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이모와 피렌체를 가다 마녀 이모와 가다 시리즈
조성자 지음, 이영림 그림 / 현암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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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서 길을 잃는다면? 생각도 하기 싫어![마녀 이모와 피렌체를 가다]

 

 

 

 

 

나는 부산에 살고 있고, 가장 멀리 여행을 가 본 곳은 서울이다. 프란체스코 교황 시복식이 있던 날 광화문에 도착해서 경복궁과 인사동을 구경했다. 그 날도 엄청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빠 손을 잘 잡고 다녀서 다행히 길을 잃지는 않았다. 그런데 부산도 아니고 서울도 아니고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길을 잃는다면? 으으~생각하기도 싫다.

은무가 피렌체에 도착해서 이모를 잃어버린 걸 보고 내가 다 깜짝 놀랐다.

다행히도 호텔 이름을 알아두어서 결국 만나게 되기는 했다.

언젠가는 나도 해외여행을 가게 되겠지.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이탈리아 그 중에서 피렌체에도 한 번 가보고 싶다.

책의 주인공 은무는 마녀 이모와 피렌체를 갔다. 왜 마녀이모라고 부르냐면, 은무네 엄마가 급한 일로 미국에 갔을 때 이모와 지낸 적이 있는데, 이모는 아침에 깨워주지 않아서 은무가 지각하게 만들었고 화가 나서 스파게티도 안 먹는다고 하자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래서 마녀 이모다.

이모는 피렌체에 가기 전에 책을 던져 주면서 무조건 읽으라고 했고 여행을 다니면서도 툭하면 은무에게 질문을 던졌다.  은무는 역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서 한국과 이탈리아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대답했다. 나도 역사라면 조금 흥미가 있는데 은무처럼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에는 볼 게 많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단테, 보카치오 같은 작가도 많았고,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우피치 미술관, 아카데미아 미술관, 두오모 성당 등 볼거리도 많았다.

다리 위에 가게들이 양옆으로 있는 베키오 다리가 제일 신기했다.

입만 열면 르네상스와 이탈리아에 대한 설명이 좔좔 나오는 이모 덕분에 르네상스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다.

역시 여행을 가려면 미리 여행가는 곳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탈리아 피렌체라면 르네상스의 미술과 건축, 문학과 역사 등 공부할 게 너무나도 많다.

추석이 지나고 나면 나는 경주에 갈 예정이다. 그러려면 경주 지도를 보고 위치도 알아두어야 하고 신라의 역사공부도 해야겠다. 불국사, 석굴암이 유명하다는데 미리 책으로 읽고 어떤 곳인지 봐야겠다.

엄마도 마녀 이모처럼 책을 던져주며 공부하라고 했는데,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미리 알고 가면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커서 멀리 여행을 가게 될 날이 기대된다.

 

 

이번에는 채원이가 쓴 글로 바로 올려봅니다.

사진은 밑에 넣을게요~~

 

 

 

지하철 노선도가 나와 있어요. 복잡하죠?

마녀 이모는 조카 은무를 챙기지 않고 혼자 가버리네요. 이래서 은무가 길을 잃은 거에요~~

 

 

피렌체이 좁은 골목길.

이상하게 이런 곳에 더 마음이 끌립니다. 채원이보다 엄마가 더 가고 싶어지는 피렌체.

 

 

채원이가 특히 신기하게 생각했던 베키오 다리입니다.

다리 위에 이런 큰 가게들이 있는데도 무너지지 않는 게 신기하다고 하네요.

옛날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팔던 가게들이 이제는 향수, 가방 등을 파는 가게가 되었대요.

 

마녀이모와 함께 떠나는 피렌체 여행이 꽤 재미있었나 봅니다. 커서는 꼭 이탈리아에 가 보고 싶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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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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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구석구석 스며있는 고독 [건너편 섬]

 

<건너편 섬>고비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문득 깊은 기쁨을 맛보는 일은, 그 여자만의 것이었다. -263

 

고비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내가 겪어온 고비들이 차르륵 지나갔다.

