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 1~2 세트 - 전2권 소설 조선왕조실록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 것 그대로의 인간 정도전을 만나다 [혁명]

 

 

정치가 정도전, 혁명가 정도전은 그의 사후 얼마 지나지 않은 조선조에서부터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두루 회자되었다. 조선 건국에 있어 그의 공로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으나 그의 공과를 두고 사람들의 평가는 여러 갈래다. 그러나 인간 정도전은 어디에 가서 찾아야 할까. 여기, 김탁환의 [혁명]에서는 모든 수식어를 뺀, 날 것 그대로의 인간 정도전을 만날 수 있었다.

역사적 인물로 엄연히 실재했던 인물이기에 기록에 남지 않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오로지 작가의 버무리는 솜씨에 기대어 그려볼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한계에 대한 우려를 김탁환은 지혜롭게, 또한 아주 날렵하고 능숙하게 떨쳐내었다.

실록에서 볼 수 있는 편년체 기사의 형식과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체 혹은 書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인간 정도전의 외면과 내면을 종횡무진 들쑤시고 다녔다.

고려말 조선초의 역사를 오롯이 살아냈던 정도전이 뿌리를 내리고 섰는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는 정형화된 인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처럼 먹고 자고 피가 돌고 살결이 느껴지는 살아 있는 인물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말이다.

한 인물을 그려냄에 있어 그 흔하디흔한 전기의 형식을 고집하지 않고, 정도전의 고뇌와 이상과 혁명 정신을 집약하여 보여줄 수 있는 18일 동안-바로 이성계가 해주에서 낙마하는 순간부터 정몽주가 암살 당하는 순간까지-에 집중하여 다양한 문체로 풀어낸 점이 신선하다.

 

[혁명]에서 그려지는 정도전은 남성적이고 호방한 어조로 이성계의 조선 건국 업적을 칭송하며 썼던 글 “악장”에서 보여 졌던 인물과는 또 달랐다. 모든 유자(儒者)가 마땅히 문무(文武)의 상보적 관계를 논하지만, 정도전처럼 무(武)의 모습을 동적이고 남성적인 어조로 표현하는 것은 특징적이라고 할 만하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그의 글은 자칫 패도적인 경향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으나 거칠게 자신의 야망을 위해 몸부림쳤던 인물일 것이라는 이미지를 충분히 쇄신하고도 남을 만큼 [혁명] 속의 정도전은 인간적인 내음을 물씬 풍기고 있다.

마음 속 품은 생각을 시로 표현할 줄 알며, 말보다는 書를 주고받을 줄 아는 풍류를 지녔으며, 한가로운 틈에는 희작(戱作)이나 소설(小說)따위를 짓기도 하고 자신을 따르던 이매와 망량에 대해서 <이매망량전>을 지어보기도 하는, 천생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일 것이었는데...기(記), 서(書), 서(序), 발(跋), 설(設), 전(傳) 등, 분명 요즘의 갈래로는 쓰이지 않는 문학의 형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작자가 존경스럽기도 하거니와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 정도전은 한층 더 매력적이라고 하겠다.

고려조 말기에 9년에 걸친 유배기간 동안 [맹자]를 탐독하며 새 왕조의 개창을 도모했던 흔적 또한 곳곳에 녹아 있다.

참으로 넓은 인간, 광활한 인간 정도전을 만났구나!

 

 

정도전, 정몽주, 이성계 그리고 젊은 혁명가 이방원

 

정몽주와 이성계는 상당히 일찍부터 교유하였고 전장에서 함께 고생하면서 돈독한 우정을 쌓아갔다. 이색 문하에서 동문수학했던 정몽주의 소개로 이성계를 만난 정도전. 함주에 있던 이성계를 찾아가 만날 때까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던 정도전은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느낌과 동시에 고려의 최하층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위화도 회군 사건은 특히 정도전에게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되었고, 이때부터 고려 왕조에 대한 절망감과 함께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상을 싹틔웠을 것으로 보인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져야 할 역사적 책임에 대한 처절한 자기반성은 [혁명]의 곳곳에서 보이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자 하는 의지는 쉽사리 꺾이지 않는다.

