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런어웨이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단단한 내면을 가진 여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길 [라스트 런어웨이]

 

 

 

 

금강석 같은 내면의 그녀, 아너 브라이트.

그녀의 길은 영국의 완성도 높은 베들레헴의 별 모양 퀼트에서 시작해 미국의 화려한 아플리케를 만나고 곧바로 흑인의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퀼트로 연결되는 길이다.

죽은 언니의 드레스에서 잘라낸 갈색 천, 모자 상점 주인 벨의 노란 천, 애덤 콕스의 포목점에서 일하다 얻은 아이보리색에 마름모꼴 무늬의 자투리 천, 흑인 여자 버지니의 붉은 두건 한 조각. 등등 그녀가 스쳐가며 만난 사람들에게서 얻은 천들은 아너의 인생을 담은 퀼트로 다시 탄생하게 될 것이다. 색색의 조각천이 기억하는 삶의 한 귀퉁이 이야기들은 아너의 내면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그녀의 손은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조각천들을 퀼팅하며 진정한 가족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라스트 런어웨이]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결은 여러 갈래다. 인생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만든 것 같은 퀼트 이야기, 미국의 노예제도로 대변되는 신생국 미국의 명암, 그리고 아너 자신의 사랑과 가족을 모두 담고 있는데도 전혀 버겁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가 짧다고 여겨질 정도다. 1850년대 미국의 이야기가 사실감 있게 펼쳐지며 영국에서 퀘이커 교도로 자라 엄격한 성정을 지닌 내성적인 아가씨가 미국에 정착하면서 부딪치게 되는 여러 가지들을 명료하면서도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무심한 듯 간결한 문체와 군데군데 이어지는 아너의 편지 때문에 책의 첫머리에서 덥석 잡았던 아너의 손을 놓을 수 없었고, 계속해서 그녀와 걸음을 함께 옮기게 되었다. 그녀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촘촘하고 비뚤어지지 않은 그녀의 바느질 솜씨를 닮아서 섬세하고 단정하게 꿰매어진 퀼트 이불 위를 함께 거니는 듯한 황홀한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후욱~ 참았던 숨을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에서야 내쉴 수 있었을 정도로 깊이 몰입해서 읽었던 책이었다. 이토록 강렬한 몰입의 경험이라니...

퀘이커 교도인 아너처럼 얌전한 보닛을 쓰지도, 기다랗게 끌리는 드레스를 입은 것도, 혼수로 이불을 일고여덟 채는 준비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옥수수밭에 서서 ‘내면의 빛’을 가진 도망 노예들이 기다란 옥수수 줄기를 사각거리며 헤치고 오는 건 아닌지, 어디를 다쳐 피를 흘리며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왜 내가 이렇게 신경이 곤두선 채로 있어야 하는가 말이다. 어째서 항상 아너의 주위를 맴도는 도노반의 어딘가 상처 입은 듯한 어둡고 삐딱한 눈빛을 따갑게 느껴야 하는가 말이다.

 

미국의 남북 전쟁이 탄생시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말괄량이 여전사 스칼렛 오하라 같은 독특한 캐릭터와는 정반대의 인물. 한마디로 요조숙녀랄 수 있는 영국인 아너 브라이트의 삶을 잠깐 엿보자.

언니 그레이스가 영국에서 알고 지내던 애덤 콕스와의 결혼을 위해 미국 오하이오 주로 간다고 했을 때, 마침 연인 새뮤얼과의 실연으로 상처를 입었던 아너는 언니와 함께 미국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당찬 새출발을 위해서였는데, 친구들 친척들로부터 선물받은 퀼트 이불에 과거의 흔적들을 꿰매고 이어붙인 채 ‘어드벤처러’라는 배에 몸을 실었지만, 미국 땅을 밟기도 전에 황열병으로 언니 그레이스가 죽고 만다. 낯선 미국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녀는 벨의 모자 상점에서 언니의 약혼자였던 애덤 콕스가 데리러 올 때까지 머무는 동안 앞으로 많이 의지하게 될 벨과 함께 벨의 모자 상점에서 바느질 솜씨를 뽐낸다. 한편, 배에서 내려 마차를 타고 오는 동안 도노반이라는 노예 사냥꾼으로부터 혹시 노예를 숨겨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고, 도노반은 마차를 뒤지기 시작하는데, 도노반은 어머니와의 추억을 들먹이며 이불에 새겨진 퀼트에서 ‘베들레헴의 별’문양에 관심을 둔다. 억세고 사나운 남자가 이불의 문양에 관심을 보이며 갈색의 차가운 눈빛을 누그러뜨리니 내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이다. 이거..시작부터 로맨스야? 어쩜~ 이 둘은 이렇게 운명적으로 끌리는 거야?