나는 어떻게 그것들을 다 지나왔을까? 어떤 것은 생각나고 어떤 것들은 더러 잊었다.

기억하기 싫은 것을 굳이 다시 기억할 필요는 없으니까.

 

모두 8개의 단편에서는 각각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하나같이 기쁨에 젖어 있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고 모두들 가라앉아 있고 어디론가 좀더 깊이 깊이 파고들게 만든다.

 

<콩쥐 마리아> 자식도 다 소용없어. 품 안에 자식이란 말은 누가 그렇게 잘 지어놨는지. 자식 잘되면 그거 남한테 자랑할 때나 필요한 거지. 다아 소용없네. 돈이나 있으면 그거 뜯어 갈 궁리나 할걸?-23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특히나 가족에 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이 때쯤, 푸욱 가슴으로 파고 들어오는 말이다. 내 부모와 나와 내 자식으로 묶인 가족이라는 밧줄이 튼튼하게 잘 동여매어져 있는지 괜히 만지작거려보게 된다. 내 부모와 나의 관계는 찢어지고 갈라져 끊어지기 일보직전의 가느다란 밧줄로 변해버리진 않았는지, 나와 내 자식의 밧줄은 지금은 튼튼하지만  마침내 해져 버리고 말 것인데, 지금 여유롭게 붙들고 웃음을 흘리고 있는 건 아닌지 ...

 

<미움 뒤에 숨다> 우리의 죄책감은 얽히고설키어 있었다. 아버지의 폭력에서 자식들을 보호하지 못한 죄, 엄마의 고통을 지켜본 죄, 거기에다 우리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를 미워한 죄였다. 아버지가 없어지기를 바란 죄였다. 차라리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 죄였다. -53

 

나와 남의 이야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한편으론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나의 죄도 덜어지는 것만 같다. 나의 죄는 어쩌면 더 크고 깊은 아픔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면서도 왠지 동질감을 느끼며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 여러 형태의 죄를 짓고 교도소의 같은 방에 모인 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려하면서도 조금씩 꺼내놓으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까. 나는 그러나...죄인임에는 틀림없다.

 

<언니를 놓치다>, <박제된 슬픔> 등은 남과 북으로 갈린 채 생이별을 해야 했던 가족들의 만남을 통해 우리 역사의 해묵은 상처를 끄집어내어 얘기한다. 직접 겪어본 일은 없는 이야기들이고, 남의 얘기이지...하고 외면했던 이야기들이지만 우리의 역사에 분명 존재하는 생생한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낯설면서도 자꾸 관심이 가고 내가 만약 그런 상황에 처했더라면...하고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게 되었다. 글을 통한 간접경험이라는 것이겠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이입되는 것은 작가의 글이 가진 힘일까.

주위에 실향민이나 딱히 이런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없는데도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이 되는 것을 보고 자꾸 이상하다, 이상하다만 되뇐다.

언니와 동생의 가까우면서도 먼 애증의 관계가 내 경우에 이입되어일 수도 있고, 간첩 외삼촌때문에 좌절되었던 주인공의 꿈이 하필이면 공무원이어서 현재 공무원인 내 남편을 떠올려서일 수도 있다. 

멀리 돌아돌아 가지만 결국은 남의 일이 아닌 내 이야기. 

물리적으로 선이 그어진 격리의 상황 뿐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느끼는 먼 상태를 불러오는 힘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외에도 실려 있는 단편들은 모두 남의 이야기인 듯하면서 사실은 내 얘기인 것들이 많다. 내 자신을 오롯이 이해하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밖에 없음을 이제는 인정해야 해,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은 시작이란다. 하고 오랜 삶을 지내본 어른이 아직은 푸릇한 기가 남아 있는 어린 사람들에게 나긋나긋 일러주는 것 같다.

 

나는 섬이다.

가끔 건너편 섬도 바라다 보이지만 그건 내 것이 아니다.

누구나 혼자인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꾸 기대고 함께 나누려고 했었다.

내 섬에서의 일은 내가 처리해야 하고, 그 이후에 건너편 섬의 일이 내 눈에 들어찬다는 것을...이제는 알았다.

