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 회한의 궁중생활 칠십 년]
더위가 무던히도 기승을 부리는 밤에는 왠지 으스스한 것이 보고 싶어진다.
밤잠을 설칠 바에야 눈이 침침해져도 TV에 정신을 집중해 보자, 싶어서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과 함께 볼 무언가를 찾다가 드라마도 아닌
사극 스페셜 [붉은 달]에 리모컨이 멎었다.
초반 장면인 것 같은데, 궁궐 밖으로 시체가 버려지고 궁인들을 관리하는 듯한 상궁과 지체 높아 보이는 여성 몇이 두런거리고 서 있었다. 웬
기괴한 장면이지? 싶어 흥미가 생겼다.
궁녀들이 선희궁 마마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사도세자 때의 이야긴가 싶었다.
아이들이 함께 봐도 좋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개인적인 궁금증이 더 커서 그냥 지켜보게 되었다.
선희궁은 사도세자의 어머니를 일컫는 말이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읽었는데, 무척 고전적인 어투와 궁중의 이름들에 붙은 호칭들 때문에 누가 누군지 헷갈려서
읽는 것을 포기할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세손, 옹주, 대비, 경모궁, 선희궁...어휴.
그간 영조-사도세자-정조 대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하지만 이 드라마처럼 사도세자를 대놓고 뚱뚱하게 묘사한 적이 있었던가. (수원 화성행궁에 가면 사도세자를 가두었던 뒤주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뒤주가 아니라 가로와 높이가 각각 161cm 정도 되는 대형 뒤주에
갇힌 것이다. 작은 가정용 뒤주보다 열 배는 큰 뒤주에서 사도세자는 죽었다.-73) 드라마 <미생>에서 뽀글머리 대리로 나왔던
김대명이 사도세자 역을 맡아 유약하지만 포악하기도 하면서 귀신에 씌어 섬뜩하기도 한 모습을 잘 표현했다. 이 극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에서 묘사한 대로 의대증에 시달리고, 주위 시종들, 거기다 자신의 아이를 낳은 애첩인 빙애까지 죽이고 만 정신병력 소유자인
사도세자이다.
그런데 사도세자가 이렇게 정신병증을 앓게 된 원인을 파고 든 부분이 흥미롭다.
그에게 씐 귀신이 어린 시절 자랐던 저승전의 전 주인, 장희빈이라고 설정한 부분이다.
왕위에 오른 희빈의 아들 경종을 영조가 독살하고 그 자리를 차지했기에, 그 자손인 사도세자에게 그 한을 풀려고 한다는 장희빈의 존재가
오싹하게 그려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또 다른 여인, 사도세자의 어미인 선희궁은 결국, 아들을 버리고 손자를 살리는 길을 택한다. 결국 극의 주요 등장인물은
사도세자-장희빈-선희궁인 셈이다.
옆에서 이 일을 묵묵히 지켜보는 이는, 다름 아닌 사도세자의 비, 혜경궁 홍씨이다.
극에서는 미모로, 대찬 이미지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기는 했지만, 별다른 비중 없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던 혜경궁 홍씨.
그녀가 남긴 [한중록]은 후대에 와서 읽히면서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되었다.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 [한중록]의 작자.
혜경궁 홍씨는 좋은 어머니 아니면 냉혹한 정치꾼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 인물이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평가받는 것도 드문 일일 터이다.
그녀의 궁중 생활 70 년을 실제 경험 그대로 기록한 책으로 [한중록]을 본다면 사도세자는 정신병자였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고, 그 와중에서
정조를 잘 키워낸 혜경궁은 훌륭한 어머니가 된다. [한중록]을 믿지 않는 이들은 [한중록]을 문학작품으로 읽지 않고 정치적 시각으로 읽는다.
사도세자는 노론과 소론의 당쟁 때문에 희생된 희생양이며, 혜경궁 홍씨는 친정을 따라 노론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남편을 버린 냉혹한 정치가가 되는
것이다.
역사적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선왕비실록]의 저자 신명호는 혜경궁 홍씨라는 독립된 인격체가 출생, 성장, 혼인, 입궁, 출산하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삶의 공간과 삶의
조건들을 객관적, 심리적으로 포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혜경궁 홍씨, 회한의 궁중생활 칠십 년]에서는 혜경궁 홍씨에 관한 한, 어떤 책보다도 더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한 책이다.
용꿈을 꾸고 얻은 딸이며 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작은 어머니에게서 한글을 배웠다는 사실 등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입궐 후의
생활, 그리고 남편 사도세자와의 관계, 정조 키우기, 친정의 몰락, 마지막으로 말년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혜경궁 홍씨의 생애에 집중하고
있다.
결국 혜경궁은 아들 정조가 만든 논리를 비판하기 위해 [한중록]을 썼다. 친정이 몰락하지만 않았어도, 임금의 의견을 이렇게 철저히 비판하지
않았을 것이다. 혜경궁은 자기 친정에 죄를 묻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아들의 주장을 힘주어 비판했다.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