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령 학교 3 - 신들의 전투 샘터어린이문고 45
류은 지음, 안재선 그림 / 샘터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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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땅을 지켜라! [산신령 학교 3-신들의 전투]

 

 

‘뚜르르르 뚜르르르’

두루미가 전해 준 물방울 편지를 받은 장군이는 달봉이의 초대로 칠보산을 잠시 떠나 두레네 태백산으로 놀러간다.

 

두레를 만나기 전 선녀탕 구경부터 몰래 하려던 둘은 선녀탕을 감싼 바위 위에 두꺼비처럼 생긴 아이가 뒤룩뒤룩 눈을 부릅뜬 채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두꺼비 아이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안심해꼬록. 너희는꼬록 내가 지킨다꼬록. 다시는꼬록 빼앗기지꼬록 않아꼬록. 나만 믿어꼬록.”

두레네 태백산을 원래 담당하던 산신령은 얼마 전 최고 산신령의 부름을 받고 간 후 연락이 없었고, 그 사이 산을 맡아 보던 두레 앞에 나타난 이상한 두꺼비 아이 때문에 두레는 벌벌 떨고 있었는데...

 

 

두레네 산의 탄광 입구가 무너지는 사고가 나고 그 소리를 듣고 탄광을 찾아간 꼬마 산신령들은 칼 찬 무사신 들과 검은 기운에 휩싸인 일본인 야마다를 보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두꺼비 아이는 사실, 마을의 복길이네 터줏대감이었는데, 야마다가 집을 빼앗자 두레네 산 선녀탕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었다.

“아, 그때가 그립다! 우린 꽤 사이가 좋은 편이었어. 집에 사는 사람들이 사이가 좋으면 그 집에 사는 신들도 사이가 좋거든. 우리는 한식구니까 말이야. 안방으로 고개를 들이밀면 성주신이 뜨뜻한 아랫목에 지지다 가라고 반겨 주고, 부엌으로 얼굴을 들이밀면 조왕신이 구수한 누룽지를 집어 주고, 장독대를 돌아보면 장이 맛있게 익는다며 자랑하던 철륭신이 있었는데 다 어디로 가 버렸는지. 어느 때는 그다지 친하지 않던 뒷간의 측신까지 그립다니까. 흑!”-68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눈을 휘둥그레 뜰 별의별 신들이 다 나온다.

옛날 이야기 속에 다 들어가 있었던 우리네 전통의 조상신들이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낯설겠는가.

어머니를 버리고 간 아버지 때문에 인간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두레는 터줏대감으로부터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듣고 나서 도저히 인간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면서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

그걸 옆에서 그냥 지켜만 볼 장군이와 달봉이가 아니지...

“왜 이 땅의 것을 이웃 나라에서 빼앗아 가는 거지? 석탄도, 금도, 인간들마저도 이웃 나라에서 함부로 하려고 하잖아. 그뿐이 아니야. 터줏대감의 터마저...”

산신령들은 마을의 터줏대감인 집 지킴이들을 모아놓고 야마다와 무사신들을 몰아낼 계획을 세운다.

홍역신에 도깨비들까지 대동할 어마어마한 계획을 말이다.

 

인간 세상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게 철칙이라는 산신령들이 나설 수밖에 없을 지경으로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던 그 때 그 시절의 우리나라.

비록 산신령 세계를 통해 인간 세상을 비추어 보았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려던 그 시절의 역사가 환히 눈에 보인다.

 

 

신들의 전투에서 역사를 읽다!!

영국의 해리포터는 가상의 악들과 싸우며 마법을 구사하고 신 나는 판타지를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만, 우리의 꼬마 산신령들의 모험을 따라 가다 보면 과거의 역사를 어느 구석에선가 꼭 만나게 된다. 꼬마 산신령들이 주인공인 한국형 판타지에는 우리의 역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일어난 일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으로 도리를 다하려 했던 산신령들조차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었던 대결의 상대가 허구의 인물들이 아니고 실제로 엄연히 존재했음을, 그리고 그들은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오히려 큰소리치고 있음을...

모험과 판타지를 즐기면서 깨닫게 되는 훌륭한 동화책 [산신령 학교]

달봉이, 장군이, 두레 들을 따라 이 산 저 산 다니다 보면 저절로 우리 역사에 통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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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5월에 쓰는 4월의 주목할 만한 에세이

 

 

어떤 책을 읽고 싶나...또 한 번 뒤적여 본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도 있고, 시인의 산문집도 보인다.

