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 - 원재훈 독서고백
원재훈 지음 / 비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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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독서고백 [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

 

대체로 다독을 하기는 하되 잡식성이기에 내가 읽은 "문학"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학창 시절 "고전" 목록을 보고 대충 구색 맞추어 읽어야겠다는 "강제적 압박" 때문에 대부분의 이름난 저서들은 휙 훑어보았다고 해야 맞다.

이제 그 때 읽었던 이른바 대문호, 유명작가들의 문학들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고전을 청소년기에 읽으라고 추천하는 이유는 인생의 길잡이가 될 문구들이 있기에 유념하여 두라는 뜻이었을 거다.

하지만 입시공부에 찌들려 있던 그 때 그 시절에는 어지간한 문학소년, 소녀 아니고서는 그 위대한 작가들의 글줄에서 인생의 빛, 위대한 유산을 잡아채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두툼한 단테의 [신곡],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펄 벅의 [대지] 이런 책들을 펼쳐 놓고 앉아 있으면 친구들은 신기한 녀석일세~ 하는 시선으로 기웃거려 보다가 읽던 책을 홱 뒤집어 제목을 보고 "우와~"하고는 금세 내 주위를 떴다.

나는 아마도 두툼한 책으로 벽을 쌓고 아이들과의 시시껄렁한 잡담에서 벗어나려 했을 거다.

무엇이든 까발리지 않고는 못배기는 사춘기적 감성 때문에 내 얄팍한 자존심이 상처받을까 두려워 책을 방패 삼아 친구들의 호기심을 물리치려 했던 것이다.

그러니 문학이 제대로 내게 밝은 빛이 되어줄 리 만무했다.

엄청나게 어려워 보이고 제목조차 발음하기 어려운 책들 뒤에 숨어서 눈으로만 글을 좇아 읽었으니 작가의 철학이 읽힐 리 없고 제대로 된 안목이 길러질 리 없었다.

지금 와서는 그 때 기왕 고전문학을 읽는 김에 제대로 읽어 둘 걸 하는 후회가 든다.

호시절에는 작가와 작품과 주인공 이름까지 주루룩 읊어대며 팽팽한 기억력을 자랑했는데 이제는 늘어진 피부만큼이나 느슨해진 기억 때문에 [도전 골든벨] 문제에서 문학작품 문제가 나오면 머릿속은 몇 초 동안 블랙아웃이 된다. 늙었어, 늙었어...

 

더 나이들기 전에 고전문학에 도전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는 순간이다.

원재훈의 독서고백 [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를 읽을 때야말로...

 

저자만큼 거창한 이유-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를 생각해내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가끔 만나는 진짜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다짐을 해본다.

웬만큼의 경험이 몸 곳곳에 아로새겨진 지금, 문학을 단지 어렵다는 이유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내치고 싶지는 않다.

수험생만큼의 엉덩이 힘을 자랑하지는 않더라도 멋진 작품을 만났을 때 몇 시간 정도는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다.

읽어낸 책을 나의 경험에 비추어 멋지게 글로 재해석해내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내용 요약, 짤막한 감상 정도는 엮어낼 수 있도록 단련해야겠다.

 

저자가 소개해 준 책 중에 대부분은 읽어본 적이 있는 것이지만 내가 읽어낸 감상에 비해 풍부하고 심도 깊은 독서기록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필경사 바틀비]는 [백경]으로 유명한 허먼 멜빌의 작품인데 아직 읽지 않았다.

워낙 입소문이 난 작품이라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책인데 저자의 소개를 읽고 급 검색해서 기어이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다.

최근 문학동네판이 많이 소개되었지만 저자는 창비판을 추천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보다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가 좀 더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와 말하는 것 같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라고 한다.

'하고 안하고'는 바틀비라는 특이한 인물이 보여주는 존재의 고독으로 보기 때문.

 

비채에서 발간된 바 있는 [미국의 송어 낚시],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편에서는 나도 읽은 적 있는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생태주의 문학이란 형식을 처음 접했던 내겐 분명 난해한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저자의 기록을 읽고는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생겼다.

전통적인 소설이 품고 있는 플롯이 없어도 너~ 무 없다며 일단 작품의 독특함을 인정한 다음에는 이 책 나름의 매력을 어필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에서 문장을 보았다며 '무심코 집으려다가 손을 베이게 되는 유리조각 같은 문장들이 나태한 문장을 혼내고 있다'는 표현을 한다.

아! 그랬었지.

분명 이야기로 풀어나가기는 어려웠지만 뭔가 캘리포니아의 반짝이는 햇빛처럼 가슴을 찌르는 문장, 촌철살인의 문장들이 있었단 말이지...

