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 -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실존의 문제 40가지에 답하다
김용전 지음 / 샘터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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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과 희망을 찾아라 [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

 

도시의 하루가 곱게 분을 바르고 하나둘 등을 켠다.

거리는 누군가로 가득 차고, 높은 소리, 낮은 소리, 두터운 소리, 얇은 소리, 젖은 소리, 성마른 소리.

누군가의 하루가 쏟아진다.

위하고...위하고...

우리에게 내일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배반의 장미는 피었다 지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톱니로 불리고 개미로 불리고 부대로 불리고.-미생 1권.

 

처음 직장에 들어갈 때는 밤이 늦도록 꺼지지 않는 빌딩의 등불 중 하나를 내가 책임지겠다는 호언장담, 혹은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 미생으로 출발점에 서게 되는 것이다.

아주 원대한 포부는 사람마다의 그릇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점점 사그라 들기도 하고 점점 부풀어서 정점을 찍기도 한다.

여러 갈래의 길이 나타날 수 있는 직장 생활.

출근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출근길에서 철학을 하고 퇴근길에 명상을 하게 된다.

멋진 제목이다.

 

저자는 라디오 방송에서 '직장인 성공학'코너를 맡아 진행해왔다. 청취자들의 질문을 사연으로 받아 나름의 해답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처음엔 즉문즉답 식으로 각각의 사례에 따라 현실적인 조언을 적나라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사례들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다 보면 멋지고 현란한 답으로 그럴듯하게 대답한 것들이 현명한 방책이 아니었으며 변방에 머무는 비효율적인 방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직장 문제는 근본적으로 우리네 인생에서 부딪치는 문제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이 책에서는 행복한 인생을 사는 길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피력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상담 결과를 간추리고 간추려 40가지의 문제로 정리했다.  소재는 직장 문제이지만 결국엔 우리 삶의 방식에 관한 고민들로 모아지게 된다는 것은 책을 읽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멀리 가야 하는가, 높이 올라가야 하는가?

유연해야 하는가, 강직해야 하는가?

참아야 하는가, 맞서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직장에서의 문제들에 적용할 수도 있고, 내 삶의 문제에 적용할 수도 있다.

 

참치 원양 어선 선장 전씨는 광명87호를 몰고 부산항으로 들어오면서 보트피플을 만났다. 출항 때 본사에서는 '보트 피플을 만나더라도 관여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지만 막상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는 중대한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머리로는 정리된 지침을 따라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 맞닥뜨린 상황에서는 지침보다는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올바른 가치관에 대한 질문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도 살리지 않는다면 과연 내가 제대로 된 인간인가?'

 

결국 이들을 구한 전 선장은 해고되었고 적성 국가의 난민을 구출했다는 이유로 숱한 조사도 받았다. 취업이 어려워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멍게 양식업을 하며 삶을 꾸려나갔다.

 

19년 후, 전 선장이 살린 보트피플 중의 한 명이 그의 소식을 수소문해서 둘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미주 한인 사회에서는 베트남인과 한국인 사이에 잦았던 싸움이 없어졌다고 한다.

 

회사에서 해고당한 전 선장이 만약 "어찌 나한테 이럴 수 있는가?"

하고 앙심을 품고 살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어찌 나한테 이럴 수 있는가?"라는 감정에 대해 출근길의 철학에서 질문을 던진다.

퇴근길의 명상에서는 이런 답을 내놓는다.

 

남이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차라리 남을 알아주는 사람이 되는 게 어떤가?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나를 알아주고, 나를 책임져줄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나 스스로에게 확고하게 기대는 것을 우리는 바로 자신감 또는 희망이라 부른다. -58

 

수많은 출근길에 쌓이고 쌓인 고민이 많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답답해 하며 남과 비교하는 인생에서, 나를 똑바로 인식하고 나의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길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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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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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학'이란 개념의 탄생 [에디톨로지]

 

 

책은 끝까지 읽는 게 아니라고? 이 책의 저자 김정운이 책의 말미에 한 말이다.

 

난 [에디톨로지]를 재밌다, 재밌다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버렸는데?^^

 

'에디톨로지'의 개념은 생소하지만 그의 입담은 전혀 낯설지 않다. 어쩌다 보니 한나절 만에 다 읽어버린 걸...