내가 초이스한 책들은 바로...

 

 

 

1.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 수상하지만 솔깃한 어둠 속 인생 상담

한동원 (지은이)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4년 4월

 

한동원의 본격 점집 르포르타주. 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인 저자는 남녀, 학력, 연령을 불문하고 멀쩡한 사람들이 점집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고, 이 풍경에 뭔가 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답을 확인하기 위해 복채와 전화번호를 들고 이름난 점집들을 직접 발로 찾아다녔다.

    표지가 쇼킹하다. 확~ 구미가 당긴다. 안간다 , 가면 뭐하노~ 하지만서도 괜히 발길을 잡아당기는 점집들. 젊은 시절 한 두어번 다녀보았지만 속풀이용으로 그냥 갔다오면 마음의 위로나 될 뿐. 진짜 삶에 도움이 되거나 귀신같이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 이름난 점집들을 다녀온 저자의 고생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쯤 읽어보고 싶어진다. (이건 변명이겠지.) 용하다는 점쟁이들은 어떤 식으로 점을 보는지...알아보고 싶어 근질근질하다.  

 

2.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어디에서 구할까

장석주 (지은이) | 서랍의날씨 | 2014년 4월

 

 

그동안 장석주가 펴내거나 발표한 글 중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들을 뽑아 새로 제목을 붙여 묶은 책이다. 사물이나 개념을 통찰하여 빼어난 감각과 밀도 있는 문장으로 표현한 부분, 하이쿠를 장석주만의 방식으로 감상하는 부분,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읽어 내는 부분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장석주라는 사람의 글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시인이자 소설가, 수필가, 문학비평가, 예술비평가, 문학사가, 칼럼니스트, 편집인, 북 디자이너, 출판인, 방송인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멀티플레이어 장석주 라고 나온다.

그의 책들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천상 그는 글쟁이인가 보았다. 이번에야말로 그의 책을 제대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가장 빛나는 부분을 뽑았다니..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3.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천양희 (지은이) | 문예중앙 | 2014년 4월

 

 

천양희 시인의 산문집. 2014년 올해로 시인이 된 지 49년, 혼자 산 지 39년째가 되는 천양희 시인은 오랫동안 혹독한 고독과 맞서며 눈물로 단련한 시어를 획득하고, 사람과 삶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을 갖게 되기까지의 상처와 눈물의 기록을 책에 담아냈다.

 

 

 

내 마음이 봄바람에 많이 건조해졌는지, 촉촉한 시적 언어가 그립다.

정녕 시집의 제목이라 해도 어울릴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제목이 마음을 딱 때린다.

시집을 읽으면 단련되고 절제된 단어들 속에서 그저 헤엄치고만 다니게 된다.

머릿속으로 이해되지 않는 그 감정들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입 속으로 되뇌는 것이다.

시인의 산문집은 좀 다른 울림을 가지고 내게 찾아온다.

천양희의 산문을 읽으며 메마른 내 가슴에 텀벙, 커다란 웅덩이를 밟는 소리를 선사하고 싶다.

 

 

 

4.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은이) | 은행나무 | 2014년 4월

 

 

 

소설가 정유정의 첫 에세이. 타고난 길치인 그녀가 생애 처음 떠나기로 한 여행지는 용감하게도, 자신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승민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워하던 신들의 땅 히말라야다. 그곳에서 펼쳐질 별들의 바다를 보기 위해 든든한 파트너 김혜나 작가와 함께 떠난 안나푸르나 종주의 기록.

 

정유정의 소설을 읽어본 이라면 이제는 그녀의 에세이가 궁금할 때가 되었다. 지독히도 문장을 단련하는 훈련을 한 그녀가 엮어낸 에세이는 또 어떤 경지를 보여줄까. 언어를 벼려내어 탄생시킨 소설 말고 에세이에서 길치인 그녀를, 근성 있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을까.

못내 궁금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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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에 핀 꽃들 - 우리가 사랑한 문학 문학이 사랑한 꽃이야기
김민철 지음 / 샘터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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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에 핀 꽃들 

 

 

때가 되면 저렇듯

한 음절로 가리라

-박영희 <동백>

 

동백꽃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시다.

‘동백’을 들으면 여수 오동도의 동백이나 선운사의 동백이 떠오른다. 그리고 연이어 부산의 동백섬과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으로 구성지게 꺾어 부르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생각하는 걸 보면 나는 지금, 중년의 부산아지매가 맞는가 보았다.

