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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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명화 인문학 [내 생애 마지막 그림]

 

 

 

 

익히 보아 오던 명화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게 해 준다.

서양회화사는 대부분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파, 현대 등의 흐름으로 이야기하기 마련인데

나카노 교코는

단 한 마디로 이런 설명을 "살짝 싫증나기도 한다."라며 경쾌하게 꼬집는다.

 

미술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은 이런 흐름에 맞춰 읽는 것이 정석인 양,

전문가들이 풀어 쓰는 해설에 고개를 마냥 끄덕이며

따라 읽어가게 마련이다.

살짝 다른 흐름으로 읽어주는 책이 나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고.

 

저자는 자신만의 분류법으로 명화들을 가려 뽑아

쉽게 설명한다.

'화가가 무엇을 그려왔는지,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무엇을 그렸는지'에 초점을 둔 해설이라...

보통 한 명의 이름난 화가는 '대표작'으로만 기억하기 마련이다.

가령 고흐는 '해바라기'나 '자화상'

모네는 '수련' 시리즈

페르메이르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등으로 기억한다.

화가가 절정기를 맞이했을 때 그린 그림은 쉽게 기억하지만 화가의 마지막 그림은

꽤 많은 것을 응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하지 못한다.

저자에 따르면 '화가가 왜 그것을 그릴 수밖에 없었나'라는 질문,

혹은 화가의 일생을 온전히 설명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생애 마지막 그림]은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다.

화가와 신, 화가와 왕, 화가와 민중으로 나누었는데

대부분 서양회화의 흐름상

작가의 활동연대와 비슷하게 나누어진다.

몇 몇 시대를 뛰어넘는 화가를 제외하고는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긴 것이다.

기독교,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에 몰두한 화가들,

왕과 고용관계를 맺은 궁정화가들,

새로운 세계를 이끄는 시민계급에 바짝 다가간 화가들.

 

15세기에서 19세기를 살아간 화가들이 어떤 노력 끝에 걸작을 탄생시켰는지,

나아가 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무엇을 남겼는지

그 이야기들을 낱낱이 파헤치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화가와는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보티첼리부터 고흐까지

시대를 풍미한 화가들의 절정기 작품과 더불어

생애 마지막 그림을 살펴보는 과정은 화가들의 삶을 두루 훑어보는 것과 진배없다.

 

절정기 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화가가 있는가 하면

생의 마지막에 더욱 유려한 경지에 이른 화가도 있고,

활기를 잃은 채 형식적인 그림을 그려 실망을 안겨주는 화가도 있다.

 

 

고야의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던 고야는 다양한 기풍의 그림을 섭렵하고 현대에 이르러 숨겨진 인간 심리까지 드러내면서 마침내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들었다.

교외의 별장 '귀머거리의 집'에 틀어박힌 그가 말년에 그린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의 10배, 20배 농축된 인생을 살았떤 이 천재가 검정 콩테로 그린 자화상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이다.

짤막한 나카노 교코의 평 한 마디.

고야, 만세.

 

 

"얼굴 같은 건 닮지 않아도 좋다. 위대함을 표현하라."

어용화가로 활동한 다비드.

강렬하고 영웅적인 황제의 이미지를 그렸던 다비드는 주류에서 벗어난 시점부터 인기를 잃어간다.

 

 

밀레가 아카데미 회화에 대해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연극 같은 그림" 이라고 퍼부었던 비판을 인정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비너스와 삼미신에게 무장해제되는 마르스>

 

그냥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면 선명한 인물이 부각되어 잘 그린 그림이다, 하고 넘어갈 것인데...

삼미신의 묘사는 우스울 정도로 유형적이라며

영혼이 빠져나간 그림이라고 꼬집는다.

 

페르메이르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로 유명한데

실제로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의 화가였다고 한다.

 

물방울 모양의 진주 귀고리를 한 그녀만큼은 다른 페르메이르 작품의 트로니와는 달리

실존했던 소녀의 초상임이 틀림없다.

이 정도로 인상적인 눈동자와 이 정도로 호소력 있는 입술의 주인이

'아무도 아닐 리' 없기 때문이다. -224

 

누구나 다양하게 이야기를 붙여보고 싶게끔 만드는 점이 페르메이르의 매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비록 절정기에 비해 솜씨가 현격히 떨어지더라도 그를 비웃기 보다는 옹호하는 편에 선다.