위화도 회군 이후 고려의 개혁을 함께 추진한 정치적 동지였으나 정몽주는 이성계, 정도전 등과는 개혁의 최종 목표가 달랐다. 고려의 체제 안에서 개혁을 하고자 한 최영과 정몽주는 이른바 온건개혁파였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이성계와 정도전 등은 급진개혁파였다. 희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고자 할 때, 그가 발견하는 희망은 언제나 민중들의 거대한 에너지이다. 피폐한 사회에서 고통에 허덕이는 민중들을 위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정도전은 위대한 첫걸음을 떼었으나 정치는 언제나 개인적인 친분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 진리인 듯. 사적인 친분 관계로만 보면 정도전보다도 더 오래, 더 가깝게 교유한 이성계 평생의 지기가 바로 정몽주였다. 하지만 피끓는 청춘, 젊은 혁명가 이방원은 개인의 정을 묵살한 채 정몽주를 살해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로 [혁명]은 끝나지만, 조선 개국의 과정 속에서 정몽주를 살해한 이방원이 이성계의 신뢰를 잃을 것이며,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이성계를 왕으로 세운 정도전이 얼마 못 가 버려질 패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젊은 혁명가 이방원이 특히 조선 개국 전까지는 이성계를 추대하여 새 나라를 만들겠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협력했던 정도전에게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밀며 압박을 할 것임도 뻔히 보인다.

이성계의 낙마 사고 당시 정몽주가 정도전을 탄핵하여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정몽주를 제거함으로써 정도전의 목숨을 구해준 이도 이방원이었지만, 그들이 꿈꾸는 정치가 너무도 달랐기에 정도전의 찬란한 순간은 아마도 여기까지였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생각을 도모하여 함께 달려온 지기, 지우들이지만, 만인지상의 지위에 오르는 순간, 개인은 한낱 개인일 수 없음을. 마음 속에 이상을 품었다 한들, 그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이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는 그 순간, 혁명의 뜨거운 숨결은 식어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바람을 일으키는 주역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내달렸건만, 실은 바람에 떠밀려 여기까지 온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 허탈함 어찌 이루 말로 다하리. 스러져 가는 아름다운 나라 고려의 끄트머리를 과단성 있게 잘라내고 우뚝하게 조선을 세운 이들의 내면에 불었던 바람들은 각자 다른 세기와 방향으로 불었던 것이다. 시대를 정확히 읽고 힘을 바탕으로 한 판도를 적시에 구사해 마침내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정도전. 그 과정에서 인간 정도전이 느껴야 했을 개인의 역사가 여기서 이렇게 살아나게 되었다.

 

1398년 8월 25일 밤부터 26일에 걸쳐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을 암살하였다.

그 25일 새벽, 정도전이 지어 붙인 자서(自序)로 시작하는 [혁명]

“오늘 밤도 나는 호랑이를 잡는 새, 육덕위의 눈으로 어제의 틈을 메웠고, 또 내일의 틈을 발견했다” -18

 

 

그 어디서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정도전의 인간됨과 평범한 일상과 쉽사리 꺼내 보이지 않는 가슴 한구석의 속삭임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살보다 sex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개인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자살보다 SEX]

 

 

문제적 작가의 문제작을 만났다!!

한동안 한 가정의 안방마님으로 사느라 너무 얌전하게만 놀았나?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이나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 한창 때에는 무겁건 가볍건 간에 주제가 좀 성적인 문학작품이라도 일단 읽고나 보자 하고 탐독하면서 파격적인 장면에서도 좀 무덤덤한 편이었는데...가정주부로서 무거운 주제의 문학작품에서 놓여나 달달한 로맨스에만 치중하는 안전한(?) 행보를 보이다 보니, 무라카미 류의 에세이집에서 묘사된 단 몇 장의 글에서도 “헉” 하고 숨을 들이쉬게 된다. (사실은, 간만이야~ 하면서 침을 흘렸으려나...하지만 류의 글은 너무나 사실적이라 쉽게 동화되거나 심장이 두근두근하지 않는다.)

