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 1~2 세트 - 전2권 소설 조선왕조실록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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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 그대로의 인간 정도전을 만나다 [혁명]

 

 

정치가 정도전, 혁명가 정도전은 그의 사후 얼마 지나지 않은 조선조에서부터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두루 회자되었다. 조선 건국에 있어 그의 공로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으나 그의 공과를 두고 사람들의 평가는 여러 갈래다. 그러나 인간 정도전은 어디에 가서 찾아야 할까. 여기, 김탁환의 [혁명]에서는 모든 수식어를 뺀, 날 것 그대로의 인간 정도전을 만날 수 있었다.

역사적 인물로 엄연히 실재했던 인물이기에 기록에 남지 않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오로지 작가의 버무리는 솜씨에 기대어 그려볼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한계에 대한 우려를 김탁환은 지혜롭게, 또한 아주 날렵하고 능숙하게 떨쳐내었다.

실록에서 볼 수 있는 편년체 기사의 형식과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체 혹은 書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인간 정도전의 외면과 내면을 종횡무진 들쑤시고 다녔다.

고려말 조선초의 역사를 오롯이 살아냈던 정도전이 뿌리를 내리고 섰는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는 정형화된 인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처럼 먹고 자고 피가 돌고 살결이 느껴지는 살아 있는 인물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말이다.

한 인물을 그려냄에 있어 그 흔하디흔한 전기의 형식을 고집하지 않고, 정도전의 고뇌와 이상과 혁명 정신을 집약하여 보여줄 수 있는 18일 동안-바로 이성계가 해주에서 낙마하는 순간부터 정몽주가 암살 당하는 순간까지-에 집중하여 다양한 문체로 풀어낸 점이 신선하다.

 

[혁명]에서 그려지는 정도전은 남성적이고 호방한 어조로 이성계의 조선 건국 업적을 칭송하며 썼던 글 “악장”에서 보여 졌던 인물과는 또 달랐다. 모든 유자(儒者)가 마땅히 문무(文武)의 상보적 관계를 논하지만, 정도전처럼 무(武)의 모습을 동적이고 남성적인 어조로 표현하는 것은 특징적이라고 할 만하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그의 글은 자칫 패도적인 경향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으나 거칠게 자신의 야망을 위해 몸부림쳤던 인물일 것이라는 이미지를 충분히 쇄신하고도 남을 만큼 [혁명] 속의 정도전은 인간적인 내음을 물씬 풍기고 있다.

마음 속 품은 생각을 시로 표현할 줄 알며, 말보다는 書를 주고받을 줄 아는 풍류를 지녔으며, 한가로운 틈에는 희작(戱作)이나 소설(小說)따위를 짓기도 하고 자신을 따르던 이매와 망량에 대해서 <이매망량전>을 지어보기도 하는, 천생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일 것이었는데...기(記), 서(書), 서(序), 발(跋), 설(設), 전(傳) 등, 분명 요즘의 갈래로는 쓰이지 않는 문학의 형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작자가 존경스럽기도 하거니와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 정도전은 한층 더 매력적이라고 하겠다.

고려조 말기에 9년에 걸친 유배기간 동안 [맹자]를 탐독하며 새 왕조의 개창을 도모했던 흔적 또한 곳곳에 녹아 있다.

참으로 넓은 인간, 광활한 인간 정도전을 만났구나!

 

 

정도전, 정몽주, 이성계 그리고 젊은 혁명가 이방원

 

정몽주와 이성계는 상당히 일찍부터 교유하였고 전장에서 함께 고생하면서 돈독한 우정을 쌓아갔다. 이색 문하에서 동문수학했던 정몽주의 소개로 이성계를 만난 정도전. 함주에 있던 이성계를 찾아가 만날 때까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던 정도전은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느낌과 동시에 고려의 최하층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위화도 회군 사건은 특히 정도전에게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되었고, 이때부터 고려 왕조에 대한 절망감과 함께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상을 싹틔웠을 것으로 보인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져야 할 역사적 책임에 대한 처절한 자기반성은 [혁명]의 곳곳에서 보이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자 하는 의지는 쉽사리 꺾이지 않는다.

위화도 회군 이후 고려의 개혁을 함께 추진한 정치적 동지였으나 정몽주는 이성계, 정도전 등과는 개혁의 최종 목표가 달랐다. 고려의 체제 안에서 개혁을 하고자 한 최영과 정몽주는 이른바 온건개혁파였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이성계와 정도전 등은 급진개혁파였다. 희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고자 할 때, 그가 발견하는 희망은 언제나 민중들의 거대한 에너지이다. 피폐한 사회에서 고통에 허덕이는 민중들을 위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정도전은 위대한 첫걸음을 떼었으나 정치는 언제나 개인적인 친분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 진리인 듯. 사적인 친분 관계로만 보면 정도전보다도 더 오래, 더 가깝게 교유한 이성계 평생의 지기가 바로 정몽주였다. 하지만 피끓는 청춘, 젊은 혁명가 이방원은 개인의 정을 묵살한 채 정몽주를 살해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로 [혁명]은 끝나지만, 조선 개국의 과정 속에서 정몽주를 살해한 이방원이 이성계의 신뢰를 잃을 것이며,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이성계를 왕으로 세운 정도전이 얼마 못 가 버려질 패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젊은 혁명가 이방원이 특히 조선 개국 전까지는 이성계를 추대하여 새 나라를 만들겠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협력했던 정도전에게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밀며 압박을 할 것임도 뻔히 보인다.

이성계의 낙마 사고 당시 정몽주가 정도전을 탄핵하여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정몽주를 제거함으로써 정도전의 목숨을 구해준 이도 이방원이었지만, 그들이 꿈꾸는 정치가 너무도 달랐기에 정도전의 찬란한 순간은 아마도 여기까지였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생각을 도모하여 함께 달려온 지기, 지우들이지만, 만인지상의 지위에 오르는 순간, 개인은 한낱 개인일 수 없음을. 마음 속에 이상을 품었다 한들, 그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이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는 그 순간, 혁명의 뜨거운 숨결은 식어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바람을 일으키는 주역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내달렸건만, 실은 바람에 떠밀려 여기까지 온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 허탈함 어찌 이루 말로 다하리. 스러져 가는 아름다운 나라 고려의 끄트머리를 과단성 있게 잘라내고 우뚝하게 조선을 세운 이들의 내면에 불었던 바람들은 각자 다른 세기와 방향으로 불었던 것이다. 시대를 정확히 읽고 힘을 바탕으로 한 판도를 적시에 구사해 마침내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정도전. 그 과정에서 인간 정도전이 느껴야 했을 개인의 역사가 여기서 이렇게 살아나게 되었다.

 

1398년 8월 25일 밤부터 26일에 걸쳐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을 암살하였다.

그 25일 새벽, 정도전이 지어 붙인 자서(自序)로 시작하는 [혁명]

“오늘 밤도 나는 호랑이를 잡는 새, 육덕위의 눈으로 어제의 틈을 메웠고, 또 내일의 틈을 발견했다” -18

 

 

그 어디서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정도전의 인간됨과 평범한 일상과 쉽사리 꺼내 보이지 않는 가슴 한구석의 속삭임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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