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한비자인가 - 어떻게 국가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신동준 지음 / 인간사랑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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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 리더십의 최고 고전 [왜 지금 한비자인가]

 

 

2014년의 세월호 사건.

이 하나의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혔고, 사회 전반의 문제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난세"라고 명명해도 전혀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이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란 것도 한심하기 짝이 없고, 책임을 지는 사람 또한 없다.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만, 막상 터지고 난 다음엔 수습이라도 제대로 해야할 텐데, 제대로 된 방략을 짜고 대처하는 "인물", 혹은 "집단"이 우뚝 솟아나지 않는 이 판국은 정말로 엉망진창이다.

 

이러한 때에 "왜 지금 한비자인가"라는 책의 제목이 따~악.

저자 신동준은 이러한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고전 속 [한비자]에서 답을 찾아 길 떠난 나그네 우물물에서 해갈하는 듯한 물 한 모금의 시원함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현재 안팎의 상황은 심각하다. 밖으로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대국의 갈등이 북한 위기로 인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안으로는 전 국민을 비통 속으로 몰아넣은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가 보여 주듯이 국가와 권력 및 관료의 존재 이유를 심각하게 묻고 있다. 난세의 전형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13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가장 어지러웠던 시대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춘추전국시대. 그 시기에 우후죽순처럼 돋아났던 제자백가의 사상들이 꽃을 피웠던 것은 시대의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어려울 때 자신의 모든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된다고 했던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치국평천하 방략이 등장했던 그 시기에서 난세를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하나 뽑아 왔으니, 그가 바로 [한비자]이다.

 

[왜 지금 한비자인가]에서 다루고 있는 총 8가지 유형의 통치술은 고금을 관통하는 난세의 모든 리더십을 총망라했고, 이런 분류는 이 책이 사상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라고 한다. 나아가 한비자의 관계술을 공자와 노자의 통치사상과 비교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도가와 유가 및 법가 사상이 원래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21세기 스마트혁명 시대의 한반도 주변 상황을 G2 시대라 명명하고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을 역설하고 있다. 한반도 정세와 21세기의 사정을 두루 살펴 거시적인 안목에서 전통 사상들을 조망하고 있지만, 범위를 좁혀 지금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어지러운 시국을 타개할 방편 또한 적용시켜 생각해볼 수 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난세 리더십의 압권인 한비자. 이 책에서는 법가와 도가 및 유가를 하나로 녹인 이른바 '유법도 3가합일'의 과넘에서 [한비자] 전편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찾았다. 바로 '권력관계와 인간관계에 관한 기술'이다.

한비자가 세상의 모든 관계를 이해관계로 파악한 것으로 보고, 조직경영과 인간경영의 분석대상이 된 인간관계에 핵심을 두었다.

 

제왕학의 본령은 유학이 아닌  이른바 '제자백가학'에 있다고 말하면서 사상최초로 난세의 제왕술을 이해하는 대전제로 [한비자]를 꼽았다.

 

천하경영 차원에서는 '무위지치'로 천하를 다스리는 무위술, 국가경영 차원에서는 포상과 형벌을 공평히 행하는 신상필벌의 상형술과 일하면서 싸우게 만드는 경전술, 인간관계의 총로 차워네서는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먼저 내주는 취여술, 조직경영 차원에서는 권력과 권위를 적극 활용하는 위려술과 세몰이를 통해 주변을 압도하는 세위술 등 6개 방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를 현장에서 제대로 써먹기 위한 방법으로, 군주의 신하에 대한 통제 기술인 잠어술과, 신하가 유세 내지 진언을 통해 군주를 설득하는 반부술 등을 덧붙여 [한비자]의 제왕술을 8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꼭 고전을 통달하라는 뜻은 아니지만, 이러한 지혜를 꿰뚫고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결국 "사람"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인간관계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책을 읽고 지헤를 빌릴지라도 그것을 제대로 써먹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결국 다 자기하기 나름이지만, 답답한 마음에 일선의 임무수행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마음...

