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마다 다른 진실, 왠지 오싹 [Q & A]

 

 

아사히가오카 대형 마트 M에서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형참사가 벌어져 많은 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람들은 무엇엔가로부터 달아나고 있었고 크게 위협적이고 눈에 띄는 원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루루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로 몰려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압사당한 것으로 보인다.

뭐랄까...기묘하기 그지없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95년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출근 시간에 도쿄 지하철 승객에게 사린가스 를 뿌린 옴진리교 테러사건과 표면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 )

온다 리쿠는 1995년의 사건 이후로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찜찜한 응어리를 교묘하게 건드리며 다양한 각도에서 원인을 분석해 들어간다.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웬만한 일에는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으나 이번 일은 어쩐 일인지 그 '재구성'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

 

기억은 거짓말을 하고 사람마다 가진 지식과 선입견으로 인해 같은 장면을 해석하는 데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사실이라 불리는 것도 실은 거짓말을 해."

"사실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란 걸 인식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람 눈의 수만큼 사실이 존재하는 거야."-151

 

제목 [Q & A]가 암시하는 바대로, 백화점과 비슷한 크기의 교외형 쇼핑센터 M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을 직, 간접적으로 접했던 사람들과의 인터뷰가 이루어진다.

사정청취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질문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대답을 하며 하나하나씩의 챕터가 채워져 나간다.

분위기에 휩쓸려 이상한 냄새가 난 것 같았다, 연기를 본 것 같았다, 라고 말하던 사람들은 일대일 면담에 들어가자 자신만의 기억 속 사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단독주택을 지나치던 한 남자는 개들이 전부 대문까지 나와 있었던 기이한 풍경에 대해 말한다.

훈련이 잘됐는지 짖진 않는데, 다들 개집에서 나와 대문 옆에 꼼짝 않고 서 있어서 섬뜩했다고...

이렇게 초반부터 오싹한 분위기를 잡아놓고, 다음 몇 사람의 인터뷰가 이어지는데도 이렇다할 원인은 튀어나오질 않는다.

기이한 느낌, 소름. 무표정한 사람들, 색채가 사라진 느낌, 전화는 먹통..

그러나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사람들이 왜 죽어나갔는지 원인을 아무 데서도 찾지 못했다는 데서 처음 느꼈던 불안감은 점차 고조되기만 한다.

꿈인 듯, 현실인 듯 경계가 모호하기만 한 사람들의 증언은 자신만의 죄책감을 실어나르는 경우도 있었고, 불안감이 막혀 있다 분출되는 형태를 띄기도 했으며 수상한 검은 옷 입은 사람이 범인일지도 모른다고 지목한 경우에는 성추행을 한 운동부 코치의 이미지를 덧입히기도 했다. 어떤 이는 텅 빈 얼굴로 출구를 향해 달음질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증오의 전파, 공포의 전염을 읽어내며 모두가 공범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들과의 인터뷰에서 각각의 고뇌와 사회에 대한 불만, 사람들이 패닉 상태에 빠지는 다양한 원인 등이 나타나 신선한 재미가 있었지만

사건이 발생한 지 꽤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인 듯한 후일담은 더욱 서늘한 반전을 선사한다.

많은 이들이 다친 가운데 피묻은 인형 하나를 질질 끌듯 하며 걸어나온 일명, '기적의 소녀' 이야기는 사린테러 사태를 교묘하게 비틀어놓은 것 같다.

피해자 모임과는 별도로 사건 후의 플래시백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기적의 소녀'를 찾아와 위안을 삼고자 하는데, 소녀의 엄마라는 사람은 그들의 마음을 이용해 투자사기를 벌이고 있었다.

그 돈을 모아 종교법인을 만들고 절을 세울 예정인데, 그 절의 본존은 '성스러운 피가 묻은 인형'이 될 것이라나...

종교와 테러 아닌 테러 사건의 기이한 만남.

이제 이야기는 종반을 향해 치달아간다.

도무지 원인이 밝혀질 것 같지 않던 이야기는 사건의 사정청취를 담당했던 사람의 후일담에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일명 음모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드문드문 비워져 있던 퍼즐의 부분을 채워넣다가 마지막 한 조각을 "딱" 소리나게 끼웠을 때 전신에 퍼지는 만족감.