 

그의 표정에서 신중함이 사라지고, 강렬한 관심이 드러나 있었다. 두려움,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에 아너의 속이 메슥거렸다. 흥분. 너무나 부적절한 느낌이라 아너는 얼굴을 붉혔다. 도너번은 미소를 지었다. -50

 

사실 도너번은 아너가 신세 졌던 모자 상점 벨의 남동생이었다. 그러나 도노반에 대한 평판이 안 좋았고, 벨 또한 ‘오하이오 최악의 인간’이라며 고개를 내젓는 이였다. 도노반의 관심을 받으며 떨림, 흥분을 느끼지만 낯선 미국에서의 울렁증이라 넘겨버린 아너는 급변하는 미국에서의 생활 때문에 정신없이 상황에 휩쓸리다 보니 어느새 잭 헤이메이커라는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미국에 와서 알게 된 실제의 ‘노예제도’를 접한 아너는 흑인 노예들도 ‘내면의 빛’을 지닌 존재임을 인정하고 노예들이 탈출하는 길목에서 도우미 역할을 하게 된다. 노예들이 지하철도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탈출을 돕는 경로가 벨-아너-리드 부인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너의 남편인 잭을 비롯한 헤이메이커 집안 사람들은 현실과 타협하여 노예들을 외면하고 있었고 아너에게도 더 이상 그들을 돕지 말 것을 강요하자 아너는 오로지 ‘침묵’으로 저항한다. 결국 만삭의 몸으로 헤이메이커 집안에서 탈출한 그녀는 딸들을 데리고 자유를 향해 간다는 흑인 버지니를 끝까지 도와주고 벨의 집에서 딸 컴포트를 출산한다. 언제고 꼭 다시 연결되리라는 희망을 안고 책을 읽어나갔는데, 상황은 아너와 도노반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새 삶을 사시면 좋겠어요. ”

“그럼 뭐가 달라지나?”-368

 

아~ 인생극장에서처럼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을 때 두 가지 경우에서 일어날 일을 모두 보고 싶었다. 아너와 도노반이 이루어졌더라면...도노반이 노예 사냥꾼을 접고 아너와 함께라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겠다고 고백을 했을 때, “YES". 라고 답하지 않았던 것이 두고두고 맘에 걸렸다. 그랬더라면...그랬더라면...

 

조그맣고 조용한 여인 아너의 소리없는 외침은 비록 약했을지언정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어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만들었다. 섬세한 퀼팅의 한 땀 한 땀처럼 그녀가 걸었던 길은 아름다운 무늬를 아로새기며 소신 있는 원칙주의자의 탄탄한 가정을 만들어내었다. 길바닥에 함부로 침을 뱉는 미국인, 맹렬하게 흥정하는 미국인, 대충대충 화려한 문양을 만들어내고 여럿이서 손을 모아 이불 한 채를 뚝딱 만들어내는 미국인...아너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결국 밝고 풍부하고 즉흥적인 리드 부인의 자유분방한 퀼트처럼 조화를 이루는 법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갓 따낸 옥수수의 달큰한 맛과 끈끈한 메이플 시럽의 맛에도 길들여졌으며 자신의 원칙을 부드럽게 관철시키는 법도 찾아냈다. 작지만 강한 여성 아너의 작고 가녀린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 것만 같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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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 언젠가 어디선가 당신과 마주친 사랑
남미영 지음 / 김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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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배워야 한다.[사랑의 역사]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사랑에 관한 책을 읽으며 공부한댔자 무슨 커다란 변화가 있을라고...

사랑을 책으로 배울 순 없는 거잖아...

괜히 심통 난 아이처럼 책에다 대고 딴지를 걸어본다.

