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 회한의 궁중생활 칠십 년 영조 시대의 조선 12
정병설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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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 회한의 궁중생활 칠십 년]

 

 

더위가 무던히도 기승을 부리는 밤에는 왠지 으스스한 것이 보고 싶어진다.

밤잠을 설칠 바에야 눈이 침침해져도 TV에 정신을 집중해 보자, 싶어서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과 함께 볼 무언가를 찾다가 드라마도 아닌 사극 스페셜 [붉은 달]에 리모컨이 멎었다.

초반 장면인 것 같은데, 궁궐 밖으로 시체가 버려지고 궁인들을 관리하는 듯한 상궁과 지체 높아 보이는 여성 몇이 두런거리고 서 있었다. 웬 기괴한 장면이지? 싶어 흥미가 생겼다.

궁녀들이 선희궁 마마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사도세자 때의 이야긴가 싶었다.

아이들이 함께 봐도 좋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개인적인 궁금증이 더 커서 그냥 지켜보게 되었다.

선희궁은 사도세자의 어머니를 일컫는 말이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읽었는데, 무척 고전적인 어투와 궁중의 이름들에 붙은 호칭들 때문에 누가 누군지 헷갈려서 읽는 것을 포기할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세손, 옹주, 대비, 경모궁, 선희궁...어휴.

 

그간 영조-사도세자-정조 대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하지만 이 드라마처럼 사도세자를 대놓고 뚱뚱하게 묘사한 적이 있었던가. (수원 화성행궁에 가면 사도세자를 가두었던 뒤주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뒤주가 아니라 가로와 높이가 각각 161cm 정도 되는 대형 뒤주에 갇힌 것이다. 작은 가정용 뒤주보다 열 배는 큰 뒤주에서 사도세자는 죽었다.-73) 드라마 <미생>에서 뽀글머리 대리로 나왔던 김대명이 사도세자 역을 맡아 유약하지만 포악하기도 하면서 귀신에 씌어 섬뜩하기도 한 모습을 잘 표현했다. 이 극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에서 묘사한 대로 의대증에 시달리고, 주위 시종들, 거기다 자신의 아이를 낳은 애첩인 빙애까지 죽이고 만 정신병력 소유자인 사도세자이다.

그런데 사도세자가 이렇게 정신병증을 앓게 된 원인을 파고 든 부분이 흥미롭다.

그에게 씐 귀신이 어린 시절 자랐던 저승전의 전 주인, 장희빈이라고 설정한 부분이다.

왕위에 오른 희빈의 아들 경종을 영조가 독살하고 그 자리를 차지했기에, 그 자손인 사도세자에게 그 한을 풀려고 한다는 장희빈의 존재가 오싹하게 그려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또 다른 여인, 사도세자의 어미인 선희궁은 결국, 아들을 버리고 손자를 살리는 길을 택한다. 결국 극의 주요 등장인물은 사도세자-장희빈-선희궁인 셈이다.

옆에서 이 일을 묵묵히 지켜보는 이는, 다름 아닌 사도세자의 비, 혜경궁 홍씨이다.

 

극에서는 미모로, 대찬 이미지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기는 했지만, 별다른 비중 없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던 혜경궁 홍씨.

그녀가 남긴 [한중록]은 후대에 와서 읽히면서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되었다.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 [한중록]의 작자.

혜경궁 홍씨는 좋은 어머니 아니면 냉혹한 정치꾼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 인물이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평가받는 것도 드문 일일 터이다. 그녀의 궁중 생활 70 년을 실제 경험 그대로 기록한 책으로 [한중록]을 본다면 사도세자는 정신병자였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고, 그 와중에서 정조를 잘 키워낸 혜경궁은 훌륭한 어머니가 된다. [한중록]을 믿지 않는 이들은 [한중록]을 문학작품으로 읽지 않고 정치적 시각으로 읽는다. 사도세자는 노론과 소론의 당쟁 때문에 희생된 희생양이며, 혜경궁 홍씨는 친정을 따라 노론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남편을 버린 냉혹한 정치가가 되는 것이다.

