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AR MINI 마이 카, 미니 - 나를 보여 주는 워너비카의 모든 것
최진석 지음 / 이지북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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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문화 아이콘 [마이 카 미니]

 

 

이제 일곱 살인 아들은 한 때 자동차 미니어처 모으기에 열중한 적이 있다. 차에 타기만 하면 입을 꾹 다물고 완전 집중 모드로 휙휙 지나쳐 가는 차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디자인이 특이하거나 보기 드문 차들이 나타나면 큰 소리로 차 이름을 외친다. "오~ 링컨이다." "재규어, 재규어~"

모든 아들들은 바퀴달린 것들을 사랑한다는 말이 진리임을 100% 공감하며 자동차 장난감 매장에 갈 때마다 하나씩 둘씩 사 모으다 보니 이것도 이제 꽤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들은 한글을 떼기도 전에 자동차에 눈빛을 반짝이더니 급기야 디즈니 애니메이션 Car를 보고서는 Car 스티커북 한 권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이름을 줄줄이 꿰기 시작했다. 라이트닝 맥퀸, 닥 허드슨, 샐리, 메이터, 루이지, 귀도, 라몬, 플로, 리지, 트랙터 등등...그러더니 금세 한글을 떼어 버렸다. 대!!박~

자동차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이용하여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낸 경우다. 그리하여, 자동차에 대한 무한 사랑을 싹둑 잘라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자동차 사달라는 말에 질질 ~ 끌려다니는 엄마. 곧 있을 어린이날이 두려워진다. 요즘은 자동차를 웬만큼 모았는지 예전같진 않지만...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레고"시리즈를 사달라고 하니 더욱 "허걱"하게 되는 것이다ㅠㅠ

 

어쨌든, 자동차 하나에 빠져들면 한글을 떼는 아이가 있을 정도니까, 남자 어른이 무섭게 자동차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나...

이 책의 저자, 최진석의 경우 자동차를 취재하면서 무섭게 몰입해 매일 공부하고 운전하다 이렇게 책도 냈다!!

[마이 카 미니]는 '늦깎이 자동차 마니아'의 늦바람으로 탄생한 책이다.

 

프리이엄 소형차의 대표 브랜드. 작고 깜찍한 디자인으로, 운전할 줄도 모르며 자동차에 완전 문외한인 나조차 그 이름과 디자인을 기억하는 자동차. 미니.

미니는 2005년 국내에 처음으로 정식 출시되었고, 짧은 시간에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뭘까?

여름이면 한껏 멋을 부린 젊은이들이 스포츠카, 오픈카를 몰고 나와 해변을 누비곤 하는 부산 해운대 해변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미니만의 디자인 때문?

1959년 처음 출시되었을 당시 미니는 이름처럼 정말 작았지만, 50여 년이 지난 지금 예전의 올드 미니에 비해 덩치는 두 배 가량 커졌다. 그러나 여전히 "미니스럽다"라고 하는 이유는 미니의 아버지인 알렉 이시고니스 처음 설계했을 당시의 개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와 패션의 아이콘으로서 입지를 구축하고 있으며 거기에 역사와 전통을 쌓았으니 "미니"를 작다고 무시할 게 아닌 것은 당연지사다.

일반 대중과 영국 왕실의 사랑을 받으며 20세기 최고의 차로 뽑힌 적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야말로 '작은 거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미니 스커트의 어원이 미니인 셈이 되기도 한다는 재미있는 사실에서부터 비틀즈, 트위기, 할리우드의 내로라 하는 스타 그리고 국내 여성 연예인들까지 미니를 선호한다는 이야기까지 빼곡한 책.

소형차로서 차종이 제한적인 미니의 "스페셜 에디션" 또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품 다양화와 개성추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니의 스페셜 에디션.

 

 

 

 

미니 하이게이트, 미니 굿우드, 미니 유어스 등등...하나 하나 보며 눈이 호강하는 즐거운 시간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내 옆에 껌딱지 처럼 딱 붙은 녀석은 일곱 살 울 아들이다.