 

 

 

 

 

 

데이터 관리는 권력이라는 사실을 독일 유학 시절 몸소 체험한 그는 일반적인 ‘계층적 분류’로 데이터를 입력하고 축적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들에 관한 메타언어를 익히게 되었다.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며 나름의 개념체계를 만들다 보면, 어느새 전혀 다른 차원의 생각을 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리하여 책이라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읽고 싶은 것만을 찾으려 할 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 “책은 끝가지 읽는 게 아니다”라는 , 듣기에 따라서는 좀 과격하기도 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결국은 내 질문, 내 생각을 갖고 책을 읽으라는 말이다. 목차와 찾아보기는 주체적 독서를 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책을 구입하는 순간부터 그것은 내 에디톨로지의 한 부분이 된다.” 이 말은 독서를 밥 먹듯이 하는 이들에게 단 한 문장으로 “에디톨로지”의 개념을 설명해주는 말이 될 것이다.

 

 

김정운이 쓴 [에디톨로지]에서 사용된 ‘에디톨로지’라는 생소한 말은 바꿔 말하면 ‘편집학’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지식의 종속이라며 지식체계 구축의 기본단위인 개념 하나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자기 맘대로 만든 개념이라고 한다. 먼 훗날 전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도록 영어로 만들었단다.

 

[남자의 물건] 같은 재미있는 책을 저술하고 TV 화면에서 유쾌한 입담을 과시하던 김정운의 기존 이미지로는 잘 상상할 수 없었던 학자로서의 숨겨진 본질이 이 책에서 폭발하게 되는 것인가?

 

짐짓 진지한 어조로, 일본에서 지낸 3년간 이 책의 집필에 몰두했다고 말하니 읽는 독자로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하여 처음엔 꽤 긴장했다.

 

심리학자의 전공을 살려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는 지식인 행세를 하면 어쩌나? 새로운 개념이라니 이거 메모라도 해 가며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걱정은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

 

쉬운 문장과 유쾌함은 기본 장착이고 ‘에디톨로지’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은 옵션이니 말이다.

 

 

에디톨로지는 유사 개념으로 통섭, 융합, 크로스오버, 콜라보레이션 등의 개념이 있지만 그저 ‘섞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인간의 구체적이며 주체적인 편집 행위에 관한 설명이며 ‘편집의 단위’, ‘편집의 차원’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는, 인식의 패러다임 구성과정에 관한 설명이라고...

 

 

지식을 축적하기에 적당한 계층적 지식 쌓기의 시대가 건너가고 지식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네트워크적 지식 쌓기의 시대에 돌입했다. 이른바 네이버 지식인의 시대인 것이다. 검색만 하면 어지간한 지식은 다 내 것이 된다.

 

유학시절 노트에 필기하던 김정운은 독일 학생들이 카드에 필기하는 것을 보고 그 학생들과 자신이 “내 생각의 발현”이라는 것에서 크게 차이점을 나타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카드 필기는 지식을 주체적으로 “편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마우스는 최초 발명자가 따로 있지만 그 가치를 알아봐 준 스티브 잡스에 의해 생명력을 얻었다. ‘훔치기의 명수’라는 비아냥을 얻기도 하고 애플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터치’의 개념을 통해 아이팟 이후 디지털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인문학과 기술의 만남을 완벽하게 이해한 탓이다.

 

김정운은 스티브 잡스 외에도 텍스트를 끝없이 해체하고 결합하는 이어령의 하이퍼텍스트를 김용옥의 크로스텍스트보다 에디톨로지적이라 평가하고 영화를 화면과 음악의 에디톨로지라고 말하며, 카라얀은 ‘음악과 영상의 편집’이라는 21세기적 에디톨로지의 선구자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이제 ‘에디톨로지’에 대한 감이 조금씩 잡히기 시작하는가?

 

 

1부에서 이렇게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에 대해 얘기한 다음 2부에서는 관점과 공간의 에디톨로지로 이동한다. 원근법을 중심으로 공간편집과 인간의식의 상관관계를 얘기한 부분은 꽤 재미있게 읽었다. 객관성과 합리성이라는 서구의 과학적 사고가 원근법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철저하게 자의적이고 권력적이라는 결함이 있다는 것을 짚어주고 동양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멀티플 퍼스펙티브와 나란히 놓아 비교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부분에서는 신선한 충격을 느낄 수 있었다. 무지몽매한 인간이 계몽되는 순간 터져나오는 짤막한 한 마디 “아!”

 

또한 시간을 다루는 역사학에 밀려 있는 공간학 혹은 공간연구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며 계층적 공간의 대표로 백화점, 네트워크적 공간의 대표로 편집샵을 들어 공간의 에디톨로지를 단숨에 이해하게 해준다.