쓸쓸하지만 그래도 가끔 잔잔한 파도도 놀러오고 갈매기도 끼룩거리는 나의 섬.

고독하다 여기지 말라. 고독은 원래 삶의 구석구석 배어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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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자유다 - 삶의 가장자리에서 만난 희망의 인문학 수업
얼 쇼리스 지음, 박우정 옮김 / 현암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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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희망의 인문학 수업 [인문학은 자유다]

 

나는 분명 인문대학의 어느 학과를 졸업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인문학"이라는 말에 서툴다. 사실 인문학도였다는 사실을 밝히기가 부끄럽기조차 하다. 학문에 있어 뭐 하나 제대로 깨우친 것은 없고 변죽만 울리다 나온 격이기 때문이다. 무늬만 인문학도라 책에 대한 관심만은 아직까지 놓치지 않고 있어서 부지런히 읽어대지만 어려운 철학 이야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인문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고민하는 학문인가? 그런 기본적인 질문조차 던져본 적 없는 학생이었기에 더더욱 고개를 떨구고만 싶어진다.

 

 인문학 강연이며 인문학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올 때 괜히 삐딱하게 생각하며 외면하게 되었다 .

'나도 한 때는 인문학부를 거닐며 사색하던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 하는 약간의 자만도 있었고

' 그 때의 지리멸렬한 수업들을 답습하는 형태들이 재탕되고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인문학 강연이며 책들이며...듣거나 읽어도 제대로 현실생활에 쓰이지도 못할 거...그러니까 인문학이 소용없는 학문이란 말을 듣지...나중에는 이렇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스스로 인문학 열풍을 거스르며 구석으로 숨어들곤 했다.

 

보통 한 때의 광풍이 몰아치듯 유행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드는 게 다반사라, 이번에도 또한 지나가리라 했는데, "인문학" 열풍은 웬만해선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라? 무엇이 맞아떨어진 거지? 사람들의 욕구와 빛나는 무대에서 날개를 펴고자 하는 강사들의 필요가 적절하게 만나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게 아닐까?

제도권 안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니, 대학에서 인문학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느니 하더니, 대학 문 밖에서는 시민 강좌나 유료, 무료 를 통틀어 인문학 강의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분야가 되었다.

 

사람들은 물결에 휩쓸려 강의를 듣고 책을 사 보지만 이럴 때일수록 진지하게 인문학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얼 쇼리스의 유고가 된  [인문학은 자유다]는 어려운 인문고전을 강의하는 책이 아니다.

감옥에서 시작된 소설같은 이야기를 시작으로 얼 쇼리스가 직접 부딪쳐온 많은 이들과의 경험이 생생히 녹아들어 있는 경험담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쇼리스는 인문학을 운동 차원으로 발전시킨 사람이다.

'클레멘트 코스'를 개발하여 미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으로 확산시켰다.

시카고 이주민들의 오디세이 코스, 위스콘신 주 매디슨의 '조금 다른 수업', 오클라호마에서의 인디언들의 노래, 아프리카와 가나와 수단, 독재의 땅 수단 다르푸르 난민촌에서 가르친 자유,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보낸 자기반성의 밤, 메사추세츠 매스휴머니티스의 수업 보고서, 알래스카 원주민들과 꿈의 세계, 멕시코의 마야와 아즈텍 코스, 대한민국 서울, 아시아의 첫 클레멘트 코스 등등.. 얼 쇼리스가 직접 만나고 변화를 일군 기적같은 순간에 대한 기록들이 이 책에 가득하다.

 

클레멘트 코스는 르네상스 인문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중요하게 생각한 도덕철학, 역사, 문학, 예술, 논리학 이 다섯 분야가 교육과정의 틀이다.

 

클레멘트 코스 지부 관리자들이 교육과정을 어떻게 구성할지는 지역의 영향을 받는데, 대륙과 나라 뿐 아니라 주별, 도시별로도 차이가 있었다. 우리가 초기에 시카고로 코스를 확장할 때 에이미 토머스 엘더가 한 말이 옳았다.

