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5
박민아.선유정.정원 지음 / 한국문학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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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닿는 모든 곳에 과학이 있다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과학은 상아탑에만 갇혀 있는 학문인줄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우리 곁에 꽤 가까이 다가와, 기꺼이 '담소'를 나누며 즐길 수 있는 토픽의 주제로도 등장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융합, 통합이라는 말이 사용되더니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그 위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과학에서 융합은 어떤가 하면, 말 그대로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뇌과학, 인지과학과 같이 기존의 인문사회학이 과학과 결합된 상태를 의미하는 융합이 있는가하면

 IT 산업과 생명공학, 우주소재와 같이 두 분야의 과학이 하나로 통합된 형태를 의미하는 융합도 있다.

과학과 역사, 과학과 음악, 과학과 미디어와 같이 이공학과 인문학 및 예술의 통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융합의 정체성은 여전히 모호하지만 대체로 과학에서의 융합은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의미에서는 성공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이 책에서는 물론 과학을 제대로 아는 데서부터 출발하여 과학과 예술, 과학과 사회, 역사 속의 과학, 과학기술과 전재, 철학과 과학, 대중문화와 과학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융합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라고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또한 과학의 본모습을 더 잘 알고, 과학을 더 많이 좋아하게 되길 기대한다고도 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은 '과학수다' 보다는 좀 더 다듬어진, 진중한 글이지만 독자들이 과학에 관심을 가지도록 이끄는 데 있어서만큼은 '수다'에 뒤지지 않을 만큼 흥미롭다.

"인문'으로 탐구한다, 에서 겁을 살짝 먹었지만 과학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와서 맛깔나게 버무린 솜씨는 기가 막히다.

어렵지 않게 읽고 충분히 빨려들어갈 수 있다.

 

과학은 자연에 숨어 있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진리가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지 못한다면 그 발견은 무의미하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독자를 염두에 두고 그들의 관심과 취향에 맞춰 소통하는 것은 다른 분야만큼이나 과학에서도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53

 

이과형 인간들이 가지는 특출한 능력이 있어야 과학자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하는가?

깐깐한 실험 수행 능력과 수학적 자질, 그것만이 과학자의 조건이 아니다.

주제를 설정하고 연구를 수행하고 발표하기까지 과학자들에게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동료와의 토론, 연구비 확보, 동료와의 협조 및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 조직력, 추진력, 친화력 등 많은 요소들이 요구되는 것이다.

과학이 태생적으로 다른 분야와는 무관한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이제부터 보게 되는 이야기들이 과학의 곁가지가 아니라 한몸인 것을 알게 된다.

과학이라는 범주 안에서만 이해했을 때는 자칫 지루하고 딱딱했을 수 있는 수많은 과학적 발명과 발견의 순간들은 인문학과 만나 다채로운 빛을 발한다.

하나의 틀에 갇힐 뻔한 지식은 좀 더 확장되고 다른 분야와 어우러져 어두운 눈을 뜨게 한다.

 

2010년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한 기발한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가임은 사고의 전환을 위해 '외도'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재미 삼아 강력한 전자석 안으로 뿌린 물이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공중에 떠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스카치테이프가 탄소의 얇은 막을 분리시키는 최적의 도구라는 것을 알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신선한 시각을 제공해주면서 시야를 넓혀주는 경험은 '융합'에도 딱 맞아떨어진다.

'맥스웰의 분자'는 '케틀레의 사회'에서 영감을 얻었고, 다윈의 진화론은 맬서스의 경제학적, 사회학적인 통찰에서 영감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다.

청소기와 세탁기가 가사에서 여성을 해방시켰다고 하지만 여성사회학자 코완은 청결과 위생이라는 보건 기준을 가정으로 끌고 들어오는 바람에 오히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을 늘렸다고 말한다.

광고에서 선전하는 문구에 현혹되어 편리함을 선택했지만 그 결과는 그다지 여성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처음에는 이게 뭐지? 했지만, 곧 그렇게 생각할 수명도 있겠네~ 로 바뀌었다.

틀에 박힌 사고로 인해 들여다보지 못했던 이면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서양 과학이 중국에 전파된 것은 선교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은 어떤가?

마테오리치는 지도를 선물하고 산학을 가르쳐줌으로써 명나라 조정에서 적지 않은 권력을 쥔 사람들을 개종시켰던 것은 성공적인 전도 사례가 아니겠는가.