그렇다면 나도 한 번 "살아 꿈틀거리는 싱싱한 송어낚시"를 경험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나의 독서와 저자의 독서를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도 있고,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독법을 배우는 뿌듯함도 있다.

카뮈, 헤밍웨이, 하루키, 생텍쥐베리, 얀 마텔...

문학 속에서 '대단한' 작가들을 소환해내고 삶의 비밀을 숨겨 놓은 문장을

찾아나서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얼마만의 '의욕'이 불타오르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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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
제니 페이건 지음, 이예원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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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들은 날 보고 있어 ... [파놉티콘]

 

"난 실험이다."

라고 읊조리는

한 소녀가 있다.

좀 있으면 열여섯이 되는 아나이스는 위탁가정과 보호시설을 전전하며 생활한다.

엄마 테리사는 어린 그녀만 남겨 두고 일찍 죽었다.

여러 번의 폭력 전과, 마약 소지 등의 혐의를 받으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아나이스는 이번에 여경을 곤봉으로 쳐서 의식불명에 이르게 한 것 때문에 파놉티콘에 갇히게 된다.

가운데 우뚝 솟은 망루는 이제부터 아나이스가 감시체제하에 들어오게 되었음을 위협적으로 알린다.

상처 입은 청소년들이 그러하듯 아나이스는 험악한 말투를 구사하고 몸차림새도 단정치 못하다.

파놉티콘 내에서도 경계수위가 높은 편이며 감독자들은 아나이스를 예의주시하고 그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그만큼 위험인물이란 말이다. 하지만 다른 감독자들과 달리 앵거스는 그녀를 특별히 대해준다.

 

"넌 다른 애들과 달라. 아나이스. 그거 아니? 그리고 경찰이랑 헬렌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보기엔 넌 통찰력도 있고 똑똑한 아이 같단 말이지."-243

 

아나이스는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천사 같은 면모를 헤아려 주는 앵거스에게 기대는 마음이 있지만 앵거스가 자신에 대해 쓴  보고서를 보고는 "실험"의 존재를 몸서리치게 떠올린다.

 

나는 아나이스에게 언제까지 시설에 머무느냐는 본인에게 달려 있음을 넌지시 암시했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내 이 발언은 다소 무신경했던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아나이스가 한 가족의 일원이 될 확률은 이제 그리 높지 않다. 그럼에도 이 용어가 유년기 이후로 지속되는 시설 생활을 암시한다는 사실은 몹시 우려되는 바다. -319

 

자신은 실험 대상이며 감시받는 기분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고 믿는 아나이스는 파놉티콘 안에서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일까?

일개 평범한 인간이며 사회적 실험의 일환이 아니며 나란 사람으로 사는 멋스러움을 언제까지고 간직하고 싶다고...스스로에게 세뇌시키는 아나이스의 흔들리는 마음이 애처롭다.

기모노, 바닥, 피, 벽, 엄마가 피우던 담배...

불쑥 불쑥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아나이스의 죄책감을 상기시킬 뿐이다.

엄마가 돈을 위해 매춘을 하던 그 시각, 옆방에 있었으면서도 한 시간 넘게 싸늘한 채로 굳어가는 엄마를 발견하지 못했던 자기자신을 자책, 자책, 자책할 뿐.

그리고 심각한 손상을 입은 정신은 그녀 주위에 "실험"이 있어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실험도 감시탑과 같다. 자기들은 어딘들 다 들여다볼 수 있지만 우린 그 속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실험은 감시탑보다도 더 똑똑한 게, 장소에 상관 없이 어디에서건 감시를 할 수 있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창문 너머로 당신이 잠든 모습을 들여다보고 서 있는 사내와 같다고 상상하면 된다. 매일 밤마다 텔레비젼을 보듯 창가에서 당신의 꿈을 구경하는 거다. 가끔은 침대에 앉아 이런저런 말을 속삭여 꿈을 재배열하기도 한다. -178

 

감시하는 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항상 몽롱한 정신상태를 유지하려는 아나이스는 사람들이 이상하다.

온라인에 사진을 올리고 남들이 자신을 감시하길 원한다.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에겓 감시당하며 사는데도 그걸 눈치채지 못한다.

 

아나이스가 병적으로 벗어나고 싶어하는 "감시"의 눈길을 우리는 지금 태연하게 받아내고 있다.

오히려 그 감시의 눈길을 갈구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아나이스처럼 온몸으로 발버둥치며 벗어나고 싶다고 외치지 않는다.