"유능한 교수라면 쇼리스 선생님이 원하는 그대로 가르치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203

 

 교육방법으로 내세운 '소크라테스적 방법' 또한 지극히 고대적이다. 우리의 인문학 강좌가 강의 중심인 것과 확연히 다르다. 함께 생각하고 말하며, 함께 그것이 말이 되고 근거가 있는지, 모두에게 설득이 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 클레멘트 코스는 자립적 사고와 행동을 통해서 가난의 굴레에서 사람이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한다.

쿨레멘트 코스가 무엇보다도 사회적 약자를 겨냥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쇼리스의 운동은 또한 젊은이들이 인문학 교육의 대상이 된다.

 

나는 내가 틀렸지만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방법이 있었다.-56

 

1995년 클레멘스 코스 1기가 시작되고 학생들이 강의를 들었다. 미술관 견학을 기대하던 학생이 미술관으로 오는 도중에 지하철역에서 개찰구를 뛰어넘다 붙잡혀 브루클린 법원 구치소에 갇히기도 하고, 한 학생은 도중에 폐렴으로 사망하기도 했으며 마약 유통, 판매 혐의로 기소된 학생은 현대 철학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났음에도 영장 기각을 얻어내지 못했다.

 

1년 뒤, 1회 졸업생 열여섯 명 중에서 열 명이 4년제 대학이나 간호학교를 다니고 있었고,그 중 네 명은 바드 칼리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다른 졸업생들은 전문대학에 다니거나 풀타임으로 일했다. -89

 

앎의 과정을 통해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얼 쇼리스는 몸소 보여주었고 그의 클레멘트 코스에서 공부했던 학생들도 또한 직접 보여주었다. 삶은 책 몇 권 읽는 것으로, 중요한 인문학 고전을 읽는 것만으로는 변할 수 없다. 그동안 대학에서 고작 책 몇 권 읽고 강의 들은 것으로 충분히 인문학을 맛보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내 삶에서는 앎의 과정을 통한 변화라는 부분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삶의 절실함'이라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 이후에 필요한 것은 교사다.

가르치는 자의 궁극적 과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와 무의식의 혼수상태로부터 깨어날 수" 있게 돕는 일이라는 말이 새삼 사무친다.

 

앉아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죽은 강의가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겪을 수 있도록 하는 살아 있는 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클레멘트 코스의 전 세계 수업 현장을 기록한 이 책을 보면서 처음으로 인문학도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졌다. 인문학 강의를 들음으로써 자신을 변화시킨 위대한 사람들의 기록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인문학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생성되는 교실이 그리워졌다.

얼 쇼리스의 클레멘트 과정은 희망의 인문학 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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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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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여인들 [헤르만 헤세의 사랑]

 

 

어렸을 적,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칠 때 헤르만 헤세의 책은 말 그대로 "교과서"와도 같았다.

[수레바퀴 아래서]와 [데미안]은 지금도 청소년들에게 유효한 교과서이다.

그 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헤세에 매료되어 좀 지나서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혹은 지와 사랑)에 이어 [유리알 유희]까지 찾아서 읽게 되었고내게 헤세는 위대한 작가로  각인되어 있었다.

 

최근 헤세의 에세이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고 나서는 위대한 작가 이전에 정원 가꾸기를 사랑한 사람, 그리고 오랜 세월 속에서 세계대전을 겪어온 한 사람으로의 헤세를 만날 수 있었다.

문학에서 큰 성과를 이루어 너무나도 크게만 보였던 거장 헤세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가 즐겨 그렸던 집-몬타뇰라의 카사 카무치, 카사 로사-들과 나무들은 [헤르만 헤세의 사랑]을 읽는 동안 자주 머리속을 맴돌곤 했다.