 

 

       

 

무라카미 류의 연애와 여성론이라는 부제 때문에 좀 부드러운 어투로 연애를 다루고 있나 싶은 기대감이 살짝 들긴 하지만 무라카미 류의 네임이 가지는 포스는 그 기대감을 살짝 쳐내버린다. [69], [한없이 투명한 블루], [교코]등 몇 작품은 지나친 성애묘사로 거부감을 보이는 일부 독자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좋은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낯선 일상을 어둠 속에서 끌어내어 표면화시키고 은폐된 세상 속의 일을 지독히 현실적으로 그려낸 그의 작업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나 보다.

 

1952년생인 류는 더 이상 혈기왕성한 청년도, 장년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가 모두 교사인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는데, 어쩜 이렇게 자유분방한 사고를 하고 그것을 글로 쓸 수 있을까...싶었다. 보통 우리나라의 경우(일본도 마찬가지이려나?), 부모가 모두 교사라면 안전한 환경에서 사회의 통념을 잘 물려받은 엄격한 도덕적 인간으로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류는 그런 상식을 뒤엎는 인물이다.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탓인지 히피 문화에 깊숙이 빠져 들었다. 고교 시절 이미 록 밴드를 결성하여 드럼을 연주하고 친구들과 8mm 단편 영화를 만드는 등 범상치 않은 행적을 보였다. 미군 기지촌에 살았던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첫 소설 [한없이 투명한 블루]로 문단에 등장하며 작가 생활을 해 온 그는 40여 년간 문화 예술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1976년 데뷔 이래 2002년까지 27년간 류가 발표해온 연애 에세이의 집대성이라고 했던가. 2003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10여 년 만에 전면 재개정되어 이렇게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나는 원래 책을 잘 안 버리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얼마 전부터 책을 뉘어서 서가의 빈틈에 꽂아넣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는 오래된 책, 나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책을 몇 권, 아니 몇 십권 추려내어 버리게 되었다.

류의 [자살보다 SEX]를 읽으면서 예전에 류의 소설이 서가에 한 권 꽂혀 있던 기억이 나서 찾아보았더니, 아뿔싸. 이미 버린 책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무라카미 류의 [리허설]이라는 소설이었는데, 이슈가 되었던 유명한 책도 아니고 내가 사거나 직접 선물받은 것도 아니어서 등한시했던 듯 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책 중에서 드물게 책의 앞장에 손으로 쓴 글이 남겨져 있는 책이었는데...

사실, 지금은 제부가 된 내 여동생의 당시 남자친구가 의경으로 있던 시절, 피끓는 청춘기에 여친(내 여동생)을 그리워하며 절절한 심정을 담아 쓴 짤막한 글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 당시에 안 갖다 버린 것도 장한 일...(그 때 내게 남친이 있었다면 충분히 이해해줄 만하지만^^)

[리허설]은 자신이 데리고 있는 여성들을 성매매자에게 알선하는 일을 하는 포주 겐 지의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도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일단은 꾸역꾸역 책장은 잘 넘어갔고, 그만큼 책에 빠져들게 만드는 감각적인 문체만큼은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10 여 년을 책장에 꽂아둔 채로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 동시대를 사는 비슷한 연배의 작가이지만 우리에게는 하루키가 더 익숙하다. 류 또한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우리나라에도 많은 작품이 꾸준히 소개되었지만, 류에 대한 평은 호불호가 갈리는 만큼 하루키만큼의 대중적인 인기는 얻지 못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나조차도,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를 지금껏 하루키의 작품으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읽어보았다면 결코 혼동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류는 과감하고 적나라한 성에 대한 묘사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류는 자신의 작품이 ‘포르노’라 불리길 거부한다.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보면서 자위를 했다고 하자 실망하는 내용을 에세이집에 써놓았다. 터프하고 냉정하게 지독히 직설적으로 성애묘사를 한 그가 사실은 상처받기 쉬운 남자라는 사실에 살짝 웃음을 머금기도 했다.

