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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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의 음모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라고 말하면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제목을 보고

그 제목 바로 밑에 나와 있는 그림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검은 색의 덩어리는 곧바로 '코끼리'를 연상케 한다.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모자로 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 압력을 받고 있던 닉슨이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라고 연설을 한 순간, 모두가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을 프레임이라고 한다.

우리의 상식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이고 자연스러운 추론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러한 추론은 우리의 무의식적 프레임에서 나온다.

또한 언어를 통해서도 프레임을 인식하는데 이 책의 제목에서처럼, 우리가 어떤 프레임을 부정할 때에도 그 프레임은 활성화된다.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면 그 프레임이 활성화된다. 프레임은 자주 활성화될수록 더 강해진다.

 이 사실을 정치 담론에 적용시키면?

보수와 진보로 뚜렷이 나뉘는 미국 정치에 언어학을 적용시킨 작가는 진보의 입장에서 흥미로운 의견을 펼친다.

진보주의자들이 보수 세력의 언어와 그 언어가 활성화하는 프레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그들의 언어가 아닌 '우리'의 언어를 써서 '우리'의 신념을 말해야 한다고 한다.

프레임을 재구성하자는 말은 개념을 조작하자는 말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오염을 가중하는 법안을 일컬어 '깨끗한 하늘 법안'이라고 하는 것은 조작적인 프레임이다. 대중들이 대기 오염을 가중하는 입법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 반대의 뜻을 지닌 프레임을 암시하는 이름을 갖다붙인 것이므로 순수한 조작이다.

진보는 자신의 신념을 프레임을 사용하여 전달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논의하는 프레임 재구성은 정직성과 도덕성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어서 여론 조작이나 속임수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깊은 신념과 이해를 의식으로 불러내는 것이므로, 우리는 진정한 신념을 표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신념을 이해했다면 그 다음은 행동하는 것이 남았다.

 

정치의 인지적 측면을 이해하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똑똑히 알고 말할 수 있다면, 지금 벌어지는 일을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바꿀 수 있다.

평소 정치인이 만들어내는 프레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며, 그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은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말한다는 손석희의 말은 이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한 것이라 본다.

 

바람이 약해지면 소용돌이는 마티니를 네 잔째 마시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기 시작할 수 있다....이번 경우에는 극소용돌이 거의 전체가 남쪽으로 곤두박질했다...-89

 

위와 같이 대중을 호도하는 부적절한 은유를 남발하는 기자들은 지구 온난화와 그것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셰일 가스 시추나 교육 사유화나 노조 쇠퇴 같은 다른 유기적 인과관계를 논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10주년 기념 개정판인 이 책은 프레임을 어떻게 짜고 어떻게 활성화되었는지 뿐만 아니라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왜 민주당이 다시 프레임 전쟁에서 지게 되었는지,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밝히고 있다.

얼핏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피터지게 싸우는 전쟁터에서 매일을 보내는 정치가들에게 유용한 책일 것 같지만 이 프레임의 음모를 밝히는 글은 현대를 사는 많은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어떤 대화의 장에서든지 자신의 신념을 제대로 세우면 다른 사람의 '프레임'에 휘말려들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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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사랑한 꽃들 - 33편의 한국문학 속 야생화이야기
김민철 지음 / 샘터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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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꽃, 꽃  꽃이 왔어요. [문학이 사랑한 꽃들]

 

 

 

수많은 소설을 읽으며 문학에 심취한 저자는 꽃도 사랑했다.

그 중에서도 낮은 곳에 피어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 관심을 받지도 못하는 야생화를 사랑했다.

[문학 속에 핀 꽃들]에 이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야생화를 중심으로 한국소설을 들여다 보는 책 [문학이 사랑한 꽃들]이 나왔다.

형식은 전작과 같다. 모두 33편의 한국소설을 150여 점의 야생화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것이다.

소설의 어떤 대목에서 야생화가 나오는지, 그 야생화가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 소개하는 것인데

읽었던 소설이건 생소한 소설이건 꽃이 함께 하니 낯설지가 않다.

긴 겨울을 지나 힘찬 생명력으로 싹을 틔우더니 마침내 꽃을 달고 나온 개나리, 벚꽃, 화사한 프리지아 등의 봄꽃들을 보면서 반가웠던 마음이 이 책을 지은 저자의 마음에 고스란히 덧씌워졌나 보다.