그저 종속된 채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아나이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좀 순응하며 얌전히 살아내면 안되느냐고...

충고하기 위해 입을 달싹이려 하지만 우리의 처지를 되돌아보면 그 말이 선뜻 입밖으로 꺼내지지가 않는다.

파놉티콘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바보 같고 나약한 인간들 중 하나가 되어 가고 있기에...

 

작가는 여성 교도소 수감자들과 보호대상청소년, 시각장애자와 병원 환자들과 문예 창작을 해왔다고 한다. 성장기 대부분을 사회복지 시설의 테두리 안에서 보낸 작가가 "파놉티콘" 안에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한 개인이 된다는 것이 그런 상황 속에서 가능한지 묻는다, 그리고 감시와 통제 하에 살며 자기 주장과 권리를 내세울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우리 삶에서도 가능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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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2월에 쓰는 1월의 에세이 주목 신간페이퍼

 

 

 

벌써 2월이다.

아이들 방학으로 12월 말과 1월이 정신없이 지나고 나니 어느덧 개학이 다가왔다.

그리고 2월도 함께...

 

까치까치 설날과 우리우리 설날을 맞이하게 되는 달이기도 하다.

다른 달보다 다소 짧아 2월은 있으나 마나 한 달로 취급하게 되는데

그래도 우리집 행사 안에서는 남편의 생일이 들어 있어 소중한 달로 기억해야 한다.

 

책을 읽을 짬이 있을까 싶은데...

그래도 찜해둘 책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너무 많아서 몇 권을 덜어내야 하는데 무얼 덜어낼지 고민이 된다.

다양한 에세이가 짧아서 더욱 아쉬운 2월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1.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 온전한 나를 위한 혜민 스님의 따뜻한 응원 choice

혜민 (지은이), 이응견 (그림) | 수오서재 | 20162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 스님의 4년 만의 신작. 완벽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한 나 자신과 가족, 친구, 동료, 나아가 이 세상을 향한 온전한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혜민 스님의 전작을 기분 좋게 기억하고 있어서 이번 책이 기대된다.

처음 블로그 시작했을 즈음 만난 에세이라 어떻게 리뷰를 쓸까 고민이 많았는데

편안하게 써나갈 수 있었던 책 중의 하나다.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책이 주는 위안이다. 책을 읽으며 쉬어갈 수 있게 해준 혜민스님의 글 덕분에 많이 순화되었다. 이번에는 사랑의 메시지인가...

 

 

2. 나만 알고 있는 유럽의 작은 도시

- 여행기자 톰 체셔가 들려주는 소도시 탐방기

톰 체셔 (지은이), 유지현 (옮긴이) | 이덴슬리벨 | 20161

 

 

2의 빌 브라이슨, 톰 체셔와 함께 떠나는 유럽의 작은 마을 탐방기. 흔한 여행지, 흔한 여행서가 아닌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생소한 소도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유럽의 색다른 매력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주는 특별한 여행서가 될 것이다.

 

 

 

여행 가이드 책을 많이 보게 되지만 대개는 유명한 도시들 위주로 소개되기 일쑤다.

유럽의 작은 도시, 그 도시에 "나만 알고  있는"이란 말을 붙이자 좀 더 특별한 도시가 되었다.

나도 언젠가는 나만 알고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이 책의 제목에 주목한다.  

 

 

3. 14-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리사 고이치 (지은이), 김미란 (옮긴이) | 가나출판사 | 20161

 

 

201112월 부모님과 함께 긴 주말을 보내기 위해 고향을 찾은 리사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게 된다. 신장투석을 위해 병원에 입원한 엄마가 가족들에게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책에는 엄마와의 마지막 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채우고 행복하게 떠나보낸 리사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슬픈 이야기일 것이 예상된다.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라.

이미 떠나보낸 이를 제외하고는 언젠가 맞닥뜨리고 말 그 순간!

아직 내게 오지 않은 그 시간에 대비해 마음준비 해 보고자...읽어두고 싶다.

 

4. 사소한 것들의 거룩함

- 에세이 고종석 선집

고종석 (지은이) | 알마 | 20161

 

 

다채로운 산문세계를 펼쳐온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고종석의 선집이 완간되었다. 이번 책 <사소한 것들의 거룩함>에는 모두 54편의 에세이가 담겨 있다. 사랑, 언어, 여자, 도시, 영화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모두 4부 구성 아래 정연하게 갈무리했다

 

 

 

 

고종석이란 이름 때문에 멈춰선 책이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그의 생각, 그의 글들의 궁금해진다.