그리고 하나 더, 문학 작품 중에서는 김유정의 <동백꽃>이 조건반사처럼 떠오른다.

 

그런데 앞서 말한 동백꽃들과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

나는 이 오류를 한참 전에 깨달았지만, 이 책 [문학 속에 핀 꽃들]에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그만 아찔하였다.”

여기 이 부분의 동백꽃도, 소양강 처녀 2절의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도, 강원도 아리랑에 나오는 ”열라는 콩팥은 왜 아니 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에 나오는 동백도 ...모두 생강나무를 뜻한다고 한다.

붉은 꽃이 피는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는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생강나무의 열매로 기름을 짜서 동백기름 대신 머릿기름으로 사용했다. 이 때문에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로 부른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김유정의 <동백꽃> 외에도 문학 속에 핀 꽃들이 많이 등장한다.

분명, 같은 책을 읽었지만, 내 눈에는 띄지 않는 꽃들이 이 책의 저자에게는 쏙쏙 들어와 박힌 모양이다.

33개의 소설과 100개의 꽃

 

 

쇠별꽃 향기는 평소 의식하지 못했는데, <은교>를 읽고 맡아보니 싱그러운 풀 내음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여주인공을 쇠별꽃에 비유한 소설을 만날 줄은 몰랐다. 소설 <은교>는 절묘하게도 쇠별꽃이 등장하면서 문학적인 성취와 향기를 더한 것 같다. -62

 

마타리가 냄새는 좋지 않지만 예쁜 꽃이듯이, 노루오줌도 이름과 달리 연분홍색 꽃이 아주 그사하다.

황순원의 <소나기>에는 마타리, 갈꽃 외에도 메밀꽃, 칡덩굴, 등꽃, 억새풀, 떡갈나무, 호두나무 등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등장하고 있다.

<소나기>는 여러 가지로 참 예쁜 소설이다. 마치 스토리가 있는 한 편의 시 같다. -92

 

박완서는 <그 여자네 집> 말고도 자신의 연애담을 담은 장편 <그 남자네 집>도 썼다. 박완서의 고향은 개성 옆 개풍군으로, 이미륵의 고향 해주와 멀지 않다. 둘 다 고향에 얽힌 글에 꽈리를 담은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122

 

저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야생화 공부도 하면서 소설도 리뷰해 보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 책을 읽으면 저자가 그렇게 따로 당부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당장 박범신의 <은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김훈의 <칼의 노래>등을 빼들고, 쇠별꽃, 장미, 쑥부쟁이가 나오는 부분에 집중해서 다시 읽어볼 참인 것이다.

관점을 달리 해서 읽는 연습도 좋지만, 이 봄에 문학 작품 속에 핀 꽃들을 찾아 차근차근 책을 읽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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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이덕일의 역사특강 2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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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을 자처한 성군, 태종 [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국가의 최고 권력자라는 왕의 자리.

참으로 존귀하지만 고독한 자리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역성혁명을 거쳐 이루어진 나라이기에 그 과정에서 뼈아픈 진통이 한바탕 나라를 휩쓸고 갈 수밖에 없었다. 고려말의 우왕좌왕하는 시기에 허수아비 왕들은 어쩔 줄 몰라 했고, 새로운 혁명을 꿈꾸었던 정도전은 힘을 가진 이성계를 만나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자 했다.

이성계가 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실로 많은 이들이 그를 도왔고, 그 중에는 문과 무에 정통한 아들 이방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힘들게 왕위에 앉은 이성계는 어째서 사랑했던 아들 이방원과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었나.

아버지에게 칼끝을 겨눌 수밖에 없었던 아들 이방원은 끝내 가슴에 응어리를 남긴 채 다음 세상을 준비해야 했다.

 

아버지를 왕위에 올리고 한창 혈기왕성한 때의 이방원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었던 영화 <관상>에서는 이방원을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남의 약점인 목을 잡아 뜯고 피를 봐서라도 왕의 자리에 오를 이리상, 진정 역적의 상” 이라고.

 

이방원, 즉 태종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엇갈리는 면이 있다.

이 책의 저자 이덕일은 악역의 길을 묵묵히 걸은 성군으로 이방원을 조명하고 있다.