봄이라 봄 봄 봄 봄이 왔어요라는 구절을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데

단 한 글자만 바꾸어 어느새 꽃 꽃 꽃 꽃이 왔어요~라고 부르고 있다.

 

산으로 들로 눈길을 던지면 온통 초록 사이에 연분홍 혹은 진분홍의 색감이 화르륵 번져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점점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겠다. 봄기운 사이로 어지럽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탓인가 하지만 한덩어리져 보이던 꽃들이 스스로의 매력을 뽐내면서 날 좀 봐달라고 아우성을 치면 각각의 얼굴이 드러나면서 "점점이"가 되는 것이다.

"온 산에 벚꽃이 지천이네. 진달래, 철쭉도 피어 있고..."

그러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질문을 던져 온다.

"진달래, 철쭉은 뭐가 달라?"

이럴 때 훅 치고 들어오는 아이들의 질문에 예전 같으면 헛기침을 했겠지만, 이젠 차이점을 설명해줄 수 있다.

진달래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고. 그래서 꽃과 잎이 함께 피는 것은 철쭉이라고.

좀 더 자세히 보면 철쭉은 연한 분홍색으로 진달래와 달리 꽃잎 안쪽에 붉은 갈색 반점이 있다고.

아파트 화단에 많이 심어 놓은, 꽃이 작으면서 화려한 색깔을 뽐내는 것들은 영산홍이라고.

이게 다 야생화에 대한 애정이 한아름인 저자의 덕분이다. ^^

 

드라마로만 보았던 정은궐의 [해를 품은 달]에서는 무녀 월에게서 나는 은은한 난향에 초점을 맞춰 난을 소개했고, 김동리의 [역마]에서는 칡처럼 얽힌 3대의 가족 인연을 이야기한다.

'갈등'이라는 단어에서 갈은 칡이고, 등은 등나무로, 두 나무가 서로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것을 의미하지만 현실에서는 칡과 등나무가 얽힌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한다.

칡은 칡대로, 등나무는 등나무대로 자기 삶을 살고 있다. 숲에는 칡과 등나무만 있고 갈등은 없었다.-이우상, <숲에는 갈등이 없다> 중

권여선의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은 분명 예전에 읽고서 '아~ 좋다.'라며 막연한 감상만 가지고 있었는데 저자는 이 소설이 아주 편안한 데다 능청스럽다고 얘기하고 있다.

"비자나무 숲은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과거라는 실체를 상징한다."는 권여선의 말을 인용하면서 소설 이해에 대한 팁을 나눠주어 오래 품어온 호기심이 해결되었다.

'마치 여인의 정갈한 앞치마를 연상시키듯 단정하고 아름다운 소설집으로, 소설의 미학을 극대화한 단편소설의 교본'이라는 평을 받은 작품인데 읽었다는 뿌듯함보다 모호한 의미가 해결이 안 되어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문학과 꽃이라는 특별한 만남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는 이 책은 곱씹을수록 특별한 풍미가 있다.

내가 읽은 책이라도 다시 한 번 꽃과 관련한 부분으로 포인트를 바꾸어 읽어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또한 읽지 않은 책을 손에 잡고 싶어지게 하기도 한다. 바로, 지금, 당장!!!

달콤한 여인의 살내음 같은 치자꽃 향기를 품은 정미경의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라든지 처제의 몸에 그린 주황색 원추리를 소재로 한 한강의 [채식주의자] 같은 경우 말이다.

 

야생화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문학, 특히 한국소설에 대한 애정이 다시금 퐁퐁퐁 샘솟게 하는 책.

봄기운에 취해 꽃들에 취해

아직 읽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 못 견디게 읽어내리고 싶은 책의 목록을 써내려간다.

꽃과 함께

다시 책을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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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08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과 꽃이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한국소설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과 김유정의 <동백꽃>입니다. ^^

남희돌이 2015-04-09 12:36   좋아요 0 | URL
김유정의 <동백꽃>은 앞의 책, [문학 속에 핀 꽃들]에 소개되었네요.
동백꽃은 일반적으로 붉은색인데 김유정은 왜 노란 동백꽃이라고 했을까.
사실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의 전령사, 생강나무라고 해요~~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4월에 쓰는 3월의 에세이 주목 신간 페이퍼

 

 

 

 

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지은이) | 문학동네 | 2015년 3월

 

 

<보다> - <말하다> - <읽다> 삼부작 중 두번째로 선보이는 산문집 <말하다>는 김영하 작가가 데뷔 이후 지금까지 해온 인터뷰와 강연, 대담을 완전히 해체하여 새로운 형식으로 묶은 책이다.

