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학'이란
개념의 탄생 [에디톨로지]
책은
끝까지 읽는 게 아니라고? 이 책의 저자 김정운이 책의 말미에 한 말이다.
난
[에디톨로지]를 재밌다, 재밌다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버렸는데?^^
'에디톨로지'의
개념은 생소하지만 그의 입담은 전혀 낯설지 않다. 어쩌다 보니 한나절 만에 다 읽어버린 걸...

데이터
관리는 권력이라는 사실을 독일 유학 시절 몸소 체험한 그는 일반적인 ‘계층적 분류’로 데이터를 입력하고 축적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들에
관한 메타언어를 익히게 되었다.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며 나름의 개념체계를 만들다 보면, 어느새 전혀 다른 차원의 생각을 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리하여 책이라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읽고 싶은 것만을 찾으려 할 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 “책은 끝가지 읽는 게
아니다”라는 , 듣기에 따라서는 좀 과격하기도 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결국은 내 질문, 내 생각을 갖고 책을 읽으라는 말이다. 목차와
찾아보기는 주체적 독서를 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책을 구입하는 순간부터 그것은 내 에디톨로지의 한 부분이 된다.” 이 말은
독서를 밥 먹듯이 하는 이들에게 단 한 문장으로 “에디톨로지”의 개념을 설명해주는 말이 될 것이다.
김정운이
쓴 [에디톨로지]에서 사용된 ‘에디톨로지’라는 생소한 말은 바꿔 말하면 ‘편집학’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지식의 종속이라며 지식체계 구축의 기본단위인 개념 하나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자기 맘대로 만든 개념이라고 한다. 먼 훗날 전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도록 영어로 만들었단다.
[남자의
물건] 같은 재미있는 책을 저술하고 TV 화면에서 유쾌한 입담을 과시하던 김정운의 기존 이미지로는 잘 상상할 수 없었던 학자로서의 숨겨진 본질이
이 책에서 폭발하게 되는 것인가?
짐짓
진지한 어조로, 일본에서 지낸 3년간 이 책의 집필에 몰두했다고 말하니 읽는 독자로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하여 처음엔 꽤
긴장했다.
심리학자의
전공을 살려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는 지식인 행세를 하면 어쩌나? 새로운 개념이라니 이거 메모라도 해 가며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걱정은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
쉬운
문장과 유쾌함은 기본 장착이고 ‘에디톨로지’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은 옵션이니 말이다.
에디톨로지는
유사 개념으로 통섭, 융합, 크로스오버, 콜라보레이션 등의 개념이 있지만 그저 ‘섞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인간의
구체적이며 주체적인 편집 행위에 관한 설명이며 ‘편집의 단위’, ‘편집의 차원’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는, 인식의 패러다임 구성과정에 관한
설명이라고...
지식을
축적하기에 적당한 계층적 지식 쌓기의 시대가 건너가고 지식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네트워크적 지식 쌓기의 시대에 돌입했다. 이른바 네이버 지식인의
시대인 것이다. 검색만 하면 어지간한 지식은 다 내 것이 된다.
유학시절
노트에 필기하던 김정운은 독일 학생들이 카드에 필기하는 것을 보고 그 학생들과 자신이 “내 생각의 발현”이라는 것에서 크게 차이점을 나타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카드 필기는 지식을 주체적으로 “편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마우스는 최초
발명자가 따로 있지만 그 가치를 알아봐 준 스티브 잡스에 의해 생명력을 얻었다. ‘훔치기의 명수’라는 비아냥을 얻기도 하고 애플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터치’의 개념을 통해 아이팟 이후 디지털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인문학과 기술의 만남을 완벽하게 이해한 탓이다.
김정운은
스티브 잡스 외에도 텍스트를 끝없이 해체하고 결합하는 이어령의 하이퍼텍스트를 김용옥의 크로스텍스트보다 에디톨로지적이라 평가하고 영화를 화면과
음악의 에디톨로지라고 말하며, 카라얀은 ‘음악과 영상의 편집’이라는 21세기적 에디톨로지의 선구자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이제
‘에디톨로지’에 대한 감이 조금씩 잡히기 시작하는가?
1부에서
이렇게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에 대해 얘기한 다음 2부에서는 관점과 공간의 에디톨로지로 이동한다. 원근법을 중심으로 공간편집과 인간의식의
상관관계를 얘기한 부분은 꽤 재미있게 읽었다. 객관성과 합리성이라는 서구의 과학적 사고가 원근법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철저하게 자의적이고
권력적이라는 결함이 있다는 것을 짚어주고 동양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멀티플 퍼스펙티브와 나란히 놓아 비교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부분에서는 신선한
충격을 느낄 수 있었다. 무지몽매한 인간이 계몽되는 순간 터져나오는 짤막한 한 마디 “아!”
또한
시간을 다루는 역사학에 밀려 있는 공간학 혹은 공간연구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며 계층적 공간의 대표로 백화점, 네트워크적 공간의 대표로 편집샵을
들어 공간의 에디톨로지를 단숨에 이해하게 해준다.
3부는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를 다룬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프로이트는 위대한 편집자였다! 라며 인간적, 학문적인 면에서 공격받는 프로이트를 옹호하고 나선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심리학, 정신의학, 철학, 문학, 사회학의 범주를 포괄하는 메타의 영역이다. 프로이트의 개념은 끝없이 편집되고 재편집되면서
진화한다. ‘편집가능성’이 무한하다. 과학적 심리학에서는 설자리를 잃어가지만 수많은 문학과 문화비평에 프로이트의 개념이 반복되어 언급되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문화해석과 관련해서는 무궁무진한 편집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에디톨로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프로이트는 위대하다는 것이다.
김정운은
에디톨로지란 개념을 만들어내고 설명하면서 수많은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가져와서 편집했다. 그리하여 결국 그럴듯한 에디톨로지란 개념이 탄생한 것
같다. “아,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라는 말이 잊을 만 하면 툭 튀어나와서 논란이 될 소지가 있는 글들을 덮어버리려 하는 것이 옥의
티랄까. 주체적 사고에 대한 강박관념인지,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 사람의 조심성인지, 그냥 말버릇인지...
하지만
대체로 그의 말대로 어느 한 쪽을 펼쳐 읽어도 재미있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정보도 깨알같이 들어 있다.
음..축적된
데이터가 다른 까닭에 생산되는 지식의 내용도 달랐다며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글로벌 시대에 두 개 이상의 외국어와 데이터베이스 관리 습관을
갖추라고 조심스레 조언한 끝마무리는 아직 어린 학생들을 키우는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이해되는 말이지만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그러기에
조심스럽단 사족을 단 것이겠지.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다른 편집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하나도 없다! 고로, '창조는
편집이다.'
쉬쉬하던
것을 이렇게 대놓고 만천하게 드러내니 그 나름, 있어보이는 해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