 

역사적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선왕비실록]의 저자 신명호는 혜경궁 홍씨라는 독립된 인격체가 출생, 성장, 혼인, 입궁, 출산하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삶의 공간과 삶의 조건들을 객관적, 심리적으로 포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혜경궁 홍씨, 회한의 궁중생활 칠십 년]에서는 혜경궁 홍씨에 관한 한, 어떤 책보다도 더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한 책이다.

용꿈을 꾸고 얻은 딸이며 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작은 어머니에게서 한글을 배웠다는 사실 등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입궐 후의 생활, 그리고 남편 사도세자와의 관계, 정조 키우기, 친정의 몰락, 마지막으로 말년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혜경궁 홍씨의 생애에 집중하고 있다.

 

결국 혜경궁은 아들 정조가 만든 논리를 비판하기 위해 [한중록]을 썼다. 친정이 몰락하지만 않았어도, 임금의 의견을 이렇게 철저히 비판하지 않았을 것이다. 혜경궁은 자기 친정에 죄를 묻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아들의 주장을 힘주어 비판했다.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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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거짓말 -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
정문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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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 집중 조명 [한국문학의 거짓말]

 

 

 

이 책은 평론가 정문순의 평론집이다. 2011년 이미 발표한 책인데, 요즘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신경숙 표절논란이 불거지자,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 같다.

정문순은  최근 소설가 이응준이 표절 의혹을 제기하기 이전에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서 신경숙의 '전설'이 '우국'을 표절했다고 가장 처음 지적한 인물이다.

 

신춘문예나 문학잡지 공모를 통해서 등단하지 않았고 문학평론가라는 직함은 우연한 기회에 과분하게 주어졌다고 말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방외인의 시선에서 한국문단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았나 한다.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폐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칼이 될 만한 독설도 작렬이다.

 

2015년 현재에도 여전히 2000년대에 제기된 문제들이 버젓이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응준은 문단에 고여 있는 썩은 물을 지적하고 자정하는 노력을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표절문제를 제기했지만 출판사와 일부 출판사에 묶여 있는 평론가들은 입을 닫고 그것을 가리기에만 급급하다.

급기야 신경숙은 검찰고발 되었고 이응준은 검찰조사가 철회되어야 하며 문단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학을 향유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출판사와 평론가와 문학상 수상의 고리를 한눈에 꿰뚫어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몇 차례 되풀이되는 표절 의혹이라든지 문단의 유착관계 등, 그 거대한 몸통이 꼬리 부분만이라도 드러난 것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응준이 신경숙을 고발했다, 그래서 이응준, 신경숙이 궁금해졌다.

정문순은 신경숙, 이응준의 작품을 평론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정문순이 그들의 작품을 각각 어떻게 평론하였을까 궁금해져서 읽기 시작했다.

 

정문순은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 등이 작가 이력을 쌓기 시작한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10년 간은 세상의 변화가 컸던 시기라고 말한다. [태백산맥]으로 대표되던 리얼리즘적 민중 문학이 정점에 치달은 이후 썰물빠지듯 침잠해 가던 시기에 새로운 돌파구로 활용되었던 여성 작가들.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위로와 안식을 다시 얻고 싶어하는 우리 시대의 내밀한 요구"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김사인의 발언은 여성의 존재를 필요로 했던 당대 문학계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있다. -117

자기만족적 글쓰기의 대표주자격인 신경숙을 필두로, 낯선 통속적인 풍경을 끌고 와서 신선함을 불어넣기는 했으나 중산층의 관념적 의식에 기울어진 태도가 여성성에 대한 인식에서 구멍을 드러내고 있는 은희경, 연민으로 자기 세대의 특권을 재구성한 공지영 등을 싸잡아 감정의 낭비와 허위의식으로 무장한 1990년대 여성작가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응준 또한 [어둠에 갇혀 너를 생각하기]를 텍스트로 하여 비평한 바, 소설의 위기가 소설가로서 서사의 밀도를 구축하는 재능의 결핍에 있음을 자신의 텍스트로 보여 주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용감하게도 많은 이들이 찬사를 이어붙여 마지않는 김훈의 [칼의 노래], 김영하의 [검은 꽃], 황석영의 [심청]등에도 과감한 비판을 쏟아낸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놀라게 된 것은, 신경숙의 표절을 논하기 이전에 또 한 번의 표절 논란을 구체화한 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조경란의 [혀] 표절 논쟁에 관한 것이다.

