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살아봐"라고 읽고 싶다 [사라바 2]
가족은 언제나 함께여야 하고
마음의 안식처이며
힘들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는 것은 일부에서만 통용되는 '상식'이다.
이 상식은 우리나라와 같이 유교문화가 널리 퍼진 곳에서는 다수의 암묵적 동의하에 꼭 지켜야할 불문율처럼 강제되어져 왔다.
그리하여 "가족"이라는 말은 항상 따뜻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에서 쓰는 단어여야 하고
우리 모두가 그리는 '가족'의 테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뭔가가 감지되면
가족의 구성원은 불행하다, 비정상이다 라는 기분에 사로잡혀 상대적 우울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가족은 전통적 의미의 가족에서 많이 동떨어진 상태로 자라나, 가지각색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제는 내 가족을 다른 가족과 비교할 이유도, 명분도 없는 것이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도 지쳐 있는 상태인데 '가족'까지 챙겨야 하다니...
[사라바]의 아유무는 어린 시절 행복했던 가족의 기억을 갖고 있지만 어느 순간 산산조각이 난 가족의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격한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는 누군가는 아유무의 가족 중 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이 책을 읽어나가게 될 것이다.
적극적으로 뭔가를 찾아 나서지는 않고 오직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영향만으로 휩쓸리듯 살아온 사람이라면 아유무에게.
자신 안의 "뿌리"를 찾는 일에 너무 오랜 시간을 쏟았지만 결국은 올바른 방향을 찾아 제자리에 우뚝 선 사람이라면 아유무의 누나
다카코에게.
스스로 기가 세고 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지만 마음 한 구석은 여리고 여려서 "사랑"앞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아유무의
엄마에게.
그 외에도 각기 다른 특성을 보이는 인물 군상에서 자신과 가장 닮은 사람을 찾아 그 인물의 삶에 자신의 현재 삶을 비춰보면서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사라바]가 "살아봐"로 읽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유무의 퇴직한 아버지는 결국 출가하고
누나도 종교적 방랑을 거듭한다. 야다 아주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도 있겠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사토라코몬사마를 대신하는 뭔가를 찾는 정신
여행을 떠난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한 뒤 느슨함과 타이트함을 오가며 기댈 수 있는 남자를 찾아다녔다.
아유무는 결국, 어떤 길을 걷느냐 하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지진을 계기로 친했던 친구 스구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며
애인에게는 배신을 당한다. 자신을 놓아 버리고 마구잡이로 살다시피하며 대학 졸업 후에도 프리터로 살아간다.
하지만 뜻밖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결혼을 한 채 나타난 누나가 건넨 한 마디에 아유무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빛을 발견하게
되는데...
너도 네가 믿을 것을 찾아. 너만이 믿을 것을..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면 안 돼. 물론 나하고도, 가족하고도, 친구하고도. 그냥 너는 너인
거야. 너는 너일 수밖에 없는 거란 말이야. (...)
네가 믿을 걸 누군가한테 결정하게 해서는 안 돼.-295
너무나도 강력한 메시지를 발하는 아유무의 누나는 이제 완벽히 자신의 줄기를 곧추 세우고 그 줄기의 힘을, 전파하고 있다.
흩어져 버린 가족에게서 절망의 빛만을 보았던 아유무는 그 일원인 누나로부터 구원의 실마리를 얻게 되고, 마지막 남은 일 하나, 아버지를
찾아가 어머니와 헤어진 이유를 들으러 간다.
이제는 완연히 수도하는 고승의 면모를 보이는 아버지로부터 그간의 사정을 전해 들은 아유무는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일을 결정해야 한다는
화두를 들고 서 있게 되었다.
"살아봐,"
속삭이듯 말하는 것이 더없이 어울리는 단어.
가족에게 매달려 뭔가를 희생해야 하고 희생한 만큼 가족에게서 뭔가를 얻어야만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온 나에게는
나 자신만을 위해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 크게 다가왔다.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을 자꾸 외부에서 구하려 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가족이 만사형통의 지름길이 아님을, 이 독특하고 용감한 소설이 일깨워주었다.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비교당하기만 해서는 스스로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만을 찾아 헤매고 다녀서는 행복의 문이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사라바"하고 주문을 외우면 내 인생의 어떤 지점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사라바"하고 되뇌는 동안에는 내 생각만 하련다.
내 마음이 편해지고 내가 기쁠 수 있는 것을 찾아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