나보다 제가 먼저 북다트를 꺼내와서 멋진 미니 사진 옆에다 척척 갖다 끼우곤 했다.

 

미니의 개발 배경, 특징, 모터 스포츠, 패션, 문화, 인물까지 미니와 관련된 거의 모든 내용을 다루는 작은 백과사전 격인 이 책. 정말 알찬 정보들이 많이 들어 있다.

 

미니 오너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간단한 자가 진단 및 정비 방법도 넣었다고 한다.

실용성의 문제로 4인 가족인 우리는 꿈도 꾸지 못하는 차가 되어버려서 지나가는 미니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제는 책으로 이미 문화의 아이콘이 되어 버린 미니에 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어린 아들과 자동차에 문외한인 엄마의 한없이 유치찬란한 대화를 듣고 있는 아빠는 그저 때때로 실소를 날릴 뿐~

혹시 아는가? 멋진 디자인에 혹한 아들이 훗날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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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1
김도경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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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는 미래의 핵 [에그1,2]

 

 

[에그]가 그리고 있는 미래 세계는 여성 상위 세계다. 여자가 대통령이자 국가의 최고 권력자이고 “남자 같은 게”라는 말이 가장 심한 욕으로 통용되는 세상이다.

여성들이 일을 하기 위해 아이 낳기를 기피한다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이런 미래도 머지않은 듯 싶다.

현재의 학자들이 예견한 다양한 미래사회를 과감하게 받아들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나노 기술, 수소 혁명, 줄기 세포 등의 생소한 용어들에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소설의 전개가 영화를 보는 듯 변화무쌍했기 때문에 가독성이 무척 높아 금세 다 읽어낼 수 있었다.

각인이론의 어쩔 수 없는 종속자인 듯, [에그]에서 처음 눈도장을 찍은 인물인 레이가 주인공으로 각인되긴 했지만, 레이보다는 주변 인물들의 개성적인 캐릭터가 많이 부각되어 있어서 레이의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좀 어렵기는 했다.

인물들을 생생하게 살려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려는 작가의 노력이 과하다 싶기도 했다.

아니, 레이 주변의 인물들이 복잡했다기 보다 전체적으로 현재와 너무 다른 획기적인 미래의 인물상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할까.

그만큼 혁신적인 미래의 정부, 미래의 생활상들은 충격을 던져 주기에 충분했다.

전형적인 보-맨(여성적인 남자)들이 넘쳐나고 전기가 사람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여서 EMP(전자기 펄스)로 전자 장비가 파괴되면 광기에 휩싸일 정도로 흥분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아바타가 없으면 삶의 의욕을 잃고 금세 자살하고 마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 의료행위가 발전하여 평균수명 100세는 훌쩍 뛰어넘었고, 장기조차 금세 재생시켜 대체할 수 있는 세상. 로보캅에서나 보았던 기계 몸을 가진 사람을 “좀비”라 부르며 약에 의존하여서라도 목숨을 부지해가며 사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

 

무엇보다 여성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열광할 것이라 장담한다.

 

 

사회 권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은 흄이라고 부른다. 휴먼을 한 음절로 줄인 말이다. 즉 인간을 대표하는 것이 여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먼이라는 두 음절 영어는 오래된 사전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고어이다. 성(姓)도 어머니나 아버지의 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쓴다. 선택은 아이들의 몫이다. 아이들이 선택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 비율은 반반이다. 육아를 담당하는 시간이 아버지가 더 많은 추세라 아이들이 아버지를 더 친근히 여겨서인지 그나마 비율이 절반을 유지하고 있다.

-19

 

오~미래는 여성들에게 낙원인가.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AIDS대신 ONS라는 장기가 썩어들어가는 신종 질병이 유행하면서 자신의 체세포로 장기를 만들어 재생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 되는 시대에서 세포재생이 가능한 난자의 가치가 폭등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과연 그런 세상이 여성에게 유토피아일 수 있는가...