 

류는 남성 작가로서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독자가 정말로 흥미로워하는 이야기는 가십 잡지의 Q&A 코너에서나 있을 법한 ‘남자를 사로잡는 법’, ‘낙태 여부를 둘러싼 말다툼’ 등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에 그런 사적인 내용을 에세이에 담을 수 없어서 연애나 여성론을 주제로 시작한 연재 에세이는 어느새 쿠바나 사회 구조 개혁이나 월드컵 이야기로 흘러가 버린다고 했다.

 

과거에 근대화를 위해서 전쟁과 침략도 서슴지 않고 저질렀던 일본은 이제 근대화라는 목표를 이루었고, 더 이상 근대화를 이유로 개인에게 ‘공동체’ 사회에의 소속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시기를 맞이했다. 이른바 개인의 시대가 오래 전부터 도래했음에도 매스미디어나 광고 같은 상업적 매개물을 이용해서 국가와 개인을 묶어놓으려는 시스템을 전파하는 일본. 그 나라 안에서 개인은 어쩌면 노예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데도, 눈치 채지 못하고 외롭다느니, 연애가 필요하다느니 하는 말만 늘어놓고 있다. 국가와 개인의 괴리, 또는 격차 때문에 “자살”사회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일본을 두고 류는 “연애가 공동체에 전적으로 패했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하여, 시스템에 종속된 남자들에게서는 더 이상 상상력을 발견할 수 없기에 소녀와 여자들에게서 에너지를 얻으려 한다.

극단적인 결론으로 ,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자살 보다는 섹스가 낫다고 말하는 것이다.

루즈 삭스, 태닝, 통굽부츠 등으로 자신을 강하게 어필하려는 요즘의 소녀들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류.

어떠 종류의 모성 같은 것을 통해 공동체에 근본적으로 싸움을 걸며 도전하는 여성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고 했다. 지각없는 무모함으로 보일지 몰라도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정신의 움직임이 좋대나.

섹스를 도구로 이용하고, 섹스를 통해 어떤 긴장상태를 손에 넣거나 에너지를 얻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데에야...

마지막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차세대 작가인 요시모토 바나나와 야마다 에이미를 두고 하는 말도 특이한 듯 하여 덧붙여 본다.

 

개선문 바로 밑에 서서 야마다 에이미를 생각하다가 자기 파괴라는 말이 떠올랐다.

처녀성을 버린 후에, 즉 데뷔를 한 후에, 창작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파괴의 충동이다. 이것은 소설가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야마다 에이미의 자기 파괴력을 믿고 있다. 실제로 만나 보면 느낄 수 있는데, 그녀는 아주 순수한 인상을 지녔다. 그것을 여성 작가 특유의 표정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예를 들어 [베드 타임 아이스] 속의 여성 성기는 호흡하며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나는 호흡하는 생식기를 가지지 않은 쪽이라서 자기 파괴가 기념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야마다 에이미를 말하자면 자기 파괴 그 자체이다. 게다가 맑고 아름답다. 부러울 따름이다. -89

 

하우스 뮤직을 닮은 소설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들이다. 예를 들어 [도마뱀]의 테마는 상처를 위로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근대문학을 대하듯이 그녀의 소설을 읽고 비평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보들이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상상력이 아닌 기술만으로 소설을 쓰고 있지만 그것은 결점이 될 수 없다. 그녀의 기술은 실로 압도적이니까. (...)어차피 여성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난폭한 문장이 되어가는군.)-93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닌, 무라카미 류에게 관심이 조금~ 옮겨져 간다. 가식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작품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열정. 작품에서나 사생활에서나 평범함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영혼. 어쨌든 국가의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초점을 두라는 그의 충고는 받아들일 만하다. 연애를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쁜 것이 가장 좋지만, 가끔 찾아드는 외로움이 고개를 들 때에는 속으로 침잠하지 말고, 자살보다는 섹스를...

