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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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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정신’으로의 초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가벼운 아침 운동을 나섰다가 작은 산책로의 한쪽 귀퉁이에 피어 있는 백일홍을 보았다. 다른 꽃들과 같이 있어서 자칫 잘못해선 그냥 놓치고 지날 수 있었는데,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속의 한 장인 <여름 편지>에서 읽은 ‘백일홍’의 기억이 선명해서, 우뚝, 그 꽃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우리네 옛 어른들은 배롱나무의, 훌라멩코를 추는 무희같은 꽃이 금세 지지 않고 오래간다 하여 ‘백일홍’나무라 불렀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식목일 숙제로 꽃씨 심기를 하는 중에 백일홍 씨앗을 뿌려 집에서 키워 본 적이 있는 나는 진짜배기 백일홍 꽃을 먼저 접하였다. 그래서 내 사전에는, 백일홍은 ‘꽃 치고는 키가 크게 자라나고, 길쭉하고 선명한 줄무늬가 있는 초록 잎이 있으며 붉은 꽃이 진짜 백일을 가는 것’이라고 새겨져 있다. 보슬보슬 윤기 나는 갈색의 토양에 씨앗을 심고, 물을 준다. 물기를 머금은 흙은 비릿하면서도 상쾌한 흙내음을 풍기며 한껏 무기질의 양분을 보듬는다. 백일홍의 싹이 트고 날로 날로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줄기에 잎이 어긋지게 자라고... 드디어 꽃이 그 첫망울을 터뜨린 순간, 그 때의 희열은 불꽃놀이 터지는 황홀한 광경을 목도한 때와도 같았다. 한참 언어의 나열에 있어서 부족한 나의 표현으로는 이러할진대, 언어의 대가인 헤세는 백일홍에 관하여 이렇게 표현했다.

 

 

 

 

지금 정원에는 1년 중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꽃들이 피어 있지. 그러나 늦여름과 초가을의 다채로운 색을 상징하는 꽃은 아무래도 백일홍이지!(...)화병 속에서 서서히 빛이 바래 죽어가는 백일홍을 바라보며 나는 죽음의 춤을 체험하지. (...)친구여, 일주일 또는 열흘 동안 화병에 꽂힌 채 시들어가는 백일홍을 한번 관찰해보게! 싱싱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하고 황홀하던 색이 이제 섬세해지고 지쳐 아주 부드럽게 바래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걸세.

(...)탁해진 흰빛,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이며 호소하듯 슬픈 빛을 띤 붉은 잿빛, 그것은 증조할머니의 빛바랜 비단으로 만든 물건들이나 희미해진 낡은 수채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색일 거야.-96

 

 

 

 

내 기억 속의 백일홍과 헤세의 언어로 되살아난 백일홍은 같은 꽃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이리 그 떠오르는 모양새가 다를 수 있는 것인지...

아직 사물을 접하는 진지한 관찰과 관조의 자세가 터무니없이 자격미달임을 느끼며 헤세의 정원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일생 동안 그리고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꼭 정원을 만들고 가꾸었던 헤세. 직접 그린 그림들이 곁들여진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느새 고요한 헤세의 ‘정원’이 아닌, ‘정신’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도 통할 것 같은 소박함의 진리를 설파한 <작은 기쁨>을 들여다보면 내가 서 있는 발밑을 두리번거리게 되며, 나의 자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한 조각의 하늘, 초록빛 나뭇가지들로 덮인 정원의 담장, 튼튼한 말, 멋진 개 한 마리, 삼삼오오 떼를 지어가는 어린아이들,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 모양,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말자. 자연을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은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단 1분도 허비하지 않고 소중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다.-72

 