사회의 문제점을 정면에서 해결하고 수많은 비난을 무릅쓰며 악역을 자처하는 것으로 구민(丘民)들에게 천명의 소재를 확인받은 이로 꼽고 있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민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 그래서 구민(丘民-들판의 백성)을 얻는 자는 천자가 되고, 천자를 얻는 자는 제후가 되며, 제후를 얻는 자는 대부가 된다. -맹자, 진심 하

 

정도전이 토지 개혁으로 이성계에게 개국의 천명이 내렸음을 입증했다면 이방원은 공신들을 숙청하고 종부법을 제정해 자신에게 천명이 내렸음을 입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2

 

이성계와 정도전이 고려 말의 구민들을 얻었다면 이방원은 조선 초의 구민들을 얻은 것이라고 작자는 말하고 있다.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고 있는 “세월호”의 사태를 보며 무너져내린 공권력에의 신뢰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통감한다. 국무총리의 사퇴도 심지어 고개 숙인 대통령의 조문도 희생자들의 가족 앞에서는 쓸데없는 “액션”에 불과하다. 문제점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파헤치는 작업들은 여기저기서 진행되고 있으며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인가를 찾으려고 언론은 혈안이 되어 있다.

누구 한 사람, 내 탓이라고 나서는 이 없고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며 몸을 사리기에 급급한 꼴을 보며,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부끄럽다고 말하는 이 조차 있는 실정이다.

바로 지금, 이 때, 이방원과 같은 “악역을 자처하는” 리더가 절실하다.

 

자신이 행했던 악역은 모두 천명의 결과이며 자신이 왕의 관상은 아니지만 국왕이 된 것은 모두 하늘이 시킨 것이라며 왕위에 오른 자기자신을 정당화시키려 했던 이방원이지만, 그의 치세는 태평성대였다.

권력의 냉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권력이란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는 것처럼 두려워해야 하는 것임도 잘 알고 있었던 이방원이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군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세종 못지 않은 성군의 자질을 보여주었고, 백성들은 훗날 “태종우(太宗雨)”기사로 그의 뜻을 기렸다.

야사에 전해져 오는 것이긴 하지만, 태종우는 태종이 세상을 떠난 음력 5월 10일에 내리는 비를 말하는 것으로서, “태종이 임종할 때 세종에게 ‘가뭄이 극심한데 내가 죽어서라도 알게 된다면 이날에는 반드시 비가 오게 하리라’라고 말했는데, 훗날 과연 그렇게 되었다”라는 내용이다.

 

피의 숙청으로 공신들의 원망을 샀지만, 태종우 고사가 말해주듯이 백성들의 인심을 얻은 이방원.

정몽주를 죽여 개국의 전기를 마련하고, 왕자의 난을 일으켜 부왕을 쫓아냈으며, 네 처남을 비롯한 공신들을 가혹하게 숙청해 법이 지배하는 나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온갖 비난과 저주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악역을 자처했기에 조선은 번듯하게 기틀을 세우게 되었고 세종으로 연결되는 문화의 시대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사이 태조께서 아주 귀여워하시던 두 아들을 잃고 상심하시던 것을 생각했다. 비록 내 몸은 나라의 주인 되는 영예에 있었어도 어버이를 뵙지 못했고, 혹은 백관들을 거느리고 전 殿에 나아갔다가도 들어가 뵙지 못하고 돌아 나왔다. 그럴 때마다 왕위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필마를 타고 관원 한 명만 거느리고 조석으로 아버지를 모셔서 (昏定晨省) 내 마음을 나타내고 싶었다. -태종실록, 18년 8월 8일

 

냉혹하고 무자비하게 피를 흘리며 쌓아올린 조선의 기틀 뒤에는 이렇게 짠한 마음을 가진 이방원의 노력이 있었음을...안타깝게도 맞서야만 했던 부자의 관계를 돌아보며 한 번쯤 짚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특히나 “이방원”은 진정한 리더를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대입해 본다면, 꼭 필요한 인물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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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10년의 노트 - 당신의 인생노트에는 무엇이 적혀 있습니까?
예병일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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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일깨우는 한 마디 [책 읽어주는 남자, 10년의 노트]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오른쪽 손목 쪽에 무지근한 통증이 느껴진다.

어제 하루 종일 무~~식하게 청소를 해댄 탓이다.

아침 9시부터 눈꼽도 안 떼도 오후 3시까지 엉덩이 한 번을 못 붙였다면 말 다 한 것 아닌가.

이삿짐 센터 혹은 청소도우미로 일을 했으면 일당 10만원은 줘야 할 베테랑 일꾼의 실력을 보여주며, 캬~ 정말 열심히 일했다.

