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사람 속 [우행록]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 이후 두 번째로 손에 잡은 작품이다.
어찌나 칭찬이 자자한지 직접 읽어보고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마음이 절절이 녹아든 작품이었고 뜻밖의 반전 또한 책 읽는 재미에 일조했기에 절로 엄지 척! 할만했다.
[우행록]은 뭐랄까...[통곡]과 달리 평에 있어서 호불호가 갈리는지 만장일치의 칭찬은 없어서 이걸 읽어, 말어...많은 고민을 했더랬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읽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
읽는 이의 허를 찌르는 반전이 제일 마지막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미 미야베 미유키의 [Q&A]를 읽어서 인지 인터뷰 형식이 낯설지는 않았다.
[Q&A]에서는 사정청취의 형식을 띤 인터뷰였지만 [우행록]의 인터뷰에서는 대답하는 사람의 답변으로만 진행된다는 점이 좀 다르다면
다를까.
질문자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았다는 점에 처음부터 신경을 썼더라면 범인을 추리해내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아니다. 아무리 신경 써도 작가가 쳐 놓은 테두리 안으로는 한 발짝도 들이지 못한다.
르포 형식의 책을 쓰는 작가라고 말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이것저것 캐묻는데 만약 그게 거짓말이라면 어떻게 질문자의 신분을 찾아내겠는가?
그러니, 그냥 마음 비우고 인터뷰 내용을 따라 가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질문자에 신경 쓰는 것보다 더욱 흥미진진한 반전이 매 인터뷰 때마다 툭툭 튀어나올 테니...마음 단단히 먹고.
참혹한 일가족 살해 사건이 일어났다. 이사 온 지 석 달만의 일이라 이웃은 가족의 과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겉으로 보기에
단란해 보이는 가족이었고 한다. 남편은 인물도 훤칠하고 대기업 엘리트 사원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고, 아내는 곱게 자란 듯한 청초한 느낌의
미인이었다. 아들과 딸을 두었으며 무슨 원한을 살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는데...
미궁에 빠진 사건이 일어난 지 일 년 뒤, 누군가가 다코 씨 일가의 주변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한다.
요리교실을 다니면서 다코 씨 부인과 친해졌다는 사람에게서는 유명 사립 여고 세이신을 나온 다코 씨 부인에게 느꼈던 열등감을 읽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아름답고 학벌 좋은 다코 씨 부인을 시기하는 이웃의 말이려니 하고 넘어가줄 수 있다. 아직은 완벽한 일가족의 모습이 대체로
유지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다코 씨의 회사 동료에게서 다코 씨의 여성 편력이라고 하까, 비열하기까지 한 모습을 전해들으면서 완벽했던 그림같은 집의 이미지에는
서서히 금이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연애 따로, 결혼 따로의 '책략'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의 비열한 모습이랄까.
게다가 와세다 출신의 연줄을 이용해 라이벌의 인사까지 좌지우지하는 모습이라니...
사람의 겉모습이란 속마음을 그대로 담아내는 그릇이 아니라는 것에 한번 놀라게 되는 구절이다.
이제는 좀 더 심하게 놀랄 차례다.
다코 씨 부인, 나쓰하라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게이오 대학 동기인 미야무라의 증언으로 기록되는데, 미야무라가 본 나쓰하라는 게이오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서 완벽하게 줄타기를 했던
사람이다.
"나쓰하라 씨는 다나카 씨를 능멸한 거죠. 내부새에 대한 다나카 씨의 집착을 이용해서 그녀를 끔찍한 상황으로 몰아넣었어요. 표면적으로는
친구에게 지인을 소개한 것이지만, 실제로 한 일은 천박한 뚜쟁이 짓이었죠. 나쓰하라 씨는 그런 짓이 가능한 사람이었어요.
나쓰하라 씨 일가를 죽인 사람이 다나카 씨라고 해도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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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죽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에 대해 어지간한 악감정이 아니고서는 이렇게까지 나쁜 쪽으로 매도하기가 쉽지 않은데 미야무라라는 사람도
참...뒤늦게 입바른 소리 한다, 싶었다.
다코 씨네 집안 남편에 이어 아내까지 완벽하게 쌓아올린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이미 죽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조금의 인연이라도 걸쳐진 사람이라면 사뭇 얘기하기 꺼려질 텐데도 사람들은 잘도 과거의 기억에서 자질구레한 것들
끄집어낸다.
남들의 입에서 나오는 '나의 평가'에 괜시리 신경쓰게 되는 부분이다.
물어보니 대답하는 것 뿐,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지어 낼 필요는 없기에 그 증언들을 사실이라고 믿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완벽하게 배치되는 증언이 나타나면 그 시점에서는 이제까지 견지해왔던 관점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 과정에는 예기치 않은 사태가 불러일으키는 '패닉'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사실'이 아닌, '남의 입'을 빌려 전해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는데...또 마음
놓고 읽다가 된통 당해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우행록]의 대담하고 쫄깃한 맛이다.
켜켜이 기록된 어리석은 행동 끝에 독자의 우두망찰한 표정 하나가 추가되는 순간이다.
의외의 범인이 툭 튀어나온 뒤에야,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일기처럼, 고백록처럼 담담하게 서술되고 있는 수신인 '오빠'에게로의 편지가 비중
있게 다가온다.
어디서부터인지 모르지만 비뚤어진 마음이 끝내 봉합되지 못하고 꽉 찼지만 허술하게 묶인 쓰레기봉투 터지듯이 팍 터져버렸을 때, 여기저기서
주워 온 쓰레기같은 가난한 마음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제 때 어루만져지지 않은 마음은 나의 삶을, 주변인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
결국 피해자도 가해자도 모두 헤집어보면 건전하지 않은 정신에 좀먹혀 온 인생들이다.
그들을 위해 또르르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이 그들의 피폐한 정신을 조금이나마 씻어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속이라지만, 뒤늦게 비극적으로 파헤쳐질 마음 따위 간직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