날마다 ‘작은 기쁨’들을 찾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새벽 이슬을 밟으며 풀숲을 헤치고 들어갔다 나오면 어느새 바지끝자락이 축축해져 있는 것을 느끼듯이, 헤세의 ‘정신’을 거닐다 보면 그야말로 맑은 영혼의 유희에 시나브로 빠져들게 된다.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아주 오래 전에 읽었는데, 유리알 유희에 나오는 음악의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라는 이름이 아직도 기억 난다. 명상을 하며 음악을 통해 아름다운 정신 세계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인 음악의 명인. ‘유리알 유희’라는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되었지만, 헤세를 아프락사스의 신화를 써낸 사람으로 기억했던 나는, 젊음의 방황과 세상에 대한 절망, 무서운 세계의 끝 세계대전 후의 치열한 자기 반성으로 씌여진 <데미안>이나 <골드문트와 나르치스>같은 작품으로만 헤세의 작품세계를 한정지으려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었다.

 

포도덩굴 사이에서 한낮의 푸른 향기를 듣고, 서서히 발효하고 부패한 흙의 냄새를 맡으며, 붉고 노란 나무딸기로 식사를 하는, 동양의 현자와도 같은 유리알 유희의 명인은 다름 아닌 헤세 자신이 아니겠는가.

세계가 거칠고 격렬한 충동으로 지배되는 동안, 그들의 짐승과도 같은 만행에 무던히도 부끄러워하며 영혼의 고요함으로 맞서고자 했던 헤세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책 속에서 나는 명상의 명인이자 유희의 명인인 헤세를 발견했다.

 

충동으로 가득한 시대에 가치 있는 선함으로 현자의 발걸음을 내딛었던 헤세.

쓰레기, 녹색 식물, 뿌리들을 모아서 흙과 섞는다. 때로는 검은 색, 때로는 밝은색. 다양한 흙을 불태우고 체에 꼼꼼히 걸러 ‘현자의 돌’을 만들어서 작은 단지에 담아 들고 조금씩 정원에 나누어 뿌린다. 아끼는 꽃들과 꽃밭에 이 명상의 불과 희생의식의 숭고한 수확을 나누어 준다.

정원에서 식물을 일구는 기쁨과 함께 삶에 순간에 솟아나는 놀라운 성찰들을 완성해 갔던 헤세가 부럽다.

깊이가 없는 배경과 같이 모든 것이 어둡고 불투명하고 무서운 세상에서 헤세의 정신은 인어의 꼬리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며 무늬를 만들어간다. 서서히 드러나는 연하디 연한 무늬를 손으로 따라 그리다 보면 나의 어리고 어두운 영혼은 새벽의 여명과도 같은 밝음을 맞이하게 된다. 헤세의 정신은 정원에서 시작했고, 정원에서 피어나는 다채로운 꽃들과 그늘을 드리우고 무성한 잎을 다시 떨구는 나무들처럼 정원의 일상 속에서 사소한 기쁨을 피워올리고 있다.

‘옷자락이 다 해져 올이 성긴 바지를 입은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문학가’가 성큼 내 눈 앞에 다가와서 농부의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안녕, 헤세 아저씨~”

 

대문호 헤르만 헤세는 헤세 아저씨가 되어 있다. ^^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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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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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떨군 돋을새김, 사랑.

 

                                                   [너를 봤어]

 

 

 

뽀득뽀득한 삶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12

 

 

‘휴~ 그래, 나도 그렇다는 것은 안다.’

소설의 초반부터 공감이 이루어지고 마음이 저절로 열리는 문장을 읽었다. 그러나 왠지 마뜩찮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너무도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들었을 때의 헛헛한 느낌이랄까...

그래, 그래, 그래. 하고 결국에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한 문장. 이 한 문장이 <너를 봤어>의 깊은 수렁으로 나를 이끌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 정수현’은 작가이다. 스물 여섯에 등단한 작가. 그저 그렇고 그런 삶은 흥미 없어 하는, 어지간한 가정사는 문학판에 명함도 못내민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작가.

정수현이 찾아 헤맨 ‘너’는 누구이며 과연 ‘너를 봤어’는 무슨 의미일까를 찾기 위해서 문장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폈다. 그러다가 촘촘히 짜여진 행간에서 “戀歌(연가)”를 발견했다.

