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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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하고도 뜨거운 복수의 모든 것 [네메시스]

 

 

모든 것이 이 한 컷에 달려 있으며 남은 이야기 전부를 지배할 첫 장면을 쓰고자 했다. -요 네스뵈

 

그의 말 때문에 첫 장면을 정말 주의깊게 읽었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다. (...)지금 나는 총구를 바라보고 있다. (...)

다들 삶의 의미만 궁금해할 뿐, 아무도 죽음의 의미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10

 

 

아마도 두 개의 사건 중 한 줄기를 끌고 가는 범인의 독백인 듯 싶었는데 왠지 철학적인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라니.

복수의 여신을 의미하는 네메시스를 제목으로 하고 있어 복수가 큰 주제임은 짐작했는데, 거기다 더해 삶과 죽음의 의미까지 신경써야 하는 거야?

커다란 물음을 던지는 독백이후,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또 다른 첫 장면은 은행강도 사건 현장의 CCTV녹화화면을 보고 있는 해리 홀레로부터 시작한다.

 

노인을 본 해리는 우주비행사가 떠올랐다.우스꽝스러운 잔걸음, 뻣뻣한 동작, 생기 없는 암울한 눈동자 쪽모이세공 마루 위로 질질 끌리는 신발. 마치 바닥에서 조금이라도 발을 떼었다가는 우주 공간으로 떠내려갈까봐 잔뜩 겁을 먹은 것 같았다. (...)

해리는 에우구스트 슐츠가 마요르스투엔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다 그만둔 여든한 살의 퇴직자이며, 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마요르스투엔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의 무릎이 뻣뻣한 이유는 매일 딸의 집을 방문할 때 지나다니는 링바이엔 가의 보행자다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12

 

 

아리송한 여운을 남기는 범인의 이 말과 영화같은 첫 장면을 끝까지 기억해야 해~ 하면서 야심차게 책을 읽어나갔는데, 중반도 못 가 앞에서 읽었던 이 말은 저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

왜냐하면, 두 개의 이야기가 엇갈려 전개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따라 가는 과정이 너무나 복잡했기 때문에 길을 안 잃으려고 안간힘을 쓴 나머지 첫 장면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던 탓이다.

그러나 결국, 은행강도 사건의 범인이 밝혀졌을 때에는 이 첫 장면의 의미가 떠오르면서 다시 한 번 이 장면을 음미하고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중간쯤 읽어나가다 보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이 빠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 한계야, 한계. 책의 두께와 내 기억력의 한계치를 무시하고 인물의 이름과 간단한 관계도를 그려놓고 시작하지 않는 내 부주의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완벽하게 두 개의 이야기를 잘 교차시키고 중간중간에 헨젤과 그레텔의 길잡이 노릇을 했던 빵부스러기처럼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잘 배치해두고  마침내 하나의 줄기, "복수"라는 큰 줄기로 잘 인도해주는 작가 요 네스뵈를 탓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이야기를 제대로 잘 따라가지 못한 것은 다~ 내 탓이었다.

노르웨이인들의 이름에 약하고 두 개의 사건을 헷갈렸으며 해리 홀레가 라켈과 어떻게 될 것인지 등 부수적인 것에 신경을 써대면서 주의력결핍장애를 겪는 아이처럼 산만하게 읽어내려갔던 탓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잘 요약하지 못하겠다.

워낙 변수도 많고 이 사람이 범인인가? 했던 인물이 금세 죽은 채로 발견되곤 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사건, 단 하나의 동기.

이거면 요약 끝인가.

 