 

팬은 현재의 목소리 너머에 존재하는 과거의 빛나는 목소리를 듣고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감상법을 취한다고 해서 무엇이 나쁜가?-233

 

미술품 감상에 있어 기본지식이 없다는 것 때문에

자신만의 감상을 펼치기 어려워하는 일반인에게

나카노 교코의 수다 같은 감상은 새롭게 다가온다.

좀 더 과감하게 좀 더 용감하게

나만의 관점으로 그림을 바라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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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하이든
사샤 아랑고 지음, 김진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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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범행, 뒤바뀐 결말 [미스터 하이든]

 

 

 

아무 기대 없이 읽었다.

예상과 달리 페이지가 빨리 빨리 넘어갔다.

가볍게 툭툭 던지는 듯한 주인공의 나레이션은 종종 웃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미스터 하이든.

제목과 같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만 같은 사나이 헨리는

진실을 감추고 거짓 인생을 살고 있었다.

거짓 인생을 살면 뭔가가 많이 삐그덕거려야 하는데, 그의 삶은 순탄했다.

베티가 그의 아이를 갖기 전까진!

 

헨리는 사실 어두운 과거를 가진 남자다.

어떻게 보면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충분히 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소년원을 전전하며 친구들을 알게 모르게 괴롭히면서도 전혀 거리낌 없었던 그 소년은...

특별한 여인을 만나면서 한 순간에 멋진 스릴러 작가로 변모한다.

 

마르타의 원고는 '침묵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그렇지! 헨리는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단순명료한 게 그가 써도 딱 그렇게 썼을 것 같았다. -20

 

그렇다. 그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지만 사교관계를 꺼리는 여인의 작품을 지하실에서 끄집어내면서 그녀 대신 작가 행세를 하게 된다.

그녀, 마르타는 헨리의 아내가 되었고 거의 하루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마르타는 글만 써댔다.

 그녀가 써낸 글이 편집자의 눈에 들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공감각적 능력이 있었던 마르타에게 모든 냄새와 소리에 각각의 색깔과 무늬가 존재했다. 단어들은 신비로운 빛을 뿜어 내는 것처럼 보였고  헨리의 웃음에서조차 진한 남색 스프링이 튀어나온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녀의 재능은 특별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런 마르타가 어느날 "2층에 회색 담비가 있다."며 일에 방해받음을 호소할 때...

헨리에게도 불운의 그림자가 닥쳤다.

출판사 편집자이자 정사를 나누는 관계였던 베티가 아이를 가졌다고 통보해 온 것이다.

이제 그는 최고의 남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할 위험에 직면했다.

베티에게 이별을 고하려고 바닷가의 낭떠러지에서 만나기로 한 헨리는  충동적으로 세워져 있던 베티의 차를 들이받아 낭떠러지로 밀어 버린다. 이제 베티와는 안녕이라며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집 초인종을 누른 사람은...

 

문을 열자 빗속에 베티가 서 있었다.

그녀는 혼자였다.

"헨리, 부인이 다 알고 있어요."

"마르타는 당신을 정말 잘 이해하는 것 같았어요. 정이 무척 깊은가봐요. 그러고 나서 차를 타고 절벽으로 갔어요."-91

 

헨리는 아내를 죽인 죄책감 때문에 생전에 아내를 괴롭혔던 담비가 지붕을 갉아먹는 환청에 시달린다.

끔찍한 살인마이자 냉혈한으로 비춰지는 그에게도 한낱 양심이라는 것이 남아 있음일까.

 

아내의 소설을 자신의 것이라 거짓말하면서 쌓여왔던 죄책감에 아내를 실수로 죽인 일까지 겹치고, 게다가 그 일을 덮기 위해 또 하나의 일을 벌이는 헨리.

거짓은 거짓을 낳고, 그로 인해 마음 속에 무거운 돌을 잔뜩 쌓고 사는 헨리의 심리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정교하게 짜여져간다.

헨리는 정말 아내 마르타를 사랑하기나 한 것일까?