 

최근 드라마를 보는데 묘하게도 닮은 듯 다른, 돌싱들을 다룬 두 드라마가 눈에 띄었다. (응급남녀, 앙큼한 돌싱녀) 돌싱이래서 각기 다른 짝을 찾는 내용이 아니라, 한 번 결혼했던 부부가 우연히 재회하면서 재결합을 하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첫 번째 결혼에서 원만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 것인가. 뒤늦게야 자신들의 처지를 반추하며 이제는 잘 할 수 있겠다는 투지를 불태우는 커플들. 안타깝게도 결혼은 연습을 해 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며 이혼하는 이들에게 점점 관대해지는 게 요즘 사회의 추세다. 막장드라마 보다야 훨씬 얌전한 줄거리이지만 이혼 후, 혹은 한 두 번의 실패 후에야 사랑의 참맛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는 보는 순간은 재미있고 훅 빠져들지만 보고 나서 곱씹어보면 왠지 모르게 속이 아리고 입맛이 쓰다.

괜히 심통내면서 이 책 [사랑의 역사]를 집어들었지만, 읽으면서 이 모든 사랑의 역사를 그 두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이해하고 있었다면, 사랑과 인생을 연습할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이 많아지면 한 번 읽은 책들을 몽땅 꺼내놓고 다시 읽으리라는 야심찬 계획을 나도 세워본 적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희망사항일 뿐 어떤 계기가 닿아 두 번 읽게 되는 책이 간혹은 있어도, “사랑”을 키워드로 하는 책들을 올망졸망 모아놓고 그것을 “공부”해야겠다는 그 생각을 실현하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씹을수록 새록새록 새로운 맛을 음미하게 되는 “재독”의 과정을 저자는 나보다 먼저 걸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이 들어 다시 읽어 본 책들은 그 때 그 책이 아니었습니다. (...)

다시 읽지 않았으면 영영 듣지 못했들 저자의 속깊은 목소리들, 그것이 너무 아름다워 이 책에 담았습니다. -9

 

목차를 훑어보니 재독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책의 제목들이 꽤 보였다.

모든 이의 첫사랑으로 마음속에 심어져 있을 황순원의 <소나기>를 시작으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작자 미상의 <춘향전>,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로버트 제임스 월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에밀리 브론테<폭풍의 언덕>,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등...

 

저자는 동서양의 고전 34편 중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되 비판과 질문과 탐구의 시선을 잃지 않은 작품을 골랐다고 한다.

내가 읽은 책들 외에도 읽지 않은 책들이 더 많았지만, 이 책의 장점중의 하나는 독자가 읽어보지 않은 책들에 대해서도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줄거리가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는 점이라서 낯설지 않게 책에 다가갈 수 있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이런 문학 작품을 읽는 동안 알게 모르게 전수된 “사랑”에 관한 가치와 철학들이 바로 이런 것이었음을 각 6개로 나뉘어진 챕터를 통해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칸칸이 나뉜 6개의 서랍 안에 정리되어 있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니고 있던 아스라한 “사랑”에 관한 논의들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나만의 서랍에 차곡차곡 쌓이는 듯한 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사랑의 문을 두드리는 첫사랑

사랑의 주인이 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사랑과 열정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사랑과 성장

어긋난 너와 나는 실패한 사랑일까-사랑과 이별

인정받지 못한 사랑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사랑과 도덕

사랑이 결혼에게 행복을 묻다-사랑과 결혼

 

6개의 서랍은 뚜렷한 주제로 나뉘어 있었다.

내 서랍 중 6번째인 “사랑과 결혼” 칸에는 작가와의 경험을 공유할 만한 책이 들어 있지 않았다. 작가가 책에서 추천한 책들을 먼저 읽으며 그 칸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드라마나 연속극을 통해 배우는 현실성 강한 막장 드라마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잠시잠깐의 공감과 “사랑의 허무함” 뿐이다.

나 스스로 “사랑의 본질”과 “사랑의 과정”에 대해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데, 딱 적합한 텍스트는 바로 고전이 아닌가 싶다.

젊은 날 무작정 읽어대었던 글자 그대로의 텍스트가 아닌, 가슴 깊이 파고드는 발자국으로 남는 글로서의 텍스트로 사랑을 배워나가야겠다.