 

 

3부는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를 다룬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프로이트는 위대한 편집자였다! 라며 인간적, 학문적인 면에서 공격받는 프로이트를 옹호하고 나선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심리학, 정신의학, 철학, 문학, 사회학의 범주를 포괄하는 메타의 영역이다. 프로이트의 개념은 끝없이 편집되고 재편집되면서 진화한다. ‘편집가능성’이 무한하다. 과학적 심리학에서는 설자리를 잃어가지만 수많은 문학과 문화비평에 프로이트의 개념이 반복되어 언급되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문화해석과 관련해서는 무궁무진한 편집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에디톨로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프로이트는 위대하다는 것이다.

 

 

 

김정운은 에디톨로지란 개념을 만들어내고 설명하면서 수많은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가져와서 편집했다. 그리하여 결국 그럴듯한 에디톨로지란 개념이 탄생한 것 같다. “아,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라는 말이 잊을 만 하면 툭 튀어나와서 논란이 될 소지가 있는 글들을 덮어버리려 하는 것이 옥의 티랄까. 주체적 사고에 대한 강박관념인지,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 사람의 조심성인지, 그냥 말버릇인지...

 

하지만 대체로 그의 말대로 어느 한 쪽을 펼쳐 읽어도 재미있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정보도 깨알같이 들어 있다.

 

음..축적된 데이터가 다른 까닭에 생산되는 지식의 내용도 달랐다며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글로벌 시대에 두 개 이상의 외국어와 데이터베이스 관리 습관을 갖추라고 조심스레 조언한 끝마무리는 아직 어린 학생들을 키우는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이해되는 말이지만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그러기에 조심스럽단 사족을 단 것이겠지.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다른 편집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하나도 없다! 고로, '창조는 편집이다.'

 

쉬쉬하던 것을 이렇게 대놓고 만천하게 드러내니 그 나름, 있어보이는 해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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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군주론 - 이탈리어 완역 결정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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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세의 위대한 사상가[마키아벨리 군주론]

 

이탈리아 피렌체, 1498년 스물 아홉 살의 청년 마키아벨리가 시의회의 공무원으로 선출되었다. 야심에 가득찬 젊은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흔적부터 지우려고 했다.

마키아벨리는 어려움에 처한 피렌체를 구할 해법을 황제가 아니라 시민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로마제국의 공화정에서 찾았다. 로마제국의 황금시대를 타락한 시대로 보았고, 황금시대의 지도자 아우구스투스를 타락한 군주로 여겼다. 로마의 역사를 깊게 연구해온 마키아벨리는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이, 황금시대에 애국심이 부족한 귀족들이 직접 전쟁에 나서지 않고 용병을 고용한 데 있다고 보았다. 로마공화정의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피렌체 정규군을 창설하는 데만 치중한 마키아벨리는 반쪽짜리 부활에 성공하는 데 그쳤다. 로마제국 공화정의 위대한 힘은 시민들이 자신의 명예를 가문의 위대함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실력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데서 얻을 수 있었던 제도에서 비롯되었고 규율이 잘 잡혀 있으며 애국심으로 충만한 로마 시민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결국 메디치 가문이 다시 피렌체 주인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마키아벨리는 실패한 정치가로 남았다.

이후 저술에 매달린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비롯, 전술론, 피렌체사, 만드라골라, 클리치아 등의 저작을 남겼다.

 

살인적인 마키아벨리, 악덕의 스승 같은 말로 혹평을 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화주의의 대변자, 최초의 근대인이자 혁명가로 마키아벨리를 칭송하는 이도 있다.

출간 때부터 논란을 일으킨 [군주론]은 오늘날까지도 지속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독창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도덕 영역과 구분되는 정치의 독자성 내지 자율성을 찾은 점에서 최초의 근대철학자에 해당하는 사상가이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와 백성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파악했다.

첫째, 백성 모두 이익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이른바 호리지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 사회 내지 국가공동체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공공선 내지 공공질서 등을 내세우며 법률 등의 강압조치를 통해 개개인의 '호리지성'을 제약할 수밖에 없다.

 

신동준 역 [군주론]이 특별한 이유를 꼽자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제자백가 사상과 연관지어 생각한 점을 가장 먼저 들 수 있다.

사상사적으로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제자백가 사상을 집대성한 순자와 한비자의 사상과 닮아 있다고 한다.

 

순자와 한비자는 군주를 존중하는 존군과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을 토대로 예치와 법치를 주장했다. 플라톤 내지 마르크스처럼 '비현실적인 꿈'을 추구한 묵자와 맹자 등과 달리 현실에 뿌리를 내린 채 '실현가능한 꿈'을 제시한 점에서 마키아벨리와 취지를 같이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전개된 백가쟁명의 논점이 여기에 있다. (..)

