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조선으로 시간 여행 [황산강 베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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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고 이상하다 싶은 점, 발견하셨는지?
저 멀리 말은 탄 선비도 보이고 댕기를 드리운 아이도 있는데, 난데없이
자전거라니...
[황산강 베랑길]은 현대의 태양이라는 아이가 조선 시대로 슝~ 건너가서 시간 여행을 하는
이야기다.
태양이는 현대의 여느 아이들처럼 엄마와 여자친구 이야기로 투닥거리기도 하고 친구들과 카톡을
즐기기도 하는 십대 소년이다. 수학 문제집을 몇 종류나 풀어야 하고, 만화 영어 문법책, '이야기 역사'책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엄마와
기싸움을 벌이기도 하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한 동영상을 들으면서 위기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은 것을 교훈으로 삼길 원하는 엄마의 마음과 달리 태양이는 속으로 '난 잡스 아저씨하고 다르잖아요. 위기가 없는 걸. 게다가 부모도 있고,
성격도 좋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고, 몸도 건강하고...'라며 엄마의 말을 잔소리로 알아듣는다.
태양이 같은 아이가 바로 건전한 정신을 가진 아이가 아닐까?
엄마가 하라는 대로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제대로 알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키려 노력하는 십대 소년.
학원 다니느라 파김치가 되곤 하는 아이들과 달리 태양이는 집에서 엄마와 함께 공부하지만
엄마와 하는 공부는 더 밀도 높고 시간도 길다.
자꾸만 떨어지는 수학 성적을 고민하지만 마음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다.
태양이가 원하는 것은 흥미진진한 모험?
그 모험의 기회는 생각지도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태양이에게 주어졌다.
엄마가 잠시 외출한 사이, 태양이는 엄마가 남겨둔 숙제는 밀어두고 배낭에 간식을 쓸어넣고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황산강 베랑길을 달리다 보니 가야진사의 용신제를 보러 간다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잘만 하면
만날 것도 같은데...
낙동강은 옛날에 황산강이라 불렸고 황산강 베랑길은 한양까지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 울음 소리가 들리며 머리끝이 쭈뼛하는 순간, 산비탈에서 구르던
아이가 자전거를 향해 떨어졌다.
검정색 제비부리 댕기에 풀 먹인 무명 바지저고리, 등에는 괴나리봇짐까지 진 아이는 태양을
보며 몰골이 이상한 아이라 말하고 태양이 탄 자전거를 기괴한 수레라 말한다.
아뿔싸...태양은 찰나에 어그러진 시간의 축을 따라 조선 시대로 떨어진
것이다.
다시 현대로 돌아올 방법을 알아낼 때까지 태양은 조선 시대 소년, 정학구의 길동무가 되기로
한다.
학구는 괴나리봇짐을 지고 황산강 베랑길을 따라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라 했다.
졸지에 조선 시대에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이상한 아이가 되어 버린 태양은 학구의 머슴을
자처하며 조선 시대를 체험하게 된다.
고을마다 호랑이가 불쑥불쑥 나타나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지만, 정작
호랑이보다 더욱 가혹한 것은 '정치'라 하였다.
정조가 돌아가신 뒤 가혹한 세도정치 아래 놓인 조선의 분위기가 태양의 눈에도 읽힌다.
과거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양반의 신분이어야만 하고, 그 양반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한 자리를 잡으려 한다. 과거 시험에서조차 세력 있는 집안의 자제들은 '초집'이라 하여 족집게 과거시험 문제를 공부한다.
한양을 향해 떠나는 태양과 학구는 도중에 도적 패거리를 만나 함께 생활하기도 하는데, 오죽
민심히 흉흉했으면 도적이 생겨났을까...
도적의 아들 홍두를 만나면서 그 당시의 사회가 안정되지 않고 불안하기만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학구의 기지로 도적떼에게서 벗어난 이들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현대 문명의 이기인 '볼펜'을
가지고 흥정을 하다 '이공'이란 선비를 만난다.
그리하여 무사히 학구는 과거를 치르게 되고 태양의 모험도 이제 종착역을 향해 가는 듯하다.
과연 태양은 쉽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태양이 자전거를 타고 떠난 조선 시간 여행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의미 있는 인물들이다.
마지막에 태양이 만난 선비 '이공'과 도적의 아들
홍두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찌르르~ 전율이 일었다.
그렇지, 이들이 바로 그 시기의 시대와 사회상을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렷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역사 공부를 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사이에 조선의 빛나는 시절이
내리막길을 향해 가고 있는 그 순간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습득하게 될 것이다.
김홍도의 민화 '자리짜기' 그림에서 탄생하게 된 [황산강 베랑길] 이야기!
태양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조선 시대로 떠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