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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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구석구석 스며있는 고독 [건너편 섬]

 

<건너편 섬>고비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문득 깊은 기쁨을 맛보는 일은, 그 여자만의 것이었다. -263

 

고비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내가 겪어온 고비들이 차르륵 지나갔다.

나는 어떻게 그것들을 다 지나왔을까? 어떤 것은 생각나고 어떤 것들은 더러 잊었다.

기억하기 싫은 것을 굳이 다시 기억할 필요는 없으니까.

 

모두 8개의 단편에서는 각각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하나같이 기쁨에 젖어 있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고 모두들 가라앉아 있고 어디론가 좀더 깊이 깊이 파고들게 만든다.

 

<콩쥐 마리아> 자식도 다 소용없어. 품 안에 자식이란 말은 누가 그렇게 잘 지어놨는지. 자식 잘되면 그거 남한테 자랑할 때나 필요한 거지. 다아 소용없네. 돈이나 있으면 그거 뜯어 갈 궁리나 할걸?-23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특히나 가족에 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이 때쯤, 푸욱 가슴으로 파고 들어오는 말이다. 내 부모와 나와 내 자식으로 묶인 가족이라는 밧줄이 튼튼하게 잘 동여매어져 있는지 괜히 만지작거려보게 된다. 내 부모와 나의 관계는 찢어지고 갈라져 끊어지기 일보직전의 가느다란 밧줄로 변해버리진 않았는지, 나와 내 자식의 밧줄은 지금은 튼튼하지만  마침내 해져 버리고 말 것인데, 지금 여유롭게 붙들고 웃음을 흘리고 있는 건 아닌지 ...

 

<미움 뒤에 숨다> 우리의 죄책감은 얽히고설키어 있었다. 아버지의 폭력에서 자식들을 보호하지 못한 죄, 엄마의 고통을 지켜본 죄, 거기에다 우리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를 미워한 죄였다. 아버지가 없어지기를 바란 죄였다. 차라리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 죄였다. -53

 

나와 남의 이야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한편으론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나의 죄도 덜어지는 것만 같다. 나의 죄는 어쩌면 더 크고 깊은 아픔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면서도 왠지 동질감을 느끼며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 여러 형태의 죄를 짓고 교도소의 같은 방에 모인 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려하면서도 조금씩 꺼내놓으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까. 나는 그러나...죄인임에는 틀림없다.

 

<언니를 놓치다>, <박제된 슬픔> 등은 남과 북으로 갈린 채 생이별을 해야 했던 가족들의 만남을 통해 우리 역사의 해묵은 상처를 끄집어내어 얘기한다. 직접 겪어본 일은 없는 이야기들이고, 남의 얘기이지...하고 외면했던 이야기들이지만 우리의 역사에 분명 존재하는 생생한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낯설면서도 자꾸 관심이 가고 내가 만약 그런 상황에 처했더라면...하고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게 되었다. 글을 통한 간접경험이라는 것이겠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이입되는 것은 작가의 글이 가진 힘일까.

주위에 실향민이나 딱히 이런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없는데도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이 되는 것을 보고 자꾸 이상하다, 이상하다만 되뇐다.

언니와 동생의 가까우면서도 먼 애증의 관계가 내 경우에 이입되어일 수도 있고, 간첩 외삼촌때문에 좌절되었던 주인공의 꿈이 하필이면 공무원이어서 현재 공무원인 내 남편을 떠올려서일 수도 있다. 

멀리 돌아돌아 가지만 결국은 남의 일이 아닌 내 이야기. 

물리적으로 선이 그어진 격리의 상황 뿐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느끼는 먼 상태를 불러오는 힘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외에도 실려 있는 단편들은 모두 남의 이야기인 듯하면서 사실은 내 얘기인 것들이 많다. 내 자신을 오롯이 이해하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밖에 없음을 이제는 인정해야 해,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은 시작이란다. 하고 오랜 삶을 지내본 어른이 아직은 푸릇한 기가 남아 있는 어린 사람들에게 나긋나긋 일러주는 것 같다.

 

나는 섬이다.

가끔 건너편 섬도 바라다 보이지만 그건 내 것이 아니다.

누구나 혼자인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꾸 기대고 함께 나누려고 했었다.

내 섬에서의 일은 내가 처리해야 하고, 그 이후에 건너편 섬의 일이 내 눈에 들어찬다는 것을...이제는 알았다.

쓸쓸하지만 그래도 가끔 잔잔한 파도도 놀러오고 갈매기도 끼룩거리는 나의 섬.

고독하다 여기지 말라. 고독은 원래 삶의 구석구석 배어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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