철학의 영역에 과학을 이용한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책을 덮고 나니, 눈에 닿는 모든 곳에 과학이 있음을 알겠다.

객관적인 지식의 영역에 놓여 있던 과학은 인문과의 통섭으로 인해 한결 유연하게 다가온다.

갈릴레오의 달 스케치, 셜록 홈즈의 과학수사, 이탈리아식 성채의 유행, 첨성대에 대한 이견 대립 등

많은 것들은 과학의 범주 안에 있지만 그 해석은 역사,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좀 더 재미있을 수 있음을 배울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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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흩날리는 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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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여탐정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시작[얼굴에 흩날리는 비]

 

예전에 도서관에서 무턱대고 추리소설 분야의 책들을 뽑아다 읽었을 때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을 보았었다. 온다 리쿠나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특히 오쿠다 히데오 류의 소설들 속에서 기리노 나쓰오라는 이름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옷을 팔랑거리며 뛰어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표지로 쓴 그 책,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은 빨간 원피스에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만화스럽게 표현되어 있어서 어두운 내용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봐서였는지, 충격이 상당히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 한동안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을 찾아 읽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작정하고 읽어보자고 덤벼들었다.

 

'무라노 미로'라는 이름을 한 번 스쳐서인지 그다지 생소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 여탐정 시리즈의 처음을 먼저 읽지 않은 것이 흠이라면 흠일까.

아직은 '탐정'이라는 이름을 걸고 제대로 사건을 맡지 않는 상태의 무라노 미로는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다크]와 [얼굴에 흩날리는 비]를 한꺼번에 눈앞에 두고 어떤 것을 먼저 읽을까, 고민했는데

표지가 좀 더 마음을 끄는 [얼굴에 흩날리는 비]를 먼저 선택하기를 잘했다.

무라노 미로 시리즈는 이런 순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 [얼굴에 흩날리는 비]

1993년 제39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얼굴에 흩날리는 비] 는 대도시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여성 탐정의 비정한 삶을 그린 소설로, 이후 작가는 무라노 미로 시리즈를 연달아 발표하게 된다.

2.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3. [물의 잠 재의 꿈 ] 

4. 미로의 아버지 젠조의 젊은 시절을 그린 단편집 [로즈가든]

5. [다크]

무라노 미로 시리즈는 2002년 [다크]에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기존의 탐정소설의 패턴에서 벗어나 미로라는 한 사람의 여성이 시대와 호흡하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한 기리노 나쓰오는 『다크』에서 의붓아버지를 죽였다는 혐의로 한국으로 도망쳐온 미로, 그녀를 쫓는 게이와 시각장애인 여자, 그런 미로를 돌보는 광주항쟁의 상처가 드리워진 한국 남자들의 끔찍한 복수담을 통해 추락한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통렬하게 그려냈다. <예스24, 저자 소개 중>

 

비가 내리는 새벽. 자카르타에서 죽은 남편 히로오가 눈물을 흘리는 꿈 속에서 헤매고 있던 무라노 미로는 전화벨 소리를 들었지만 받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그냥 둔다. 좋지 않은 소식이라면 내일 아침에 들으면 된다...

하지만 그날 밤 그 전화를 받았더라면...

친구인 르포라이터 요코의 남자친구인 나루세가 한낮에 다짜고짜 찾아와 요코가 1억 엔이라는 큰 돈을 들고 사라졌다고 말한다.

자동차 딜러인 나루세는 조직 폭력단으로부터 사업상 돈을 빌렸는데, 그 돈을 잠깐 요코에게 맡긴 사이 요코가 그 돈과 함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이다.

유명한 탐정 무라젠의 딸인 미로는 광고회사를 다니다 그만 두고 쉬고 있는 상태다. 그녀의 집은 험하기로 악명높은 신주쿠 2초메. 미로에 대한 설명이 잠시 멈춘 사이, 요코 실종 사건 및 사라진 1억엔 행방찾기는 나루세와 요코에게 떨어진다.

어쩔 수 없이 요코를 찾는 일에 동참하게 된 미로는 요코가 O상을 노리고 정성을 들였다던 르포의 주제에 집중한다. 옛 동베를린에 있다는 금발머리 가발을 쓴 매춘 조직에 잠입, 네오나치와의 다툼을 집중 취재하던 것이었는데 요코의 호기심이 재앙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요코가 취재한다던 르포의 주제는 맛보기였던 것일까, 요코의 취미 생활에서부터 기인한 기묘한 인맥은 피어싱 시술자, 시체사진 애호가, 트랜스베스타이트(이성의 옷을 즐겨 입는 복장 도착자)에까지 이어진다.

