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자유다 - 삶의 가장자리에서 만난 희망의 인문학 수업
얼 쇼리스 지음, 박우정 옮김 / 현암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희망의 인문학 수업 [인문학은 자유다]

 

나는 분명 인문대학의 어느 학과를 졸업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인문학"이라는 말에 서툴다. 사실 인문학도였다는 사실을 밝히기가 부끄럽기조차 하다. 학문에 있어 뭐 하나 제대로 깨우친 것은 없고 변죽만 울리다 나온 격이기 때문이다. 무늬만 인문학도라 책에 대한 관심만은 아직까지 놓치지 않고 있어서 부지런히 읽어대지만 어려운 철학 이야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인문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고민하는 학문인가? 그런 기본적인 질문조차 던져본 적 없는 학생이었기에 더더욱 고개를 떨구고만 싶어진다.

 

 인문학 강연이며 인문학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올 때 괜히 삐딱하게 생각하며 외면하게 되었다 .

'나도 한 때는 인문학부를 거닐며 사색하던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 하는 약간의 자만도 있었고

' 그 때의 지리멸렬한 수업들을 답습하는 형태들이 재탕되고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인문학 강연이며 책들이며...듣거나 읽어도 제대로 현실생활에 쓰이지도 못할 거...그러니까 인문학이 소용없는 학문이란 말을 듣지...나중에는 이렇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스스로 인문학 열풍을 거스르며 구석으로 숨어들곤 했다.

 

보통 한 때의 광풍이 몰아치듯 유행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드는 게 다반사라, 이번에도 또한 지나가리라 했는데, "인문학" 열풍은 웬만해선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라? 무엇이 맞아떨어진 거지? 사람들의 욕구와 빛나는 무대에서 날개를 펴고자 하는 강사들의 필요가 적절하게 만나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게 아닐까?

제도권 안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니, 대학에서 인문학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느니 하더니, 대학 문 밖에서는 시민 강좌나 유료, 무료 를 통틀어 인문학 강의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분야가 되었다.

 

사람들은 물결에 휩쓸려 강의를 듣고 책을 사 보지만 이럴 때일수록 진지하게 인문학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얼 쇼리스의 유고가 된  [인문학은 자유다]는 어려운 인문고전을 강의하는 책이 아니다.

감옥에서 시작된 소설같은 이야기를 시작으로 얼 쇼리스가 직접 부딪쳐온 많은 이들과의 경험이 생생히 녹아들어 있는 경험담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쇼리스는 인문학을 운동 차원으로 발전시킨 사람이다.

'클레멘트 코스'를 개발하여 미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으로 확산시켰다.

시카고 이주민들의 오디세이 코스, 위스콘신 주 매디슨의 '조금 다른 수업', 오클라호마에서의 인디언들의 노래, 아프리카와 가나와 수단, 독재의 땅 수단 다르푸르 난민촌에서 가르친 자유,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보낸 자기반성의 밤, 메사추세츠 매스휴머니티스의 수업 보고서, 알래스카 원주민들과 꿈의 세계, 멕시코의 마야와 아즈텍 코스, 대한민국 서울, 아시아의 첫 클레멘트 코스 등등.. 얼 쇼리스가 직접 만나고 변화를 일군 기적같은 순간에 대한 기록들이 이 책에 가득하다.

 

클레멘트 코스는 르네상스 인문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중요하게 생각한 도덕철학, 역사, 문학, 예술, 논리학 이 다섯 분야가 교육과정의 틀이다.

 

클레멘트 코스 지부 관리자들이 교육과정을 어떻게 구성할지는 지역의 영향을 받는데, 대륙과 나라 뿐 아니라 주별, 도시별로도 차이가 있었다. 우리가 초기에 시카고로 코스를 확장할 때 에이미 토머스 엘더가 한 말이 옳았다.

"유능한 교수라면 쇼리스 선생님이 원하는 그대로 가르치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203

 

 교육방법으로 내세운 '소크라테스적 방법' 또한 지극히 고대적이다. 우리의 인문학 강좌가 강의 중심인 것과 확연히 다르다. 함께 생각하고 말하며, 함께 그것이 말이 되고 근거가 있는지, 모두에게 설득이 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 클레멘트 코스는 자립적 사고와 행동을 통해서 가난의 굴레에서 사람이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한다.

쿨레멘트 코스가 무엇보다도 사회적 약자를 겨냥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쇼리스의 운동은 또한 젊은이들이 인문학 교육의 대상이 된다.

 

나는 내가 틀렸지만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방법이 있었다.-56

 

1995년 클레멘스 코스 1기가 시작되고 학생들이 강의를 들었다. 미술관 견학을 기대하던 학생이 미술관으로 오는 도중에 지하철역에서 개찰구를 뛰어넘다 붙잡혀 브루클린 법원 구치소에 갇히기도 하고, 한 학생은 도중에 폐렴으로 사망하기도 했으며 마약 유통, 판매 혐의로 기소된 학생은 현대 철학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났음에도 영장 기각을 얻어내지 못했다.

 

1년 뒤, 1회 졸업생 열여섯 명 중에서 열 명이 4년제 대학이나 간호학교를 다니고 있었고,그 중 네 명은 바드 칼리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다른 졸업생들은 전문대학에 다니거나 풀타임으로 일했다. -89

 

앎의 과정을 통해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얼 쇼리스는 몸소 보여주었고 그의 클레멘트 코스에서 공부했던 학생들도 또한 직접 보여주었다. 삶은 책 몇 권 읽는 것으로, 중요한 인문학 고전을 읽는 것만으로는 변할 수 없다. 그동안 대학에서 고작 책 몇 권 읽고 강의 들은 것으로 충분히 인문학을 맛보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내 삶에서는 앎의 과정을 통한 변화라는 부분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삶의 절실함'이라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 이후에 필요한 것은 교사다.

가르치는 자의 궁극적 과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와 무의식의 혼수상태로부터 깨어날 수" 있게 돕는 일이라는 말이 새삼 사무친다.

 

앉아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죽은 강의가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겪을 수 있도록 하는 살아 있는 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클레멘트 코스의 전 세계 수업 현장을 기록한 이 책을 보면서 처음으로 인문학도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졌다. 인문학 강의를 들음으로써 자신을 변화시킨 위대한 사람들의 기록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인문학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생성되는 교실이 그리워졌다.

얼 쇼리스의 클레멘트 과정은 희망의 인문학 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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