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흩날리는 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매력적인 여탐정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시작[얼굴에 흩날리는 비]

 

예전에 도서관에서 무턱대고 추리소설 분야의 책들을 뽑아다 읽었을 때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을 보았었다. 온다 리쿠나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특히 오쿠다 히데오 류의 소설들 속에서 기리노 나쓰오라는 이름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옷을 팔랑거리며 뛰어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표지로 쓴 그 책,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은 빨간 원피스에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만화스럽게 표현되어 있어서 어두운 내용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봐서였는지, 충격이 상당히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 한동안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을 찾아 읽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작정하고 읽어보자고 덤벼들었다.

 

'무라노 미로'라는 이름을 한 번 스쳐서인지 그다지 생소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 여탐정 시리즈의 처음을 먼저 읽지 않은 것이 흠이라면 흠일까.

아직은 '탐정'이라는 이름을 걸고 제대로 사건을 맡지 않는 상태의 무라노 미로는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다크]와 [얼굴에 흩날리는 비]를 한꺼번에 눈앞에 두고 어떤 것을 먼저 읽을까, 고민했는데

표지가 좀 더 마음을 끄는 [얼굴에 흩날리는 비]를 먼저 선택하기를 잘했다.

무라노 미로 시리즈는 이런 순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 [얼굴에 흩날리는 비]

1993년 제39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얼굴에 흩날리는 비] 는 대도시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여성 탐정의 비정한 삶을 그린 소설로, 이후 작가는 무라노 미로 시리즈를 연달아 발표하게 된다.

2.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3. [물의 잠 재의 꿈 ] 

4. 미로의 아버지 젠조의 젊은 시절을 그린 단편집 [로즈가든]

5. [다크]

무라노 미로 시리즈는 2002년 [다크]에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기존의 탐정소설의 패턴에서 벗어나 미로라는 한 사람의 여성이 시대와 호흡하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한 기리노 나쓰오는 『다크』에서 의붓아버지를 죽였다는 혐의로 한국으로 도망쳐온 미로, 그녀를 쫓는 게이와 시각장애인 여자, 그런 미로를 돌보는 광주항쟁의 상처가 드리워진 한국 남자들의 끔찍한 복수담을 통해 추락한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통렬하게 그려냈다. <예스24, 저자 소개 중>

 

비가 내리는 새벽. 자카르타에서 죽은 남편 히로오가 눈물을 흘리는 꿈 속에서 헤매고 있던 무라노 미로는 전화벨 소리를 들었지만 받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그냥 둔다. 좋지 않은 소식이라면 내일 아침에 들으면 된다...

하지만 그날 밤 그 전화를 받았더라면...

친구인 르포라이터 요코의 남자친구인 나루세가 한낮에 다짜고짜 찾아와 요코가 1억 엔이라는 큰 돈을 들고 사라졌다고 말한다.

자동차 딜러인 나루세는 조직 폭력단으로부터 사업상 돈을 빌렸는데, 그 돈을 잠깐 요코에게 맡긴 사이 요코가 그 돈과 함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이다.

유명한 탐정 무라젠의 딸인 미로는 광고회사를 다니다 그만 두고 쉬고 있는 상태다. 그녀의 집은 험하기로 악명높은 신주쿠 2초메. 미로에 대한 설명이 잠시 멈춘 사이, 요코 실종 사건 및 사라진 1억엔 행방찾기는 나루세와 요코에게 떨어진다.

어쩔 수 없이 요코를 찾는 일에 동참하게 된 미로는 요코가 O상을 노리고 정성을 들였다던 르포의 주제에 집중한다. 옛 동베를린에 있다는 금발머리 가발을 쓴 매춘 조직에 잠입, 네오나치와의 다툼을 집중 취재하던 것이었는데 요코의 호기심이 재앙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요코가 취재한다던 르포의 주제는 맛보기였던 것일까, 요코의 취미 생활에서부터 기인한 기묘한 인맥은 피어싱 시술자, 시체사진 애호가, 트랜스베스타이트(이성의 옷을 즐겨 입는 복장 도착자)에까지 이어진다.

그런 와중에도 미로는 요코의 남자친구였던 이혼남 나루세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당신을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나루세가 어두운 표정으로 속삭였다.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표정이다.

"어째서?""그랬다면 뭔가 달라졌겠지. 아마 당신도 그렇게 생각할걸."-256

 

평소의 무던한 삶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암흑가의 이야기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펼쳐지다가 갑자기 요코의 시체 사진이 툭 튀어나온다.

첫 장은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물에 떠 있는 사진. 또 한 장은 방파제 같은 곳에 인양된 시체를 찍은 것인 듯, 깜짝 놀란 아기처럼 주먹을 꼭 쥐고 두 팔을 치켜들고 있는 사진..

이로써 요코는 더이상 실종 상태가 아닌 "살해" 상태가 된 것이다.

요코의 시체 사진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비오는 날, 해괴한 모습으로 자택에서 목을 멘 채 발견되고 유력한 살해용의자는 바다를 향해 스스로 뛰어들고 만다.

이렇게 요코의 사건은 일단락되나 싶은 그 때...

 

 

전설의 탐정 무라젠, 무라노 젠지의 피를 이어받은 무라노 미로의 탐정 신고식은 완벽한 반전을 선사하며 멋지게 치러진다.

 

한발짝만 늦었어도 범인을 놓칠 수 있었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 범인을 마주하고서 무심한 듯 멋진 대사를 날리는 무라노 미로.

"그럼 가르쳐드려야겠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정정해줘."-395

시크함이 대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탐정으로서의 임무를 시작하게 되는 건가.

마음 속에 단단한 못을 박아놓고 길을 나아가는 무라노 미로는 멋지다.

이제 어떠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쿨한 모습을 보여주겠지.

시리즈의 처음을, 멋진 형사에게 매혹당한 채 시작할 수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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