그런 와중에도 미로는 요코의 남자친구였던 이혼남 나루세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당신을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나루세가 어두운 표정으로 속삭였다.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표정이다.

"어째서?""그랬다면 뭔가 달라졌겠지. 아마 당신도 그렇게 생각할걸."-256

 

평소의 무던한 삶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암흑가의 이야기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펼쳐지다가 갑자기 요코의 시체 사진이 툭 튀어나온다.

첫 장은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물에 떠 있는 사진. 또 한 장은 방파제 같은 곳에 인양된 시체를 찍은 것인 듯, 깜짝 놀란 아기처럼 주먹을 꼭 쥐고 두 팔을 치켜들고 있는 사진..

이로써 요코는 더이상 실종 상태가 아닌 "살해" 상태가 된 것이다.

요코의 시체 사진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비오는 날, 해괴한 모습으로 자택에서 목을 멘 채 발견되고 유력한 살해용의자는 바다를 향해 스스로 뛰어들고 만다.

이렇게 요코의 사건은 일단락되나 싶은 그 때...

 

 

전설의 탐정 무라젠, 무라노 젠지의 피를 이어받은 무라노 미로의 탐정 신고식은 완벽한 반전을 선사하며 멋지게 치러진다.

 

한발짝만 늦었어도 범인을 놓칠 수 있었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 범인을 마주하고서 무심한 듯 멋진 대사를 날리는 무라노 미로.

"그럼 가르쳐드려야겠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정정해줘."-395

시크함이 대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탐정으로서의 임무를 시작하게 되는 건가.

마음 속에 단단한 못을 박아놓고 길을 나아가는 무라노 미로는 멋지다.

이제 어떠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쿨한 모습을 보여주겠지.

시리즈의 처음을, 멋진 형사에게 매혹당한 채 시작할 수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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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행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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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 수 없는 사람 속 [우행록]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 이후 두 번째로 손에 잡은 작품이다.

어찌나 칭찬이 자자한지 직접 읽어보고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마음이 절절이 녹아든 작품이었고 뜻밖의 반전 또한 책 읽는 재미에 일조했기에 절로 엄지 척! 할만했다.

[우행록]은 뭐랄까...[통곡]과 달리 평에 있어서 호불호가 갈리는지 만장일치의 칭찬은 없어서 이걸 읽어, 말어...많은 고민을 했더랬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읽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

읽는 이의 허를 찌르는 반전이 제일 마지막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미 미야베 미유키의 [Q&A]를 읽어서 인지 인터뷰 형식이 낯설지는 않았다.

[Q&A]에서는 사정청취의 형식을 띤 인터뷰였지만 [우행록]의 인터뷰에서는 대답하는 사람의 답변으로만 진행된다는 점이 좀 다르다면 다를까.

질문자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았다는 점에 처음부터 신경을 썼더라면 범인을 추리해내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아니다. 아무리 신경 써도 작가가 쳐 놓은 테두리 안으로는 한 발짝도 들이지 못한다.

르포 형식의 책을 쓰는 작가라고 말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이것저것 캐묻는데 만약 그게 거짓말이라면 어떻게 질문자의 신분을 찾아내겠는가? 그러니, 그냥 마음 비우고 인터뷰 내용을 따라 가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질문자에 신경 쓰는 것보다 더욱 흥미진진한 반전이 매 인터뷰 때마다 툭툭 튀어나올 테니...마음 단단히 먹고.

 

참혹한 일가족 살해 사건이 일어났다. 이사 온 지 석 달만의 일이라 이웃은 가족의 과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겉으로 보기에 단란해 보이는 가족이었고 한다. 남편은 인물도 훤칠하고 대기업 엘리트 사원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고, 아내는 곱게 자란 듯한 청초한 느낌의 미인이었다. 아들과 딸을 두었으며 무슨 원한을 살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는데...

 

미궁에 빠진 사건이 일어난 지 일 년 뒤, 누군가가 다코 씨 일가의 주변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한다.

요리교실을 다니면서 다코 씨 부인과 친해졌다는 사람에게서는 유명 사립 여고 세이신을 나온 다코 씨 부인에게 느꼈던 열등감을 읽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아름답고 학벌 좋은 다코 씨 부인을 시기하는 이웃의 말이려니 하고 넘어가줄 수 있다. 아직은 완벽한 일가족의 모습이 대체로 유지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다코 씨의 회사 동료에게서 다코 씨의 여성 편력이라고 하까, 비열하기까지 한 모습을 전해들으면서 완벽했던 그림같은 집의 이미지에는 서서히 금이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연애 따로, 결혼 따로의 '책략'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의 비열한 모습이랄까.