마키아벨리는 동서고금을 뛰어넘는 '초세의 위대한 사상가'에 해당한다.-316

 

그 외에도 번역에 있어 기존 군주론 번역본의 오류를 바로잡고 이탈리아어 원문에 충실히 따르려 했다는 점을 높이 살 만하다.

"미슐랭 타이어" "미쉐린 타이어"의 어감의 차이라고 하면 한 번에 번역의 중요성을 알 수 있을까?

문어체를 구어체로 바꾸고,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는 내용(군주론의 헌정 대상을 줄리아노 디 로렌초 메디치가 아닌 줄리아노 데 메디치로 해석해 놓은 것)을 바로잡았다. 이탈리아어 원문과 비교할 때 뉘앙스가 다른 번역 또한 원문에 가깝게 번역했다고 한다.

프린치페, 스타토, 비르투, 포르투나, 네체시타 등의 키워드에 대한 해설을 실어 다른 책들과의 차이점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마키아벨리 시대의 이탈리아 역사, 군주론이 나온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인명 사전 등의 자료 또한 풍부하게 실려 있어 이 한 권의 책으로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게 되어 있다.

 

위대한 사상에 동서 고금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며, 마키아벨리를 제자백가와 하나로 녹이는 작업을 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난세를 헤쳐 나갈 지략을 담은 책을 의미 있게 번역하고 활용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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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심증후군
제스 로덴버그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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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퍼서 죽기도 하는 청춘[상심증후군]

 

나는 두려움이 많았다.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를 설명하려면 내 어린시절부터의 삶을 송두리째 읊어야 하므로 생략.

우리네 학생들의 학창시절은 초등학생 시절, 막 핑크빛 물이 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을 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남녀 강제 분리되던 시절이라 두근반 세근반 하는 심장의 박동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지나갔다.

마냥 자유로울 것만 같던 대학 시절엔 너무도 소심해서 용기내어 사랑고백 한 번 해보지 못했다. 음. 고백할 만한 대상이나 있었나? 만남의 장 자체를 회피했던 것 같다. 고개 푹 숙이고 그저 얌전히 다니던 아이로 낙인 찍힌 그 시절, 나를 너무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두려웠고 관계를 엮어갈 때 나를 온전히 드러낼 것이 두려워 "연애"란 것을 저 멀리 두고 쳐다보기만 했다.

속으로는 벼르고 별렀던 것일까.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득시글 거리는 사회로만 나가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리라.

대학을 졸업한 나는 닥치는 대로 만날 기회를 만들었고 이것도 저것도 따지지 않고 일단 사귀고 보았다.

연애라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서 나를 옥죄고 있었던 사슬을 조금만 느슨하게 풀자, 멈춰있던 바퀴가 높은 곳에서 저절로 굴러 떨어지듯이 가속을 받아 끊임없이 달리고 달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내 속에 브레이크를 심은 것도 아닌데 연애 3개월차만 되면 무언가가 내 목덜미를 덜컥 잡아채는 것이었다. 누가 먼저 손을 내밀어 시작한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별의 상황에서 항상 내가 먼저 냉정하게 말을 꺼내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갈아치운 남자친구가 3명 정도.

어설프고 가벼운 연애에 재미라도 들린 양 쉽게 시작하고 칼같이 잘라내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자각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열어 보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희미한 떨림과 시작의 설레임을 맛보는 기간이 지나면 적극적으로 서로에 대해 파고드는 시기가 온다.

그 시기에 도달하기까지 대략 3개월 정도. 그 이후의 시간을 감당하는 법을 몰랐던 것이 희한한 연애 패턴에 숨겨진 비밀이라고나 할까.

 

그 두려움은 결국 극복되었고 지금은 과거의 미숙했던 짧은 만남들을 추억삼아 꺼내보곤 하는 "아줌마"가 되었다.

그래서 내게 있어 사랑이란, 특히나 로미오와 줄리엣에 버금가는 사랑 이야기란 "문학"속에서나 존재하는, 잡으려해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상심증후군]은 빛나는 16살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다.

두려움에 멈칫거리며 금세 발을 빼곤 하는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모든 것을 건 사랑 이야기다.

 

"나는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남자친구의 말에 브리의 심장은 덜컥 멎어버렸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브리의 심장은 깔끔하게 두동강이 난 채로 영원히 멈추어 버렸다.