 

 

 

5. 작가와 고양이

이평재, 박형서, 우석훈, 이민하, 곽은영, 윤이형, 염승숙, SOON, 김형균, 김경 (지은이) | 폭스코너 | 20161

 

 

지금 대한민국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11명의 고양이 반려인이 털어놓는 가슴 찡한 감동 에세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작가들이 인간과 고양이 사이의 종을 초월한 교류와 공존의 이야기, 그리고 고양이를 키우며 반추하게 되는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풀어놓았다.

 

 

 

고양이 만화를 즐겨 보는데, 고양이 만화를 그리는 작가 대부분은 고양이 집사나 동거인이다.

고양이 포토 에세이로 유명한 이용한의 책들도 자주 본다. 그 책들을 보며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새록새록 생겨나는 중인가 보다.

어느 틈엔가 제목에 고양이가 들어 있기만 하면 무조건 멈추고 본다.

직접 키우지는 않지만 고양이에 대한 어떤 감정이 뭉클뭉클 솟아나고 있는 중인가 보다.

작가들이 쓴 고양이 이야기는 그래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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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3 - 야!야!야!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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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새들과 함께 파다다닥!  [콩고양이 3]

 

 

콩고양이 3권이 나왔네요.

표지들도 개성이 넘치고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한 웃음이 기대됩니다.

 

이번 제목은 [야! 야! 야!] 인데요...

한 번 읽어보니 어째~ 말투가~

평소 아이들한테 쓰는 말투로 나와서 저 스스로도 놀랐다죠^^

 

가만히 책 잘 읽고 있던 첫째도, 간식 먹고 있던 둘째도

깜짝 놀라며 "응, 왜?" 하고 대꾸했답니다.

엄마의 잔소리에 최적화되고 훈련된 아이들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대답에 혼자 큭큭...웃음 삼키며

"아니야, 책 제목이야. 놀라기는...하던 일 계속해." 했다는...웃지 못할 전설.

 

우리의 콩고양이..

콩알이와 팥알이는 이번에도

상냥하게 '새오'체로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새오. 저...서점에 1,2권도 있어오."

은근 따라해 보고 싶어지고, 따라 하다보면 중독되는 콩고양이들의 귀여운 말투.

콩알이와 팥알이는 3권의 문을 참새들과 함께 여네요.

심심해~ 심심해 하며 빙그르, 꾹꾹이를 즐기고 있던 중,

둥글둥글 순둥이 콩알이 배 위로 난데없이 참새 한 마리가 슈~웅 떨어집니다.

게다가 넉살 좋은 건지, 세상 물정 모르는 건지.

이 참새 한 마리는 째~ 하고 크게도 울어젖힙니다.

 

 

첫 여덟 페이지는 칼라판. 그 뒤로는 흑백판이라

절묘하게 겹치는 이 부분은 칼라 반, 흑백 반입니다.

기절하듯 드러누워 있는 콩알이와 나몰라라 하는 팥알이. 거기다 참새를 불쌍히 여기는 내복씨까지.

이 셋의 조합은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냅니다.

어느새 지붕 위와 마당의 나무를 점령해 버린 참새들.

한 마리일 때와 무리지어 있을 때의 위상은 사뭇 다르네요.

한 마디로 위.협.적.

 

떨어져 버린 참새를 다시 올려 주려고 내복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는데요

꾸에엑~

 

 

내복씨의 으어! 하는 짧디짧은 비명.

요것도 은근 중독성 있습니다.

 

참새연립주택화 되어 버린 지붕.

빼꼼빼꼼 내다 보는 참새들 저마다의 표정과 내복씨의 놀라는 표정이 너무 대조적이라

웃음이 빵~터집니다.

 

제 집을 찾지 못한 참새는 한동안 마담 북슬을 제외한 식구들의 비호 아래

동거하게 됩니다.

콩알이, 팥알이. 거기에 참새까지 가세하나 했더니

 

한참 후엔 까칠도도한 암탉네 집에 암탉 대신 야생 염주비둘기 부부가 입주하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이번 3권은 고양이들과 새들의 환상 협주가 곳곳에서 울려퍼지지요.

 

이 집안은 언제 조용함을 되찾을까요.

 

 

요렇게..

내복씨 양 무릎에 한 마리씩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

너무 좋은데 말이죠^^

 

투닥투닥

우다다다다

파바바박

부비부비

펄럭펄럭펄럭

마지막에 딩~ 까지

 

콩고양이들이 빚어내는 재미진 의성어, 의태어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째째째~와 구구구~는 덤이지요.

 

심심할 때 한 권씩 꺼내 읽으면 그저 웃게 됩니다.

