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보다 sex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개인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자살보다 SEX]

 

 

문제적 작가의 문제작을 만났다!!

한동안 한 가정의 안방마님으로 사느라 너무 얌전하게만 놀았나?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이나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 한창 때에는 무겁건 가볍건 간에 주제가 좀 성적인 문학작품이라도 일단 읽고나 보자 하고 탐독하면서 파격적인 장면에서도 좀 무덤덤한 편이었는데...가정주부로서 무거운 주제의 문학작품에서 놓여나 달달한 로맨스에만 치중하는 안전한(?) 행보를 보이다 보니, 무라카미 류의 에세이집에서 묘사된 단 몇 장의 글에서도 “헉” 하고 숨을 들이쉬게 된다. (사실은, 간만이야~ 하면서 침을 흘렸으려나...하지만 류의 글은 너무나 사실적이라 쉽게 동화되거나 심장이 두근두근하지 않는다.)

 

 

       

 

무라카미 류의 연애와 여성론이라는 부제 때문에 좀 부드러운 어투로 연애를 다루고 있나 싶은 기대감이 살짝 들긴 하지만 무라카미 류의 네임이 가지는 포스는 그 기대감을 살짝 쳐내버린다. [69], [한없이 투명한 블루], [교코]등 몇 작품은 지나친 성애묘사로 거부감을 보이는 일부 독자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좋은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낯선 일상을 어둠 속에서 끌어내어 표면화시키고 은폐된 세상 속의 일을 지독히 현실적으로 그려낸 그의 작업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나 보다.

 

1952년생인 류는 더 이상 혈기왕성한 청년도, 장년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가 모두 교사인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는데, 어쩜 이렇게 자유분방한 사고를 하고 그것을 글로 쓸 수 있을까...싶었다. 보통 우리나라의 경우(일본도 마찬가지이려나?), 부모가 모두 교사라면 안전한 환경에서 사회의 통념을 잘 물려받은 엄격한 도덕적 인간으로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류는 그런 상식을 뒤엎는 인물이다.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탓인지 히피 문화에 깊숙이 빠져 들었다. 고교 시절 이미 록 밴드를 결성하여 드럼을 연주하고 친구들과 8mm 단편 영화를 만드는 등 범상치 않은 행적을 보였다. 미군 기지촌에 살았던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첫 소설 [한없이 투명한 블루]로 문단에 등장하며 작가 생활을 해 온 그는 40여 년간 문화 예술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1976년 데뷔 이래 2002년까지 27년간 류가 발표해온 연애 에세이의 집대성이라고 했던가. 2003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10여 년 만에 전면 재개정되어 이렇게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나는 원래 책을 잘 안 버리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얼마 전부터 책을 뉘어서 서가의 빈틈에 꽂아넣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는 오래된 책, 나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책을 몇 권, 아니 몇 십권 추려내어 버리게 되었다.

류의 [자살보다 SEX]를 읽으면서 예전에 류의 소설이 서가에 한 권 꽂혀 있던 기억이 나서 찾아보았더니, 아뿔싸. 이미 버린 책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무라카미 류의 [리허설]이라는 소설이었는데, 이슈가 되었던 유명한 책도 아니고 내가 사거나 직접 선물받은 것도 아니어서 등한시했던 듯 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책 중에서 드물게 책의 앞장에 손으로 쓴 글이 남겨져 있는 책이었는데...

사실, 지금은 제부가 된 내 여동생의 당시 남자친구가 의경으로 있던 시절, 피끓는 청춘기에 여친(내 여동생)을 그리워하며 절절한 심정을 담아 쓴 짤막한 글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 당시에 안 갖다 버린 것도 장한 일...(그 때 내게 남친이 있었다면 충분히 이해해줄 만하지만^^)

[리허설]은 자신이 데리고 있는 여성들을 성매매자에게 알선하는 일을 하는 포주 겐 지의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도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일단은 꾸역꾸역 책장은 잘 넘어갔고, 그만큼 책에 빠져들게 만드는 감각적인 문체만큼은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10 여 년을 책장에 꽂아둔 채로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 동시대를 사는 비슷한 연배의 작가이지만 우리에게는 하루키가 더 익숙하다. 류 또한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우리나라에도 많은 작품이 꾸준히 소개되었지만, 류에 대한 평은 호불호가 갈리는 만큼 하루키만큼의 대중적인 인기는 얻지 못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나조차도,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를 지금껏 하루키의 작품으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읽어보았다면 결코 혼동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류는 과감하고 적나라한 성에 대한 묘사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류는 자신의 작품이 ‘포르노’라 불리길 거부한다.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보면서 자위를 했다고 하자 실망하는 내용을 에세이집에 써놓았다. 터프하고 냉정하게 지독히 직설적으로 성애묘사를 한 그가 사실은 상처받기 쉬운 남자라는 사실에 살짝 웃음을 머금기도 했다.