게다가 와세다 출신의 연줄을 이용해 라이벌의 인사까지 좌지우지하는 모습이라니...

사람의 겉모습이란 속마음을 그대로 담아내는 그릇이 아니라는 것에 한번 놀라게 되는 구절이다.

 

이제는 좀 더 심하게 놀랄 차례다.

다코 씨 부인, 나쓰하라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게이오 대학 동기인 미야무라의 증언으로 기록되는데, 미야무라가 본 나쓰하라는 게이오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서 완벽하게 줄타기를 했던 사람이다.

"나쓰하라 씨는 다나카 씨를 능멸한 거죠. 내부새에 대한 다나카 씨의 집착을 이용해서 그녀를 끔찍한 상황으로 몰아넣었어요. 표면적으로는 친구에게 지인을 소개한 것이지만, 실제로 한 일은 천박한 뚜쟁이 짓이었죠. 나쓰하라 씨는 그런 짓이 가능한 사람이었어요.

나쓰하라 씨 일가를 죽인 사람이 다나카 씨라고 해도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166

아무리 죽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에 대해 어지간한 악감정이 아니고서는 이렇게까지 나쁜 쪽으로 매도하기가 쉽지 않은데 미야무라라는 사람도 참...뒤늦게 입바른 소리 한다, 싶었다.

 

다코 씨네 집안 남편에 이어 아내까지 완벽하게 쌓아올린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이미 죽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조금의 인연이라도 걸쳐진 사람이라면 사뭇 얘기하기 꺼려질 텐데도 사람들은 잘도 과거의 기억에서 자질구레한 것들 끄집어낸다.

남들의 입에서 나오는 '나의 평가'에 괜시리 신경쓰게 되는 부분이다.

물어보니 대답하는 것 뿐,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지어 낼 필요는 없기에 그 증언들을 사실이라고 믿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완벽하게 배치되는 증언이 나타나면 그 시점에서는 이제까지 견지해왔던 관점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 과정에는 예기치 않은 사태가 불러일으키는 '패닉'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사실'이 아닌, '남의 입'을 빌려 전해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는데...또 마음 놓고 읽다가 된통 당해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우행록]의 대담하고 쫄깃한 맛이다.

켜켜이 기록된 어리석은 행동 끝에 독자의 우두망찰한 표정 하나가 추가되는 순간이다.

 

의외의 범인이 툭 튀어나온 뒤에야,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일기처럼, 고백록처럼 담담하게 서술되고 있는 수신인 '오빠'에게로의 편지가 비중 있게 다가온다.

어디서부터인지 모르지만 비뚤어진 마음이 끝내 봉합되지 못하고 꽉 찼지만 허술하게 묶인 쓰레기봉투 터지듯이 팍 터져버렸을 때, 여기저기서 주워 온 쓰레기같은 가난한 마음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제 때 어루만져지지 않은 마음은 나의 삶을, 주변인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

결국 피해자도 가해자도 모두 헤집어보면 건전하지 않은 정신에 좀먹혀 온 인생들이다.

 

그들을 위해 또르르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이 그들의 피폐한 정신을 조금이나마 씻어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속이라지만, 뒤늦게 비극적으로 파헤쳐질 마음 따위 간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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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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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가, 인간의 악의 [모방살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투명한 액체와 같아서 무엇을 섞느냐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

투명한 그대로 놔두면 투명한 채로 눈부시게 환한 빛을 투과하며 영롱한 빛깔들을 선보이지만

반대로 걸쭉하고 찐득하고 탁한 무언가를 넣으면 금세 시커매져서 어떤 것도 통과시키지 않는, 속을 알 수 없는 상태로 되고 만다.

그 마음에 선한 것을 담을 것이냐, 악한 것을 담을 것이냐는 마음의 주인, "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꼿꼿함을 지닌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 때문이든, 어떤 일 때문이든,부는 바람에 따라 흩어지고 모이는 구름처럼 마음이 살랑거린다.

제발 그 마음이 선의 쪽으로 많이 기울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대개의 경우 "악의" 쪽으로 다가가기가 쉽다.

수많은 유혹들 앞에서 당신은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가?