 

 

고아원에서 자란 레이는 어린 시절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파머가 ONS에 걸리자 수술비 마련을 위해 난자를 팔기로 한다. 난자를 채취하고 나오는 길에 아노미아에게 연락해 불법 경매 유통경로를 알아보는데...

그녀가 난자를 경매에 내놓자 그녀의 난자 가격이 집 한 채 값에 맞먹는 정도로 판매되고, 이 상황이 의심스러운 레이는 채취해놓은 난자 캔을 훔치러 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파워 수트를 구입한다. 과연, 파워 수트는 그녀를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구해주기는 하는데 그녀가 난자를 팔았고, 그녀의 난자를 노리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왜 정부당국에서 관심 있어하는 건지...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장수진, 미스틱이란 가면을 쓴 대통령의 오른팔 마담 리즈, 마담 리즈의 경호실장 준, 대통령의 경호원 가희, 유명 카스트라토 가수B...

각기 개성 있는 매력을 뽐내는 인물들이 하나하나 얽혀들면서 레이는 쫓고 쫓기며 긴박한 상황에 휩쓸리게 된다.

그녀가 믿을 사람은 오직 수염이 덥수룩한 살찐 남자 아노미아 뿐.

과연 그녀의 난자는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경매 시장에 내놓자마자 세계가 흔들리는가.

그리고 그녀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기에 평범해 보이는 그녀의 일상에 국가권력이 침투한 것인가.

대통령 암살 사건 아래 많은 비밀을 감춘 채 사건은 일단락되는 걸로 이야기는 급하게 마무리된다.

 

끝이 너무 짧아 미진함이 있지만, [에그]는 미래사회가 이렇게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섬뜩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비록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는 속시원히 답을 내릴 수 없지만 현실의 문제점을 건드리고 꼬집는 부분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어쨌거나, 미래에도 인간성만은 상실하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

긴박한 사건 전개 사이사이에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묵직한 물음을 던지는 책, [에그]

한바탕 신 나게 읽고 나니, 현실의 어두운 면이 한층 부각되는 것 같아 밝은 달빛 아래 왠지 주눅 드는 밤이 되고 말았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괜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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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자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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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또르르~[도토리 자매]

 

 

 

비뚤비뚤 걸어가고 있어도 등 뒤에서 나의 갈짓자 걸음을 지그시 응시하고 배웅하는 사람 하나 있어 준다면...하는 마음으로 가정을 꾸렸던 것 같다. 지금도 역시 든든하게 내 곁을 받쳐주는 남편이 있어 위태위태하게 무너져 내리려는 담장 하나 있으면 얼른 다시 도닥여 쌓아 올리고 제모습을 유지하려 종종거리고 다닌다. 뾰족했던 모서리는 닳아서 둥실둥실 해지고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슬그머니 미소에 자리를 내어준다.

내가 선택한 사람과 십 년간 마음을 나누며 사는 동안 두 아이가 우리 틈을 비집고 들어왔지만 마음 자리는 좁아지기는 커녕 마법의 자루처럼 쭉쭉 늘어나서 네 명이 복닥거리고 있어도 비좁은 줄을 모르겠다.

도토리 자매도 어서 좋은 짝을 만나 훨씬 더 넓어진 마음으로 여유 있게 살면 좋을 텐데...

 

결혼 전까지 함께 지내왔던 우리 세 자매도 어두운 기억을 공유하면서 나름 끈끈한 유대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차례 광풍이 휘몰아치니 어느새 끊어진 연줄이 되어 연줄과 연은 멀리멀리 떨어지고 말았다. 도토리 자매도 각자의 짝을 찾으면 지금의 친밀함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과거의 나였다면, 도토리 자매와 더 가까운 위치에 나를 놓았겠지만 지금의 나는 도토리 자매보다는 그들의 엄마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여동생과 사이가 안좋다는 구절 때문이다.