누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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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패키지 - 성공의 세 가지 유전자
에이미 추아.제드 러벤펠드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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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집단의 세 가지 특징 [트리플 패키지]

 

 

성공의 세 가지 유전자, 트리플 패키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얼마 전 읽었던 아리아나 허핑턴의 [제 3의 성공]이란 책이 생각났다.

최근 읽은 책 중에서 “성공”을 키워드로 하는 책이었기에 내 기억의 저장고에서 이끌려 나온 것이다. 대개의 경우 통속적인 의미에서 “성공”은 ‘돈과 지위의 쟁취’로 정의한다. 그러나 아리아나 허핑턴은 “돈과 권력”이 아닌 제3의 성공의 개념을 이끌어냈다.

그녀가 밝힌 제3의 성공의 기준은 웰빙과 지혜, 경이로움과 베풂 이라는 네 가지 기둥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의 경험과 과학적 논문을 근거로 성공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는데, 요약하자면 자신의 내면과 주변을 돌아보며 여유롭고 느긋한 삶을 살자는 것이다.

 

제 3의 성공을 가져와서 얘기하다 보니 “성공”의 개념 자체가 [트리플 패키지]의 방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녀가 말하는 제3의 성공과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성공은 궤도를 달리한다.

트리플 패키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통속적인 의미의 “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어떻게 하면 성공을 할 수 있을까?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허핑턴의 제 3의 성공은 잠시 잊자.

 

먼저, [트리플 패키지]의 저자를 살펴보니[타이거 마더]를 쓴 에이미 추아가 눈에 띈다. 대충 눈으로 훑어만 보았던 책이지만 제목이 워낙 강렬하여 기억하고 있던 터다. 스칸디맘이니, 헬리콥터 맘이니...엄마들이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에 붙인 이름들이 너무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타이거 맘은 단연 “쎈” 이름이다.

중국계 미국인으로 예일대학교 로스쿨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그녀는 우수한 집단들이 이민 3세대에 이르러 트리플 패키지를 상실하고 평범해지는 현상을 무수히 관찰하면서 스스로 ‘타이거 맘’을 자처하며 이민 3세대인 딸들을 엄격하게 교육했다고 한다. 중국식 통제와 관리, 엄격한 규칙으로 ‘엄친딸’을 키워낸 비결을 소개한 책이 [타이거 마더]다.

자, 저자의 소개를 보니 대충 이 책의 윤곽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다른 한 명의 저자인 제드 러벤펠드는 현재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현대 서양 문화, 특히 미국을 점점 더 지배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의 능력이 저하된 현실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서를 써왔다.

 

두 저자는 각자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집단들의 흥망성쇠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공한 집단들은 저마다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세 가지 문화적 공통점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것을 “트리플 패키지”라고 부른다.

성공한 집단의 세 가지 문화적 힘은 우월 콤플렉스, 불안감, 충동조절이다.

트리플 패키지가 한 집단의 성공에 강력한 원동력이 되는 이유는 트리플 패키지의 첫 두가지 힘인 우월 콤플렉스와 불안감이 의외의 조합을 이루면서 성공 욕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민자 집단들 사이에서 ‘내 능력을 보여주고 말겠다’는 심리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와 충돌할 때 발생하기도 하고 자기 가족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갈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우월감에 충동조절이 더해지면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 생겨난다. 한 집단의 문화 안에서 트리플 패키지의 이 세 가지 요소들이 합쳐지면, 그 집단의 구성원들은 미래의 성공을 위해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실천하거나 받아들일 의지와 능력이 엄청나게 강해진다.