사랑의 노래.

 

눈물 떨군 돋을새김으로 한 자 한 자 새겨진 사랑의 노래, 연가.

 

정수현의 어둡고 팍팍한 삶에 동화되어 한숨을 떨구고, 곧이어 무거운 돌덩이를 묶어 저 밑바닥으로 천천히 내리는 중노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힘겨워져서 길고긴 탄식을 내뱉을 때, 한구석에서는 조용히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소설이 끝날 무렵에는 촛불이 흘린 눈물처럼 두껍고 무겁게 덩어리진, 투명하지 않은 탁한 회색빛의 물줄기가 내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꺼억 꺽 소리조차 조용히 삼키게 만드는 비통한 울음이었다.

작가의 말마따나 죽이고 죽이고 죽인 끝에 겨우 탄생한 사랑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오래 동안 내 가슴을 치게 만들 줄이야...

 

진실을 알고 싶은가? 알고 싶지 않은가?

미리 말해두지만 삶의 진실은 아름답지 않다. 불친절하다.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속내에는 어둡고 깊은 구멍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누구나의 마음 속에 하나씩 다 들어차 있다.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피천득 <수필>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 수필이다...그러나 소설은 꼬부라진 한 조각 연꽃잎을 계속 쳐다보고 있을 것을 강요한다. 계속 쳐다보고 쳐다보고 또 쳐다보면 소설 속의 삶이 내 삶이 되고, 동화된 내 삶은 또 아프고, 결국에는 아픈 내 삶마저 보듬을 마음을 가지게 만든다. 특히나 <너를 봤어>는 울음 끝에 탄생한 장중한 진혼곡이다.

 

정수현은 뒤늦게 만난 사랑, 영재를 남겨두고 떠났다.

그들은 왜 끝까지 함께일 수 없었을까.

첫 번째는 정수현의 아내 때문이고, 두 번째는 정수현을 서서히 가라앉게 만드는 가족 때문이다.

아니다, 무엇보다도 정수현은 자기 자신을 그렇게 꿀렁꿀렁 흘러가게 내버려둔 또다른 자아 정수현, 바로 그 사람 때문에 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 앞에서 눈을 감아야 했다.

이리 보아도 예쁘고 저리 보아도 예쁜, 도저히 흠을 잡으려야 잡을 수가 없는 예쁜 서영재를 놓아버려야 했을 정수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차갑고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 아내와의 일상 속에서 정수현은 아내를 떠나 삶의 끝으로 치달아도 좋을 여자를 기다리기는 했다. 아내와 살 때에는 일렁이지 않던 죄책감의 잔물결이 왜 하필이면 영재를 만났을 때 출렁출렁 흔들리기 시작했는가 말이다. 그리고 그 시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정수현의 관심 없음에, 혹은 자기오만의 끝에서 아내는 자살을 택했고, 정수현은 끈질긴 아내의 반격에 고개를 떨구었다.

 

만날 때마다, 어이구 나 죽네를 입에 달고 다니는, 궁상맞고 초라하긴 하나 입심 하나만은 팔팔하기 그지없는 어머니는 만날 누군가에게 돈을 뜯겼다. 정수현은 언제나 돈을 해 주었지만, 어느 순간, 정수현의 상상 속에서 어두컴컴한 지하방에 쳐들어와 돈 내놓으라고 어머니를 독촉하는 지랄맞고 빙충맞은 그 놈팡이는, 수현과 함께 아버지의 죽음에 동조했으면서도 그걸 빌미로 어머니의 피를 빠는 흡혈귀가 되어버린 그의 형의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나 악악거리며 돈을 구걸하고 있었다. “자식인데도 겁나더라. 안다고 하면 나도 죽일까봐......”(127)

이런 형이라면 차라리 죽어...

 

가족 때문이든 자기 자신 때문이든, 남에게 떠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기가 무섭다.