지금부터 새기는 사랑에 관한 글들은 내 영혼으로 받아들이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

날이 저물어도 환하게 빛을 내는 등불처럼 내 무지의 어둠을 밝혀줄 것이다.

사랑이 밥은 못 먹여줘도 마음의 허기는 달래줄 것이며, 앞으로 남은 인생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여줄 물감이 되어주리라.

다시 하얀 도화지를 준비하고 사랑의 텍스트로 선명한 무늬를 그려나갈 것이다.

 

작가들은 왜 이렇게 실패한 인생을 보여주는 것일까? 톨스토이는 왜 <안나 카레니나>를 썼고, 플로베르는 왜 <마담 보바리>를 쓰고, 피츠제럴드는 왜 <위대한 개츠비>의 실패한 사랑과 인생을 썼을까? 작가들은 실패하지 않을 독자들의 삶을 상상하며 실패한 인생을 쓴다. 어떤 작가도 실패할 독자를 상상하며 실패한 인생을 쓰지는 않는다.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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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3월에 나온 책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책이 많다.

다~ 가지고 싶지만 많은 책들 중 5권만 꼽아본다.

 

1.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애거서 크리스티 (지은이) | 김시현 (옮긴이) | 황금가지 | 2014-03-14 | 원제 Agatha Christie: An Autobiography (1977년)

    

  크리스티의 작품만이 아닌 개인의 역사도 읽고 싶어진다.

궁금타~ 

 

그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성경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작가이다. . 이 책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본인의 나이가 60세이던 1950년에 쓰기 시작하여, 총 15년에 걸쳐 75세의 나이가 될 때까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써 내려간 회고록이다.

이 글은 그녀의 사후 1년 후인 1977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며, 작가로서의 인생뿐만 아니라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두 번의 결혼, 두 번째 남편 맥스 맬로원과 함께한 고고학 발굴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경험들로 가득하다. 책 내부에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총 30장이 넘는 사진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2. 작가의 붓 - 문학계 거장 100인의 숨은 재능을 만나다

도널드 프리드먼 (지은이), 배은경, 박미성 (옮긴이) | 아트북스 | 2014년 3월

 

 

 

문학적 집필 활동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번득이는 열정과 재능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간 작가-화가에 관한 짧은 전기. 20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문학계에 한 획을 써내려간 동.서양 작가 100명의 일대기와 그들이 창조한 예술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책은 전기인 동시에 도록이다.

 

 

 

글,그림에는 재능이 없는지, 글솜씨와 그림 솜씨까지 갖춘 작가-화가를 보면 그리 부러울 수가 없다.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집에서 직접 그렸다는 그림을 보면서, 신을 원망하기도 했었다는...^^

 

 

 

3.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 마스다 미리 산문집 choice

마스다 미리 (지은이), 권남희 (옮긴이) | 이봄 | 2014년 3월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출간되는 마스다 미리의 첫 번째 여자 산문집이다. <아빠라는 남자>, <엄마라는 여자>를 통해 에세이가 소개되긴 했으나, 이 책은 마스다 미리가 '여자공감만화가'에서 나아가 '여자공감에세이스트'로 확장되는 첫 책이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보며 참 많은 공감을 했었다. 이제 좀 긴 호흡으로 그녀와 공감할 수 있는 에세이가 나와서 참 반갑다.

 

 

 

 

 

 

  4.

나의 인생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 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은이), 이기숙 (옮긴이) | 문학동네 | 2014년 3월

23,000원 → 20,700원 (10%할인), 마일리지 2,070점 (10% 적립)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개인이 남긴 유일한 자서전이자 20세기의 비극을 돌아보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회고록.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자서전인 만큼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만 전반부는 '역사'에, 후반부는 '문학'에 무게가 실린다.

 

역사와 문학이 하나의 책에~~좋은 책일 거라는 기대!!

 

 

 

 

 

 

 

5.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ㅣ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은이), 안현주 (옮긴이) | 북스피어 | 2014년 3월

 

 

'박람강기 프로젝트' 3권. 하드보일드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작가, 편집자, 독자 들에게 쓴 편지 가운데 68편을 묶었다. 그동안 폴 오스터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등을 통해 일부분만 접할 수 있었던 챈들러의 통찰력 있는 견해들을 감상할 수 있다.