무라카미 류다운 결론이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대는 받아들여졌다 -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51편의 묵상 잠언
류해욱 지음, 남인근 사진 / 샘터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영혼의 소리를 들어라 [그대는 받아들여졌다]

 

가톨릭 사제이자, 시인, 번역가인 류해욱 님.

그리고 '감성 풍경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사진작가 남인근 님.

이렇게만 소개해도 이 책의 가치를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듯하다.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부딪힘, 단절, 거부 등의 부정적인 단어들이 책의 제목을 한 번 읽는 것만으로도 다 스러져 버리는 느낌이다.

[그대는 받아들여졌다]

삐딱하게 사물을 보는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사람일지라도 일단, 릴렉스 하게 해 주고 공감받고 있음을 마음 깊이 느끼게 해 준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그대는 받아들여졌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저자가 원전을 직접 번역한 것이라고 하니 그 울림 또한 많은 것을 거치지 않고 최대한 원전의 형태 그대로 고스란히 전해질 듯하다.

한 번에 술술 읽어나가도 좋고,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읽고 싶은 곳을 펼쳐 음미하며 천천히 읽어도 좋다.

책 어느 곳을 펼쳐도 아름다운 사진과 조용조용한 말들이 가득하다.

이런 류의 명상집을 읽다보면 어느 구절에나 조금씩 나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고,

다시금 곱씹어야 할 금과옥조같은 말들이 튀어나오곤 하는 것에 놀라게 된다.

한 사람의 경험이 아닌 여러 사람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책들에서 추려내고 또 추려내어서 '좋은 말씀'을 들려주는데, 나는 또 왜 그 수없는 경험들에 일일이 반응할 수 있는 것인지.

아직 생의 절반 정도밖에 살지 않았는데도 나는 참, 많은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겪어낸 것인가...그러면서 이만큼 가정을 꾸리고 책을 읽어내고 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지치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쉼터가 되어주는 이 말들의 웅덩이에서 나는 또 어루만짐을 느끼게 되고, 앞으로 올 날들을 살아낼 힘을 얻게 된다.

 

봄날의 흐드러진 목련을 보고 "어멋" 하며 발걸음을 멈추고 목련 나무 아래에서 화악 올라오는 싱그러움을 맡을 수 있는 지금, 나는 무척 안정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리라...

발걸음 하나 떼는 데도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가로질러 얼굴 한 가운데 움푹 패인 주름을 만들며 걷던 때도 있었는데, 그 시간도 어찌어찌 흘러가고 지금은 평온한 오리떼들이 유유히 유영하며 만드는 잔잔한 파문만한 잔걱정 뿐이니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인생이란 말이 나를 두고 하는 말임을 알겠다.

 

 

 

우리 삶은 늘 눈물과 미소의 교차인지도 모릅니다. 이는 울 일, 웃을 일이 번갈아 일어난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거기에는 눈물과 미소가 함께 있습니다. 눈물 나는 상황에서도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면 햇살이 환히 비치고 있지요. -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콤한 킬러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36
제프 린제이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덱스터는 맛있을까? DEXTER is Delicious [달콤한 킬러 덱스터]

 

책의 앞뒤에 나열된 찬사, 찬사, 찬사들!!

 

 

덱스터~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 것 같긴 한데 그 실체를 본 적이 없어서 혹시나 남편에게 물어봤더니 자기도 한 두 번 본 적 있는 TV드라마라고 한다. 아~ 그래서 책에 관심 없는 남편이 덱스터를 알고 있었구나...이해한다.

도대체 덱스터는 어떤 캐릭터이기에 이렇게 유명한가? 줄줄이 이어지는 찬사는 더더욱 궁금증을 돋우었다.