 

초음파로 본 태아의 모습이 도토리를 꼭 닮아서 병원 정원에 있던 모밀잣밤나무 아래에서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내내 가을의 투명한 햇살 아래에서 도토리를 주우며 기다렸다는 아빠.

여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엄마는 둘이 평생을 사이좋게 지내라며 쌍둥이가 아닌데도 자매에게 도토리(일본어로 돈구리)를 나누어서 돈코와 구리코라 이름 지어주었다.

그런 귀여운 마음으로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자매의 부모님은 아침에 조깅을 하다가, 트럭에 치여 죽었다. 부모님을 잃은 후 자매는 삼촌 집, 이모집을 전전하다 할아버지 집에 정착을 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산으로 집과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것인데, 글재주가 있는 언니 돈코와 내성적이며 야행성인 구리코는 도토리 자매 홈페이지를 만들어 메일을 주고받는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든 메일을 보내고 싶은데, 아는 사람에게는 보내고 싶지 않을 때 마침 딱 좋은 존재.

도토리 자매는 결코 원만하고 순탄했다고는 할 수 없는 자신들의 경험을 그대로 녹여내어 진실한 마음으로 답장을 전달해 준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옆에 닿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와중에도 우리에게 메일을 쓴다. 이렇게 광활한 우주에 작은 돌 하나를 던져도, 그 파문이 어딘가에는 반드시 생긴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것으로든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15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도토리 자매는 아직도 불완전하긴 하지만 조금씩 세상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내고 있는 듯하다.

도토리 자매 홈페이지 활동을 통해서 자신들도 치유를 받고 있는 중이리라.

도토리 자매 홈페이지에서의 메일 내용과 상담 내용이 주를 이룰 것이라 예상했는데, 보기좋게 빗나가 버렸다. 자매는 홈페이지 활동을 하면서 세상 속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것은 알게 모르게 자신을 노출하는 일이 되기도 하면서 특히나 다른 사람과의 교유를 거친다면 자신의 상처가 하나씩 하나씩 씻겨나가는 과정을 겪는 것이 되기도 한다.

나 자신도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동안 내 안의 것들을 조금씩 토해 내기도 하고, 다른 이의 조언을 듣기도 하면서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도토리 껍질이 딱 벗겨지면 매끈하고 반들반들한 몸통이 또르르 구르게 된다.

이제 그 껍질을 벗어던지고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도토리 자매가 생기를 찾고 통통 튀어다니게 되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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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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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하고도 뜨거운 복수의 모든 것 [네메시스]

 

 

모든 것이 이 한 컷에 달려 있으며 남은 이야기 전부를 지배할 첫 장면을 쓰고자 했다. -요 네스뵈

 

그의 말 때문에 첫 장면을 정말 주의깊게 읽었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다. (...)지금 나는 총구를 바라보고 있다. (...)

다들 삶의 의미만 궁금해할 뿐, 아무도 죽음의 의미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10

 

 

아마도 두 개의 사건 중 한 줄기를 끌고 가는 범인의 독백인 듯 싶었는데 왠지 철학적인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라니.

복수의 여신을 의미하는 네메시스를 제목으로 하고 있어 복수가 큰 주제임은 짐작했는데, 거기다 더해 삶과 죽음의 의미까지 신경써야 하는 거야?

커다란 물음을 던지는 독백이후,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또 다른 첫 장면은 은행강도 사건 현장의 CCTV녹화화면을 보고 있는 해리 홀레로부터 시작한다.

 

노인을 본 해리는 우주비행사가 떠올랐다.우스꽝스러운 잔걸음, 뻣뻣한 동작, 생기 없는 암울한 눈동자 쪽모이세공 마루 위로 질질 끌리는 신발. 마치 바닥에서 조금이라도 발을 떼었다가는 우주 공간으로 떠내려갈까봐 잔뜩 겁을 먹은 것 같았다. (...)