 

정, 재계 정상에 올라선 모르몬교도들, 마이애미의 비약적 성장을 이끈 쿠바계 미국인, 아이비리그와 월스트리트의 흑인 이민자들, 학업 성취와 높은 소득으로 주목받는 아시아계 이민자들, 성공한 소수민족의 전형 유대계 미국인, 소득 수준이 높은 이란계와 레바논계 미국인에 관한 논의들은 트리플 패키지가 탄탄한 통계자료에 기반한 저작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미국은 트리플 패키지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미국은 불안감과 충동 조절 모두를 버렸다. 우월감과 현재를 살고픈 욕망만 남게 된 것이다. 트리플 패키지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시작부터 “성공”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고 출발했기에 이제와서 그걸 가지고 행복하니, 안하니 징징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트리플 패키지는 의미 있는 인생을 약속해주지는 못하지만, 그런 인생을 가능케 해준다.

 

결국, 트리플 패키지는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나 타인들의 이익을 위해서나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동력이다. 트리플 패키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 부작용을 겪을 위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타인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290

 

미국이 트리플 패키지를 완전히 되찾는 날, 미국에는 성공하는 집단들이 아니라 성공하는 개인들만이 남게 될 것이다. 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성공의 요소를 문화적 토대에서 끌어낸다는 것 자체가 자칫 무리일수도 있고, 집단의 성격을 함부로 들먹인다는 것이 차별적 요소를 끄집어 낼 수 도 있기에 위험한 일이기도 한데, 용감한 그들은 과감하게 정면승부를 띄웠다.

나는 그저, 타이거 맘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될 생각도 없지만, 가끔 아이를 몰아붙인다고 여겨질 때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이 책의 등장이 조금은 반가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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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4.6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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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달 [샘터 6월]

 

 

 

'온 누리에 생명의 소리가 가득 넘치는 달'이란 뜻의 누리달, 6월이 다가온다.

햇살이 꽤 눈부시다.

6월은 눈부신 햇살의 기운으로 활기차게 지내야 하는데, 아직 세월호에 묶여 이것도 저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이 우리를 잠식해 들어간 지 벌써 한 달 하고도 반이 지났는데...

실종자들은 아직도 남아 있고, 세월호를 둘러싼 진상 조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세월호에서 비롯된 모든 악의 뿌리들은 제멋대로 파헤쳐 지기만 하고 있다.

세월호의 악인지, 우리 사회의 악인지...

이걸 들추니 저게 튀어나오고 저게 튀어나오니 음모론이 불쑥불쑥 들쑤셔지고, 하룻밤 자고 나면 어지러운 머리가 개운하게 정리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소식에 더 정신이 어지럽다.

 

시인 나희덕은 <통곡의 바다 앞에서>란 제목의 글로 바다 앞에서 무력하기만 한 우리의 느낌을 정리해주었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서 복수심에 눈이 먼 에이허브 선장은 자신이 고래를 향해 던진 작살 밧줄에 끌려가며 최후를 맞는다. 세월호의 침몰 역시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인간들의 눈먼 욕망과 이기심이 빚어낸 참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고의 원인과 배후가 드러날수록 어느 곳 하나 성한 데 없이 병들어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75

 

사고 한 달여가 지나고 고요히 숨죽이고 있던 쇼프로그램들이 주말에 보니, 조금씩 기지개를 펴기 시작하고 있었다.

웃음이 그리웠던 탓일까.

무표정 혹은 슬픔을 짙게 드리운 표정으로 어기적 어기적 다니던 유령같은 내게 갑작스런 웃음의 코드는 전기충격과 같은 것이었나보다.

남편이 신기하다고 쳐다볼 정도로 크게 웃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나 조차도 어이없을 정도로.

발작적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은...진정 우스워서 웃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웃지 못하고 살았던 기간에 대한 한풀이였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아~

웃음도 멈추고 살면 병이 되는구나. ㅠㅠ

희노애락의 조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6월이 될 듯 싶다.

웃을까, 말까.

눈치보지 말고 이제 활달한 밸런스를 찾아가야 할 것 같다.

월간 샘터가 제공하는 다양한 이야깃거리에서부터 적응해 나가면 되려나.

 

강춘자 할머니의 고사리 들깨탕은 레시피만 보아도 절로 건강해지는 듯하고, 고소한 향이 퍼져나오는 듯하다.

몸이 먼저 건강을 되찾아야 정신도 건강해질 터.