악의에서 발전한 "살의"는 용서받기가 쉽지 않다.

이상하게 책을 덮고 나서는 작가의 트릭에 "당했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생겨난 악의가 살의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진다.

작가에게 너무 크게 당했기에 허탈한 나머지 트릭에 대해 항의할 기력조차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 읽을 때는 그 트릭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천재적인 그 구성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오래된 이야기라 필름조작 카메라 알리바이, 전화공동접속장치를 활용한 알리바이, 열차시간 알리바이 같은 것들에서 가끔 실소를 터뜨릴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넘어가 줍시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 한 때 인기 많았던 드라마 촬영장에서 주인공인 것 마냥  사진을 찍어댈 때 느끼는 희열감과 같은 종류의 묘한 '데자뷰' 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추리소설 작가인 듯 싶은 남자가 7월 7일, 오후 7시에 죽었다.

사인은 청산가리 중독.

그가 살던 집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그의 죽음은 신변 비관 자살로 추정되었다....

 

짧아도 너무 짧은 프롤로그가 던지는 단순명쾌한 사건기록 하나가 이렇게도 놀라운 파동의 진원지가 되다니. 독자는 헨젤과 그레텔이 어두운 산길에서 달빛에 비치는 빵조각 혹은 조약돌에 의지해서 길을 더듬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 신세다. 그래서 더더욱 작가가 제시하는 좁은 길 위를 위태롭게 따라나설 수밖에 없다.

 

 

작가 사카이 마사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캐기 위해 쓰쿠미 신스케와 나카다 아키코가 나선다.

쓰쿠미 신스케는 <추리원탁>이라는 동인잡지에서 함께 활동하며 사카이 마사오와 안면이 있던 사람으로 현재는 <주간 동서>에서 '살인 리포트'를 쓰고 있다. 처음에는 사카이의 죽음과 관련된 원고 의뢰를 받고 취재를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누이동생의 일로 사카이에게 원한을 가질 수도 있을 법한 야나기사와 차장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던진다.

나카다 아키코는 작가인 아버지 세가와 고타로로부터 문하생 격인 사카이 마사오를 소개받고 그과 가까이 지내는 중 갑작스레 그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사카이가 우연히 언급했던  300만 엔에 의문을 품고 돈의 출처를 수소문하던 중, 도야마 오코우치 조선 사장댁 도련님의 행방불명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며 그쪽으로 조사를 하게 된다.

7월 7일의 죽음 이후로 7월 10일, 7월 11일, 7월 17일, 7월 18일...차곡차곡 쌓이는 날짜와 이들의 사건추리 기록은 프롤로그라는 진원지에서 출발하되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작가'라는 이미지는 부드럽고 깨끗하며 차분한 인상에도 어울리지만 음습하고 비굴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도 딱이다. 돈에 궁할 법도 하고 까짓거, 부유한 댁 사모님과 염문을 뿌릴 법도 하다. 하지만 추리소설 신인상도 받았던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추락할까...하는 의문이 든다.

뭐, 차기작에 대한 부담으로 괴로워서일 수도 있지, 여차하면 표절을 생각할지도...라며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사카이 마사오의 진짜 얼굴은 무엇이었을까?

 

 "7월 7일 오후 7시의 죽음"과 같은 날, 같은 시에 죽고자 합니다.

그 제목을 붙였을 때는 딱히 그날 죽으려던 마음은 없었습니다만, 초고를 방치해두기 싫어 고쳐 쓴 작품이 유서가 되다니, 참으로 얄궂은 일입니다. -261

 

 

 

짧은 몇 문장으로 정리되는 사건이지만 저 행간의 이면에는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모방살의'는 자의일까, 타의일까.

사카이 마사오라는 인물의 행적은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

두 사람이 추적하는 사카이 마사오에 대한 사연들은 '구루나 여관'이라는 장소에서 한 점으로 모아진다.

아, 이제 드디어 사카이 마사오의 진면목을 알게 되는 건가, 하는 순간.

빵! 터져 버린 사건의 진상.

사카이 마사오의 미스터리한 죽음은 여러 사람의 "악의"에서 비롯한 "살의" 때문인 것으로 판명된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은 보이지 않는 '악의'를 가득 품은 채 살고 있었다.

돈과 명예.

그딴 게 뭐라고.

추악한 마음들로 인해 벌어지는 유괴, 사기, 거짓말, 모른 척, 표절...