그의 사랑마저 거짓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커다란 반전일 게다.

자신이 숨긴 과거 악인의 흔적을 모은 옛친구와 아내살해 혐의로 자신을 옭아매는 형사의 손에서 헨리는 보기 좋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

긴장감 넘치는 사건전개가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서서히 차오르는 밀물과 살며시 물러가는 썰물의 수위차가 급격해서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당신 형사 아니야? 인간 사냥꾼이잖아. 빌어먹을, 왜 쏘지를 못해?

형사는 인간사냥을 하는 게 아닙니다. 진실을 알아내는 겁니다.

나한테서? 내 안에 진실은 없어. 물고기들에게 뜯어 먹혔고 불 속에서 타버렸더. 다 타서 재가 됐다고. -340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는 것보다는 항상 혼자인 것이 낫다.-348

 

 

이제 완전히 혼자가 되어버린 헨리의 쓸쓸한 독백을 읽으면 진실 따위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헨리가 아내 마르타를 사랑했는지 여부에 더 관심이 가는...

약간은 어설픈 악인의 뒷모습.

헨리가 좀 더 완벽한 악인의 모습을 했더라면, 아내 마르타가 조금만 더 사악하고 끈질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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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동서대전 - 이덕무에서 쇼펜하우어까지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한정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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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득(自得')의 묘를 깨달아야 [글쓰기 동서대전]

이 책에는 '글을 잘 쓸 수 있는 길잡이'가 될 만한 내용은 담겨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을 잘 쓸 수 있는 묘책이나 비법'은 없다고 하겠다. 괴테나 박지원과 같은 다른 사람의 묘책이나 비법을 길잡이 삼아 나아가는 가운데 자신만의 묘책과 비결을 스스로 깨달아 터득하는 것, 이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따라서 글쓰기 철학과 미학의 궁극적인 경지는 '자득 (自得)' 일 수밖에 없다. -596

 

글을 좀 잘 써 보고 싶어서 문장 쓰기의 비결, 비법 이런 키워드가 들어 있는 책이 보이면 금세 눈독을 들이고 만다. 글쓰기에 관한 책 몇 권을 읽어보았지만 국어 시간에 배운 잡다한 문법이나 구성 원리만을 정리한 책도 있었고, 비법을 밝힐 듯 하면서도 결국에는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려 놓은 책도 있었다.

아니면 아예 작가 자신이 세워 올린 새로운 문장들로 가득 채운 책을 내놓고, 봐라, 나는 이렇게 썼다, 하고 실컷 눈요기만 시켜주는 책도 있었다.

무엇이 진정한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가?

단 한 가지 비법은 '자득' 이다. 아니, 자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학습, 습득, 체득의 과정을 거쳤어도 거기서 한 단계 넘어가지 못하면 글쓰기에 있어 진짜 '창작'이 무엇인지 맛볼 수 없다.

 

여기, 저자가 정리한 동서양 글쓰기의 대가들의 비법을 보자.

이 책에서는 18세기를 중심으로 멀게는 14세기부터 가깝게는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을 비롯해 중국, 일본 그리고 서양의 문장가, 철학가, 혹은 작가들이 선보인 글쓰기의 미학과 방법이 총망라되어 있다.

애초에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이라는 강좌를 진행하기 위해 공부하던 것을 범위를 넓혀 동서양 글쓰기의 차이점과 유사성까지 포함하게 된 것이다.

고전, 역사연구회 뇌룡재의 대표로 있으면서 우리 역사와 고전을 탐독하던 저자의 깊이 있는 혜안이 서양의 글쓰기에까지 미쳐 실로 놀라운 저작을 완성해 냈다.

 

저자는 모두 9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낸 글쓰기의 전형들을 작가와 작가의 글을 함께 소개하면서 분석해나가고 있다.

천하의 명문은 반드시 동심에서 나온다며 '동심설'을 써낸 중국의 이탁오를 비롯하여 <영처고자서>에서 어린아이와 처녀의 마음으로 천진함과 순수성을 간직한 글을 써야 한다고 설파한 이덕무, [에밀]에서 '자연 그대로의 인간'인 어린이를 발견해낸 루소,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어린아이를 철학과 미학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니체를 1장, 동심의 글쓰기에 모아 놓았다.