 

거짓말 같은 상황으로 시작한 브리의 사랑 이야기는 천국으로 가서 새로운 남자친구 패트릭을 만나면서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영혼들의 이야기와 환생의 이야기까지 아우르면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죽음의 다섯 단계는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말하는 것인데,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로 이어진다. 이 소설에서는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에 응용되었다. 천국에서 이승의 상황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섯 단계를 거치는 동안 브리는 가족과 친구들의 진실을 직면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16살에 사랑이라니.

이팔청춘의 춘향이와 줄리엣 같은 문학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21세기에 고스란히 되살아난 것 같다.

순수하고도 강렬한 사랑에 빠져 첫 섹스를 경험하고 심장이 쪼개지는 이별의 아픔을 겪은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16살이 겪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하고 스펙터클한 삶의 싸이클이지만 브리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겪어내고야 만다.

두려움에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던 내 어린 시절의 모습과는 여러 모로 상반되는 브리의 모습이  외려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인다. 미치도록 부럽다.

누군가의 심장이 쪼개져버릴 정도로 가혹한 말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라는 말을 과거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쏘아줄 정도로는 모질지 않았던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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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짜툰 2 - 고양이 체온을 닮은 고양이 만화 뽀짜툰 2
채유리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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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더 사랑하는 고냥 웹툰 [뽀짜툰 2]

 

 

어떻게 봐도 사랑스러운 고냥이 가족들이다.

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가 채유리네 집에는 부모님과 고냥이 네 마리가 있다.

아부지, 어무니, 나, 쪼꼬, 짜구, 뽀또, 포비.

네 마리 고냥이들이 빚어내는 하모니가 실로 다채롭고 유쾌하다.

곁들여 아부지, 어무니의 무심한 듯 속 깊은 고냥이들에 대한 애정표현이 저으기 웃음 폭탄급이다.

 

 

도무지 한 가족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1편에서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거쳐, 드디어 한 집에서 부비고 살게 된 이 "대가족"들의 이야기는 넘기는 곳마다 요절복통 "꺼리"들로 넘쳐난다.

 

나는 그저 살짝 미소짓는 수준으로 들여다보고 책장 한쪽에 1권, 2권 나란히 꽂아두었는데,

어느새 우리 아이들-10살, 7살-이 꺼내와서는 읽으면서 킬킬거린다.

실제로 키우지 못하니 자연스레 만질 기회조차 없는 아이들에게 털 투성이의 고냥이들은 그저 사랑스러운 존재일 따름일 것이다.

매일 부대끼면 날리는 털, 앙칼진 목소리, 날카로운 손톱 등 아이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소지가 많은 동물인데 그림으로만 보는 고냥이는 그저 재미있고 자꾸 만지고 싶은, 환상의 애완동물!

 

 

 

봐봐~ 저렇게 책장 위에 턱 몸을 누이고 나른하게 졸고 있는 모습은, 주인조차도 넋을 빼고 볼 정도로 황홀한 자태 아니겠냐고..

특히 2편에서는 고냥이들이 자아내는 헤프닝이 재미나게 그려진다.

봉지를 목에 걸고서는 바스락 소리가 나자 귀신이라도 달라붙은 것마냥 후다닥 도망치는 고냥이를 보며, 주인들은 그저 신 나고, 그림으로 보는 우리 아이들도 자지러진다.

자주 화장실에 들락거리며 빈 욕조에 들어가는 걸 즐기지만 어느날, 물이 가득한 욕조인 줄 모르고 첨벙 뛰어든 고냥이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 또한 거의 실신직전까지 아이들을 몰고 간다.

 

나는 고냥이들이 아파트나 집안에 갇혀 바깥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애처롭고 짠해진다. 얼마나 뛰어놀고 싶을까.

작가의 형부네 집에 사는 고냥이들은 마당에서 뛰어논다.

작가의 집 고냥이 네 마리는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한가족처럼 집 안에만 길들여진채 살아간다. 가끔 유모차로 나들이 가는 것마저 거부할 정도로.

 

어떤 것이 고냥이들이란 생명체를 진심으로 위하는 길인지는 각자 판단할 일이다.

다만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 호두알을 거세당해야만 하는 고냥이들의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다.

고냥이들이여. 인간과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 것인가.

각박한 사회에서 부드러운 털로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존재임엔 분명한데, 사람들은 고냥이에게 바라기만 할 뿐,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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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은 2018-02-04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첨부터 끝까지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시면 안되용?

유예은 2018-02-0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발요... 힘드셔도 한번만요. 만약 진짜 그렇게 하시면 제 통장에 있는 179만원 다 드릴게요. 제발요...

유예은 2018-02-04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 집은 404동 102호이니까 찾아오세용.그렇게 하시면이요 오키?


유예은 2018-02-04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기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