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만끽하는 대단한 방법 [푸른 하늘 맥주]
계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
똑같은 질문을 남편에게 한다면...
남편의 대답은 겨울.
아이들은 물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좋겠지.
언제나 놀 거리가 있는 한은^^
아, 어른들에게 여름이란
찌는듯한 더위에 대비하여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켜면 얼마나 전기세가 나갈까, 하는 냉방비 걱정의 계절이요,
혹시나 장마철이 되면 습기 때문에 빨래가 안 마르면 어쩌나, 꿉꿉한 기운 때문에 짜증이 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의 계절이요,
캠핑이나 물놀이 등 아이들을 데리고 어느 곳으로 떠나야 하나, 사람들이 어딜 가나 바글댈 텐데...하는 지긋지긋한 고민의 계절이요,
안 그래도 지구온난화 때문에 지구가 드글드글 끓고 있는데 일 년 중 가장 더한 고비를 맞이하게 되니 자외선 때문에 얼굴이며 팔, 다리 등이
타지 않을까 심히 예민해지는 계절이요,
더위로 지쳐 입맛 또한 잃게 된 식구들 뭘 먹일까, 열대야 못지 않게 잠 못 이루게 하는 불면의 계절이다.
어른이 아닌, 아이였더라면...
눈 내리는 날 차가 노면에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어른의 마음은 꿈에도 모른 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를 받아먹으며 희희낙락할
수 있는 것처럼
여름의 쨍한 햇볕에도
위의 모든, 긁어부스럼인 쓸데없는 생각 따윈 뇌의 주름 안에 끼워넣지도 않고
그저 시원한 수박 한 입,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깔깔한 대자리와 가슬가슬한 옷차림을 즐기며 하하호호 할 수 있겠지.
천진난만한 아이 시절로 거슬러올라가기는 바라지도 않는다.
모리사와 아키오같은 젊은 시절을 보낸 기억이 있다면 그 추억만으로도 한평생 야금야금 밑반찬 삼아 꺼내먹을 수 있었을 텐데...
만화영화 원피스의 주인공 해적 루피처럼 밀짚모자를 척 쓰고 거품 촤르르 일어나는 맥주를 한 손 높이 치켜들고 있는 저 모습!!
작가는 "여행을 떠납니다"란 사유와 함께 다니던 출판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노숙여행'을 떠났다.
푸른 하늘과 바다를 다 가진 듯한 젊은이의 완전 대단한 썸머 아웃도어 어드벤처는 여름 더위에 축 늘어져
소파에 기댄 채 책을 읽는 나를 낄낄거리게 만들고 웃음을 약 삼아 다시 불끈 일어서게 만들었다.
과연, 젊은이라면,
여름을 이 정도로는 보내야 제대로 보냈다고 할 수 있지!!
모리사와 아키오는 현재 [푸른 하늘 맥주]를 썼을 때의 자신보다 10년, 20년 더 나이를 먹은 43세라고 한다.
이제는 추억의 글들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니 참 바보 같은 청춘을 보냈구나, 하며 스스로 한심해지기도 했다고 하지만 그건 겸손의
말씀.
그 누구보다도 젊은 시절을 꽉 차게 보냈다고 박수쳐주고 싶다.
주말의 어느 TV 개그프로그램의 "썸&쌈" 코너에서 "개 똥! 같은 소리"라는 유행어가 나오는 걸 보고 남편과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남편과 나는 실생활에서 자주 우스개로 그 말을 하며 포복절도, 박장대소할 웃음 거리를 만들어나간다. 똥이란 지저분하고 피하고
싶은 것인데, 상황에 맞게 쓸 때는 개그가 되기도 한다는 것.
그 때 이미 알았지만 [푸른 하늘 맥주]를 보며 다시금, 폭탄같은 위력을 지닌 "똥"의 다양한 얼굴에 대고 폭풍 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노상방분이라는 행위에도 다양한 명칭이 있다며 의뭉스레 소개하기도 한다.
필드 쉿, 야외 탈분, 빅 원, 큰 쪽, '나, 다눈똥(똥눈다의 업계용어라고 하네요), 마킹 등등, 행위자 수만큼의 명칭을 가졌다는 말에
아! 빵 터지고 말았다.
"노상방분 100회"의 기록을 가진 노상방분의 달인 답게
물 속에서 방분하는 "엄청난 쾌감"에 뒤지지 않는 "엄청난 충실감"을 겪어낸 에피소드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 장소에 앉아 일을 보는
듯...집중하게 되었다.
이거...여자가 따라 해도 되나요?^^
개구진 꼬맹이의 유전자를 타고났는지 어른의 초입에 들어선 젊은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유쾌하게 전국을 여행하며 웃음을 마구 퍼뜨려주시는
모리사와 아키오의 여행은 한 사람이 다 겪었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스펙터클하다.
아, 물론 여행을 함께 한 친구들도 주요 등장인물이다.
103세 할머니와 함께 야영했던 도봉
오카모토 고무보트에 생사를 걸고 급규타기에 도전했던 이와이
홋카이도에서 등에 떼의 습격을 받고, 사만토 강에서까지 두 번이나 죽을 뻔했던 아폴로
휴웅 철썩 군단 때문에 배를 잡고 웃어대고, 정글 파이어를 맨 정신에 해냈던 곤들매기 수준의 뇌를 가진 남자, 미야지마.
그들의 젊은 날은...말 그대로 차갑게 식힌 맥주를 잔에 따랐을 때 올라오는 하얀 거품처럼 찬란했다.
해마다 9월이면 여름을 잊지 못해 9월 병에 걸리곤 했던 그의 여름나기는 푸른 하늘과 맥주가 있었기에 더욱 시원하고 짜릿했으리라.
노숙여행이라 다른 데는 돈을 아껴도 맥주만큼은 꽉꽉 채워두어야 했던 그 기분을, 언제나 하루의 마무리에 빠지지 않았던 맥주 이야기를
읽으면서, 알 것도 같았다.
제철 산나물을 캐서 튀김을 만들고, 그걸 안주로 맥주라도 한잔할까!-90
그래, 올 여름엔 이 문장 하나를 믿고, 캠핑을 떠나 볼까 한다.
비록 캔 맥주 하나를 둘이서 나눠먹고 헤롱헤롱하는 매우건전 커플과 두 꼬맹이들의 여행이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