 

 

챈들러~ 이름만 많이 들어본 작가인데. 하드보일드 소설가라고 하니 더욱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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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롯 -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나다
레자 아슬란 지음, 민경식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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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혁명가, 나사렛 예수를 만나다 [젤롯]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가거나 여행을 떠나 보면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파노라마로 이어진 연속의 풍경들을 보게 되는데 그 곳에서 꼭 만나게 되는 표식이 있다. (뭐, 굳이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 아파트 내에서 고개만 돌려도 벌써 몇 개가 보인다. )

바로 십자가이다. 낮에는 그런 대로 건물 틈에 가려져 있거나 세상을 공평히 비추는 백색의 햇빛 아래 묻혀 있기 십상이지만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이나 흑색의 어둠이 지배하는 밤이 되면 어김없이 붉은 빛을 발하는 열십자의 표식. 특히 어두운 밤에 휘 둘러보면 검은 색을 배경으로 봉긋이 떠올라 있는 붉은 네온의 빛은 그로테스크한 공동묘지를 방불케 하며 갑자기 소름이 오소소 돋게 만든다.

신을 섬기는 성전임을 알리는 십자가가 이 나라 도시며 시골 할 것 없이 구석구석을 잠식해 들어가 있는 것을 집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 보면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경주의 양동민속마을로 가족 나들이를 떠났다고 하자. 시대적 배경이 과거인 드라마나 영화의 세트에서 한 번씩 현대적 감각의 건물이나 간판들이 보이면 옥의 티라고 짚어내듯이, 민속마을의 정겨움이나 시간을 거슬러오르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찾아간 그 곳에서 십자가를 발견한 순간 왠지 모르게 김이 팍 새버리는 느낌적 느낌. 아는 이는 아실 터~~.

눈만 돌리면 시야에 걸리는 거대한 십자가의 공동묘지 속에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덩그러니 들어서 있다고 생각하면, 참, 굳이 발버둥치며 크고 비싸고 좋은 곳을 골라 집을 마련해 본들 무덤 한가운데일 뿐이라는...어쩔 수 없는 허무함의 촉수들이 나를 발끝에서부터 나를 감싸돌아 올라온다.

무신론자이기에 성전의 표시에다 대고 이런 날려차기를 함부로 해대는지도 모르겠다.

절박함이 없어서 절대자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훗날, 정말로 내가 세상에 기댈 데 없고 붙잡을 끈 하나 없는 혼자라는 것을 느낄 때, 영혼의 구원을 위해 종교에 귀의하게 되는 날을 맞이할지도 모르겠지만...전지전능한 예수!, 우리를 구원할 예수!라는 등의 선전구호는 아직 내 귀에 와서 제대로 꽂히지 않고 빠른 속도로 귓등으로 사라지고 만다.

 

“나사렛 예수”는 역사적 인물에 중점을 둔 이름이고, “그리스도 예수”는 신앙의 대상으로 받드는 이름이다. [젤롯]이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었다면, 몇 장 읽지 않고 미련없이 이 책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교회에 대한 알 수 없는 반감만이 남아 있는 나에게도 어린 시절, 교회의 지하 예배당에서 또래 아이들과 기다란 벤치에 주루룩 앉아 손뼉을 치며 성가 합창을 해대던 기억이 남아 있다. 어떻게 그 자리에 앉아 있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사랑하는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붉은 피를 흘리시면서 사흘 만에 돌아가셨네”

뜻도 모른 채 흥얼거리던 이 노래가 아직도 리듬, 박자, 가락 하나 잊히지 않고 되살아난다. (역시 조기교육의 힘이란, 어린 세포들의 생기왕성한 활동이란~~)

이 노래가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나사렛 예수”로서의 삶을 짧고 강렬하게 표현한 가사 때문이다.

“나사렛 예수”로 예수를 연구하는 갈래도 여럿이어서 윤리적 교사, 사회 개혁가, 정치적 혁명가, 심지어 마술사나 퇴마사로 보는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정치적 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로서의 예수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나사렛 예수에 대한 보도 가운데 확실한 역사적 사건은 두 가지.

첫째, 예수가 기원후 1세기 전반에 팔레스타인에서 유대 민중 운동을 일으킨 유대인이었다는 사실.