조경란이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여 주이란의 응모작을 본 후 그것을 표절하여 2007년에 동명의 장편소설로 발표했다는 내용이다.

 

남이 해놓은 '음식' 중 일부를 덜어 제 '요리 접시'의 빈 부분을 채워 넣어 창작의 수고로움을 더는 소설가의 행동은 제 손으로 문학적 성취를 포기한 뒤에야 가능한 일이다. -265

 

어쩌면 문학적 위세를 등에 업은 작가의 행동이 그렇게 비겁할 수 있을까.

조경란은 저작권 분쟁조정위원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동인문학상 시상식에는 나타났다고 한다.

1990년대 초에 이인화에게 소설 문장이 절취되었던 공지영,

1990년대 후반에 신경숙에게 표절당한 혐의가 불거졌던 최윤, 윤대녕 등의 기성작가.

 

글로 유대관계를 엮어 온 이들이 인간적인 교류를 쌓아온 것이 문단, 출판사, 언론의 구조 안에서였다는 것이 문제일까. 피해자임에도 피해자임을 주장하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아온 세월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신경숙 같은 거대작가의 경우 열띤 논쟁에 불을 지펴 놓고 또다시 자신은 쏙 빠지는 행태를 보인다. 누군가의 삼엄한 경계와 비호를 받으며...

 

경계짓기가 애매모호한 표절의 세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양심'에만 맡겨놓는다고 표절문제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나눠먹기식 문학상의 폐해도 없애야 하고 출판사의 전략으로 키워지는 작가도 없어야 하며 특히나 글쓰는 이로서의 자존심을 팽개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평론집으로서의 글들도 흥미로웠지만, 시절이 시절이니 만큼, '표절' 시비에 관한 내용을 특히 주의깊게 읽었다.

문제를 제기하면 당연히 그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보는 가운데 열린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출판사, 문단, 언론의 삼박자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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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향로 속으로 사라진 고양이 세바퀴 저학년 책읽기 13
이하은 지음, 김태현 그림 / 파란자전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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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로 간 고양이의 모험 [금동향로 속으로 사라진 고양이]

 

 

얼마전, 우리나라의 백제문화유산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껏 등재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백제는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고대왕국이다.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어 660년에 멸망할 때까지 700년 동안 존속했던 고대 왕국으로, 한반도에서 형성된 초기 삼국 중 하나였다.

 

백제의 문화 유산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백제 금동향로'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백제 금동향로에 새겨진 기기묘묘한 장식들을 차근차근 뜯어보면 뚜껑 위에 앉은 고귀한 자태의 봉황 아래로 악기 연주하는 악사와 코끼리를 비롯한 여러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훌륭한 왕이 되어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던 왕이, 자기가 꿈꾸던 세상을 향로에 새겨넣고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이상향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금동향로 속으로 사라진 고양이]는 초등 저학년을 위한 역사동화이다.

백제의 금동향로를 매개로 하여 백제 시대의 문화와 역사에 입문하기에 딱 좋은 책이다.

 

주인공은 이마에 왕자가 새겨져 있지만 겁 많고 소심한 고양이 재롱이다.

현실에서는 검은장화, 삼색이 같은 고양이 친구들에게 놀림 받고 울상을 하기 일쑤이지만

금동향로 속으로 빨려들어간 재롱이는 더 이상 약한 고양이가 아니다.

전설 속 호랑이 삼촌들을 만나 백제 성왕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하고, 청룡을 대신해 백호와 함께 무덤을 지키기도 한다.