 

 

 

김영하는 유독 대중에게 많이 나타나는 작가인 것 같다. 보통 소설가, 작가, 하면 은둔형 인물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김영하는 문득문득 대중 앞에 나서곤 한다. [말하다]라는 제목의 책을 낸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대놓고 말하는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읽어보고 싶다.

 

 

 

당신, 전생에서 읽어드립니다 - 박진여 전생 리딩 이야기

박진여 (지은이) | 김영사 | 2015년 3월

 

15년 동안 1만 5천 명의 전생을 읽고 상담해온 박진여의 진정한 삶을 위한 메시지. 이 책은 저자가 지난 2000년부터 15년 동안 전생 리딩으로 1만 5천여 명에 달하는 내담자들의 전생을 읽고 상담한 내용과 그 과정에서 배운 삶의 메시지들을 기록한 것이다.

 

 

 

 

 

전생을 읽는 사람이라는 데에 어찌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있으랴. 최면 요법을 통해서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간혹 눈물을 줄줄 흘리거나 깜짝 놀랄 만한 과거를 대면한 사람들을 방송을 통해 보면, 에이~ 저건 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냐, 하기 일쑤였다.

과연, 전생을 본다는 건 가능한지?

전생은 보아서 무엇에 쓰는 것인지?

궁금, 궁금, 또 궁금하다.

 

 

 

 

 

 

 

김이나의 작사법 -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는 일상의 언어들

김이나 (지은이) | 문학동네 | 2015년 3월

 

대중과 교감하며 감성적이고 매력적인 노랫말을 써온 작사가 김이나가 자신의 이름을 건 작사법 책을 출간한다. 작사가 지망생과 음악업계에서 일하길 꿈꾸는 젊은이들은 물론, 글쓰기와 창작을 지망하는 이들, 그리고 지금껏 자신이 작사한 노래를 들어준 수많은 청자들을 향해 쓴 책이다.

 

 

 

 

예쁜 이름 만큼이나 귀를 싹 잡아당기는 맛있는 가사를 쓰는 사람.

작사가들은 도대체 어떻게 작사하는 걸까? 하는 게 가끔씩 궁금해질 때가 있었다.

주말에 특히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보면 그냥 흘려보내는 가사들이 구구절절이지만

어쩌다 내 귀에 머무는 가사들을 보면 몇 몇 이름난 작사가들의 이름이 어김없이 올라 있다.

아, 그들은 어찌하여 이토록 발길 머물게 하는 글로 내 마음을 울리나.

그 비법, 들어 있을지, 읽어보고 확인하겠다!!

 

 

 

 

 

 

 

꽃에게 길을 묻다 - 개정판

조용호 (지은이) | 북랩 | 2015년 3월

 

직접 찍은 사진과 시인들의 꽃 시를 곁들여 정감어린 문장으로 철마다 피어나는 꽃들의 안부를 물었던 소설가 조용호의 '꽃에게 길을 묻다'가 초판 발행 10년 만에 다시 독자들을 만난다.

 

 

 

 

봄은 봄인 모양인지

꽃을 실은 책에 마음이 간다.

꽃 사진과 꽃 이야기. 그냥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봄에 푹 빠지게 되지 않을까.

개정판이라니 믿고 선택!!

 

 

 

 

 

가구 만드는 남자 - 이천희의 핸드메이드 라이프

이천희 (지은이) | 달 | 2015년 3월

 

배우이기도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에서 큰 활약을 펼친 예능인이기도 했던 이천희의 핸드메이드 라이프. 그는 14년차 목수이다. 캠퍼이기도 하고 보더이기도 하고 서퍼이기도 하다. 그리고 2년 전 어엿하게 문을 연 가구 브랜드 회사 HIBROW(하이브로우)의 대표이기도 하다.

 

 

제목이 왜 이다지도 섹시한가.

^^

가구 만드는 남자.