일반 추리물의 경우 기가 막힌 반전이라든지 추리를 해 나가는 탐정 혹은 경찰의 기가 막힌 솜씨에 초점을 맞추는데, 덱스터의 경우에서는 의외의 말이 전면에 나와 있어서, 덱스터가 나쁜 놈인지 착한 놈인지조차 감을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달콤한 킬러 덱스터 라는 제목.

왜 정의의 편에서 나쁜 놈을 잡아야 하는 인물이 킬러라는 것인가?

훗. 덱스터 시리즈를 쭉 보아온 사람들은 나같은 덱스터 초보에게 해줄 말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 옆에는 아무도 그런 힌트를 줄 사람이 없으므로 나는 오로지 이 작품 하나에 의지해서 덱스터를 이해해 나가야 한다.

표지에서 검은 장막을 왼손으로 살짝 걷은 채 서늘한 눈동자로 누군가를...아니, 나를 응시하고 있는 덱스터의 모습에 잠깐 움찔한다.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인물 탓에 거의 2주간을 표지에 나와 있는 덱스터의 눈동자와 아무 소득 없는 눈싸움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충분히 재미있고 그래서 시리즈로 5탄이나 나와 있을 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나는 지금, 낯선 덱스터에게 낯가림을 하고 있는 듯하다.

눈빛 교환만으로 이렇게 썸만 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더 이상 이러고 있어서 될 게 아니란 판단이 섰을 때, 첫장을 넘기고야 말았다.

덱스터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낯가림을 이겨버린 것이다.

몇 장 넘기지 않아 의외의 사실에 풋~ 어이없이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덱스터가 아빠가 되었다는 말을 이렇게 달콤살벌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갓 태어난 아기 “릴리 앤”의 아빠로서의 덱스터는 이보다 더 친근할 수 없었다.

킬러의 본색이 언제 어떻게 드러날까 괜히 조바심 내면서 조시조심 읽었는데, 이런~ 아기의 웃음 한 번에 마음이 녹아내리는 아빠 덱스터라니...

 

 

"더는 어둠 속의 덱스터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요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소개되는 딸바보, 아들바보 아빠들(추성훈, 이휘재, 타블로 등등) 못지 않게 부성애에 젖은 덱스터,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릴리 앤의 탄생을 계기로 뭔가 확 달라져 버린 덱스터. 아직 확실히 그 존재의 활약상을 본 적이 없어서 덱스터에게 올라탄 “검은 승객”의 참모습을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지만, 덱스터는 사악한 면이 아닌, 선한 면 쪽으로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검은 승객”과의 화려한 과거야 어찌되었던 그는 이제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덱스터의 가족 관계가 서서히 드러난다.

끔찍한 살인마이기도 한 덱스터에게도 그를 돌봐주던 가족이 있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리타와 가정을 꾸렸으며 결국 이렇게 “릴리 앤”이라는 그의 진짜 혈육도 얻었다.

덱스터는 어릴 때 입양되면서 핏줄을 나눈 친형 브라이언과 헤어진 것으로 보인다. 입양된 곳은 경찰인 아버지 해리, 누이 동생 데보라가 있는 집이었는데, 해리의 영향으로 데보라는 경찰이 되었고, 덱스터 또한 그 일원으로서 혈흔감정 전문가로 일하고 있으며 현재 일 문제로 데보라와 자주 부딪치게 되는 상황이다.

덱스터가 릴리 앤의 탄생을 지켜보며 자신의 아내 리타와 리타의 자식인 코디, 애스터와 함께 제법 가족다워 보이는 가정을 꾸려나가며 가정에 안착하는 듯이 보이자 데보라는 여전히 혼자인 자신의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덱스터와 데보라, 브라이언 등과 얽히는 복잡한 가족사는 덱스터라는 인격을 형성하게 된 중요한 요인인 듯하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검은 승객”의 존재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데보라와 덱스터와 외형적으로 닮았으며 정신적인 면은 더 똑같은 브라이언이 “달콤한 킬러 덱스터” 편에서 유난히 부각되고 있다.

