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티콘
제니 페이건 지음, 이예원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저들은 날 보고 있어 ... [파놉티콘]

 

"난 실험이다."

라고 읊조리는

한 소녀가 있다.

좀 있으면 열여섯이 되는 아나이스는 위탁가정과 보호시설을 전전하며 생활한다.

엄마 테리사는 어린 그녀만 남겨 두고 일찍 죽었다.

여러 번의 폭력 전과, 마약 소지 등의 혐의를 받으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아나이스는 이번에 여경을 곤봉으로 쳐서 의식불명에 이르게 한 것 때문에 파놉티콘에 갇히게 된다.

가운데 우뚝 솟은 망루는 이제부터 아나이스가 감시체제하에 들어오게 되었음을 위협적으로 알린다.

상처 입은 청소년들이 그러하듯 아나이스는 험악한 말투를 구사하고 몸차림새도 단정치 못하다.

파놉티콘 내에서도 경계수위가 높은 편이며 감독자들은 아나이스를 예의주시하고 그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그만큼 위험인물이란 말이다. 하지만 다른 감독자들과 달리 앵거스는 그녀를 특별히 대해준다.

 

"넌 다른 애들과 달라. 아나이스. 그거 아니? 그리고 경찰이랑 헬렌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보기엔 넌 통찰력도 있고 똑똑한 아이 같단 말이지."-243

 

아나이스는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천사 같은 면모를 헤아려 주는 앵거스에게 기대는 마음이 있지만 앵거스가 자신에 대해 쓴  보고서를 보고는 "실험"의 존재를 몸서리치게 떠올린다.

 

나는 아나이스에게 언제까지 시설에 머무느냐는 본인에게 달려 있음을 넌지시 암시했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내 이 발언은 다소 무신경했던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아나이스가 한 가족의 일원이 될 확률은 이제 그리 높지 않다. 그럼에도 이 용어가 유년기 이후로 지속되는 시설 생활을 암시한다는 사실은 몹시 우려되는 바다. -319

 

자신은 실험 대상이며 감시받는 기분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고 믿는 아나이스는 파놉티콘 안에서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일까?

일개 평범한 인간이며 사회적 실험의 일환이 아니며 나란 사람으로 사는 멋스러움을 언제까지고 간직하고 싶다고...스스로에게 세뇌시키는 아나이스의 흔들리는 마음이 애처롭다.

기모노, 바닥, 피, 벽, 엄마가 피우던 담배...

불쑥 불쑥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아나이스의 죄책감을 상기시킬 뿐이다.

엄마가 돈을 위해 매춘을 하던 그 시각, 옆방에 있었으면서도 한 시간 넘게 싸늘한 채로 굳어가는 엄마를 발견하지 못했던 자기자신을 자책, 자책, 자책할 뿐.

그리고 심각한 손상을 입은 정신은 그녀 주위에 "실험"이 있어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실험도 감시탑과 같다. 자기들은 어딘들 다 들여다볼 수 있지만 우린 그 속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실험은 감시탑보다도 더 똑똑한 게, 장소에 상관 없이 어디에서건 감시를 할 수 있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창문 너머로 당신이 잠든 모습을 들여다보고 서 있는 사내와 같다고 상상하면 된다. 매일 밤마다 텔레비젼을 보듯 창가에서 당신의 꿈을 구경하는 거다. 가끔은 침대에 앉아 이런저런 말을 속삭여 꿈을 재배열하기도 한다. -178

 

감시하는 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항상 몽롱한 정신상태를 유지하려는 아나이스는 사람들이 이상하다.

온라인에 사진을 올리고 남들이 자신을 감시하길 원한다.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에겓 감시당하며 사는데도 그걸 눈치채지 못한다.

 

아나이스가 병적으로 벗어나고 싶어하는 "감시"의 눈길을 우리는 지금 태연하게 받아내고 있다.

오히려 그 감시의 눈길을 갈구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아나이스처럼 온몸으로 발버둥치며 벗어나고 싶다고 외치지 않는다.

그저 종속된 채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아나이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좀 순응하며 얌전히 살아내면 안되느냐고...

충고하기 위해 입을 달싹이려 하지만 우리의 처지를 되돌아보면 그 말이 선뜻 입밖으로 꺼내지지가 않는다.

파놉티콘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바보 같고 나약한 인간들 중 하나가 되어 가고 있기에...

 

작가는 여성 교도소 수감자들과 보호대상청소년, 시각장애자와 병원 환자들과 문예 창작을 해왔다고 한다. 성장기 대부분을 사회복지 시설의 테두리 안에서 보낸 작가가 "파놉티콘" 안에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한 개인이 된다는 것이 그런 상황 속에서 가능한지 묻는다, 그리고 감시와 통제 하에 살며 자기 주장과 권리를 내세울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우리 삶에서도 가능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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