정수현이 꽃 같은 영재를 두고 그런 선택을 한 것을 나는 이해한다.

마음 속에 진 짐은 쉽사리 떨쳐버리기 힘든 법이다.

 

젊음이 아무 대가 없이 획득한 전리품이라 할지라도 누구나의 젊음이 다 찬란하게 빛나지는 않는다. 나의 젊음...그 때는 내가 지고 있는 짐이 너무나 무거워서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볼 힘조차 없었다. 짐을 진 사람들은 그렇다...

갓 스물은 순수함과 호기심, 발랄함들이 필요한 시기였다. 내게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연기라도 해야 했을 터. 그러나 오기 섞인 자존심과 감정에 대한 결벽증 때문에 “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정적으로 나에겐 “밝음”이 없었다. 어두움을 미리 보아버린 젊음은 회색빛이 되어 도무지 투명한 화이트로 빛나지를 않았다.

대학교 1학년이 되면 무조건 누리리라 결심했던 그 자유라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창살이 하나 둘러쳐져 있는 감옥 속에서 손짓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고, 풋풋하고 아름다운 첫사랑도 나쁘거나 용감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아니면 감히 손도 내밀어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의 어두움을 호기 있게 감싸주고 보듬어 줄 누군가가 나타나기도 전에 갑옷 속에 꽁꽁 몸을 숨긴 아르마딜로처럼 무쇠옷으로 치장한 나는 그저 피식 웃으며 모든 것을 눈아래 깔고 보았다. 속으로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팔팔한 청춘들이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으면서...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로 교정을 누비며 환하게 웃는, 지배쫑 지지배쫑 지저귀는 지지배들을 나는 마음 속으로 저주하고 있었다.

제발 내 앞에서 그렇게 밝고 환하게 웃지 말아 줄래?

누구는 부모를 잘 만나서 예쁜 옷 입고, 수업료 걱정 없이 남자애들과 팔짱 끼고 다니고...

시간 날 때마다 세련된 인테리어의 커피숍에서 우아하게 커피잔을 들고 홀짝이며 패션과 스타일을 논하는 것들...다 사라져 버려랏!

 

정수현의 아내는 그러한 (나의 이야기지만 결국에는 같은 종류의 것이었을) 열등감을 오만으로 대체했을 것이고, 성공을 이룬 뒤엔 사랑을 주문했고, 결국엔 패배했다.

나는...그녀처럼 그렇게 지독하게 오만하지는 않았기에 지금 그럭저럭 살고 있다.

그러나 한 걸음만 잘못 내딛었어도 정수현처럼 평생 마음 속에 그늘을 가지고 살고 있었을 수도 있고, 그의 아내처럼 독하게 살 수도 있었다.

 

정수현은...너무 여렸던 걸까?

아니면 너무도 독했던 걸까?

분명히 살인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모든 걸 미화시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사랑엔 응원을 보내주고 싶었는데...

 

누구든 서영재 건드리면 나한테 죽는다, 이게 그냥 뿜어져 나왔어. 둘이 떨어져 앉아 있어도, 형이 니 어깨를 꼭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고. 모든 신경이 너한테 열려 있는 거야. 나 좀 아프기도 했다. (...) 형이 한 사랑 의심하지 마. 군더더기 없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곧장 꽂히는 사랑 했으니까. 죽어서도 그럴 거다.”-197

 

진부하고 틀에 박힌 사랑의 되새김질. 그러나 이런 대사만큼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직설적인 말이 또 있을까...너는 내 꺼. 라는 말.

팍팍하고 쓸쓸하고 외로운 삶에 단 하나 등대가 되어 주는 말. 사랑.

다행히 정수현의 사랑을 이어받은 서영재는 밝고, 힘이 있다.

내면의 어두움을 물리칠 수 있는 힘.

끝내 어둡고 칙칙하게 끝날 수도 있었을 소설을 환하게 밝힌 서영재가 있어서 좋았다.