온다 리쿠의 [Q & A]에서는 바로 그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부조리하고 이유가 없는 대량 사망 사건은 실제로 겪고 싶지 않은 일이기에 온다 리쿠는 중간중간에 꿈이라는 완충 역할을 하는 소재를 집어넣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다른 눈으로 사건을 보기에, 많은 이들의 인터뷰 중에서 어떤 것을 사실로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몫이 될 수도 있다. 끝에 가서 사건의 진상이라며 밝힌 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앞으로 돌아와 여러 개의 증언 중 하나를 진실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온다 리쿠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꿈과 현실이 뒤얽힌 무분별한 세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실제정신건강에 해로울지도 모른다. ^^

어쨌거나 하나의 커다란 사건 앞에 사람들의 세세한 심리 상태를 이렇게까지 다양하게 잡아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손님, 어깨 좀 털어주시겠습니까?

먼지를 털듯 삭삭.

죽은 사람을 데려오는 승객이 있지 뭡니까!"-252

 

온다 리쿠의 어깨에는 사람의 마음을 대신 읽어내 주는 귀신이 붙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니 더욱 오싹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밤도 있어 [애프터 다크]

 

잠이 오지 않는 밤.

밤을 어슬렁~ 가로질러 작은 불빛 덩그러니 켜져 있는 카페 하나를 찾아 든다.

낮은 조명 탓에 분위기가 꽤 조용조용한 그 곳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곤 향이 좋은 커피를 한모금, 그리고 달그락 소리마저 신경 써가며 찻잔을 내려놓는다.

옆에서 중년 남성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음악의 선율인 듯 들려온다.

"이제 겨우 11시 56분인가...있지, '데니스'라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홀짝이는 여자애가 있었어. 고등학생은 아니지만 고등학생 분위기가 남아 있지. 짧은 생머리에 작고 갸름한 얼굴. 검은 테 안경을 썼어. 그 여자애는 담배를 피우면서 책을 읽고 있었어. 그런데 왠 남자애가 다가와..."

중년 남성의 얼굴은 가려져 있지만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톤이 재즈같이 엇박을 타면서 미묘하게 리듬감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펫 샵 보이즈의 싱어 목소리와도 같이 사람을 홀리는 마성의 "미성"이 섞여 들어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남성의 이야기는 잦아들 듯 이어지면서 "천일야화"를 이야기하는 셰헤라자데 처럼 밀어내고 끌고 당기기를 계속한다. (여기까지는 허구입니다~~)

 

자, 여러분~

그 중년남성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식물처럼 낮에 광합성을 해서 에너지를 축적해 둔 것도 아니면서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는 밤.

이런 솔깃한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커피 몇 잔을  연달아 마시고서라도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 싶다. 11시 56분에 시작한 하루키의 이야기는 새벽 1시를 넘어 3:58, 4:25, 5:24 이렇게 따박따박 무표정하게 찍히는 시각을 의식하게 하면서 6:25 이 되어서야 끝난다.

하룻밤의 길고 긴 이야기인 셈인데 하루키는 이 이야기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내용이 기억이 안나, 그렇다면 한 번 지어보자~ 하면서 지어냈다고 한다.

스무 살 무렵의 여자 주인공이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Tante Zita(일본 개봉명: 어린 풀이 돋아날 무렵)]. 

 [애프터 다크]는 스무 살 무렵의 여자 주인공이 밤거리를 다니며 마주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역시나 하루키의 소설에는 음악이 빠지지 않는다.

그가 소설 속에서 언급한 책이나 음악은 왜 꼭 찾아 듣고 싶어지는지...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기가 막힌 제목의 책을 읽었을 때부터 '하루키는 음악'이라는 공식이 딱 새겨져서 저절로 그렇게 되고 마는 것 같다.

 

11:56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여자아이 마리는 <파이브 스폿 애프터 다크>를 흥얼거리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는 2년전 여름 더블데이트에서 만난 마리와 마리의 언니 에리를 기억한다고 했다.  

소소한 얘깃거리를 나누는 보기 좋은 한 쌍의 모습에 취해갈 즈음,

11:57

느닷없는 장면전환과 더불어 "우리"라는 낯선 시점을 제시하는 공간 속에 발을 딛게 된다. 마리의 언니 아사이 에리. 어쩌다 누군가와 함께 훔쳐보는 신세의 독자가 되어 카메라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그리하여 또 두 달간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에리의 이야기에 마음을 두고 오게 된다.

