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동서대전 - 이덕무에서 쇼펜하우어까지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한정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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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득(自得')의 묘를 깨달아야 [글쓰기 동서대전]

이 책에는 '글을 잘 쓸 수 있는 길잡이'가 될 만한 내용은 담겨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을 잘 쓸 수 있는 묘책이나 비법'은 없다고 하겠다. 괴테나 박지원과 같은 다른 사람의 묘책이나 비법을 길잡이 삼아 나아가는 가운데 자신만의 묘책과 비결을 스스로 깨달아 터득하는 것, 이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따라서 글쓰기 철학과 미학의 궁극적인 경지는 '자득 (自得)' 일 수밖에 없다. -596

 

글을 좀 잘 써 보고 싶어서 문장 쓰기의 비결, 비법 이런 키워드가 들어 있는 책이 보이면 금세 눈독을 들이고 만다. 글쓰기에 관한 책 몇 권을 읽어보았지만 국어 시간에 배운 잡다한 문법이나 구성 원리만을 정리한 책도 있었고, 비법을 밝힐 듯 하면서도 결국에는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려 놓은 책도 있었다.

아니면 아예 작가 자신이 세워 올린 새로운 문장들로 가득 채운 책을 내놓고, 봐라, 나는 이렇게 썼다, 하고 실컷 눈요기만 시켜주는 책도 있었다.

무엇이 진정한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가?

단 한 가지 비법은 '자득' 이다. 아니, 자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학습, 습득, 체득의 과정을 거쳤어도 거기서 한 단계 넘어가지 못하면 글쓰기에 있어 진짜 '창작'이 무엇인지 맛볼 수 없다.

 

여기, 저자가 정리한 동서양 글쓰기의 대가들의 비법을 보자.

이 책에서는 18세기를 중심으로 멀게는 14세기부터 가깝게는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을 비롯해 중국, 일본 그리고 서양의 문장가, 철학가, 혹은 작가들이 선보인 글쓰기의 미학과 방법이 총망라되어 있다.

애초에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이라는 강좌를 진행하기 위해 공부하던 것을 범위를 넓혀 동서양 글쓰기의 차이점과 유사성까지 포함하게 된 것이다.

고전, 역사연구회 뇌룡재의 대표로 있으면서 우리 역사와 고전을 탐독하던 저자의 깊이 있는 혜안이 서양의 글쓰기에까지 미쳐 실로 놀라운 저작을 완성해 냈다.

 

저자는 모두 9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낸 글쓰기의 전형들을 작가와 작가의 글을 함께 소개하면서 분석해나가고 있다.

천하의 명문은 반드시 동심에서 나온다며 '동심설'을 써낸 중국의 이탁오를 비롯하여 <영처고자서>에서 어린아이와 처녀의 마음으로 천진함과 순수성을 간직한 글을 써야 한다고 설파한 이덕무, [에밀]에서 '자연 그대로의 인간'인 어린이를 발견해낸 루소,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어린아이를 철학과 미학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니체를 1장, 동심의 글쓰기에 모아 놓았다.

'동심'을 미학의 본원이자 창작의 원동력으로 바라본 사고가 18세기를 전후하여 등장하기 시작하여 동서양에 공히 나타난 것을 보면 세계사적 흐름도 함께 읽어볼 수 있다.

따로 떼어 생각했더라면 자칫 놓쳤을 부분을 이렇게 놓고 보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 문학사를 볼 때, 이덕무와 박지원 등 북학파 지식인과 문인들의 글이 원굉도를 비롯한 공안파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강명관 교수는 박지원의 글은 양명좌파와 공안파로부터 '사유의 틀'을 통째로 빌려왔다고까지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북학파의 새로운 문체와 글쓰기는 대부분 공안파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32

 

저자는 위와 같이 고전연구를 하다 이해가 상충되는 부분까지도 상세히 지적하여 자신의 주장에 객관성을 더한다.

"글쓰기에는 기술과 방법 이전에 반드시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밝힌 저자의 논리의 흐름은 1장에서 이렇게 탄탄하게 전체 이해의 맥을 잡아 놓은 다음, 물흐르듯 흘러간다.

 

2장에서는 이익의 <관물편> 속 '이'를 다룬 우언 소품과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트북>에서 '벼룩'을 다룬 우화를 비교해 읽어보면서 짧고 간결한 표현 속에서 우주와 자연과 인간 세계의 원리와 이치를 깨우치려고 한 글인 소품의 글쓰기를 짚어준다.

 

기궤첨신하다는 평을 얻은 이용휴의 글쓰기는 이탁오의 후예들로 공안파 선비들과 일본 조닌 계급의 애욕과 삶의 철학을 대변한 이하라 사이카쿠, 서양의 볼테르와 함께 묶어 설명했다.

 

풍자의 어원에 대한 드라이든의 학설을 통해 "풍자를 위해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저자는, 박지원의 <호질>,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비교 분석하면서 각기 다른 풍자의 결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박지원과 스위프트의 소설이 당대의 사회와 지배 계층을 칼로 베듯 해부하고 칼로 찌르듯 비판하는 등, 시대와 불화한 '불온한 풍자'였다고 한다면 소세키의 작품은 지식인들의 무기력하고 무능한 모습을 비웃고 조롱할 따름인 '온순한 풍자'라고 대비하는 부분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 외에도 웅혼의 글쓰기에서는 사마천, 홍대용, 마르코폴로, 괴테 등의 작가를 각기 살펴보고

일상의 글쓰기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조선의 문학 천재 이옥과 중국의 [유몽영]의 작가 장조, [조화로운 삶]의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을 등장시킨다.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라는 주제를 제대로 파고든 곽말약, [그리스인 조르바]의 니코스 카잔차키스 등을 통해 자의식의 글쓰기도 소개한다.

 

 

'동심의 글쓰기'로부터 시작한 동서양을 넘나드는 글쓰기 천재들의 비법 엿보기는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이해해야만 그 커다란 흐름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책을 다 읽은 후에는 깨달을 수 있다.

박지원, 박제가, 이옥, 홍길주 등 우리나라의 빼어난 작가들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중국이나 일본, 서양과 비교해 볼 생각은 못했었는데, 큰 흐름 속에서 보니 그들의 문장이 더욱 대단함을 알겠다.

이런 모든 과정은 결국, 제대로 된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으로서 차근차근 밟아온 것이고 마침내, 저자는 맨 마지막장에서 "자득의 글쓰기"라는 답을 제시한다.

그리고 덧붙여 진정한 글, 참다운 글은 모방을 넘어선 '창조'에 있다는 것도 강조한다.

어디서 본 듯한 그래서 심심한 잘 쓴 글 보다는, 어딘가 서투르고 모자라고 잘못된 부분이 눈에 띄더라도 참신하고 기이한 발상, 전에 보지 못한 글이 더 낫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된다.

동서양 글쓰기 천재들의 글을 모두 모아 읽기만 한다고 해서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스스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깨달은 연후에 새로운 것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 그 때 쓰는 글이 비로소 나만의 것, 멋진 글이 되는 것임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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