조금씩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는 진상들은 오염된 물이 뻐끔뻐끔 피워올리는 거품처럼 썩은 냄새를 심하게 풍긴다.

추리의 기교로나 미스터리의 완벽함으로 보나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소설이지만

정교하게 쌓아올려진 트릭 이면을 받치고 서 있는 이야기들은 씁쓸한 미소를 자아낸다.

주술과도 같은 힘에 사로잡혀 단숨에 끝까지 읽고 말았는데, 그 주술에서 풀려나자마자 밀려오는 애잔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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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셀프 트래블 - 2015~2016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31
이은영.한동철 지음 / 상상출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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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다양한 얼굴 [셀프트래블 라오스]

 

 

 

동남아 지역은 다 거기서 거기 라고 생각했는데

각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른 것을 보고, 역시 우물 안 개구리는

폴짝 뛰면 안되겠구나~ 라며 반성하게 되었다.

[셀프트래블 라오스]의 목차를 훑어보던 중 독특한 것이 눈에 띄어 먼저 찾아 읽었다.

바로 라오스의 일 년, 라오스 브리핑 부분이었는데

먼저 라오스의 일 년 에는 계절과 축제, 공휴일 등이 소개되어 있었다.

동남아시아는 언제나 여름 아니야? 라며 일 년 내내 같은 기온을 유지하는 것 같이 여겨지던 이 곳에도 계절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라오스의 일 년은 한창 더운 4월을 식혀주는 물 축제와 함께 시작된다. 우기와 건기가 뚜렷이 나뉘며 4-5월은 다른 동남아 지역에 비하면 건조한 편이라 습한 한국의 여름보다 훨씬 쾌적하다고 한다.

12-1월이 가장 추운데, 지역에 따라 영하의 기온을 보이는 곳도 있다고.

다음으로 라오스 브리핑에서는 지리, 자연환경, 민족, 종교, 경제, 에티켓, 라오스 여행 노하우 등이 실려 있는데, 라오스의 역사를 보며 찬란한 왕국의 유산이 전해져 내려오는 유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라오스인들의 머리는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부위이므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지 말아야 한다는 에티켓도 유용한 팁이다.

 

 

사진만으로도 환상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은 설렘이 전해져 온다.

 

 

무엇보다 [미얀마 셀프트래블]을 펴낸 적이 있는 부부가 직접 발로 뛰며 만들어낸 책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고, 그들이 내세운 두 가지 원칙으로 인해 더욱 믿음이 간다.

첫째, 모든 볼거리, 숙소, 레스토랑은 직접 발로 찾아가 확인한 곳으로 수록

둘째, 주관적인 호불호도 존재하지만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며 쓰려고 노력했다는 점.

 

스타일별 라오스 여행을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에 취향에 맞춰 여행 코스를 골라 볼 수 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에 골인한 우리 부부는 신혼 여행 코스를 태국으로 잡았는데

서로 어색하고 심심하기만 할 것 같아  휴양보다는 액티비티 위주로 일정을 짰다.

하지만 다녀오고 나서는 만족감보다는 피곤함만 남아, 우리 취향에는 휴식을 위한 코스가 맞다며 두고두고 후회하곤 했는데...

라오스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스타일별 라오스 여행에서 기필코 1번, 힐링 라오스 코스를 선택하리라, 두 손 불끈 쥐어본다.

 

프랑스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각종 와인과 커피, 빵도 수준급이라는 라오스. 유유히 흐르는 메콩 강변에는 흰색의 독짬빠 아래에서 우아하게 와인을 홀짝이는유럽인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비엔티안에서 강변 레스토랑의 생선구이를 맛보고 방비엥 방갈로에서 일몰을 감상. 송 강에 발 담그고 맥주 한 잔 하는 것도 강추. 루앙프라방 올드타운을 산책하고 에메랄드빛 꽝씨 폭포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농키아우에서 남우 강 보트 여행을 즐기는...

그야말로 스트레스를 훨훨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라오스의 자연과 여유를 만끽하는 여행이 될 것 같다.

 

그 외에도 옛 크메르 왕국이 건설한 왓 푸 사원과 도시가 통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루앙프라방을 돌아보며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흥미진진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컬처 라오스 코스

 

울창한 산과 메콩 강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느낄 수 있는 에코 투어는 진정한 라오스를 느낄 수 있는 액티비티다.

 

최근에야 알려져서 관광지로 각광받기 시작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여행자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비경을 발견할 여지가 더 많은 곳, 라오스

언젠가는 꼭 정복하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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