해리는 에우구스트 슐츠가 마요르스투엔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다 그만둔 여든한 살의 퇴직자이며, 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마요르스투엔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의 무릎이 뻣뻣한 이유는 매일 딸의 집을 방문할 때 지나다니는 링바이엔 가의 보행자다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12

 

 

아리송한 여운을 남기는 범인의 이 말과 영화같은 첫 장면을 끝까지 기억해야 해~ 하면서 야심차게 책을 읽어나갔는데, 중반도 못 가 앞에서 읽었던 이 말은 저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

왜냐하면, 두 개의 이야기가 엇갈려 전개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따라 가는 과정이 너무나 복잡했기 때문에 길을 안 잃으려고 안간힘을 쓴 나머지 첫 장면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던 탓이다.

그러나 결국, 은행강도 사건의 범인이 밝혀졌을 때에는 이 첫 장면의 의미가 떠오르면서 다시 한 번 이 장면을 음미하고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중간쯤 읽어나가다 보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이 빠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 한계야, 한계. 책의 두께와 내 기억력의 한계치를 무시하고 인물의 이름과 간단한 관계도를 그려놓고 시작하지 않는 내 부주의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완벽하게 두 개의 이야기를 잘 교차시키고 중간중간에 헨젤과 그레텔의 길잡이 노릇을 했던 빵부스러기처럼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잘 배치해두고  마침내 하나의 줄기, "복수"라는 큰 줄기로 잘 인도해주는 작가 요 네스뵈를 탓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이야기를 제대로 잘 따라가지 못한 것은 다~ 내 탓이었다.

노르웨이인들의 이름에 약하고 두 개의 사건을 헷갈렸으며 해리 홀레가 라켈과 어떻게 될 것인지 등 부수적인 것에 신경을 써대면서 주의력결핍장애를 겪는 아이처럼 산만하게 읽어내려갔던 탓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잘 요약하지 못하겠다.

워낙 변수도 많고 이 사람이 범인인가? 했던 인물이 금세 죽은 채로 발견되곤 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사건, 단 하나의 동기.

이거면 요약 끝인가.

 

대낮의 한 은행에서 여직원 스티네 그레테가 피살되고 강도는 돈과 함께 사라지고 만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현장이 담긴 CCTV 녹화 화면을 살펴보던 해리 홀레와 파트너 베아테 뢴은 무언가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강도와 여직원의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는 것(둘은 아마도 아는 사이?) 외에 발견된 증거는 없었다. '방추상회'라는 뇌 부분의 발달로 한 번 본 얼굴을 기억할 수 있는 베아테는 사건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한편, 해리는 현재 여자친구인 라켈이 아들 올레그의 양육권 문제 때문에 모스크바에 간 사이 옛 여자 친구 안나의 전화를 받고 찾아갔다가 술에 취해 그녀의 유혹에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다음날 해리는 죽은 채로 발견된 안나의 집을 사건현장으로 알고 찾아가고, 안나의 죽음은 자살로 단정지어졌다. 그러나 엄격하게 관리된 안나의 아파트 열쇠 3개 중 하나가 사라졌고, 사라진 열쇠는 해리가 가지고 있었다. 술에 취해 전날의 기억이 블랙홀로 사라진 해리 홀레는 사건을 수사하는 도중 의문의 이메일을 받게 되며, 이메일을 보낸 자는 해리를 슬금슬금 압박해 들어온다. 죽은 안나의 신발 바닥에서 발견된 사진으로 인해 아르네 알부라는 남자가 용의자로 떠올랐고, 알부를 수사해 들어가던 도중, 알부가 바다에서 산 채로 수장된 상태로 발견된다.

안나를 중심으로 모인 남자들.

알부, 해리, 그리고 뒤에 가서야 안나의 최근연인으로 밝혀진 인물 알프.

안나의 아파트에서 보았던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그림은 생각보다 깊고도 서늘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된다.