목수.

특히나 손재주 뛰어나기로 유명한 지진희에 이어 이번에는 이천희인가.

가구 회사 대표이기도 하다니 진정 깜놀이다.

우리 남편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손으로 나무를 만지고 싶다 말한다.

나무, 나무, 목공예, 목공예. 아예 노래를 부르는 남편 탓인지, 이 책에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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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드타이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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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찾아드는 불안과 부끄러움 [홀드 타이트]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는 아들은 입학 첫날 새 운동화를 산뜻하게 차려 신고 집을 나섰다.

오랫동안 신으라고 꽤 여유 있는 사이즈의 운동화를 준비해 준 이모 덕분에 손가락 하나 둘은 너끈히 들어갈 만큼 헐렁한 신발이었다. 엄마인 나는 새학기를 잘 보내고 오라는 마음으로 운동화 끈 끝에 리본을 만들어 주고 아들에 대한 염려의 마음도 함께 꽉 졸라매었다.

한 걸음 ,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에 자신감이 뚝뚝 묻어나기를...

신 나고 즐거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충만하기를...

 

유치원 때부터 툭하면 친구들이 괴롭힌다며 울먹울먹 하던 아이가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솔직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다. 집에서는 누나랑 투닥투닥 할 때면 누나보다는  자기 편을 들어주는 엄마가 있어 오히려 누나가 울먹울먹 하곤 했는데, 이제 학교 가면 누가 제 뒤를 돌봐줄까...

여전히 어려 보이고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울집 막내의 뒷모습이 마냥 안쓰러워 자꾸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는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한 달 간의 학교 적응 후 담임 선생님과의 첫 상담 시간.

질질 짜고 울고 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했던 아이에 대해 청천벽력 같은 선생님의 평가가 내려졌다.

"오늘도 말 안 들어서 혼 났는데, 음...수첩에는 3건이 적혀 있네요."

"화장실에서 소리지르고 뛰어다닌 것, 복도에서 옆 반 아는 여자친구 놀려서 울린 것."

"그리고 옆 짝이 자기 목을 조르는 장난을 쳤는데, 그만하라고 하지 않고 '더 해봐, 더 해 봐.' 하며 오히려 부추겼네요. 자기 잘못을 지적하면 "예" 하고 받아들이는 법이 없고요."

요즘 들어 장난기가 발동한 것인지, 학교가 너~ 무 편해서 그런 것인지, 엄마인 내 눈에도 개구쟁이의 모습이 겹쳐 보이긴 했는데, 정작 선생님으로부터 너무나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보니 정신이 멍~ 해졌다.

"어머니 마음은 이해하지만 옆의 친구를 나무라시기 보다, 내 아이는 내가 단도리 한다 생각하시고, 가정에서 지도 잘 해 주십시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네, 네."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보는 내 아이와 학교 생활하는 내 아이가 다르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뭐랄까...

자기에게 이로운 말만 하고 불리한 말은 쏙 빼놓은 아이에 대한 배신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면서

그동안 순한 양으로, 어리광쟁이 막내로 내 무릎을 파고들며 눈웃음 짓던 아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뭐, 대단한 범죄에 연루된 것도 아니고 아이로 인해 수업이 엉망이 될 정도로 난동을 피우는 것도 아니었지만 내 아이가 나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4학년인 딸은 일기에

"일기를 쓰고 있는데 낮에 피아노 학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서 괜히 눈물이 났다."고 적어 놓았다.

일기를 읽은 걸 들키지 않으려니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도 없었고, 안 물어보자니 궁금해서 견딜 수 없고...

진퇴양난에 빠진 나는 그냥 정면돌파하기로 했고, 아이는 엄마가 일기를 읽었다는 것 때문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별 일 없었다" 며 끝내 자세한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다.

 

내 아이에게게 일어나는 일을 세세하게 알고 싶어하면 병이겠지만, 혹시나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경우, 혹은 문제가 일어나기 전의 전조 증상 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지 않았을까. 그래도 프라이버시를 끝까지 지켜주었어야 했을까.

 

할런 코벤의 [홀드타이트]를 읽은 후에 불안과 부끄러움이 나란히 찾아들었다.

언제까지 자식을 보듬어 주어야 하며 언제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하는지.