세상 참 어두워도 그래도, 한줄기 희망의 빛은 남아 있는 것이지...

 

말라붙어 버린 눈물자국을 물기 축축한 손바닥으로 쓸어내며 쓸쓸히 웃어본다.

한없이 한없이 물 밑바닥으로 침잠하려는 나를 ‘너’ 서영재가 끌어올렸다.

정수현의 사랑이, 그의 인생이 애달프다.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나는 정수현의 눈물 떨군 사랑을 심하게도 앓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아이들이 놀고 있다.

새삼 내 주위를 뛰어다니며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아이들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엄마, 울어?”

^^

정수현의 사랑 때문에 내가 죽을 순 없어서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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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비간택사건 1
월우 지음 / 아름다운날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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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비 간택사건 1>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아파..., 아파란 말이지.”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자는 것도 잊고 계속하여 자세를 바꾸어가며 읽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오는 잠을 쫓지 못하고 천근 만근의 추를 매단 눈꺼풀은 자꾸만 땅으로 축 쳐지고 있었다 .이 낯선 단어 때문에 혼곤한 와중에도 책을 놓지 못하고 읽어가던 나는 몇 번이나 혼란을 겪었다. 아파(牙婆)란 가내용품을 팔러 다니는 방물장사를 말하는 것이다.

한자를 따로 표기하지 않았기에 ‘아파’란 단어가 나오면 아프다는 뜻과 혼동되어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야했다.

아파가 왔소, 아파요, 아파는?

등등. 아파 뒤에 오는 단어에 따라 혼돈의 종류도 수십 가지였다.

 

잠기운에 몽롱한 머리로 아파 때문에 잠시 마실 나간 정신을 잡아올라치면 ‘아, 맞다, 아파가 아프다는 뜻이 아니었지.’하고 혼자서 실실 웃기를 여러 차례.

참, 이게 뭐하는 짓이냐 하면서도, 곧 드라마화 되기로 결정된 작품이니만큼 장면장면들이 사실적이게도 눈앞에 그려지니 그만 책을 덮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낮에 그러고 있었다면 딱, '미친 *' 이라는 말을 듣기 좋게 풀린 눈에 흐리멍덩한 미소...그 모양 그 꼴로 두세 시간을 책을 들고 있었으니, 내 아이들이 보고 있었다면 “우리 엄마가 아니야...정상이 아니야” 하고 읊조리며 문을 고이 닫고 나갔을 상황이었다.

멀쩡한 정신으로 대낮에 보았다면 금방 끝냈을 책을 굳이 저녁에 시작해서 새벽녘까지 잡고 있느라, 나도 참, 고생했다. ^^

 

퓨전사극의 장을 연 <성균관 스캔들> <해품달>을 이어갈 명품 사극이 바로 이 책 되시겠다. 출간 2주만에 드라마화 하기로 결정되었다나?

누가 주인공이 될지 모르지만, 차기 떠오르는 스타로 미리 낙점 되시겠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확실한 구도로 떠오르며 남녀 주인공의 달달한 로맨스도 빠지지 않는 멋진 이야기다.

제목에서 암시하는 바, 조선 왕비를 간택하는 것이 커다란 틀이다.

이 나라의 임금 학이 단 하나뿐인 사촌동생 현무군 윤을 불러 명령을 내린다.

“세제(世弟)가 되어 내 후사를 잇기 싫다면, 네가 직접 내 왕비로 가장 적합한 이를 골라오너라. 주어진 시간은 단 두 달이다!”

 

 

왕대비와 대왕대비전의 암투 속에서 임금은 중심을 잡느라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인 윤을 불러 부탁을 한 것이다.

웃음기를 띠며 부탁을 하였지만, 비어 있는 왕비의 자리를 누가 점하느냐에 따라 요동치는 정치의 판세를 생각하면 그리 호락호락한 사안이 아니었다.