 

안나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안나의 삼촌이라는 자, 집시의 피를 이어받은 라스콜은 부드러우면서도 차가운, 순교자의 얼굴을 한 사람이었는데, 범행을 자수하고 감옥에서 복역중인 이였다. 은행강도 사건이라면 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전설적인 인물이어서 해리는 스티네 그레테가 피살된 은행강도 사건에 관해 그의 자문을 받으러 라스콜을 찾아간다. 그가 지목한 이는 스티네 그레테의 회계사 남편 트론 그레테의 형인 레브 그레테였다. 라스콜과 연합한 해리는 어렵게 레브를 찾아 브라질까지 가지만 레브도 자살한 채로 발견되고...설상가상 안나 살해 용의자였던 알부의 죽음으로 해리는 "프린스"라 불리는 부패경찰과 알프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점점 다급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로 손에 땀을 쥐게 될 무렵, 서서히 "복수"를 매개로 두 개의 사건이 하나로 합쳐지게 되고 이야기는 클라이맥스로 치닫게 된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압권은 언제나 맨 마지막.

그리고 중간중간에 끼어 있는 음악.

 

<레스 브레스트>, <네메시스>, <데빌스 스타>는 오슬로 3부작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그래서 책의 앞에 오슬로 지도가 붙어 있고, <네메시스>의 노르웨이 원제 역시 오슬로의 거리 이름인 소르겐프리 라고 한다. 해리의 옛 연인 안나가 살았던 아파트가 있는 곳이다.

해리 홀레 시리즈 1탄인 <박쥐>는 일필휘지 하여 썼다면, <네메시스>는 그 플롯을 구성하고 완성하는데 1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할 만큼 탄탄한 구성을 자랑하고 있다.

읽는 데 머리가 지끈거렸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읽는 내가 이럴 정도이면 쓰는 작가는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다는 반증인가...

 

차갑고 냉정하게 이루어지는 복수.

죽음으로써 복수를 완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내면이 얼마나 황폐할지, 그들의 내면을 읽어야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해리는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삭막한 시간들을 견뎌야 할지...

복수의 여신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칼날을 들어올리거나 내려치거나 둘 중의 하나를 결정만 하면 되겠지만, 살아남은 사람과 그 과정을 읽어내는 사람은 고뇌에 고뇌를 거듭하며 또다시 다음날이면 떠오르는 해를 마주해야만 한다.

삶이 복수냐, 죽음이 복수냐.

돌려읽고 돌려 읽어도 끝나지 않는 회문처럼 삶과 죽음, 복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제자리돌기를 하고 있다.

 

서늘한 두려움이 주는 짜릿함과 복수의 의미를 곱씹는 진지함을 넘나들면서 내 손은 이미 땀범벅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해리 홀레 시리즈만이 줄 수 있는 락 음악같은 중독성에 나는 빠져들고 말았다.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거칠게 몰아붙이는 강렬한 매력은 짐 빔에 빠져들어 마취가 된 상태에서야 겨우 진정을 찾을 수 있는 해리 홀레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에...해리 홀레 시리즈가 오래 계속되었으면 한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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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과학이 산다!
임숙영 지음, 김고은 그림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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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관이면 과학을 잡을 거다" [영화관에 과학이 산다]

 

 

 

 

 

영화를 보러 갈 때마다 아이들은 질문을 합니다. 왜 이렇게 소리가 크고 가깝게 들리냐?

저렇게 큰 화면은 어떻게 만드냐?

팝콘 말고 다른 과자는 왜 먹으면 안 되냐?

 

엄마의 지식으로 대충 대답해줄 수 있는 게 있고, 또...부끄럽지만 얼버무리거나 대답할 수 없는 것도 있었지요.

"과학"에 무지 약한 건 저의 약점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엄마와 달리 과학적 지식이 풍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Why? 시리즈를 거금을 들여 사서 쟁여놓기도 했답니다. 물론, 아이들은 만화니까~ 전체를 한 두번, 재미있게 훑었지만, 시리즈의 단점. 좌라락~ 꽂혀 있는 책에 금세 시들해져서 요즘에는 근처에도 잘 어슬렁거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관에 과학이 산다]라는 책의 등장은 아주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지요... 식어버린 "과학"에 대한 관심을 되찾아올 수 있겠다 싶었답니다.