그 웃음 소리는 아무래도 점점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을 겁니다. 냐옹~~

재미있게 읽어주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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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바 2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5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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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살아봐"라고 읽고 싶다 [사라바 2]

 

가족은 언제나 함께여야 하고

마음의 안식처이며

힘들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는 것은 일부에서만 통용되는 '상식'이다.

이 상식은 우리나라와 같이 유교문화가 널리 퍼진 곳에서는 다수의 암묵적 동의하에 꼭 지켜야할 불문율처럼 강제되어져 왔다.

그리하여 "가족"이라는 말은 항상 따뜻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에서 쓰는 단어여야 하고

우리 모두가 그리는 '가족'의 테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뭔가가 감지되면

가족의 구성원은 불행하다, 비정상이다 라는 기분에 사로잡혀 상대적 우울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가족은 전통적 의미의 가족에서 많이 동떨어진 상태로 자라나, 가지각색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제는 내 가족을 다른 가족과 비교할 이유도, 명분도 없는 것이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도 지쳐 있는 상태인데 '가족'까지 챙겨야 하다니...

 

[사라바]의 아유무는 어린 시절 행복했던 가족의 기억을 갖고 있지만 어느 순간 산산조각이 난 가족의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격한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는 누군가는 아유무의 가족 중 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이 책을 읽어나가게 될 것이다.

적극적으로 뭔가를 찾아 나서지는 않고 오직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영향만으로 휩쓸리듯 살아온 사람이라면 아유무에게.

자신 안의 "뿌리"를 찾는 일에 너무 오랜 시간을 쏟았지만 결국은 올바른 방향을 찾아 제자리에 우뚝 선 사람이라면 아유무의 누나 다카코에게.

스스로 기가 세고 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지만 마음 한 구석은 여리고 여려서 "사랑"앞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아유무의 엄마에게.

그 외에도 각기 다른 특성을 보이는 인물 군상에서 자신과 가장 닮은 사람을 찾아 그 인물의 삶에 자신의 현재 삶을 비춰보면서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사라바]가 "살아봐"로 읽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유무의 퇴직한 아버지는 결국 출가하고

누나도 종교적 방랑을 거듭한다. 야다 아주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도 있겠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사토라코몬사마를 대신하는 뭔가를 찾는 정신 여행을 떠난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한 뒤 느슨함과 타이트함을 오가며 기댈 수 있는 남자를 찾아다녔다.

아유무는 결국, 어떤 길을 걷느냐 하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지진을 계기로 친했던 친구 스구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며

애인에게는 배신을 당한다. 자신을 놓아 버리고 마구잡이로 살다시피하며 대학 졸업 후에도 프리터로 살아간다.

하지만 뜻밖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결혼을 한 채 나타난 누나가 건넨 한 마디에 아유무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빛을 발견하게 되는데...

 

너도 네가 믿을 것을 찾아. 너만이 믿을 것을..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면 안 돼. 물론 나하고도, 가족하고도, 친구하고도. 그냥 너는 너인 거야. 너는 너일 수밖에 없는 거란 말이야. (...)

네가 믿을 걸 누군가한테 결정하게 해서는 안 돼.-295

 

너무나도 강력한 메시지를 발하는 아유무의 누나는 이제 완벽히 자신의 줄기를 곧추 세우고 그 줄기의 힘을, 전파하고 있다.

흩어져 버린 가족에게서 절망의 빛만을 보았던 아유무는 그 일원인 누나로부터 구원의 실마리를 얻게 되고, 마지막 남은 일 하나, 아버지를 찾아가 어머니와 헤어진 이유를 들으러 간다.

이제는 완연히 수도하는 고승의 면모를 보이는 아버지로부터 그간의 사정을 전해 들은 아유무는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일을 결정해야 한다는 화두를 들고 서 있게 되었다.

"살아봐,"

속삭이듯 말하는 것이 더없이 어울리는 단어.

가족에게 매달려 뭔가를 희생해야 하고 희생한 만큼 가족에게서 뭔가를 얻어야만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온 나에게는

나 자신만을 위해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 크게 다가왔다.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을 자꾸 외부에서 구하려 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가족이 만사형통의 지름길이 아님을, 이 독특하고 용감한 소설이 일깨워주었다.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비교당하기만 해서는 스스로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만을 찾아 헤매고 다녀서는 행복의 문이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사라바"하고 주문을 외우면 내 인생의 어떤 지점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사라바"하고 되뇌는 동안에는 내 생각만 하련다.

내 마음이 편해지고 내가 기쁠 수 있는 것을 찾아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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