'동심'을 미학의 본원이자 창작의 원동력으로 바라본 사고가 18세기를 전후하여 등장하기 시작하여 동서양에 공히 나타난 것을 보면 세계사적 흐름도 함께 읽어볼 수 있다.

따로 떼어 생각했더라면 자칫 놓쳤을 부분을 이렇게 놓고 보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 문학사를 볼 때, 이덕무와 박지원 등 북학파 지식인과 문인들의 글이 원굉도를 비롯한 공안파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강명관 교수는 박지원의 글은 양명좌파와 공안파로부터 '사유의 틀'을 통째로 빌려왔다고까지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북학파의 새로운 문체와 글쓰기는 대부분 공안파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32

 

저자는 위와 같이 고전연구를 하다 이해가 상충되는 부분까지도 상세히 지적하여 자신의 주장에 객관성을 더한다.

"글쓰기에는 기술과 방법 이전에 반드시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밝힌 저자의 논리의 흐름은 1장에서 이렇게 탄탄하게 전체 이해의 맥을 잡아 놓은 다음, 물흐르듯 흘러간다.

 

2장에서는 이익의 <관물편> 속 '이'를 다룬 우언 소품과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트북>에서 '벼룩'을 다룬 우화를 비교해 읽어보면서 짧고 간결한 표현 속에서 우주와 자연과 인간 세계의 원리와 이치를 깨우치려고 한 글인 소품의 글쓰기를 짚어준다.

 

기궤첨신하다는 평을 얻은 이용휴의 글쓰기는 이탁오의 후예들로 공안파 선비들과 일본 조닌 계급의 애욕과 삶의 철학을 대변한 이하라 사이카쿠, 서양의 볼테르와 함께 묶어 설명했다.

 

풍자의 어원에 대한 드라이든의 학설을 통해 "풍자를 위해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저자는, 박지원의 <호질>,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비교 분석하면서 각기 다른 풍자의 결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박지원과 스위프트의 소설이 당대의 사회와 지배 계층을 칼로 베듯 해부하고 칼로 찌르듯 비판하는 등, 시대와 불화한 '불온한 풍자'였다고 한다면 소세키의 작품은 지식인들의 무기력하고 무능한 모습을 비웃고 조롱할 따름인 '온순한 풍자'라고 대비하는 부분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 외에도 웅혼의 글쓰기에서는 사마천, 홍대용, 마르코폴로, 괴테 등의 작가를 각기 살펴보고

일상의 글쓰기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조선의 문학 천재 이옥과 중국의 [유몽영]의 작가 장조, [조화로운 삶]의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을 등장시킨다.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라는 주제를 제대로 파고든 곽말약, [그리스인 조르바]의 니코스 카잔차키스 등을 통해 자의식의 글쓰기도 소개한다.

 

 

'동심의 글쓰기'로부터 시작한 동서양을 넘나드는 글쓰기 천재들의 비법 엿보기는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이해해야만 그 커다란 흐름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책을 다 읽은 후에는 깨달을 수 있다.

박지원, 박제가, 이옥, 홍길주 등 우리나라의 빼어난 작가들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중국이나 일본, 서양과 비교해 볼 생각은 못했었는데, 큰 흐름 속에서 보니 그들의 문장이 더욱 대단함을 알겠다.

이런 모든 과정은 결국, 제대로 된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으로서 차근차근 밟아온 것이고 마침내, 저자는 맨 마지막장에서 "자득의 글쓰기"라는 답을 제시한다.

그리고 덧붙여 진정한 글, 참다운 글은 모방을 넘어선 '창조'에 있다는 것도 강조한다.

어디서 본 듯한 그래서 심심한 잘 쓴 글 보다는, 어딘가 서투르고 모자라고 잘못된 부분이 눈에 띄더라도 참신하고 기이한 발상, 전에 보지 못한 글이 더 낫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된다.

동서양 글쓰기 천재들의 글을 모두 모아 읽기만 한다고 해서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스스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깨달은 연후에 새로운 것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 그 때 쓰는 글이 비로소 나만의 것, 멋진 글이 되는 것임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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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차일드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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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그녀의 SF 단편들 [블러드 차일드]

 

이럴 줄 알고~

 읽었더라면 그 충격과 전율이 좀 덜했을까.

