고 싶다.

 

주말의 어느 TV 개그프로그램의 "썸&쌈" 코너에서 "개 똥! 같은 소리"라는 유행어가 나오는 걸 보고 남편과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남편과 나는 실생활에서 자주 우스개로 그 말을 하며 포복절도, 박장대소할 웃음 거리를 만들어나간다. 똥이란 지저분하고 피하고 싶은 것인데, 상황에 맞게 쓸 때는 개그가 되기도 한다는 것.

그 때 이미 알았지만 [푸른 하늘 맥주]를 보며 다시금, 폭탄같은 위력을 지닌 "똥"의 다양한 얼굴에 대고 폭풍 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노상방분이라는 행위에도 다양한 명칭이 있다며 의뭉스레 소개하기도 한다.

필드 쉿, 야외 탈분, 빅 원, 큰 쪽, '나, 다눈똥(똥눈다의 업계용어라고 하네요), 마킹 등등, 행위자 수만큼의 명칭을 가졌다는 말에 아! 빵 터지고 말았다.

"노상방분 100회"의 기록을 가진 노상방분의 달인 답게

물 속에서 방분하는 "엄청난 쾌감"에 뒤지지 않는 "엄청난 충실감"을 겪어낸 에피소드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 장소에 앉아 일을 보는 듯...집중하게 되었다.

 

이거...여자가 따라 해도 되나요?^^

 

 

 

개구진 꼬맹이의 유전자를 타고났는지 어른의 초입에 들어선 젊은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유쾌하게 전국을 여행하며 웃음을 마구 퍼뜨려주시는 모리사와 아키오의 여행은 한 사람이 다 겪었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스펙터클하다.

아, 물론 여행을 함께 한 친구들도 주요 등장인물이다.

103세 할머니와 함께 야영했던 도봉

오카모토 고무보트에 생사를 걸고 급규타기에 도전했던 이와이

홋카이도에서 등에 떼의 습격을 받고, 사만토 강에서까지 두 번이나 죽을 뻔했던 아폴로

휴웅 철썩 군단 때문에 배를 잡고 웃어대고, 정글 파이어를 맨 정신에 해냈던 곤들매기 수준의 뇌를 가진 남자, 미야지마.

그들의 젊은 날은...말 그대로 차갑게 식힌 맥주를 잔에 따랐을 때 올라오는 하얀 거품처럼 찬란했다.

 

해마다 9월이면 여름을 잊지 못해 9월 병에 걸리곤 했던 그의 여름나기는 푸른 하늘과 맥주가 있었기에 더욱 시원하고 짜릿했으리라.

노숙여행이라 다른 데는 돈을 아껴도 맥주만큼은 꽉꽉 채워두어야 했던 그 기분을, 언제나 하루의 마무리에 빠지지 않았던 맥주 이야기를 읽으면서, 알 것도 같았다.

 

제철 산나물을 캐서 튀김을 만들고, 그걸 안주로 맥주라도 한잔할까!-90

 

그래, 올 여름엔 이 문장 하나를 믿고, 캠핑을 떠나 볼까 한다.

비록 캔 맥주 하나를 둘이서 나눠먹고 헤롱헤롱하는 매우건전 커플과  두 꼬맹이들의 여행이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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