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심증후군
제스 로덴버그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너무 슬퍼서 죽기도 하는 청춘[상심증후군]

 

나는 두려움이 많았다.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를 설명하려면 내 어린시절부터의 삶을 송두리째 읊어야 하므로 생략.

우리네 학생들의 학창시절은 초등학생 시절, 막 핑크빛 물이 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을 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남녀 강제 분리되던 시절이라 두근반 세근반 하는 심장의 박동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지나갔다.

마냥 자유로울 것만 같던 대학 시절엔 너무도 소심해서 용기내어 사랑고백 한 번 해보지 못했다. 음. 고백할 만한 대상이나 있었나? 만남의 장 자체를 회피했던 것 같다. 고개 푹 숙이고 그저 얌전히 다니던 아이로 낙인 찍힌 그 시절, 나를 너무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두려웠고 관계를 엮어갈 때 나를 온전히 드러낼 것이 두려워 "연애"란 것을 저 멀리 두고 쳐다보기만 했다.

속으로는 벼르고 별렀던 것일까.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득시글 거리는 사회로만 나가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리라.

대학을 졸업한 나는 닥치는 대로 만날 기회를 만들었고 이것도 저것도 따지지 않고 일단 사귀고 보았다.

연애라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서 나를 옥죄고 있었던 사슬을 조금만 느슨하게 풀자, 멈춰있던 바퀴가 높은 곳에서 저절로 굴러 떨어지듯이 가속을 받아 끊임없이 달리고 달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내 속에 브레이크를 심은 것도 아닌데 연애 3개월차만 되면 무언가가 내 목덜미를 덜컥 잡아채는 것이었다. 누가 먼저 손을 내밀어 시작한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별의 상황에서 항상 내가 먼저 냉정하게 말을 꺼내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갈아치운 남자친구가 3명 정도.

어설프고 가벼운 연애에 재미라도 들린 양 쉽게 시작하고 칼같이 잘라내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자각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열어 보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희미한 떨림과 시작의 설레임을 맛보는 기간이 지나면 적극적으로 서로에 대해 파고드는 시기가 온다.

그 시기에 도달하기까지 대략 3개월 정도. 그 이후의 시간을 감당하는 법을 몰랐던 것이 희한한 연애 패턴에 숨겨진 비밀이라고나 할까.

 

그 두려움은 결국 극복되었고 지금은 과거의 미숙했던 짧은 만남들을 추억삼아 꺼내보곤 하는 "아줌마"가 되었다.

그래서 내게 있어 사랑이란, 특히나 로미오와 줄리엣에 버금가는 사랑 이야기란 "문학"속에서나 존재하는, 잡으려해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상심증후군]은 빛나는 16살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다.

두려움에 멈칫거리며 금세 발을 빼곤 하는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모든 것을 건 사랑 이야기다.

 

"나는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남자친구의 말에 브리의 심장은 덜컥 멎어버렸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브리의 심장은 깔끔하게 두동강이 난 채로 영원히 멈추어 버렸다.

 

거짓말 같은 상황으로 시작한 브리의 사랑 이야기는 천국으로 가서 새로운 남자친구 패트릭을 만나면서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영혼들의 이야기와 환생의 이야기까지 아우르면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죽음의 다섯 단계는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말하는 것인데,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로 이어진다. 이 소설에서는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에 응용되었다. 천국에서 이승의 상황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섯 단계를 거치는 동안 브리는 가족과 친구들의 진실을 직면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16살에 사랑이라니.

이팔청춘의 춘향이와 줄리엣 같은 문학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21세기에 고스란히 되살아난 것 같다.

순수하고도 강렬한 사랑에 빠져 첫 섹스를 경험하고 심장이 쪼개지는 이별의 아픔을 겪은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16살이 겪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하고 스펙터클한 삶의 싸이클이지만 브리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겪어내고야 만다.

두려움에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던 내 어린 시절의 모습과는 여러 모로 상반되는 브리의 모습이  외려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인다. 미치도록 부럽다.

누군가의 심장이 쪼개져버릴 정도로 가혹한 말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라는 말을 과거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쏘아줄 정도로는 모질지 않았던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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