SF를 흔하디 흔한 장르로 보아 쉽게 믿고 덤빈 게 패착 요인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고 동네방네 좀 떠들고 다녀야 이 충격이 좀 가실 것 같다.

원래 단편이란 것이 짧은 분량 안에 기승전결이 확실히 드러나야 좀 읽을 맛이 나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습작 같은 것,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것이라 해도

그 괴이한 상상력이 주는 생소함만으로도 충분히 놀람을 던져줄 수 있다.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어딘가에서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대담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쩌면 바로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되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단편 뒤에는 작가가 이 생각을 끌어오게 된 배경이랄지, 집필후기가 간략하게 들어 있는데

이 후기 속에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길길이 날뛰는, 생명력 넘치는 상상력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저기서 소재가 될 만한 것들을 구해와 재미를 더해 꾸며낸다는 식의 창작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겪은 것들에서부터 발현된

상상력의 끄나풀들이 펑 터지면서 글로 직조된 느낌이랄까.

어쨌거나 놀라운 상상력에 놀라운 글솜씨다.

말파리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무엇인가를 상대해야 할 때, 그 대상에 대해 글을 쓴다는 작가.

글을 씀으로써 문제를 정리한다는 그녀는 예를 들면, 1963년 케네디의 암살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공책을 움켜쥐고 그 사건에 대한 반응을 적어내려가는 식으로 골치 아픈 문제를 돌파하고 삶을 유지한다고 했다.

 

[블러드 차일드]는 '집세'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가 뻗어나간 상상력이 도달한 곳에서 태어난 이야기다. 원래 거주민이 있는 태양계 밖 행성에 존재하는 고립된 인류 식민지에 대한 이야기.

숙주에게 모종의 숙박료를 내는 인류라...

기괴한 생물체인 트가토이는 인간에게 알을 낳는다. [블러드차일드]속 주인공 남자아이는 개념을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한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누나 대신 자신이 숙주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다. 신선하다 못해 온몸의 털이 쭈뼛거릴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의 전개에 나는 할말을 잃는다.

 

생물학, 의학, 개인적 책임이라는 소재에서 자라난 이야기인 [저녁과 아침과 밤]

작가가 세 가지 유전질환의 요소를 가지고 만든 듀리에 -고드 질환이 지배하는 세상이 이야기의 배경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먼 미래에는 아마도 작가가 제시하는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동의를 하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 움찔 놀란다.

 

"워싱턴 대로 버스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로 시작하는 [말과 소리]

유혈이 낭자했던 짧은 싸움을 목격한 작가가 극도로 우울하고 침체되어 있는 상태에서 연결해 만들어낸 이야기다. 가망 없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류의 미래에는 폭력 말고 다른 의사소통은 없는 걸까...생각한 끝에 첫문장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질병으로 인해 언어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 조금이나마 손상이 덜한 사람들이 우월한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순간 폭력적인 몸짓에 희생당하기 마련이다 . 말과 소리가 없는 세상은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출구 없는 비상 사태에 가깝게 파괴적이다. 수가 많이 적어진 남자들은 여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여러 명의 여자를 거느리고 살기도 한다...점점 퇴행되어가가는 사회에서 희망은 말과 소리를 되찾는 것 뿐...

 

몇 개의 이야기만으로도 끔찍한 미래상이 저절로 그려지면서 동시에 현재를 반성하게 한다.

과연 이런 글을 쓴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고 어떤 방식으로 작가가 되었나?

독자의 궁금증에 대답이라도 하듯, 이 책의 뒤에는 작가의 자전 에세이 두 편이 실려 있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고 난독증에도 시달렸지만 어려서부터 이야기 창작을 즐기던 작가는 열 살에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SF를 쓰는 거의 유일한 흑인, 여성 작가여서 부당한 질문을 많이도 받았지만 그녀는 긍정의 힘으로 편견에 대항했다.

그녀가 전해주는 글쓰기 규칙들은 쏙쏙 들어와 박힌다.

