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자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세상 속으로 또르르~[도토리 자매]

 

 

 

비뚤비뚤 걸어가고 있어도 등 뒤에서 나의 갈짓자 걸음을 지그시 응시하고 배웅하는 사람 하나 있어 준다면...하는 마음으로 가정을 꾸렸던 것 같다. 지금도 역시 든든하게 내 곁을 받쳐주는 남편이 있어 위태위태하게 무너져 내리려는 담장 하나 있으면 얼른 다시 도닥여 쌓아 올리고 제모습을 유지하려 종종거리고 다닌다. 뾰족했던 모서리는 닳아서 둥실둥실 해지고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슬그머니 미소에 자리를 내어준다.

내가 선택한 사람과 십 년간 마음을 나누며 사는 동안 두 아이가 우리 틈을 비집고 들어왔지만 마음 자리는 좁아지기는 커녕 마법의 자루처럼 쭉쭉 늘어나서 네 명이 복닥거리고 있어도 비좁은 줄을 모르겠다.

도토리 자매도 어서 좋은 짝을 만나 훨씬 더 넓어진 마음으로 여유 있게 살면 좋을 텐데...

 

결혼 전까지 함께 지내왔던 우리 세 자매도 어두운 기억을 공유하면서 나름 끈끈한 유대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차례 광풍이 휘몰아치니 어느새 끊어진 연줄이 되어 연줄과 연은 멀리멀리 떨어지고 말았다. 도토리 자매도 각자의 짝을 찾으면 지금의 친밀함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과거의 나였다면, 도토리 자매와 더 가까운 위치에 나를 놓았겠지만 지금의 나는 도토리 자매보다는 그들의 엄마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여동생과 사이가 안좋다는 구절 때문이다.

 

초음파로 본 태아의 모습이 도토리를 꼭 닮아서 병원 정원에 있던 모밀잣밤나무 아래에서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내내 가을의 투명한 햇살 아래에서 도토리를 주우며 기다렸다는 아빠.

여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엄마는 둘이 평생을 사이좋게 지내라며 쌍둥이가 아닌데도 자매에게 도토리(일본어로 돈구리)를 나누어서 돈코와 구리코라 이름 지어주었다.

그런 귀여운 마음으로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자매의 부모님은 아침에 조깅을 하다가, 트럭에 치여 죽었다. 부모님을 잃은 후 자매는 삼촌 집, 이모집을 전전하다 할아버지 집에 정착을 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산으로 집과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것인데, 글재주가 있는 언니 돈코와 내성적이며 야행성인 구리코는 도토리 자매 홈페이지를 만들어 메일을 주고받는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든 메일을 보내고 싶은데, 아는 사람에게는 보내고 싶지 않을 때 마침 딱 좋은 존재.

도토리 자매는 결코 원만하고 순탄했다고는 할 수 없는 자신들의 경험을 그대로 녹여내어 진실한 마음으로 답장을 전달해 준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옆에 닿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와중에도 우리에게 메일을 쓴다. 이렇게 광활한 우주에 작은 돌 하나를 던져도, 그 파문이 어딘가에는 반드시 생긴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것으로든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15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도토리 자매는 아직도 불완전하긴 하지만 조금씩 세상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내고 있는 듯하다.

도토리 자매 홈페이지 활동을 통해서 자신들도 치유를 받고 있는 중이리라.

도토리 자매 홈페이지에서의 메일 내용과 상담 내용이 주를 이룰 것이라 예상했는데, 보기좋게 빗나가 버렸다. 자매는 홈페이지 활동을 하면서 세상 속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것은 알게 모르게 자신을 노출하는 일이 되기도 하면서 특히나 다른 사람과의 교유를 거친다면 자신의 상처가 하나씩 하나씩 씻겨나가는 과정을 겪는 것이 되기도 한다.

나 자신도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동안 내 안의 것들을 조금씩 토해 내기도 하고, 다른 이의 조언을 듣기도 하면서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도토리 껍질이 딱 벗겨지면 매끈하고 반들반들한 몸통이 또르르 구르게 된다.

이제 그 껍질을 벗어던지고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도토리 자매가 생기를 찾고 통통 튀어다니게 되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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