부모로서 지켜주어야 할 자식의 비밀은 어느 선까지가 한계인지.

만약 내 아이에 대한 의심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 것인지.

수많은 '만약에'가 이 작은 새가슴을 두드려 쿵쾅쿵쾅 뛰는 소리가 한동안 가시질 않았다.

 

열 여섯 살 애덤은 의사인 아빠와 변호사인 엄마. 말 잘듣고 상냥한 여동생 질과 함께 나무랄 데 없는 생활을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애덤이 6개월 전 아무 설명 없이 아이스하키를 그만두겠다고 한 이후 애덤의 아버지 마이크는 애덤의 모든 것이 수상쩍게만 보인다. 침울해지고 말수가 적어졌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방안에서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얼마 전 친구인 스펜서가 학교 옥상에서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아들의 행동은 영 미덥지가 않다. 애덤의 컴퓨터에 감시장치를 설치한 부모는 의문의 이메일을 발견하고 애덤의 방황이 스펜서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정황을 포착한다.

가출한 애덤을 찾아나서는 부성애 가득한 아버지 마이크는 "테이큰"의 리암 니슨처럼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린다.

 

한편 지능은 높지만 계속해서 광기에 시달려온 내시라는 남자는 피에트라라는 여자와 짝을 이뤄, 무자비한 살인 두 건을 연이어 저지른다. 무엇을 목적으로 한 것인지는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밝혀지게 되지만 과거의 어느 지점에 상처를 간직한 이들이라 할지라도 인면수심의 범행을 저지른 것을 정당화할 만한 변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부녀를 강간한 남자는 살해당했지만 그녀는 그의 아이를 낳게 되는 비극.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던진 것이 불러일으킨 엄청난 2차, 3차의 커다란 범죄.      

아이의 미래를 위한답시고 현재의 작은 잘못을 덮어놓고 무마해줄 수 있는 정도의 권력자로서 권력을 남용하는 부모.

부모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뭔가 불만을 표출하고 싶어하다 잘못된 길로 들어선 아이들.

이 수많은 "꼬투리" 들이 교묘하게 맞물려서  거센 물줄기로 인해 휙휙 꼬여가는 세탁조의 빨래들처럼 단단하게 얽혀 가는데 ...

가출, 납치, 살해 처럼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들이 마치 순리인 양 차례차례 벌어지기만 하고 한 번 벌어진 일들은 깊고 길게 패인 칼자국처럼 쉽사리 봉합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인생의 어떤 장면에서든 마주칠 수 있는 일들이어서 더욱 섬뜩하다.

바로 그 점 때문에 현실인 듯 현실 아닌, 현실같은 느낌을 받게 되고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마지막의 반전이라면 반전이랄까.

부모가 아이들에게 신경 쓰고 있는 만큼 아이들도 부모의 행동을 눈치 채고 있다는 사실.

어쨌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하나로 통하는데 그 마음들이 시작점이 다른 평행선으로 나란히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

시작점이 다르다면 어느 한 지점에서 교차하도록 서로 노력하는 것이 부모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이 아닌가.

 

 

아직 1학년이라고 너무 쉽게 아이의 잘못을 용인하고 묵인하는 부모가 되어서 속으로 곪아들어가는 상처를 만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반성을 한다.

내 아이를 믿어주어야 하는 유일한 사람인 부모이지만 가장 먼저 뒤통수를 맞을 수 있는 사람도 부모임을 알아야겠다.

아직도 갈팡질팡하고 있는 이 못난 부모의 마음은 그래도 내 자식 쪽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서 꼬오옥 보듬어 안아주고 싶다.

순진한 눈망울을 바라보며 얼굴을 마구 부벼대고 싶다.

홀드타이트. 꼭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아이의 손? 아니면 세상의 냉혹하고 무자비한 잣대?

내 아이를 고작 한 달 경험한 선생님의 냉정한 평가를 믿고 아이를 몰아쳐야 할지, 내가 품에 안고 키워오면서 보아온 품성과 행동들을 믿어야 할지.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지만 내 마음에는 죽죽 사선으로 내리긋는 빗줄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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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기 사전
미야타 치카 지음, 박혜연 옮김 / 이봄S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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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까짓, 그림!![그림 그리기 사전]

 

 

이것은, 바로 나와 우리집 아이들을 위한 맞춤책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수두룩한 컬러링 북은 우리 딸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기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더욱이 힘들게 그릴 필요도 없이 색칠만 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컨셉은 정말 기가 막히게 울 딸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다.