12:25

데니스에서 여전히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에리에게

 러브호텔 '알파빌'의 매니저 가오루가 찾아와 "그럼 미안한데 나랑 같이 가 줄 수 없을까?"라고 한다.

 

...

 

하루키의 이야기에 홀려 에리를 따라갔더니 모두 잠들어야 하는 "애프터 다크"의 시간에, 밤에 잠들지 못하는 인간 군상들이 하나씩 그 민낯을 드러낸다.

밴드에서 트롬본을 부는 남자, 러브호텔에서 매춘을 하는 중국인 소녀, 나른하고 관능적인 엘링턴의 음악을 틀어줄 줄 아는, 바 '스카이락'의 바텐더,  얼굴 없는 남자, 심야에 사무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하는 남자...

 

"한밤중엔 한밤중의 시간의 흐름이 있단 말이지."

"그걸 거역해봤자 소용없어."-78

 

밤에 흐르는 시간은 나른하고 몽환적이기도 하지만

어둠에 가려진 채로 소리 없이 벌어지곤 하는 폭력이 난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낮에 광합성을 충분히 해서 에너지를 비축한 상태로 남아 도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밤을 활보하는 것이 아니라면,

심야의 시간에 깨어 있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 혹은 "문제가 있는"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 싶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들이 선사하는 기묘한 밤의 세계에 초대되어 색다른 방식으로 밤을 즐겼다.

역시 밤의 이야기라서 조용하게 시작하긴 했지만 번쩍! 하고 정신이 들게 한방 먹이는 재주가 하루키에겐 있다는 말씀.

 

어쨌든 밤은 낮에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놓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새까만 배경이 어떤 말이든 다 흡수해 줄 것 같아서일까.

천일야화가 밤에 지어질 수 있었던 것은 셰헤라자데의 창의와 기지에 밤의 특별한 힘이 더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새까만 밤의 도화지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주는 단 한 사람만이 밤에 쉬이 잠들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독여 줄 수 있다.

거기에 하루키라는 DJ가 잘 골라서 턴테이블에 얹어 주는 음악은 아메리카노에 뿌리는 시럽 역할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샤이닝 걸스
로렌 뷰키스 지음, 문은실 옮김 / 단숨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공을 뛰어넘어 빛나는 소녀들을 사냥! [샤이닝 걸스]

 

스티븐 킹의 [샤이닝]을 안다면, 빛나는 존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이다.

스토리상 중요한 역할을 하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존재이다.

[샤이닝 걸스]의 소녀들 역시 빛나는 존재이긴 한데,

그들은 무언가를 행하는 주체이기 보다는 범인의 범죄 대상이다.

 

하퍼 커티스라는 남자는 우연한 기회에 다른 시간을 향해 열려 있는 '더 하우스'의 열쇠를 얻는다.

그가 원래 어떤 성향의 남자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집의 열쇠를 얻는 순간, 그가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하기 그지없다.

그는 '빛나는 소녀'들을 죽여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소설과 시나리오, 그래픽 노블을 쓰는 작가라서 그런지 장면 전개가 유난히 빠르다.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하는 하퍼 때문에라도 장면전환은 필수이지만 작가의 글쓰기는 그 과정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버무려낸다.

1929년부터 1993년까지의 시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도 작가의 글과 함께라면 징검다리 건너듯 퐁당, 뛰어넘는 재미를 기대할 수 있다.

영상으로 보고 있는 듯, 장면마다 섬세한 묘사가 어우러진다.

글을 읽으면 영상이 그대로 떠오른다.

타임 리프. 막연하고도 쉽게 상상하기 힘들 것 같은데, 이 부분을 읽으면 단번에 이해가 되어버린다.

 

길 건너 집들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져나가고 스스로 색을 칠하더니, 눈과 태양과 나뭇잎이 얽힌 쓰레기들이 길을 날아다니면서 다시 헐벗었다. 창문은 깨지고 위에 판자가 박혀 있었으며, 화병에 담겨 창문을 장식한 꽃은 갈색으로 변해서 떨어졌다. 공터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났다가, 시멘트로 채워지고, 풀들이 바닥의 갈라진 틈으로 억세게 무리지어 피고, 쓰레기가 엉켰다가, 쓰레기가 사라지고, 다시 돌아오고, 불길한 전조가 포악한 색깔들로 공격의 이빨을 드러냈다. 땅바닥에 사방치기 그림이 나타났다가 진눈깨비 속으로 사라지면서 시멘트를 구불구불 건너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계절과 계절이 흘러 소파 하나가 썩어갔고, 그러더니 불이 붙었다. -48

 

'더 하우스'의 문을 열 때마다 문 바깥 세상은 달라져 있다. 머릿속에 어느 시간만 생각하면 문이 그 때로 열렸다. 그는 자신이 갈 수 있는 시간의 한계를 알았다. 1929년 이전으로는 가고 싶다고 해도 갈 수 없었고 미래로 그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은 1993년이었다.