릴리 앤의 탄생과 동시에 사랑 넘치는 큰아버지 역할을 하며 덱스터의 안락한 가정에 발을 들인 브라이언은 덱스터만큼이나 피도 눈물도, 더불어 감정도 양심도 없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는 왜 덱스터의 주위를 맴도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계속 촉각이 곤두선다.

 

한편, 덱스터의 급작스러운 변화만큼이나 쇼킹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나름 상류층 아이들이 다니는 랜섬 에버글래이즈 사립학교에 재학 중이던 열여덟 살 사만다 알도바르란 여학생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만다의 방에는 엄청나게 거대한 혈흔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특색이라고는 없었고 그나마 그 혈흔은 사만다의 혈액도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연방수사관과 사건의 주도권을 다투던 데보라에게 사건이 맡겨지게 되자 덱스터는 어쩔 수 없이 이 사건에 깊이 관여하게 되는데...보이스카우트 일행이 캠핑을 하다 발견한 불탄 흔적과 거대한 구덩이에서 희생자가 발견되었다. 바비큐가 되어 죽음을 맞이한 그녀는 사만다와 최근 급격히 친해졌던 여학생 타일러 스파노스로 밝혀졌고, 그녀의 주변에서는 사람 피로 만든 펀치볼도 발견되었다. 사만다도 언제 “식인종”의 만찬음식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쨌든 관건은 그녀를 빨리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덱스터에게 난데없이 닥친 회의.

 

앞으로 계속 이런 식일까? 매일 만나게 될 희생자에게 인간적인 동정을 느끼면 어떻게 업무를 해낼 수 있을까?(..)

갑자기 처참해진 나는 밀려오는 자기연민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의기소침한 덱스터라니, 우스운 꼴이었다. 당해도 싼 인간들이었지만, 수십 명의 사람들을 사후세계로 직접 인도했던 덱스터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여자아이 하나가 살해당했고, 범인이 그 살점을 버리지 않고 깨끗이 먹어치웠다는 현실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160

 

“검은 승객”과 함께 거칠 것 없는 마성의 카리스마를 보이며 당해도 싼 나쁜 놈들을 하나하나 해치워버렸던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덱스터에게 드디어 따뜻한 피가 돌고 보드라운 새살이 나고 있는 것인가.

아빠로서,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려하는 덱스터는 ‘살인마’의 어두운 가면을 벗으려 하는데 아뿔싸...인과응보인가.

음식이 되어 포식자의 테이블에 올려질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꼼짝없이 당해야만 하는 최후를 남겨둔 덱스터의 마지막 단말마...(치고는 좀 말이 많다^^)

양심의 거리낌 없이 살인을 하던 덱스터의 강인함은 어디에도 없다. 잘못 살아온 인생을 곱씹으며 릴리 앤을 발레 교습소에 데려가지도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지도, 동화를 읽어주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아쉬워하는 덱스터가 있을 뿐이었다.

 

후아~ 덱스터의 내면의 변화가 한 축, 쇼킹한 ‘식인 사건’이 또 한 축. 거기에 마지막에 터지는 데보라의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까지.

손에 땀이 마를 새 없이 책에 빠져든 시간이었다.

전대미문의 모순적인 캐릭터 덱스터. 어쨌거나 심장과 양심이 없는 살인마로서 정의를 대신 실현한다는 명분 아래 살아왔던 덱스터가 ‘검은 승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지는 미지수이다.

릴리 앤과 함께 가족을 꾸려가는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달콤한 모습이 좀 더 보여지길...

데보라와 브라이언도 좀 더 행복해지길...

달콤한 킬러로 변신한 덱스터가 정말 맛있을지 알아보려면...이 책을 꼭 읽어보는 수밖에 없겠다.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덱스터 덕분에 두어 시간은 훌쩍 지나갈 것이라 장담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알라딘신간평가단님의 "14기 신간 평가단 발표 "

감사합니다. 날씨도 좋은데 좋은 소식 받게 되니 어깨춤이 절로 나네요. 점심은 꿀맛일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