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거짓말 -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
정문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 집중 조명 [한국문학의 거짓말]

 

 

 

이 책은 평론가 정문순의 평론집이다. 2011년 이미 발표한 책인데, 요즘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신경숙 표절논란이 불거지자,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 같다.

정문순은  최근 소설가 이응준이 표절 의혹을 제기하기 이전에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서 신경숙의 '전설'이 '우국'을 표절했다고 가장 처음 지적한 인물이다.

 

신춘문예나 문학잡지 공모를 통해서 등단하지 않았고 문학평론가라는 직함은 우연한 기회에 과분하게 주어졌다고 말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방외인의 시선에서 한국문단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았나 한다.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폐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칼이 될 만한 독설도 작렬이다.

 

2015년 현재에도 여전히 2000년대에 제기된 문제들이 버젓이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응준은 문단에 고여 있는 썩은 물을 지적하고 자정하는 노력을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표절문제를 제기했지만 출판사와 일부 출판사에 묶여 있는 평론가들은 입을 닫고 그것을 가리기에만 급급하다.

급기야 신경숙은 검찰고발 되었고 이응준은 검찰조사가 철회되어야 하며 문단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학을 향유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출판사와 평론가와 문학상 수상의 고리를 한눈에 꿰뚫어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몇 차례 되풀이되는 표절 의혹이라든지 문단의 유착관계 등, 그 거대한 몸통이 꼬리 부분만이라도 드러난 것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응준이 신경숙을 고발했다, 그래서 이응준, 신경숙이 궁금해졌다.

정문순은 신경숙, 이응준의 작품을 평론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정문순이 그들의 작품을 각각 어떻게 평론하였을까 궁금해져서 읽기 시작했다.

 

정문순은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 등이 작가 이력을 쌓기 시작한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10년 간은 세상의 변화가 컸던 시기라고 말한다. [태백산맥]으로 대표되던 리얼리즘적 민중 문학이 정점에 치달은 이후 썰물빠지듯 침잠해 가던 시기에 새로운 돌파구로 활용되었던 여성 작가들.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위로와 안식을 다시 얻고 싶어하는 우리 시대의 내밀한 요구"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김사인의 발언은 여성의 존재를 필요로 했던 당대 문학계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있다. -117

자기만족적 글쓰기의 대표주자격인 신경숙을 필두로, 낯선 통속적인 풍경을 끌고 와서 신선함을 불어넣기는 했으나 중산층의 관념적 의식에 기울어진 태도가 여성성에 대한 인식에서 구멍을 드러내고 있는 은희경, 연민으로 자기 세대의 특권을 재구성한 공지영 등을 싸잡아 감정의 낭비와 허위의식으로 무장한 1990년대 여성작가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응준 또한 [어둠에 갇혀 너를 생각하기]를 텍스트로 하여 비평한 바, 소설의 위기가 소설가로서 서사의 밀도를 구축하는 재능의 결핍에 있음을 자신의 텍스트로 보여 주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용감하게도 많은 이들이 찬사를 이어붙여 마지않는 김훈의 [칼의 노래], 김영하의 [검은 꽃], 황석영의 [심청]등에도 과감한 비판을 쏟아낸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놀라게 된 것은, 신경숙의 표절을 논하기 이전에 또 한 번의 표절 논란을 구체화한 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조경란의 [혀] 표절 논쟁에 관한 것이다.

조경란이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여 주이란의 응모작을 본 후 그것을 표절하여 2007년에 동명의 장편소설로 발표했다는 내용이다.

 

남이 해놓은 '음식' 중 일부를 덜어 제 '요리 접시'의 빈 부분을 채워 넣어 창작의 수고로움을 더는 소설가의 행동은 제 손으로 문학적 성취를 포기한 뒤에야 가능한 일이다. -265

 

어쩌면 문학적 위세를 등에 업은 작가의 행동이 그렇게 비겁할 수 있을까.

조경란은 저작권 분쟁조정위원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동인문학상 시상식에는 나타났다고 한다.

1990년대 초에 이인화에게 소설 문장이 절취되었던 공지영,

1990년대 후반에 신경숙에게 표절당한 혐의가 불거졌던 최윤, 윤대녕 등의 기성작가.

 

글로 유대관계를 엮어 온 이들이 인간적인 교류를 쌓아온 것이 문단, 출판사, 언론의 구조 안에서였다는 것이 문제일까. 피해자임에도 피해자임을 주장하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아온 세월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신경숙 같은 거대작가의 경우 열띤 논쟁에 불을 지펴 놓고 또다시 자신은 쏙 빠지는 행태를 보인다. 누군가의 삼엄한 경계와 비호를 받으며...

 

경계짓기가 애매모호한 표절의 세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양심'에만 맡겨놓는다고 표절문제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나눠먹기식 문학상의 폐해도 없애야 하고 출판사의 전략으로 키워지는 작가도 없어야 하며 특히나 글쓰는 이로서의 자존심을 팽개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평론집으로서의 글들도 흥미로웠지만, 시절이 시절이니 만큼, '표절' 시비에 관한 내용을 특히 주의깊게 읽었다.

문제를 제기하면 당연히 그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보는 가운데 열린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출판사, 문단, 언론의 삼박자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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