글쓰기 규칙을 배우는 것은 쉽지만 규칙들을 따르고, 몸에 밴 습관으로 바꾸는 것은 끝나지 않는 싸움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읽어라,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작가 워크숍에 가라, 매일 써라, 최대한 좋아질 때까지 글을 고쳐라...등등.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간 작가의 말이기에 좀 더 깊이 새기게 된다.

어쨌거나 대단한 SF 작가의 말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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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셀프 트래블 - 2016~2017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24
송윤경 지음 / 상상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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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든다.[셀프트래블 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말했다. 삶은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일이라고. -프롤로그 중.

 

포르투갈에서라면 여기, 이곳에서의 나를 살짝 놓고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완전히 낯선 곳. 아직 알지 못하는 그 곳에서라면

잠시 다른 나를 만나는 일이 사뭇 괜찮을 것 같기도...

 

이미 포르투갈을 다녀와 이렇게 가이드북을 쓸 정도로 포르투갈에 애착을 갖게 된 작가의 말을 빌자면,

포르투갈은 가슴 깊숙이 걸어 들어오는 여행지라고 한다.

정확히 무엇이 좋았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스냥 스며드는 것 같은 나라.

"매력적입니다. 도시가, 사람들이, 포르투갈에서 보내는 시간마저 애틋해질 정도로."-프롤로그 중

 

무작정 젊은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나라라고 소개하기에는 좀 거리가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역사 속에서 그들만의 문화가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포르투갈 여행.

 

이번 책에서는 포르투갈 여행을 위해

MISSION 과 TRY  를 제시해 두었다.

말 그대로 포르투갈에서 누리고, 맛보고, 가져야 할 것들을 MISSION에서 소개하고 있고

TRY는 기간별, 테마별로 포르투갈 여행의 일정을 제시한 것이다.

요 부분들만 훑어보아도 포르투갈 여행의 매력도가 급상승할 것!

 

요런 고지도와 함께 하면 포르투갈의 역사가 한눈에 보인다.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고...

대항해시대를 거쳐온 포르투갈 속으로 어서 빨리 빠져들고 싶어진다.

 

 

이전 상상출판 셀프트래블 시리즈 여행 가이드북에서는  각 나라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사진들만 크게 몇 장 실려 있었는데.

이번에는 인상적인 사진들과 함께

친근한 느낌 확 드는 디자인 속에 간단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윤을 낸 돌" 이란 뜻의 아줄레주. 푸른빛이라 시리도록 차가울 듯했는데 새겨진 포르투갈 사람들의 이야기에 온기가 가득하다.

 

 

이 사진과 설명 덕분에 포르투갈의 대표 이미지가 강렬하게 각인되어

가이드북을 읽는 내내

포르투갈의 어디에 가면 이 아줄레주를 볼 수 있는지, 아주 눈 빠지게 찾아 헤매게 되었다.

 

 

짠~

드디어 나타난 포르투갈에서의 미션.

포르투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10가지로 포트 와인 와이너리, 포르투의 해리포터 서점.

파티마 성지순례 등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담아놓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TOP10 안에 드는 서점이라 유명하기도 한 그곳에...한 번쯤 가보고 싶다.

 

 

포르투갈 쇼핑 아이템으로는

아줄레주 타일을 빼놓을 수 없고

여행자의 향수를 자극하는 파두 CD, 포트 와인 등을 꼽을 수 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공화정의 통치에 대해 내란이 이어졌고 50년 넘게 독재정권하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의 독재자가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3F-즉, 파두, 축구, 종교-를 유행시켰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나라의 한과 비슷한 뉘앙스를 가지는 파두의 선율을 직접 들어보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가진 것으로도 모자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를 가졌다는 포르투갈. 스테인드 글라스와 샹들리에로 꾸며진 맥도날드에서 먹는 버거는 어떤 맛일까?^^

 

 

리스본, 포르투, 파티마 등 포르투갈 여행 핵심 코스를 완벽 가이드하고 있는 이번 책.

그냥 보고 지나가면 무뚝뚝하지만 다가가 대화를 나누고 보면 금세 마음을 열어주는 포르투갈인들의 삶 속으로 한발짝 들어가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무엇이 그렇게 스며들어서 여행 후에도 자꾸만 생각나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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