 

흠잡을 데 없는 외모와 종친이라는 신분을 가진 조선 최고의 한량 윤은 임금의 명령에 송파 장시 사문객주를 찾아간다. 사문객주의 젊은 행수 감무현. 엄격한 반상의 구분이 존재하는 조선에서 신분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윤이 벗으로 택한 동무 감무현. 윤은 무현을 통해 임금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적당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 부탁하고 무현은 쓴 입맛을 다시며 그녀, ‘서경’을 내놓아야 했다. 기실, 무현은 아파인 ‘서경’에게 술에 취한 날, 술기운을 빌어 청혼을 한 적이 있다. 무덤덤한 그녀의 반응에 “술김에 한 일”이라며 사과를 하였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서경’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말끝마다 “쯧”하며 혀를 차는 버릇을 가진 우리의 ‘서경’은 씩씩한 여장부 스타일 되시겠다. 출생의 비밀을 숨기고 아파 행세를 하는 ‘서경’은 역시, 자신의 진짜 신분을 숨기고 “이대감집 청지기”임을 자처하는 윤과 부부 행세를 하며 윤의 ‘조선왕비 간택 프로젝트’에 일조하게 되었다. 5명의 처자들을 인터뷰 하는 것?^^

 

1권에서는 3명의 처자들이 나오는데, 나라의 지엄한 간택령에도 불구하고 처녀단자를 내지 않은 양반가의 그녀들은 각자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왕비간택 프로젝트로 만난 윤과 서경, 그리고 은월각이라는 기루에서 기녀로 일하면서도 윤을 흠모하고 있는 윤과 홍란. 삼각이라면 삼각인 그들의 로맨스는 달달한 감성을 자극한다면, 다섯 규수들의 각각의 사연은 깊숙이 들어앉은 양반가의 안채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전하며 역사책 이면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여과 없이 드러내 보여준다.

 

“아가..., 넌 그저 평생 내 곁에서 웃고만 있으면 된다. 이 아비가 네가 바라는 모든 것을 들어줄 거야. 그저 꽃처럼, 그림처럼 내 곁에서 그리 머물러라. 그러면 돼. 그러면 너도 나도 행복해질 수 있어.”-117

 

“여인은 전 직제학 백 대감의 여식인 은호 낭자이고, 사내는 안동 송생원의 아들이라 합니다. 두 사람은 전부터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통정한 바, 양반의 법도를 어기고 풍기를 문란케 한 죄가 있으며, 특히 백 낭자는 어젯밤 사내를 죽이려 한 죄가 있습니다.”-266

 

 

잘 닦은 사기그릇처럼 반질반질한 이마며 고집스럽게 다물어진 입매가 유난히 눈에 띄는 서경. 영민함이 엿보이는 짙고 검은 눈동자.

시원하게 뻗은 콧날이며, 가로로 길게 뻗은 눈매, 둥근 오엽선처럼 시원한 곡선을 만들며 휘어지는 조금 큼직한 입매.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의 묘사 부분이다. 어떤 배우가 떠오르는가?

마음에 드는 배우에게 두루마기, 치마 저고리를 입혀 이야기를 따라 가는 재미도 쏠쏠할 듯 싶다.

이어지는 2권~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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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비간택사건 2 - 완결
월우 지음 / 아름다운날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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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비 간택 사건2>

가정주부에게 로맨스는 독이오

 

 

 

다섯 규수를 찾아 다니면서 암행어사 출두요~ 같은 행적을 보이며 때로는 셜록 홈즈처럼, 때로는 탐정 코난처럼 예리한 추론으로 양반가문의 비밀을 파헤치던 윤과 서경.

부부 행세를 하며 한 방에 묵곤 하는 사이에 둘의 사이에는 애틋한 정이 싹트기 시작했고, 임금의 혼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기나긴 여정 중에 장지문에 구멍을 뚫고서야 볼 수 있다는 첫날밤의 행사도 치르게 되는데...