효성이 지극한 성왕의 아들 위덕왕이 간절히 꿈꾸는 세상이 표현된 금동향로 속에 펼쳐진 연꽃이 재롱이가 현실로 돌아가는 문이 되어 줄 것이라는데..

 

 

용기 없이 소심하기만 했던 재롱이는 모험을 끝내고 돌아와서 확 바뀐 모습의 고양이가 되었다.

재롱이를 괴롭히던 친구들은 재롱이의 모험담에 박수를 쳐준다.

금동향로를 만들었던 태자(위덕왕)가 꿈꾸는 세상이 금동향로에 나타나 있었다면,

재롱이는 그 모습을 현실 속에서 조금이나마 실천한 것이다.

태자가 꿈꾸던 아름다운 세상이 어린이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서

앞으로 발전할 미래에 그 모습이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역사에서는 역시 배울 것이 많다.

어린 아이일수록 맑은 마음으로 이야기 속 세상이 그려내는 '이상향'을

고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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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강 베랑길 - 자전거 타고 조선에 가다 뿌리깊은동화 1
이하은 지음, 김옥재 그림 / 북뱅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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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조선으로 시간 여행 [황산강 베랑길]

 

 

그림을 보고 이상하다 싶은 점, 발견하셨는지?

 

저 멀리 말은 탄 선비도 보이고 댕기를 드리운 아이도 있는데, 난데없이 자전거라니...

 

[황산강 베랑길]은 현대의 태양이라는 아이가 조선 시대로 슝~ 건너가서 시간 여행을 하는 이야기다.

 

태양이는 현대의 여느 아이들처럼 엄마와 여자친구 이야기로 투닥거리기도 하고 친구들과 카톡을 즐기기도 하는 십대 소년이다. 수학 문제집을 몇 종류나 풀어야 하고, 만화 영어 문법책, '이야기 역사'책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엄마와 기싸움을 벌이기도 하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한 동영상을 들으면서 위기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은 것을 교훈으로 삼길 원하는 엄마의 마음과 달리 태양이는 속으로 '난 잡스 아저씨하고 다르잖아요. 위기가 없는 걸. 게다가 부모도 있고, 성격도 좋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고, 몸도 건강하고...'라며 엄마의 말을 잔소리로 알아듣는다.

태양이 같은 아이가 바로 건전한 정신을 가진 아이가 아닐까?

엄마가 하라는 대로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제대로 알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키려 노력하는 십대 소년.

학원 다니느라 파김치가 되곤 하는 아이들과 달리 태양이는 집에서 엄마와 함께 공부하지만 엄마와 하는 공부는 더 밀도 높고 시간도 길다.

자꾸만 떨어지는 수학 성적을 고민하지만 마음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다.

태양이가 원하는 것은 흥미진진한 모험?

 

 

그 모험의 기회는 생각지도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태양이에게 주어졌다.

엄마가 잠시 외출한 사이, 태양이는 엄마가 남겨둔 숙제는 밀어두고 배낭에 간식을 쓸어넣고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황산강 베랑길을 달리다 보니 가야진사의 용신제를 보러 간다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잘만 하면 만날 것도 같은데...

낙동강은 옛날에 황산강이라 불렸고 황산강 베랑길은 한양까지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 울음 소리가 들리며 머리끝이 쭈뼛하는 순간, 산비탈에서 구르던 아이가 자전거를 향해 떨어졌다.

검정색 제비부리 댕기에 풀 먹인 무명 바지저고리, 등에는 괴나리봇짐까지 진 아이는 태양을 보며 몰골이 이상한 아이라 말하고 태양이 탄 자전거를 기괴한 수레라 말한다.

아뿔싸...태양은 찰나에 어그러진 시간의 축을 따라 조선 시대로 떨어진 것이다.

다시 현대로 돌아올 방법을 알아낼 때까지 태양은 조선 시대 소년, 정학구의 길동무가 되기로 한다.

학구는 괴나리봇짐을 지고 황산강 베랑길을 따라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라 했다.