아마도 1993년이 그가 종말을 맞게 되는 때가 아닐까...

 

하퍼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 '빛나는 소녀'들을 죽인다. 시간을 넘어 그들의 삶을 따라다니며 기회를 노리고, 때가 되면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다.

진숙, 조라, 윌리, 커비, 마고, 줄리아. 캐서린, 앨리스, 미샤, ..

어떤 문이 열리듯 깨달음이 찾아오면, 열이 최고조에 달했고, 경멸과 진노와 불로 가득한 울부짖는 소리가 그를 관통한다.

그는 빛나는 소녀들의 얼굴을 보았고, 그들이 어떻게 죽어야만 하는지 알았다. 머릿속에서 '그녀를 죽여'라는 고함이 터져나온다.

 

그의 종말을 지켜보는 이는 누가 될까.

소녀들 중 하나인 커비 마즈라치는 미치광이의 범행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신문사 인턴으로 들어간 뒤, 자신의 사건을 파헤친다. 그리고 범인이 남긴 카드나 열쇠고리 등의 단서를 통해 '더 하우스'에 다가간다.

 

일견 시간을 여행하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라, 화려해보이고 복잡해 보이지만 구도는 단순하다. 살인마와 피해자의 대결. 결국 끝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지만 작가는 어느 한쪽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이 세상에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인 하퍼는 살인으로써만 존재한다며, 어떤 동기도 제시하지 않고 끔찍한 장면만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살해당하고 싶다는 욕구만으로 소녀들이 빛나고 있기에 살인을 한다는 사이코패스 하퍼. 그를 어떻게 여겨야 할까.

동정심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대놓고 삿대질을 할 수도 없는 묘한 마음이 생겨난다.

소설 속 이야기지만,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는 아닐까.

괜한 두려움에 흠칫 떨게 된다.

죄의식과 양심 따위 '더 하우스'에 맡겨버리고 '더 하우스'가 시키는 대로,, 바라는 대로 빛나는 존재들을 좇아 무작정 시간여행을 하는 연쇄살인범.

새로운 형태의 스릴을 던져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종느와르 M 케이스북 - OCN 드라마
이유진 극본, 실종느와르 M 드라마팀.이한명 엮음 / 비채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종자들로부터 건져올린 크고 작은 진실 [실종 느와르 M 케이스북]

 

 

 

어쩔 수 없다.

다시 보는 수밖에.

 

[실종 느와르 M] 사건을 완벽 분석한 케이스북을 보고 있자니

본방사수는 물론 다시보기도 하지 않고 지나갔던 이 드라마를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왜 이걸 놓쳤던가.

 

 

 

예고편을 건너 뛰고 1화부터 다시보기를 한다.

IQ 187의 전직 FBI 요원 '길수현'과 실종 수사만 7년인 베테랑 토종형사 '오대영'이 강력범죄와 연계된 1% 실종사건을 풀어나가는 실종 범죄 수사극이 시작된다.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이건 단지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그럭저럭 넘어가 진다.

아무렴 어떤가~ 주인공이 김강우인데..^^

 

첫 번째 에피소드는 <감옥에서 온 편지>로 시작한다.

이건 이야기가 좀 길어서인지 2파트로 이어진다. 사실, 이것 외에도 한 시간 안에 끝나지 않고 연결되는 사건들이 꽤 있다. 기존의 1편으로 끝나는 짤막한 극들과는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하고 싶은 말, 생각하게 할 거리가 많아서인지도 모른다.

 

 

어느날 경찰청으로 살인을 자백하는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발송인은 감옥에 수감 중인 사형수 '이정수'인데, 전직 FBI요원 '길수현'을 지목하여 자신의 살인에 대한 힌트를  퍼즐형식으로  던져준다. 드라마의 특성상, 1편에는 원래 강렬하고 자극적인 장면이 흥미를 유발하기 마련이다.

