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을 뛰어넘어 빛나는 소녀들을 사냥! [샤이닝 걸스]
스티븐 킹의 [샤이닝]을 안다면, 빛나는 존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이다.
스토리상 중요한 역할을 하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존재이다.
[샤이닝 걸스]의 소녀들 역시 빛나는 존재이긴 한데,
그들은 무언가를 행하는 주체이기 보다는 범인의 범죄 대상이다.
하퍼 커티스라는 남자는 우연한 기회에 다른 시간을 향해 열려 있는 '더 하우스'의 열쇠를 얻는다.
그가 원래 어떤 성향의 남자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집의 열쇠를 얻는 순간, 그가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하기 그지없다.
그는 '빛나는 소녀'들을 죽여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소설과 시나리오, 그래픽 노블을 쓰는 작가라서 그런지 장면 전개가 유난히 빠르다.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하는 하퍼 때문에라도 장면전환은 필수이지만 작가의 글쓰기는 그 과정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버무려낸다.
1929년부터 1993년까지의 시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도 작가의 글과 함께라면 징검다리 건너듯 퐁당, 뛰어넘는 재미를 기대할 수 있다.
영상으로 보고 있는 듯, 장면마다 섬세한 묘사가 어우러진다.
글을 읽으면 영상이 그대로 떠오른다.
타임 리프. 막연하고도 쉽게 상상하기 힘들 것 같은데, 이 부분을 읽으면 단번에 이해가 되어버린다.
길 건너 집들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져나가고 스스로 색을 칠하더니, 눈과 태양과 나뭇잎이 얽힌 쓰레기들이 길을
날아다니면서 다시 헐벗었다. 창문은 깨지고 위에 판자가 박혀 있었으며, 화병에 담겨 창문을 장식한 꽃은 갈색으로 변해서 떨어졌다. 공터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났다가, 시멘트로 채워지고, 풀들이 바닥의 갈라진 틈으로 억세게 무리지어 피고, 쓰레기가 엉켰다가, 쓰레기가 사라지고, 다시
돌아오고, 불길한 전조가 포악한 색깔들로 공격의 이빨을 드러냈다. 땅바닥에 사방치기 그림이 나타났다가 진눈깨비 속으로 사라지면서 시멘트를
구불구불 건너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계절과 계절이 흘러 소파 하나가 썩어갔고, 그러더니 불이 붙었다. -48
'더 하우스'의 문을 열 때마다 문 바깥 세상은 달라져 있다. 머릿속에 어느 시간만 생각하면 문이 그 때로 열렸다. 그는 자신이 갈 수
있는 시간의 한계를 알았다. 1929년 이전으로는 가고 싶다고 해도 갈 수 없었고 미래로 그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은 1993년이었다.
아마도 1993년이 그가 종말을 맞게 되는 때가 아닐까...
하퍼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 '빛나는 소녀'들을 죽인다. 시간을 넘어 그들의 삶을 따라다니며 기회를 노리고, 때가 되면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다.
진숙, 조라, 윌리, 커비, 마고, 줄리아. 캐서린, 앨리스, 미샤, ..
어떤 문이 열리듯 깨달음이 찾아오면, 열이 최고조에 달했고, 경멸과 진노와 불로 가득한 울부짖는 소리가 그를 관통한다.
그는 빛나는 소녀들의 얼굴을 보았고, 그들이 어떻게 죽어야만 하는지 알았다. 머릿속에서 '그녀를 죽여'라는 고함이 터져나온다.
그의 종말을 지켜보는 이는 누가 될까.
소녀들 중 하나인 커비 마즈라치는 미치광이의 범행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신문사 인턴으로 들어간 뒤, 자신의 사건을 파헤친다. 그리고 범인이
남긴 카드나 열쇠고리 등의 단서를 통해 '더 하우스'에 다가간다.
일견 시간을 여행하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라, 화려해보이고 복잡해 보이지만 구도는 단순하다. 살인마와 피해자의 대결. 결국
끝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지만 작가는 어느 한쪽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이 세상에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인 하퍼는 살인으로써만 존재한다며, 어떤
동기도 제시하지 않고 끔찍한 장면만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살해당하고 싶다는 욕구만으로 소녀들이 빛나고 있기에 살인을 한다는 사이코패스 하퍼.
그를 어떻게 여겨야 할까.
동정심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대놓고 삿대질을 할 수도 없는 묘한 마음이 생겨난다.
소설 속 이야기지만,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는 아닐까.
괜한 두려움에 흠칫 떨게 된다.
죄의식과 양심 따위 '더 하우스'에 맡겨버리고 '더 하우스'가 시키는 대로,, 바라는 대로 빛나는 존재들을 좇아 무작정 시간여행을 하는
연쇄살인범.
새로운 형태의 스릴을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