 

류는 남성 작가로서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독자가 정말로 흥미로워하는 이야기는 가십 잡지의 Q&A 코너에서나 있을 법한 ‘남자를 사로잡는 법’, ‘낙태 여부를 둘러싼 말다툼’ 등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에 그런 사적인 내용을 에세이에 담을 수 없어서 연애나 여성론을 주제로 시작한 연재 에세이는 어느새 쿠바나 사회 구조 개혁이나 월드컵 이야기로 흘러가 버린다고 했다.

 

과거에 근대화를 위해서 전쟁과 침략도 서슴지 않고 저질렀던 일본은 이제 근대화라는 목표를 이루었고, 더 이상 근대화를 이유로 개인에게 ‘공동체’ 사회에의 소속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시기를 맞이했다. 이른바 개인의 시대가 오래 전부터 도래했음에도 매스미디어나 광고 같은 상업적 매개물을 이용해서 국가와 개인을 묶어놓으려는 시스템을 전파하는 일본. 그 나라 안에서 개인은 어쩌면 노예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데도, 눈치 채지 못하고 외롭다느니, 연애가 필요하다느니 하는 말만 늘어놓고 있다. 국가와 개인의 괴리, 또는 격차 때문에 “자살”사회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일본을 두고 류는 “연애가 공동체에 전적으로 패했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하여, 시스템에 종속된 남자들에게서는 더 이상 상상력을 발견할 수 없기에 소녀와 여자들에게서 에너지를 얻으려 한다.

극단적인 결론으로 ,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자살 보다는 섹스가 낫다고 말하는 것이다.

루즈 삭스, 태닝, 통굽부츠 등으로 자신을 강하게 어필하려는 요즘의 소녀들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류.

어떠 종류의 모성 같은 것을 통해 공동체에 근본적으로 싸움을 걸며 도전하는 여성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고 했다. 지각없는 무모함으로 보일지 몰라도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정신의 움직임이 좋대나.

섹스를 도구로 이용하고, 섹스를 통해 어떤 긴장상태를 손에 넣거나 에너지를 얻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데에야...

마지막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차세대 작가인 요시모토 바나나와 야마다 에이미를 두고 하는 말도 특이한 듯 하여 덧붙여 본다.

 

개선문 바로 밑에 서서 야마다 에이미를 생각하다가 자기 파괴라는 말이 떠올랐다.

처녀성을 버린 후에, 즉 데뷔를 한 후에, 창작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파괴의 충동이다. 이것은 소설가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야마다 에이미의 자기 파괴력을 믿고 있다. 실제로 만나 보면 느낄 수 있는데, 그녀는 아주 순수한 인상을 지녔다. 그것을 여성 작가 특유의 표정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예를 들어 [베드 타임 아이스] 속의 여성 성기는 호흡하며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나는 호흡하는 생식기를 가지지 않은 쪽이라서 자기 파괴가 기념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야마다 에이미를 말하자면 자기 파괴 그 자체이다. 게다가 맑고 아름답다. 부러울 따름이다. -89

 

하우스 뮤직을 닮은 소설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들이다. 예를 들어 [도마뱀]의 테마는 상처를 위로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근대문학을 대하듯이 그녀의 소설을 읽고 비평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보들이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상상력이 아닌 기술만으로 소설을 쓰고 있지만 그것은 결점이 될 수 없다. 그녀의 기술은 실로 압도적이니까. (...)어차피 여성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난폭한 문장이 되어가는군.)-93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닌, 무라카미 류에게 관심이 조금~ 옮겨져 간다. 가식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작품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열정. 작품에서나 사생활에서나 평범함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영혼. 어쨌든 국가의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초점을 두라는 그의 충고는 받아들일 만하다. 연애를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쁜 것이 가장 좋지만, 가끔 찾아드는 외로움이 고개를 들 때에는 속으로 침잠하지 말고, 자살보다는 섹스를...

무라카미 류다운 결론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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