이 드라마 역시 그 공식에 충실하다 못해 너무나 센 카드를 내민 것 같다.

온 몸에 링거가 꽂힌 채 침대에 누워있는 한 남자. 그는 겨우 목숨만은 붙어 있는 상태였지만 곧 사망하고 만다. 범인은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인 것일까.

 4명의 남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이정수가 길수현에게 '15년 전 '강순영'을 살해한 범인을 찾지 못하면 어린 여자아이의 생명이 위험해진다고 말한다. 55시간의 제한 시간 안에 강순영 실종에 대한 단서를 찾아나서야 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부터 경찰과 범인의 팽팽한 대립이 시선을 장악한다. 역시 드라마에서는 인물들의 표정과 말투를 통해 긴장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케이스북에서는 어떨까.

[실종 느와르 M]의 케이스북에는 드라마에서 놓쳤을 법한 여러가지 들이 상세하게 들어 있다.

휙휙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 강렬하게 몰입하는 바람에 놓친 단서들 뿐만 아니라 작가나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들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공소시효 만료, 심신상실자 처불 불가능, 무죄추정의 원칙 등 법의 허점을 이용해 손쉽게 빠져나가는 범죄자들과 피해자를 졸지에 가해자로 만들어버리는 범법자, 법정에서는 도저히 처벌이 불가능한 권력형 범법자 등에 대한 생각들을 케이스 하나하나 마다 담아내고 있다.

 

선량한 사람의 삶이 무너지고, 악인은 어둠 속으로 영원히 숨는 비극.-305

 

비틀거리는 정의의 시대. 하지만 비틀거리면서도 좌절하지 않는 건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기 때문은 아닐까.

비록 상처로 얼룩진 정의이지만...

그래도 정의는 죽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가는 한.

-309

 

그리고 화면캡쳐를 통해 임팩트 있는 장면을 포착한다.

 

"정확한 시간에 오셨네요. 신기하다. FBI는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사람이잖아요."-14

 

"공평하긴 하네요. 인생은 누구의 계산대로도 되지 않는다는 것."-61

 

게다가 자막을 보여주어서 그 부분을 복기해볼 수도 있고 살풋 넘어갔던 사건해결의 단서, 실마리 들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다시 한 번 드라마를 보는 듯, 사건 전개가 확실히 손에 잡힐 듯이 떠오르고 인물들은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감독과 작가의 한마디도 작품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배역 캐스팅에서부터 연출 의도까지 나와 있으니 드라마를 이보다 더 정확히 이해하는 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배우 강하늘 씨가 맡은 이정수는 극의 종반부, 특유의 사이코패스적 미소가 잠시 일그러지는 한순간을 향해 달려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인마 연기를 하던 그가 마지막 한 순간 흔들리는 지점.-66

 

처음엔 내가 책으로만 이 드라마를 정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어 드라마를 시청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된 한 마디이다.

이 표정을 어떻게든 꼭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부릅--)

 

이야기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링거 병이 매달린 사건 현장과 단두대, 그리고 신부의 자살까지.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것을 시각화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노력한 과정이 실린 사진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높아진다. 드라마의 비하인드 스토리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에피소드 1 <감옥에서 온 퍼즐>의 독특하고도 실험적인 비주얼은 여러 단계의 협업을 통해 완성된 것이라는 멘트 역시 드라마를 챙겨보게 만든 이유다.

 

첫 번째 에피소드 외에도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사라진 회사원을 찾아라' <녹>

총리후보의 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 <살인의 재구성>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동영상을 온라인에 올린 여성이 사라지는 사건 <예고된 살인>

한 소녀가 길수현에게 '박사'라 불리는 소년을 찾아달라고 의뢰를 하는 <HOME>

30년 만에 잃어버린 딸을 찾은 100억대 자산가 할머니가 자신의 따이 다시 실종되었다며 신고하는 <청순한 마음>

현직 여검사가 화재 현장에서 주검으로 발견되는 사건 발생, 여검사와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용역 업체 대표가 실종되는 <Injustice> 등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하나같이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조리한 진실을 안고 실종된 이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을 정도로 진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들 뿐이다.

작가는 느와르적인 인물 길수현과 오대영을 등장시키며 이 혼란한 틈을 헤쳐나갈 '정의'를 찾으려 한다.