6월 한 달 안에, 이 레시피 꼭 도전해 보고 싶다.

 

 

축구 수집가의 보물창고를 털어 선물로 나누어주는 2014 브라질 월드컵 기념, 월드컵 소장품 이벤트도 숨겨져 있던 열정을 끄집어 내는 불씨 역할을 해주고 있다.

 

'기생충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글을 연재하는 서민 교수의 기생충 이야기는 우리 몸 속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한편, 묘하게 유머러스한 매력을 뽐내며 나를 웃음짓게 만든다.

유기농 먹거리에 관심 많은 열혈엄마들이여~

세 배 가까운 돈을 주고 사먹는 유기농에서 기생충 발견되면 어쩌려고^^

유기농이 크게 몸에 좋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교수님의 말을 믿어라~~

 

사는 게 팍팍해서인지, 요즘 꿈이 없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꿈을 키워주는 강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13

샘터 앙케트에서 당첨된 박혜정 님의 말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

 

다양한 표정 변화의 스펙트럼을 느끼며 읽었던 샘터 6월호.

소중히 쌓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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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 장영희의 열두 달 영미시 선물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샘터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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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위로의 선물 [다시, 봄]

 

 

어쩜, 어쩜.

우울하려던 마음이 싹 사라지게 만드는 어여쁜 표지이다.

죽죽, 아이처럼 그어내린 두툼한 초록 줄기에 화사한 노란 꽃이 피려고 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싱그러워지는" 느낌으로 샤워하는 듯한 기분이 절로 든다.

저 두툼한 줄기를 하나 쓱 빼들고

노란 꽃이 내 머리, 팔, 가슴, 배 , 다리를 쓱쓱 지나가면

몸과 마음의 상처가 싹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향기로운 내음을 가득 안고 내 품에 던져지는 꽃다발은 환희라는 효용을 가져다 주지만 금세 시들어 버리기에 오래 가지 못하지만, 책 표지에 발랄함과 상큼함을 가득 품은 이 책은 절대 지지 않는 꽃을 가지고 있어서 멋진 선물이 되어 준다.

크지 않은 판형에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이 책을 받아들고 기뻐 어찌할 줄 모르는 마음이 샘솟는 것은...

참 오랜만이다.

 

나는 요즘의 시를 잘 안 읽는 사람이지만 시집을 읽는 때는 마음이 어지러운 때에 특히 많이 한정되는 것 같다.

도무지 읽어도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시의 언어는 아예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눈으로 그 흐름을 좇아가며 나만의 생각에 잠긴다.  

가끔 눈에 와 박히는 생소한 문장들과 시어들에 별안간 눈이 커지기도 하고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족속들의 말이야~ 하면서 시와 나의 평행을 이룰 수 없음을 이상하게 기뻐하며 읽는 동안 괜시리 마음이 편해짐을 즐기는 것이다.

왜일까.

그림이 없어서 더욱 글자와 마음간에 소통되지 못함을..그 막막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면 거기에서 더 해방감을 느낀다고나 할까.

 

그런데 장영희가 선물한 열두 달 영미 시에는 그림이 곁들여져 있다.

그것도 김점선의 그림으로. (2009년 3월과 5월 차례로 두 분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내가 김점선의 그림을 만나게 된 것은, 아이의 동화책 [게사니]로부터였다.

이북에서는 거위를 '게사니'라고 한다고 했다.

 

김점선의 큰엄마 집에 사는 게사니를 쫄레쫄레 쫓아다니며 친구 삼았던 어린 시절의 김점선과 커다란 날개를 모으고 뒤뚱거리며 다니는 게사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여 마음에 꼬옥 담아두었던 그림책이었다.

어린아이같은 선이지만 그래서 더 거리낌없이 마음에 바로 와닿았고, 동심의 세계에 바짝 다가간 그녀의 그림에 경계가 스르르 허물어져 버렸던 기억이 있다.

 

시에 대한 선입견과 그림에 대한 선입견이 동시에 날아가버리면서

저절로 다가와 "어때?"하고 한 마디 툭 던지고 가버리는 묘한 선물.