사건의 발단은 남편의 무심한 말 한 마디.

"아니, 가정 주부가 집에 있으면서 집안이 왜 이렇게 드럽노? 창문에 손 자국 봐라. 쫌, 닦아라, 닦아!"

평소라면 남편의 그런 자잘한 잔소리는 파밧~ 손날치기로 날려버리고 유유자적 발을 까딱까딱하며 들었을 텐데...그날 따라 화살은 세차게 날아와 "정곡"을 찔렀다.

피~~융, 퍽!

 

요즘 날씨 탓인지 이상하게 나른해지고 힘이 없었더랬다. 제주 여행 다녀온 뒤로는 여행의 후유증 탓이라며 게으름에 내 몸을 맡겨버리고 축 늘어져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 내 스스로도 영 못마땅하긴 했다.

나이 탓인가, 호르몬 탓인가...이래 저래 변명거리만 쌓아가는 나 자신이 나도 싫어질 무렵.

"가정주부"라는 나의 정체성을 꾹 밟아버리는 남편의 그 한 마디에 오기가 불끈 일어 아침에 눈뜨자 마자 아침, 점심도 거르고 청소를 시작했다.

얼굴에 땀이 흘러 눈 안으로 마구마구 들어가는데도 장갑을 낀 손으로 닦을 수도 없어 따가운 눈을 깜박깜박거리기만 하고...

그 덕에 편안하게 놀고먹던 내 손목의 근육이 놀래서 오늘 이렇게 "나 아파, 아프다고~~"하며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큰시큰 손을 움직일 때마다 아우성을 치면서 말이다.

 

나의 정체성. "가정 주부"

그 일을 다 해내고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며 성과를 얻었을 때 제대로 대접받는다.

그러나 가정주부의 소임을 다해 내지 않고서 책만 읽고 리뷰 쓰는 것에 정신 팔린 나는 남편의 눈에 "정신 나간 여편네"일 뿐이다.

책 그만 읽고, 청소나 해~ 가 되는 것이다.

 

남편의 잔소리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좀...자존심 상한다.

 

[책 읽어주는 남자, 10년의 노트]

 

이 책에는 열한 곳의 밭에 뿌리는 112개의 생각 씨앗들이 들어있는데 그 중에 "오늘"과 "진정한 나"에 눈길이 먼저 갔다.

당장 동그라미, 동그라미를 겹겹이 둘러쳤다.

나를 무참히 짓밟은 남편을 원망할지, 나의 게으름을 원망할지 가늠해보기 위해서 말이다.

 

뜨끔한 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시시하거나 하찮다는 생각이 듭니까? 그래서 오늘 최선을 다하지 않고 대강대강 하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 맡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최고가 되는 사람만이 훗날 진짜로 원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그 때도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을 충실히 살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최고가 되어 봅시다.

-90

 

 

우리가 하는 많은 고민들, 잘 살펴보면 '타인의 평가'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의 시선만 없다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들이 우리를 괴롭히곤 합니다. '타인의 반응'이 아닌 '진정한 나'와 대면한다면 무의미할 수 있는 것들이지요. (...)

왜 우리는 그토록 타인의 반응에 신경을 쓰는 것일까. 그 이유는 너무나 민감하고 쉽게 다치는 자존심이라는 연약한 감정 때문에, 또 내면 깊이 숨어 있는 불안 때문이다. -260

 

좋아!!

알렉스 리커만이 <지지 않는 마음>에서 표현한 대로 "청소를 너무도 잘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가 하던 일을 멈추고, '여기 자기의 임무를 훌륭하게 해낸 위대한 청소부가 살았노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사명을 다 해내고 말리라!!-160 인용.

 

^^

청소 하나 하고 팔목 좀 시큰거리는 것으로 참 잘도 갖다 붙인다~~

남편의 한 마디에 청소 빡세게 하고 책 한 권, 내 것으로 만든 날로 기억할 것이다. 오늘을...

하루 5분, '경제와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라는 취지로 '예병일의 경제 노트'를 운영하는 저자 예병일. 그의 글들은 삶을 살면서 무뎌진 내 칼날을 다시금 날카롭게 벼리는 데 요긴한 숫돌이 되어 주었다.

비록 손목은 희생했으나 깨끗해진 유리창과 정리된 냉장고, 반짝반짝한 욕실과 전체적으로 한결 넓어보이는 집을 보고 있으니 뿌듯하긴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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