 

위대한 작가로서의 헤세, ‘옷자락이 다 해져 올이 성긴 바지를 입은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문학가’로서의 헤세를 만날 수 있었던 전작에 비해 [헤르만 헤세의 사랑]을 읽으면서는 헤세를 거의 우러르기까지 했던 독자로서의 경외감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여인들과 짝을 이룬 헤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헤세의 일생은 친구였던 후고 발에 의해 최초로 전기로 쓰였고 헤세의 여인들에 관한 전기도 더러 나왔었다. 후고 발이 헤세의 전기를 쓰던 당시에 후고는 헤세의 당부대로 둘째 부인과의 삶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못했으며 셋째 부인을 잘 알지 못했다. 지금은 헤세의 삶과 관련 인물들의 기록이 모두 공개되어 있고 책의 말미에 실린 연표만 보아도 헤세의 일거수 일투족이 한눈에 드러난다. 이 책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편지와 문서를 찾아내 헤르만 헤세가 사랑한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 것이다. 아마도 헤르만 헤세의 여인들을 다룬 첫번째 전기가 될 것이다.

 

아주 특별한 세 여인 이전에 헤세에게는 어머니가 특별한 여인이었다.

"나는 여전히 당신을 바라봅니다. 나를 향해 아름다운 머리를 숙이고 있는 나의 어머니. 가냘픈 몸매와 부드러운 자태, 너그러운 품성을 지닌 당신.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갈색 눈을 지닌."-31

아버지에게서 엄격한 양심을, 인도에서 태어난 어머니에게서 인도의 이야기를 물려받았지만 심리적으로 과도하게 억눌려 있었던 헤세는 작품 속에서 실제와는 전혀 다른 어머니를 만들어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헤세는 가족의 경건주의는 감당하기 어려운 구속이었다. 육체적 본능과 욕망을 부정하는 교육 또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헤세의 첫사랑은 실패로 끝났고 그 사실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헤세는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한다.

"헤세가 신학교 시절에 겪은 갈등은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는 어머니의 상징을 향한 무지하고도 광적인 사랑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그 어머니는 냉정한 모습으로 신앙 일기를 쓰던 어머니였다."

 

1904년 마리아 베르누이, 1924년 루트 벵거, 1931년 니논 돌빈.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던 헤세는 세 번의 결혼식을 올렸다.

 

헤세의 첫 결혼 상대였던 마리아 베르누이는 체구나 기질,음악에 대한 열정에서 헤세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헤세와 마리아의 사이에는 세 아들이 있었으나 헤세는 그리 다정다감한 아버지나 남편이 되지 못했다. 스스로의 문학적 성취와 내면적 자유를 위해 마리아가 출산하는 동안에조차 여행을 다니고 있었으며 툭하면 '도피'를 일삼았다. 마리아는 헤세의 신경과민 증세가 창작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와 결혼한 지 11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은둔자적 평화를 추구하는 그에게 가족은 창작과 사유를 방해하는 존재일 뿐이었던 것이다.

 

헤세는 정신분석을 받으며 의사 랑과 친해지게 되는데 이후 오랜 시간동안 그 둘은 친밀한 관계를지속하게 된다.

 

의사 랑과 환자 헤세의 관계는 무척 가까워졌다. 랑 박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에서 '사랑하는 친구'가 되었다 . 두 사람의 관계에는 젊은 시절이 동성애적 감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157

이 즈음 헤세는 정신분석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며 [데미안]을 집필하게 된다.

 

헤세의 인생이 그리는 궤적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마도 작품이 쓰여진 순서대로 그의 작품을 읽으면 그의 행로가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페터 카멘친트-수레바퀴 아래서-크눌프-데미안-싯다르타-황야의 이리-나르치스와 골드문트-유리알 유희

 

헤세의 편지에서 작가는 헤세의 여인들과 결혼생활, 갈등, 이혼에 관해 알게 되었고 그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망설임 없이 내뱉는 고백에 당혹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그와 평생을 함께하기로 결심했던 여인들에 대한 그의 냉정한 평가에 무척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런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나기에 이 책은 놀라웠으며 작가가 되살려낸 헤세의 세 여인은 비로소 생명력을 가지고 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신경과민에 시달리며 주위 사람을 힘들게 했던 헤세는 만년에 가서야 가족들 -아들들과 며느리들, 손자들-에게 점점 애착을 갖게 된다.

