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세의 위대한 사상가[마키아벨리 군주론]
이탈리아 피렌체, 1498년 스물 아홉 살의 청년 마키아벨리가 시의회의 공무원으로 선출되었다. 야심에 가득찬 젊은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흔적부터 지우려고 했다.
마키아벨리는 어려움에 처한 피렌체를 구할 해법을 황제가 아니라 시민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로마제국의 공화정에서 찾았다. 로마제국의
황금시대를 타락한 시대로 보았고, 황금시대의 지도자 아우구스투스를 타락한 군주로 여겼다. 로마의 역사를 깊게 연구해온 마키아벨리는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이, 황금시대에 애국심이 부족한 귀족들이 직접 전쟁에 나서지 않고 용병을 고용한 데 있다고 보았다. 로마공화정의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피렌체 정규군을 창설하는 데만 치중한 마키아벨리는 반쪽짜리 부활에 성공하는 데 그쳤다. 로마제국 공화정의 위대한 힘은 시민들이 자신의 명예를
가문의 위대함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실력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데서 얻을 수 있었던 제도에서 비롯되었고 규율이 잘 잡혀 있으며 애국심으로
충만한 로마 시민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결국 메디치 가문이 다시 피렌체 주인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마키아벨리는 실패한 정치가로 남았다.
이후 저술에 매달린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비롯, 전술론, 피렌체사, 만드라골라, 클리치아 등의 저작을 남겼다.
살인적인 마키아벨리, 악덕의 스승 같은 말로 혹평을 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화주의의 대변자, 최초의 근대인이자 혁명가로 마키아벨리를
칭송하는 이도 있다.
출간 때부터 논란을 일으킨 [군주론]은 오늘날까지도 지속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독창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도덕 영역과 구분되는 정치의 독자성 내지 자율성을 찾은 점에서 최초의 근대철학자에
해당하는 사상가이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와 백성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파악했다.
첫째, 백성 모두 이익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이른바 호리지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 사회 내지 국가공동체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공공선 내지 공공질서 등을 내세우며 법률 등의 강압조치를 통해 개개인의 '호리지성'을
제약할 수밖에 없다.
신동준 역 [군주론]이 특별한 이유를 꼽자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제자백가 사상과 연관지어 생각한 점을 가장 먼저 들 수
있다.
사상사적으로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제자백가 사상을 집대성한 순자와 한비자의 사상과 닮아 있다고 한다.
순자와 한비자는 군주를 존중하는 존군과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을 토대로 예치와 법치를 주장했다. 플라톤 내지 마르크스처럼 '비현실적인 꿈'을
추구한 묵자와 맹자 등과 달리 현실에 뿌리를 내린 채 '실현가능한 꿈'을 제시한 점에서 마키아벨리와 취지를 같이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전개된
백가쟁명의 논점이 여기에 있다. (..)
마키아벨리는 동서고금을 뛰어넘는 '초세의 위대한 사상가'에 해당한다.-316
그 외에도 번역에 있어 기존 군주론 번역본의 오류를 바로잡고 이탈리아어 원문에 충실히 따르려 했다는 점을 높이 살 만하다.
"미슐랭 타이어" "미쉐린 타이어"의 어감의 차이라고 하면 한 번에 번역의 중요성을 알 수 있을까?
문어체를 구어체로 바꾸고,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는 내용(군주론의 헌정 대상을 줄리아노 디 로렌초 메디치가 아닌 줄리아노 데 메디치로 해석해
놓은 것)을 바로잡았다. 이탈리아어 원문과 비교할 때 뉘앙스가 다른 번역 또한 원문에 가깝게 번역했다고 한다.
프린치페, 스타토, 비르투, 포르투나, 네체시타 등의 키워드에 대한 해설을 실어 다른 책들과의 차이점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마키아벨리 시대의 이탈리아 역사, 군주론이 나온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인명 사전 등의 자료 또한 풍부하게 실려 있어 이 한 권의
책으로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게 되어 있다.
위대한 사상에 동서 고금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며, 마키아벨리를 제자백가와 하나로 녹이는 작업을 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난세를 헤쳐 나갈 지략을 담은 책을 의미 있게 번역하고 활용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