대낮의 한 은행에서 여직원 스티네 그레테가 피살되고 강도는 돈과 함께 사라지고 만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현장이 담긴 CCTV 녹화 화면을 살펴보던 해리 홀레와 파트너 베아테 뢴은 무언가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강도와 여직원의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는 것(둘은 아마도 아는 사이?) 외에 발견된 증거는 없었다. '방추상회'라는 뇌 부분의 발달로 한 번 본 얼굴을 기억할 수 있는 베아테는 사건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한편, 해리는 현재 여자친구인 라켈이 아들 올레그의 양육권 문제 때문에 모스크바에 간 사이 옛 여자 친구 안나의 전화를 받고 찾아갔다가 술에 취해 그녀의 유혹에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다음날 해리는 죽은 채로 발견된 안나의 집을 사건현장으로 알고 찾아가고, 안나의 죽음은 자살로 단정지어졌다. 그러나 엄격하게 관리된 안나의 아파트 열쇠 3개 중 하나가 사라졌고, 사라진 열쇠는 해리가 가지고 있었다. 술에 취해 전날의 기억이 블랙홀로 사라진 해리 홀레는 사건을 수사하는 도중 의문의 이메일을 받게 되며, 이메일을 보낸 자는 해리를 슬금슬금 압박해 들어온다. 죽은 안나의 신발 바닥에서 발견된 사진으로 인해 아르네 알부라는 남자가 용의자로 떠올랐고, 알부를 수사해 들어가던 도중, 알부가 바다에서 산 채로 수장된 상태로 발견된다.

안나를 중심으로 모인 남자들.

알부, 해리, 그리고 뒤에 가서야 안나의 최근연인으로 밝혀진 인물 알프.

안나의 아파트에서 보았던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그림은 생각보다 깊고도 서늘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된다.

 

안나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안나의 삼촌이라는 자, 집시의 피를 이어받은 라스콜은 부드러우면서도 차가운, 순교자의 얼굴을 한 사람이었는데, 범행을 자수하고 감옥에서 복역중인 이였다. 은행강도 사건이라면 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전설적인 인물이어서 해리는 스티네 그레테가 피살된 은행강도 사건에 관해 그의 자문을 받으러 라스콜을 찾아간다. 그가 지목한 이는 스티네 그레테의 회계사 남편 트론 그레테의 형인 레브 그레테였다. 라스콜과 연합한 해리는 어렵게 레브를 찾아 브라질까지 가지만 레브도 자살한 채로 발견되고...설상가상 안나 살해 용의자였던 알부의 죽음으로 해리는 "프린스"라 불리는 부패경찰과 알프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점점 다급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로 손에 땀을 쥐게 될 무렵, 서서히 "복수"를 매개로 두 개의 사건이 하나로 합쳐지게 되고 이야기는 클라이맥스로 치닫게 된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압권은 언제나 맨 마지막.

그리고 중간중간에 끼어 있는 음악.

 

<레스 브레스트>, <네메시스>, <데빌스 스타>는 오슬로 3부작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그래서 책의 앞에 오슬로 지도가 붙어 있고, <네메시스>의 노르웨이 원제 역시 오슬로의 거리 이름인 소르겐프리 라고 한다. 해리의 옛 연인 안나가 살았던 아파트가 있는 곳이다.

해리 홀레 시리즈 1탄인 <박쥐>는 일필휘지 하여 썼다면, <네메시스>는 그 플롯을 구성하고 완성하는데 1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할 만큼 탄탄한 구성을 자랑하고 있다.

읽는 데 머리가 지끈거렸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읽는 내가 이럴 정도이면 쓰는 작가는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다는 반증인가...

 

차갑고 냉정하게 이루어지는 복수.

죽음으로써 복수를 완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내면이 얼마나 황폐할지, 그들의 내면을 읽어야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해리는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삭막한 시간들을 견뎌야 할지...

복수의 여신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칼날을 들어올리거나 내려치거나 둘 중의 하나를 결정만 하면 되겠지만, 살아남은 사람과 그 과정을 읽어내는 사람은 고뇌에 고뇌를 거듭하며 또다시 다음날이면 떠오르는 해를 마주해야만 한다.

삶이 복수냐, 죽음이 복수냐.

돌려읽고 돌려 읽어도 끝나지 않는 회문처럼 삶과 죽음, 복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제자리돌기를 하고 있다.

 

서늘한 두려움이 주는 짜릿함과 복수의 의미를 곱씹는 진지함을 넘나들면서 내 손은 이미 땀범벅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해리 홀레 시리즈만이 줄 수 있는 락 음악같은 중독성에 나는 빠져들고 말았다.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거칠게 몰아붙이는 강렬한 매력은 짐 빔에 빠져들어 마취가 된 상태에서야 겨우 진정을 찾을 수 있는 해리 홀레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에...해리 홀레 시리즈가 오래 계속되었으면 한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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