한 두 시간을 거뜬하게 앉아  책상 앞에 앉아 뭘 하는지 들여다 보면 컬러링 하고 있는 우리 딸,

 

정작 문제는 우리 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리기라면 질색을 하고 "못 그린다"며 징징대기 일쑤였던 우리 아들.

선이 그려져  있는 그림에 색칠하기 조차 삐뚤빼뚤 선 삐져 나오기는 약과요, 좀 하다가 "나는 잘 못 하니까 안 해."라며 엄마의 가슴에 비수를 푹푹 찔러대곤 했었다.

심지어 학교에 들어갔더니 한 달 동안 매일 그림 하나씩을 그리는 수업을 한단다.

동물, 자동차 ...

그려진 그림에 색칠도 못 하는 아이에게 보고 그리기도 아닌 , 그냥 생각해서 그리기라니...

제 딴에는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다 그리고 나면 선생님이 별 하나, 둘, 셋으로 등급을 나누어 표시해주고

잘 그린 아이들의 작품 한 두 점은 소개도 해 주니

그림 그리기를 두려워하는 우리 아들, 매일같이 얼굴이 어두워져서 집에 돌아오곤 했다.

저도 잘 해서 칭찬도 받고 싶고 소개돼서 친구들의 부러움도 사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어떻게, 아들의 그림 그리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줄까...하다가

이 기적 같은 책을 보고는 아이에게 당장 작업을 시작했다.

"이 책 봐봐. 그림이 2000 개 들어 있대. 어떤 그림이든 못 그릴 게 없겠네? 우와~ 이 사람은 삐뚤빼뚤 그렸어도 무슨 그림인지 다 알아보겠고 따라 그릴 수도 있게 설명도 나와 있어."

아이 눈에도 비록 스스로는 어설픈 그림력을 갖고 있지만 이 정도는 따라 할 수 있겠다, 싶었나보다.

딸아이가 보고 있다가 환호성을 지르며 책을 가져가서 펼치자, 아들 녀석이 "내 거야. 엄마가 나한테 준 거거든." 하면서 누나에게서 책을 빼앗고, 웬일인지 의욕을 보였다.

'이만하면 밑작업은 성공!!'

 

오~ 그 이후로 하루에 몇 장씩 스케치북을 버려(?) 가며 그리기를 실시하더니

자신감이 부쩍부쩍 상승했다.

칼로 그은 듯 예리한 선으로 형태를 잡고  반듯한 모양새로 완성해야만 그림을 잘 그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인지

마음 편하게 슥슥 그려대는 모습에 괜히 엄마 마음이 뿌듯해진다.

 

 

동물을 그릴 때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망설이는 아이들이 참고로 하기에 딱 좋다.

 

 

졸라맨 만이 사람 그리기의 정석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이렇게 심플하게 사람을 그리는 방법도 있다.

킬킬거리며 따라하는 동안 얼굴도 재미있고 쉽게 금방 쓱쓱 ~ 따라 그린다.

 

 

이 그림을 보고 몇 장 따라 그리더니

울 아들의 꿈이 금방 "건축가"로 바뀌었다.

신기 방기~~

 

 

소개하고 싶은 그림의 팁들이 엄청 많이 숨어 있는 책입니다.

심지어 바람, 그림, 털의 모양 그리는 것까지...

깨알같은 그림의 팁이 궁금하다면...일독을 권하는 바입니다.

 

 

요것은 우리 딸이 응용해서 그린 것입니다.

고슴도치가 꽤 많죠? 우리 집에 고슴도치를 키우고 있어서 그렇답니다.

아이들이 삐죽 가시만 그려대던 고슴도치에게 드디어 눈과 다리와 정상적인 몸통이 생겼네요.^^

 

음하하~ 건축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그리고 있는 울 아들입니다.

 

 

팔불출 엄마같이 왜 이렇게 자랑질 하고 싶은 걸까요?

 

책 한 권이 가져다준 놀라운 변화를 실감하고

그저 입이 헤 벌어졌습니다.

 

이까짓, 그림 그리기.

한 번 도전해 보세요.

어렵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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