둘째, 예수를 로마 당국이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다는 사실.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의 예수, 정치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로서의 예수. 그는 2000년 전 갈릴리 시골 지역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아다닌 인물이며,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추종자들을 끌어모아 메시아 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결국, 처형당했으니 실패로 끝난 그의 활동으로 예수는 잊혀졌는가? 오늘날 수많은 성전과 ‘십자가의 무덤’을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에 퍼뜨린 “그리스도 예수”로서의 인물상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이 책은 혁명가 예수를 말함과 동시에, 이 땅 위에 하느님의 통치를 이루려는 예수의 운동이 실패한 뒤에, 그의 추종자들이 예수의 활동과 정체 뿐 아니라 유대교 메시아의 본성과 정의를 어떻게 재해석했는지에 대해 다룬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었는데, 예수의 추종자들이 만든 세력들과 예수 제자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헬라파’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길거리에 모여 성가를 부른다거나 자신의 놀라운 신앙체험을 바탕으로 포교활동에 나선 사람들이 ‘회개하십시오’라고 울부짖으며 집집마다 거리마다 다니는 행동을 볼 때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어쩌면 저 모습이 내 미래에 있을 한 장면을 아닐까 싶어 지레 겁을 먹으면서 때때로 정신줄을 바짝 조여매는 계기로 삼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나사렛 예수의 간략한 일생이나마 혁명가로 소개된 글을 접하고 보니 예수에 대한 막연한 반감,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도 못한 채 눈살만 찌푸렸던 그 반감-아마도 광신도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인해 파생된 거부감이지 않을까-이 약간은 사그라 들게 되었다.

어쨌거나 예수는 실존했던 인물이며, 나름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목숨까지 바치며 온 생을 다해 전력투구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한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마가복음이니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 계시록 등 머리가 다 아파지려고 하는 수많은 복음서들에 얼마만큼의 역사적 진실이 들어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것이고, 예수 사후의 “신앙화”와 관련된 작업은 오직 신앙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다”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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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청접대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알고 보면 청춘 연애담 [현청 접대과]

 

“민간의 감각”과 함께 “연애 감각” 살아나다!!!

 

작은 섬 시코쿠, 그중에서도 완전히 남쪽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 고치현. 그 고치 현청 관광부에 ‘접대과’가 발족했다. 엄청 딱딱하고 엄격하며 경직된 분위기의 대명사인 공무원 사회에서 ‘접대’라니.. 그러나 우리 나라 말로 쓰게 되니 묘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부정적인 성격의 ‘접대’가 아니라 건전한 이미지이니 마음 놓으시길...

 

관광객을 글자 그대로 ‘접대’하는 마음으로 관광을 부흥시킨다는 콘셉트를 담으면서 친근감을 추구한 결과 붙게 된 이름이다. -19

 

흔하지 않은 현청 사람들의 이야기라 처음엔 좀 시큰둥했다. 뭐야, 연애 소설이라더니...하지만 실망은 이르다.

스물 다섯 살의 가케미즈는 ‘젊다’는 이유로 접대과의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느데, 원체 보수적이고 수직적 위계 질서를 가진 공무원 사회에서는 반짝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해도 실행될 때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철밥통인 그들에게서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랄까.

주인공 가케미즈가 ‘접대과’에 배속된 이후 독창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팀원들에게 지지부진 끌어오던 ‘접대’ 프로젝트에 관하여 관공 홍보대사 제도에 대해 건의하면서 프로젝트에 슬슬 시동이 걸리는 듯 보인다. 가케미즈는 기획에 대한 첫발을 내딛으면서 의욕에 차 고치 현 홍보대사 후보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건다.

하지만...

요시카도라는 고치 현 출신 작가에게 의뢰 전화를 함과 동시에 날카로운 지적을 받고 그야말로 의기소침해지고 만다.

요시카도는 가케미즈가 나름 독창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추진한 일을 “따라하기”잖아요? 란 말로 헌 방에 결정타를 날려버리는 인물인 것이었다. 곧이어 팀원들이 생각조차 못했던 아이디어를 속속 제공하는 데에야...정말 미워 죽겠지만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는 사람. 툭툭 내뱉는 느른한 말투로 지적질을 해대지만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당신들, 바보야?”