 

왕비 간택을 두고 임금을 휘어잡으려는 왕대비와 대왕대비의 보이지 않는 암투가 벌어지면서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이로, 윤의 절친이었던 감무현이 지목되는 장면에선 안타까움에 혀차는 소리가 절로 나와버렸다. 감싸야 할 식구들이 많은 무현이 끝내 윤과 맞서게 되는 상황이 바야흐로 벌어지려 한다. 감무현은 윗전의 명령을 받들어 윤을 없애고 말 것인가. 윤과 함께 바늘과 실처럼 붙어다니는 서경의 존재를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마음에 품었던 서경에게도 칼끝을 겨누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어이하려고...쯧.

 

한편, 서경이 끝끝내 감추어 두려 했던 집안의 비밀이 윤의 어머니를 통해 밝혀지고야 만다.

친모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자신을 거두어 주었던 노비 함창댁과 함창댁의 손녀 달이를 면천시키고자 돈을 모을 방편으로 아파 노릇을 했던 서경. 그녀의 본래 이름은 한서경이었다. 임금으로부터 신임을 얻는 도승지 한국영의 딸. 그러나 서경의 친모는 엄청난 비밀을 남편인 도승지 몰래 간직하고 있었으며 그것으로 인해 속앓이를 했고, 딸에게 모두 내쏟고 말았던 것이다.

“죽어라, 제발 죽어라. 넌 왜 죽지도 않니?”그런 말을 서경의 귀에 대고 속살거리면서...

 

1권에서 이끌어오던 왕비간택 사건도 마무리 되고, 윤과 서경의 애정전선도 재정비되며, 서경의 비밀도 밝혀지는 2권.

그리고 2권의 마지막 몇 장에는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보시면 놀라실 거에요~^^

 

 

꼭 드라마로 만들고 말 거야~하는 결심이 담기기라도 한 것처럼 매 장면에 갈등과 대립의 구조를 척척 쌓아두고, 야금야금 풀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한바탕 멋진 꿈을 꾸고 나서 이건 진짜, 대박 소설감이야, 혹은 드라마 감이야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종이를 펼치고 앉아 막상 글로 쓰려 하면, 총포를 쏘고 난 후에 아스라이 사라지는 연기처럼 매캐한 화약 냄새만을 남기고 마는 그 순간의 허무함을 느껴 본 사람은 알 터이다. 창작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매끄럽고 소리내어 읽어도 (대사처리하듯이) 무리가 없다. 이야기의 신선함과 재미, 문장의 완성도 면에서 모두 합격점이다. 쯧. 내가 무슨 심사위원이기라도 한 듯이 무척 뻐기며 이 말을 뱉어내고 있는데...훗. 이게 바로 독자의 권리?^^

 

한동안 로맨스의 단 맛에서 멀어져 있었던 내게 이리 뇌리에 콱 박힐 만큼 찐하게 달콤한 로맨스를 선사하시니, 앞으로도 종종 로맨스를 찾게 될 듯 싶다.

 

가정주부에게 로맨스는 독이오~~

요즘 <주군의 태양>을 열혈시청 중이신데, 옆에서 같이 보던 남편은 <조선왕비 간택사건>을 읽지도 않았으면서 서경 역에 빙의라도 된 듯이 “쯧”을 심하게 남발하신다. 드라마가 아줌마들 다 망친다-며...

나의 저녁을 책임 져줄 로맨스여, 어서 어서 내 품에 오라^^

TV속으로 아예 들어가라, 들어가. 남편의 잔소리는 어김없이 날아들어오고 중요 대사가 시작할라 치면 구시렁거리며 대사의 느낌을 팍 반감시켜버리는 어이상실의 능력을 발휘하시는 우리 남편은 맥주 한 캔으로 입막음시킬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

귀뚜라미 울어대는 서늘한 가을 초입에 읽은 <조선왕비 간택사건>

드라마가 나오는 그날까지 내 그 느낌, 잘 담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가 나오면, 열심히 시청할 것이다.

느낌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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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760 페북 친구하고 욜씨미 소식 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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