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판 오만과 편견, 로맨스 끝판왕! [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는 [계약결혼], [말괄량이 상속녀], [영원보다 긴 사랑]을 포함해 마흔 세 권의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를 썼다고 한다.
말하자면, 할리퀸 로맨스계의 대모라 불리는 이다.
소싯적, 할리퀸 로맨스를 탐독해왔던 이로서, 그 이름을 한 번쯤 안 들어봤다면 거짓말일 터. ^^
할리퀸 로맨스는 불안하고 삭막했던 여고생의 수험생 시절을 밝혀준 등불이었다~~
국어 교과서 안으로 쏙 들어오던 작은 크기의 할리퀸 로맨스는 지루하기 그지없던 국어 시간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더랬다.
길고 긴 지문을 읽어내는 힘은 할리퀸로맨스를 속독하던 실력으로 가볍게 기를 수 있었지...
각 과목 선생님들의 발자국 소리를 짝사랑의 열병에 쿵덕대던 여주인공의 심장 소리와 동일시하면서 쫄깃한 긴장감을 즐겼었고...
건장하고 매력 넘치는 남주인공의 찡긋, 윙크 한 번에 하루의 피로를 날려보냈었다.
풀어놓자면 끝도 없는 할리퀸로맨스와 나의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은 어엿한 성인이 되면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는데.
이제 와 다시 그 이름, 할리퀸로맨스라는 이름을 마주하고 보니 이 나이 먹어서도 새삼 발그레해지는 건 기분 탓인가.
가끔, 아주 가끔. 연애 소설 비슷한 것을 읽으며 그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곤 했는데, 본격적인, 대놓고 할리퀸 로맨스인 이 책을, 그것도
아주 두툼한 이 책을 대하고 보니 자꾸 아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하루에 7,8교시인 수업 시간을 완전히 대체해 버릴 양으로, 수업 한 시간에 얄팍한 할리퀸로맨스 한 권씩을 가볍게 독파하곤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이 주인공, 저 주인공 짬뽕 되어 버려서 할리퀸로맨스의 본질을 쭉 뽑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
신데렐라 형 로맨스, 남녀의 파워게임 속에 싹트는 로맨스, 재벌이 나오지 않으면서도 평범한 소시민의 매력적인 로맨스 등등...
간만에 읽는 [파이와 공작새]는 어떤 형태의 이야기인가 싶어 죽 훑어보니 [오만과 편견]이란 제인 오스틴의 고전명작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여고생 시절의 내게 차갑고 도도하지만 연애를 갈구하는 여자와 독선적이지만 배려할 줄 아는 전형적인 귀족
남자의 랠리식 대사로 깊은 인상을 남긴 책이다.
시간과 공간이 현재와 너무 떨어져 있고 그들의 사고방식이 지금과 너무 달라 신기해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고전적인 러브 스토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톡톡 튀는 매력, 주눅 들지 않으면서 할 말 다하는 여주인공에 푹 빠져서 한 번 읽고 나서 잊을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21세기판 [오만과 편견]은 어떤 스토리를 담고 있을까.
작은 시골 마을 서머힐에서 사건은 일어난다.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요리사 케이시는 너무 바빠서 남자친구가 자신을 떠나갔다는 사실조차 늦게 깨달아 버린다.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할
시간을 가지기 위해 서머힐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는데, 어느날 아침, 매력적인 집주인 테이트가 자신의 눈앞에서 알몸으로 샤워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짜잔~ 이렇게 충격적인 장면으로 주인공들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게 바로 할리퀸 로맨스의 매력!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상상하는 것이 현실로 이루 어진 듯, 생생한 장면으로 우리 눈앞에 따악 나타나 주는 것!!
자선모금을 위해 기획한 연극 [오만과 편견] 에 참여하기 위해 서머힐에 들렀던 배우 테이트는 집에서도, 연극 무대에서도 케이시와 마주치며
인연을 쌓아간다.
둘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매개체가 바로 '파이와 공작새' 인 것이다.
한바탕 소란을 이끌어 내기에 '공작새'가 아주 적격이란 것은 이번에 알았다. 큰 날개깃을 펼치고 부리로 콕콕 쪼는 등 가는 곳마다
시끌벅적한 장면을 연출하는 공작새란 놈이 없었다면 두 주인공 사이에 불꽃 튀는 일이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오만과 편견] 외에도 실제 생활에서 이들이 만들어 내는 상황도 [오만과 편견] 속 상황과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파이와 공작새]가 21세기형 [오만과 편견]이라 할 만하다.
연극을 하기 위해 [오만과 편견] 속 엘리자베스, 다아시, 빙리, 베넷 부인 등의 인물 파악을 하는 중에 실제 인물과 절묘하게 부합되는
부분이 제목에 활용되어 있다.
고전 작품 [오만과 편견] 속 대사에서도 로맨스를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우아하면서도 간접적인 화법으로 넌지시 전하는 꽉 막힌
러브 스토리 덕분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었다.
21세기판으로 다시 태어난 이 이야기에서는 좀 더 화끈한 러브 스토리가 펼쳐지면서 사이다 한 사발 드링킹 한 것 같은 속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만나서 손끝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함을 느끼는 두 사람.
이 정도면 확실한 로맨스의 수순을 밟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주인공 외에 연극에 참여하는 인물들의 비밀, 태생의 비밀, 사기꾼의 비밀 등이 밝혀지는 장면도 소소한 재미를 더해준다.
주인공을 포함, 무려 세 커플이 이루어지는 만큼 곳곳에 숨어 있는 핑크빛 기류를 감지하고 찾아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방법이
되겠다.
오빠의 오만함과 당신의 편견이 만난 거죠. 아주 그럴듯한 맞수예요.-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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