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는 명화 인문학 [내 생애 마지막 그림]

익히 보아 오던 명화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게 해 준다.
서양회화사는 대부분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파, 현대 등의 흐름으로 이야기하기
마련인데
나카노 교코는
단 한 마디로 이런 설명을 "살짝 싫증나기도 한다."라며 경쾌하게 꼬집는다.
미술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은 이런 흐름에 맞춰 읽는 것이 정석인 양,
전문가들이 풀어 쓰는 해설에 고개를 마냥 끄덕이며
따라 읽어가게 마련이다.
살짝 다른 흐름으로 읽어주는 책이 나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고.
저자는 자신만의 분류법으로 명화들을 가려 뽑아
쉽게 설명한다.
'화가가 무엇을 그려왔는지,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무엇을 그렸는지'에 초점을 둔
해설이라...
보통 한 명의 이름난 화가는 '대표작'으로만 기억하기 마련이다.
가령 고흐는 '해바라기'나 '자화상'
모네는 '수련' 시리즈
페르메이르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등으로 기억한다.
화가가 절정기를 맞이했을 때 그린 그림은 쉽게 기억하지만 화가의 마지막 그림은
꽤 많은 것을 응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하지 못한다.
저자에 따르면 '화가가 왜 그것을 그릴 수밖에 없었나'라는 질문,
혹은 화가의 일생을 온전히 설명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생애 마지막 그림]은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다.
화가와 신, 화가와 왕, 화가와 민중으로 나누었는데
대부분 서양회화의 흐름상
작가의 활동연대와 비슷하게 나누어진다.
몇 몇 시대를 뛰어넘는 화가를 제외하고는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긴 것이다.
기독교,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에 몰두한 화가들,
왕과 고용관계를 맺은 궁정화가들,
새로운 세계를 이끄는 시민계급에 바짝 다가간 화가들.
15세기에서 19세기를 살아간 화가들이 어떤 노력 끝에 걸작을 탄생시켰는지,
나아가 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무엇을 남겼는지
그 이야기들을 낱낱이 파헤치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화가와는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보티첼리부터 고흐까지
시대를 풍미한 화가들의 절정기 작품과 더불어
생애 마지막 그림을 살펴보는 과정은 화가들의 삶을 두루 훑어보는 것과 진배없다.
절정기 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화가가 있는가 하면
생의 마지막에 더욱 유려한 경지에 이른 화가도 있고,
활기를 잃은 채 형식적인 그림을 그려 실망을 안겨주는 화가도 있다.

고야의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던 고야는 다양한 기풍의 그림을 섭렵하고 현대에 이르러 숨겨진
인간 심리까지 드러내면서 마침내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들었다.
교외의 별장 '귀머거리의 집'에 틀어박힌 그가 말년에 그린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의 10배, 20배 농축된 인생을 살았떤 이 천재가 검정 콩테로 그린 자화상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이다.
짤막한 나카노 교코의 평 한 마디.
고야, 만세.

"얼굴 같은 건 닮지 않아도 좋다. 위대함을 표현하라."
어용화가로 활동한 다비드.
강렬하고 영웅적인 황제의 이미지를 그렸던 다비드는 주류에서 벗어난 시점부터 인기를
잃어간다.

밀레가 아카데미 회화에 대해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연극 같은 그림" 이라고 퍼부었던
비판을 인정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비너스와 삼미신에게 무장해제되는 마르스>
그냥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면 선명한 인물이 부각되어 잘 그린 그림이다, 하고 넘어갈
것인데...
삼미신의 묘사는 우스울 정도로 유형적이라며
영혼이 빠져나간 그림이라고 꼬집는다.
페르메이르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로 유명한데
실제로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의 화가였다고 한다.
물방울 모양의 진주 귀고리를 한 그녀만큼은 다른 페르메이르 작품의 트로니와는
달리
실존했던 소녀의 초상임이 틀림없다.
이 정도로 인상적인 눈동자와 이 정도로 호소력 있는 입술의 주인이
'아무도 아닐 리'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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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양하게 이야기를 붙여보고 싶게끔 만드는 점이 페르메이르의 매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비록 절정기에 비해 솜씨가 현격히 떨어지더라도 그를 비웃기 보다는
옹호하는 편에 선다.
팬은 현재의 목소리 너머에 존재하는 과거의 빛나는 목소리를 듣고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감상법을 취한다고 해서 무엇이
나쁜가?-233
미술품 감상에 있어 기본지식이 없다는 것 때문에
자신만의 감상을 펼치기 어려워하는 일반인에게
나카노 교코의 수다 같은 감상은 새롭게 다가온다.
좀 더 과감하게 좀 더
용감하게
나만의 관점으로 그림을
바라보아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