 

헤세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너그러워졌다. 반면 니논은 점점 더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486

 

작가와 정원을 가꾸는 사람으로서의 헤세는 합격점에 들었으나 남편으로서의 헤세, 남자로서의 헤세는 그렇지 못했다.

만년에 와서 좀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하니 사람은 변하긴 하는 모양이긴 하다.

헤세의 특별한 세 여인을 만나볼 수 있었던 특별한 이 책 [헤르만 헤세의 사랑]을 읽음으로써 헤세를 이루고 있는 "진실" 한 조각을 이어붙일 수 있게 되었다.

헤세에게 특별했던 세 명의 여인이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이 책을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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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살다
손명찬 지음, 김효정(밤삼킨별) 사진.손글씨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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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살다]

 

 

귀퉁이 너머로 살짝 몸을 내민 곰돌이가 무지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표지만 보고도 방긋~ 웃음이 절로 나네요.

제목이 길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살다]

짐작하시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이란 바로 "지구"를 말합니다.

 

 

 

 

내가 사는 곳, 을 그저 주소지 정도로만 인식하고 좀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부산, 이라고만 한정지었었는데,

이렇게 보니 저는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었군요.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요.

아니 온 우주를 통틀어서일까요?

 

지구를  수많은 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니 그 지구 안에 살고 있는 나라는 인간은 또 정말 터무니없이 작고 미미하게 느껴집니다.

내 존재가 티끌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지고 있는 태산같은 고민과 어려움 등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아주 작은...현미경으로 겨우 들여다보아야 보일까 말까 할 정도의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네요.

정말, 생각 하나만 살짝쿵 바꾸었을 뿐인데 태산 같던 고민이 이제는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아야 볼 수 있는 것쯤으로 바뀌다니요...

 

그렇습니다.

내 마음자리는 보는 모양새만 바꾸어 주어도, 각도만 살짝 비틀어도 극락이 될 수도 있고 저승이 될 수도 있었네요.

제목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책을 펼치면 잔잔하게 심금을 울리는 글귀들이 스치듯 눈에 들어옵니다.

 

 

 

 

 

사진은 덤인가요? 

지금 밖에는 때늦은 가을 장마가 무섭게 내리꽂히고 있습니다.

부산에 살고 있는데, 호우 경보가 발령되었다는 문자가 띠리링~ 당도했어요.

상습침수지역 대피, 위험지역 통제 등 안전에 주의

눈으로 읽고 있는 중에 번쩍 하며 세상이 잠시 하얗게 변했다가 우르릉~ 천둥이 울어댑니다.

죽죽 내리긋는 비는 아파트 벽면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리네요.

내 마음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때라면 이런 날씨가 짜증이 나고 무섭고 상황에 따라선 급기야 우울해지기도 하겠지요.

지금은...이 책의 영향일까요.

밝고 따사롭습니다.

 

 

 

이 사진과 글귀를 읽으면서 짜증이라니요...

 

 

밝은 기운을 전해주는 사진 때문에 다시 싱그러움이 찾아듭니다.

이상하게도 세찬 빗소리가 새의 지저귐같이도 들립니다.

 

 

 

여기서, 갑자기 모든 게 분명해지고 해결되지는 않아요

원래 자리로 돌아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니까요.

 

양말과 신발을 신고, 외투를 챙기세요.

다시 그리운 날에 또 만나요. -99

 

그리운 날~이라는 말이 무척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또 만나요, 라는 말도 희망적으로 들리고요.

 

 

사는 일, 가끔 그럴 수도 있지.

절대 그렇거나 절대 아닌 일도 없는 거지.

꽃향기가 그리워 들어서는 길에

 꽃잎이나 향이 남아 있어 준다면 그저 좋을 뿐.

 

그것에 감사해요.

그곳에 감사해요. -79

 

 

 

수없이 책을 펴고 덮으면서 그 때마다 마음의 때가 하나씩 벗겨져 나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 반짝이는 별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빛나더군요.

지금 제 마음에는 잔잔한 빛을 머금은 별들이 가득합니다.

은은한 빛에 마음이 밝아지고 점점 따뜻해져 옵니다.

이 마음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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