졸지에 조선 시대에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이상한 아이가 되어 버린 태양은 학구의 머슴을 자처하며 조선 시대를 체험하게 된다.

 

고을마다 호랑이가 불쑥불쑥 나타나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지만, 정작 호랑이보다 더욱 가혹한 것은 '정치'라 하였다.

정조가 돌아가신 뒤 가혹한 세도정치 아래 놓인 조선의 분위기가 태양의 눈에도 읽힌다.

과거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양반의 신분이어야만 하고, 그 양반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한 자리를 잡으려 한다. 과거 시험에서조차 세력 있는 집안의 자제들은 '초집'이라 하여 족집게 과거시험 문제를 공부한다.

한양을 향해 떠나는 태양과 학구는 도중에 도적 패거리를 만나 함께 생활하기도 하는데, 오죽 민심히 흉흉했으면 도적이 생겨났을까...

도적의 아들 홍두를 만나면서 그 당시의 사회가 안정되지 않고 불안하기만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학구의 기지로 도적떼에게서 벗어난 이들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현대 문명의 이기인 '볼펜'을 가지고 흥정을 하다 '이공'이란 선비를 만난다.

그리하여 무사히 학구는 과거를 치르게 되고 태양의 모험도 이제 종착역을 향해 가는 듯하다. 과연 태양은 쉽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태양이 자전거를 타고 떠난 조선 시간 여행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의미 있는 인물들이다.

마지막에 태양이 만난 선비 '이공'과 도적의 아들 홍두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찌르르~ 전율이 일었다.

그렇지, 이들이 바로 그 시기의 시대와 사회상을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렷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역사 공부를 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사이에 조선의 빛나는 시절이 내리막길을 향해 가고 있는 그 순간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습득하게 될 것이다.

김홍도의 민화 '자리짜기' 그림에서 탄생하게 된 [황산강 베랑길] 이야기!

태양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조선 시대로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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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떠나는 이유
책이 좀 많습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조지프 앤턴
그래도 괜찮은 하루
태도에 관하여
오늘 내가 사는게 재미있는 이유
나는 왜 쓰는가
나의 사적인 도시
다정한 편견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15기 신간평가단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책들을 만났다.

 

 

- 15기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조지프 앤턴]

 

살만 루슈디 평전이다.

남의 일대기, 즉 평전을 잘 안 읽는데 문학가의, 그것도 신념 있는 문학의 대가인 살만 루슈디의 평전이라

읽었다.

처음엔 두툼한 책에 주춤하며,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마~ 하며 억지로 조금씩 읽어나갔는데

초반의 이야기부터 소설 못지 않은 흡입력을 자랑하며

나를 이끌고 들어갔다.

언어의 마술사가 끌어들인 그 자신의 인생은 어떤 흥미진진한 소설 보다도 더욱 자극적이고

이채로웠다.

이민자로서의 삶이었지만 나름의 정체성을 놓지 않고 독특한 분위기를 구축한 작가.

이방인이라 느꼈지만 삶의 주체를 똑바로 세우고, 문학에 있어서만큼은 이방인이 되기를 거부한 작가.

꼿꼿한 그의 정신이 책의 곳곳, 그의 인생에서 느껴져서 때로는 눈을 반짝이며, 때로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 15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1. [조지프 앤턴]

2. [나의 사적인 도시]

미술전공 작가여서 그런지 색다른 시선으로 뉴욕을 바라보는 태도가 좋았다.

깊이 있게 뉴욕을 체험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3. [그래도 괜찮은 하루]

귀여운 토끼 베니 덕분에 유쾌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지만 사실, 구작가의 삶은 힘겨운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밝게 웃으려는 구작가에게서 힘을 얻는다.

4. [책이 좀 많습니다]

책벌레인 다른 많은 이들의 독특한 경험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장서가의 여러 형태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책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가 다르기도 하고 이야기도 달라서 재미있게 읽었다.

5.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나와 같은 책을 읽었더라도 다르게   혹은 좀 더 깊이 있게 읽은 이동진, 김중혁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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