하나같이 열린 결말로 현대판 정의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실종 느와르 M]

잔인하거나 흥미롭거나. 둘 중의 하나 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던 추리 드라마에 '정의'를 묻는 새로운 형식의 시도를 가미한 것이 마음에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관자경제학
신동준 지음 / 인간사랑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덤 스미스를 압도하는 관자의 국부론 [관자 경제학]

 

 

 

제자백가서 주석 작업을 끝내고 [관자] 주석서를 펴낸 저자 신동준이

이번에는 [관자 경제학]을 펴냈다.

국내 최초로 관자사상을 주제로 학위 논문을 쓴 뒤로 '관학'의 단초를 열었던 그는 [관자]주석서를 끝내자마자 관자경제학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떨쳐버리듯 서둘러 본서를 발표했다고 한다.

 

 

그간 저자가 하나 둘 주석을 달았던 책들이 쌓여 있다.

(목민심서를 제외하고는 다 저자, 신동준의 저서임)

실로 어마어마하고 방대한 양인데, 이것이 다 [관자 경제학]이란 커다란 방점을 찍기 위한 것이었다.

 

[관자 경제학]은 [관자]에 나오는 정치경제학 이론과 사례를 총망라한 것이다.

지금 이 시기에, 왜 갑자기 [관자 경제학] 인가?

라는 질문에 저자는 제나라의 패망을 걱정하며 '경세제민'과 '부국강병'을 역설한 관중 못지 않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지도층이 각성하지 않으면 그 폐해는 서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사례를 역사 속에서 찾아 지금의 우리에게 거울처럼 비춰보여주는 것이다.

 

2014년의 세월호 사건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까운 생명들이 스러져 간 것에 대해 울분을 금치 못했다.

시간이 흐르자 희생자 가족의 억울함은 희석되는 듯이 보였는데

그 사건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되새겨 보면 그것이 쉬이 잊히거나 묻혀서는 안될

사례임을 알게 된다.

기업의 이름을 뒤집어쓴 사이비 종교집단이 일반국민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악의 뿌리를 도려내지 않은 탓. 관피아를 비롯한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도 밝지 않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 보인다.

 

뉴스 속에서 보고 지나갔던 하나의 사건조차 우리의 정치 경제와 무관하지 않고

나아가 최대 피해자는 약하고 힘없는 서민들임을 자각하면

더이상 정치와 경제를 도외시하고 살아갈 수만은 없다.

 

 

이 책은 [관자]에 나오는 정치경제학 이론과 사례를 들어 최근의 경제 현실을 분석하고 있다.

[관자] 10편 가운데 <승마<와 <구부>, <경중> 편의 계책을 깊이 논의한다.

 

그에 앞서 들어가는 글에서는 피케티와 칼레츠키의 관자경제학에 대해 논하는데, 이 대목이 또한 고전과 현대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금치 못하게 한다.  

저자는 먼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을 들면서 부의 소수 집중 문제를 거론한 프랑스의 40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부등식 이론'이 관자경제학의 21세기 버전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관자경제학을 관통하는 기본이념 '균부'의 요체가 여기에 있다며,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이 부유하고 존귀한 자를 증오하지 않고, 부유하고 존귀한 자들도 가난하고 비천한 자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관자경제학은 시장의 자율을 존중하면서도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문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본주의 4.0]에서 경제를 이해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정치와 경제,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해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전환을 이뤄야 한다고 역설한 칼레츠키의 이론이 관자경제학의 정곡을 찔렀다고 말한다. 시장과 국가의 역할 구분이 명확히 이뤄진 고정된 시스템이 존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지적한 칼레츠키의 이론은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통찰한 것이다. 관자경제학이 21세기 세계경제를 일거에 혁신시킬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얼마전 인간사랑에서 번역된 [중국 옛 상인의 지혜]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사기] 열전 <화식> 편에서 다루었던 인물들이 [관자 경제학]에도 나온다.

공자와 공자의 제자 중 유상으로 유명한 자공, 그리고 '인기아취 , 인취아여'라는 8자결을 남긴 백규에 관한 이야기까지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과연 고전에 해박한 저자의 내공에 깊이 감탄할 따름이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전 [관자]가 현대의 정치경제학 못지 않게 현재에도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알겠다.

중국이 '공학'과 더불어 '관학'에 관심을 기울이며 고전에서 현재의 난세를 타계할 수 있는 지혜를 뽑아낸다면, 우리도 뒤쳐져서는 안되겠다. [관자 경제학]같은 훌륭한 지침서가 나왔으니 적극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