시간이 정지된 듯한 관청 공무원들의 사회에 직격탄을 날린 그는 이른바 “민간의 감각”을 발빠르게 전해주며 아울러 알짜배기 정보를 일러준다. 그의 제보 덕에 접대과는 ‘판다 유치론’으로 고치 현청에서 전설이 되어버린 기요토 가즈마사를 만나 ‘관광입현’의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한때 고치 현청 공무원이었으나 ‘판다 유치론’이라는 큰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려다 관청의 수직구조에 밀려 좌초당하고 결국은 사직하고야 말았던 기요토는 지금은 ‘고치에서 알아주는 개성파 관광 컨설턴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기요토가 가지고 온 기획은

‘아웃도어 스포츠 및 자연투어’

‘그린 투어’ 였는데

좀 더 크게 바라보면 ‘고치 현을 통째로 레저랜드로’ 바꾸자는 것이라고 배포 크게 선언해 버리고 마는 기요토.

 

처음에는 어리버리했던 가케미즈는 한 때 부자지간 이었다고 하는 기요토와 요시카도의 훈수에 점점 의욕이 고취되고 적극적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 프로젝트에 임하게 된다.

민간의 감각을 재빠르게 잡아내고 현민의 소리를 전달해줄 젊은 여성을 고용하라는 요시카도의 조언으로 평소 눈여겨 봐두었던 다키를 스카웃한 가케미즈. 왠지 달달한 냄새가 폴폴 풍겨나기 시작한다.

한편 입바른 소리를 툭툭 내뱉던 작가 요시카도는 한때 누이였던 사와와 어색한 첫만남을 가지며서 묘한 기류를 형성해 가는데...

 

어떻게 하면 척박한 시골 마을 고치에 관광 붐을 불러일으키느냐...

가케미즈는 일단 목표가 정해지자 돌진하는 남자었다. 요시카도라는 작자에게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력하는 거라고 말로는 그랬지만, 자연의 이점을 한 껏 품은 고치 현의 패러글라이딩 상품도 직접 체험해보고, 고치의 산골마을이 주는 “도시에서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깨달아가면서 말로만 외치는 행정가가 아닌, 실천하는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여자는 자신의 일에 빠져 있는 남자를 바라볼 때 눈에서 하트가 뿅뿅 솟아나오는 모양인지.

가케미즈와 다키의 알콩달콩한 러브라인이 바야흐로 잔잔하게 펼쳐지는 동안, 사납고 가시 있는 여자 사와와 대범한 듯 하지만 상처를 속속들이 알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남자 요시카도의 이야기도 은근슬쩍 그 재미를 더한다.

쭈뼛쭈뼛 하면서 결국엔 제대로 해내는 귀여운 남자 요시카도.

 

관광입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케미즈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쓰는 작가 요시카도의 이야기를 큰 액자로 하고, 두 커플의 러브스토리와 분주히 꿈을 향해 달려가는 젊은 청년 가케미즈의 이야기가 고치현청 ‘접대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내용이 액자 속 이야기가 되는 형식이 재미있다.

일과 사랑, 한꺼번에 이루기는 힘들지만 하나씩 열중하며 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둘 다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작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이야기.

긴박한 갈등은 없지만 소소하고 간질간질한 연애담과 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어리버리에서 건실하고 번득한 하나의 일꾼으로 거듭나는, 어찌보면 인간승리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져 오는 책이었다.

 

“귀엽지?”요시카도가 속삭인다.

가케미즈는 흠칫했다. 뭡니까, 꼭 여자친구 자랑 같은 이런 말투는? 요시카도 씨, 실은 여동생 바보?

“그쪽은 귀엽긴 하지만 뾰족한 구석이 없어서 좀 싱거워.”

다키 이야기란 걸 알아챈 순간 저절로 불끈했다.

“상당히 뾰족하거든요.”

당신은 이 여자가 토라진 장면을 본 적이 없잖아요.

“그거, 경쟁할 분야던가?”

(...)

뭐랄까, 요시카도 씨는 ....마치 사와 씨가 여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슴하시네요. “

“아니면 뭐야?”

“말 안했던가? 친남매가 아니란 거.”

헉!

-273

 

긴장감 넘치는 커플들의 묘사-노련한 작가의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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