일단, 단행본이고 재미있는 그림이 많아서 눈을 반짝이며 다가오게 만드는 데 성공!!

책장을 펼치자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중간중간에 환호성이 울리고...급기야는 두 놈이 서로 책을 먼저 보겠다고 전쟁까지...

이건 정말 보는 엄마로서 뿌듯한 마음이 들게 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에서 먼저 전쟁을 시작하게 만든 문제의 페이지는 바로 요기!!입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원들이 보이시죠?

이걸 서로 먼저 보겠다고 그 난리였던 겁니다.

착시현상에 대한 설명이 이 그림 하나로 끝나는 거였죠~~

 

뭐, 그 다음은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 하지 않아도 알아서 책장을 넘기고...큰 아이는 기특하게도 독후감 비스무리한 것까지 써놓았더라구요.^^

 

 

먼저, 전체적인 책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해 놓은 거랍니다.

"영화관에는 과학이 살고 있다" 밑에 "내가 영화관이면 과학을 잡을 거다"  라고 써놓았네요.

 영화관에 살면서 매일 영화만 보고 살고 싶은지, Live here forever"라고 해놓았고,

영화관과 과학의 조합이 색다른 재미를 주었는지, 과학실에서나 볼 수 있는 비커, 플라스크 같은 모형을 형상화 해두고 손으로 꽉 잡고 있는 것이 멋집니다. (엄마 눈에~~)

그림 가운데의 네모들은 필름을 형상화한 것일까요...

 

나름 영화와 과학의 결합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심 뿌듯했답니다.

 

 

독후감 비스무리한 것은 Q&A 형식으로 자신에게 꽤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들을 정리해 놓은 것 같습니다.

1. 영화관에서는 왜 팝콘을 주로 먹을까?

2. 세상에 없는 것은 어떻게 만들고, 나타내고, 대머리는 어떻게 만들까, 어떻게 할까?

3. 골룸같은 지저분한 것은 어떻게 만들죠?

 

이 책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맨 마지막에 이렇게 썼네요.

[영화관에 과학이 산다]는 정말 많은 영화 속 과학을 보여 줬다. 영화관 갈 때 이 책을 챙겨 갈까, 말까...

귀여운 고민을 하고 있네요^^

 

 

영화관에는 영화만 사는 게 아니라며, 영화의 원리 속에 숨은 과학이 있다는 걸 일깨워 주는 1장에서 시작해서 영화 만드는 과정에 숨은 과학, 영화 보여주는 데 숨은 과학 , 특수효과 속 과학, 상영관 안에 숨은 과학, 미래의 영화관에 숨은 과학 등. 영화관의 구석구석에서 과학을 남김없이 끄집어내어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영양만점 책입니다.

 

 

공책이나 책의 끄트머리에 움직이는 모양을 각기 조금씩 달리 그려서 휘리릭~ 넘기면 진짜 애니메이션처럼 촤라락~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공유하는 재미에 한 두번씩 꼭 해보았던 그림 장난이 생각나는 사진이죠.

세계 최초로 움직이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사진작가 에드워드 제임스 마이브리지는 1878년 어느 날 아주 어려운 부탁을 받았어. 말이 달릴 때 네 발이 땅에서 떨어지느냐 아니냐를 놓고 내기를 한 사람이 증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거든. -28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가장 좋은 자리는 어디일까?

한가운데 열에서 1-2좌석 정도 뒤가 가장 좋다!! 소리를 가장 실감 나게 들을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

그리고 주시(주로 사용하는 눈)에 따라 주시가 오른쪽인 사람은 왼쪽, 주시가 왼쪽인 사람은 오른쪽에 앉는게 좋을 수도 있다.

 

과학에 약한 엄마도, 과학에 흥미를 가져야 할 아이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책.

"영화"라는 테마 속에 숨어 있는 과학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았으니, 다음엔 영화관에 가면 아이들이 저보다 더 척척박사가 되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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