 

 

시는 문학의 한 형태이고, 문학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연시를 좋아하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사랑이라고 봐요. 요즘 누구나 심든 시대니까 손톱만큼이라도 독자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랐어요.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라는 것이 문학의 궁극적 목적이잖아요. -171,조선일보 인터뷰 중.

 

 

 

1월에서 12월까지 계절에 어울리는 다양한 시를 소개한 이 책.

장영희는 5월을 이렇게 표현했네요.

 

너무 옅지도, 짙지도 않은

청순한 푸름의 계절, 5월입니다.

꽃비 내리는 이 아침,

아픈 추억도 어두운 그림자도

다 뒤로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5월 속에 있으니까요.

-64

 

항암치료 받는 동안 내내 씩씩했다고 하는 장영희의 마음이 희망과 위로를 주고, 그 위에 한없이 씩씩하면서 생동감 넘치는 김점선의 그림이 더해지자 이 책은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나에게 선물했다.

내가 이 책에서 받은 선물같은 기쁨을 다른 이들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

올해, 내가 지인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1위에 당당히 걸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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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착한 늑대 - 우리가 몰랐던 늑대 이야기
요나스 부츠 글, 닐스 피터스 그림, 김희정 옮김 / 은나팔(현암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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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오해야~[커다란 착한 늑대]

 

 

먼저, 책을 읽고 난 초등학교 3학년 우리 채원이의 소감을 적어보겠습니다. ^^

 

보통 책에서 이야기하는 늑대는 거의 나쁜데, 커다랗고 착한 늑대는 착해서, 친구가 없는 늑대보다 친구가 많은 늑대예요.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무언가 주인공에 대한 특별한 점이 느껴졌어요 .

빨간 모자는 동화와는 다르게 뭔가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고 철이 들지 않은 아기 같았고,

늑대는 착하지만 사냥꾼에게 오해를 받아 불쌍해 보였고,

다른 숲 속 친구들은 늑대의 처지를 모르는 어린 아이같았고요,

사냥꾼은 착한 늑대를 나쁜 늑대로 모는 나쁜 사람 같았어요.

그리고 책을 읽고 맨 마지막에 사냥꾼이 가족에게 이야기를 꾸며 하는 부분에서는 '무조건 떠들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커다란 착한 늑대]는 제목부터 이상하죠?

늑대는 커다랗지만 무섭고 나빠야 정상인데...

이 책에는 늑대가 나오는 세계 명작 동화 세 가지 이야기가 섞여 있어요.

1. 빨간 모자  2.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들  3. 아기 돼지 삼 형제

모두 늑대가 나오죠? 공통적으로 포악하고 무섭고 잔인한 늑대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커다란 착한 늑대]에서는 캐릭터들의 성격이 기존의 캐릭터들과는 완전 딴판으로 나오게 됩니다.

 

채원이가 느낀 것처럼 빨간 모자는 할머니 문병을 가는 착하고 여린 소녀가 아니고, 삐딱한 (?)소녀로 등장합니다.

 

오~ 저 사악하게 씨익 웃는 표정, 제대로네요. ^^

 

 

빨간 모자는 하고 싶은 건 제멋대로 다 하는 아이였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소녀를 '큰 집에 사는 버릇없는 아이'라고 불렀지요.

반대로 늑대는 아무도 해치지 않는 온순한 늑대였는데, 빨간 모자를 만난 순간부터 모든 것이 어그러지기 시작합니다. 머피의 법칙에 된통 걸렸다고나 할까요.

 

초인종 소리에 깜짝 놀란 할머니는 그만 커다란 늑대의 입안으로 굴러 들어갔어요.

늑대가 할머니를 잡아먹었다는 것을 알게 된 빨간 모자는 더 이상 할머니 집에 오지 않아도 된다며 기뻐 합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늑대의 배를 걷어차는 바람에 깜짝 놀란 늑대는 침대에서 요동을 치다가 빨간 모자마저 커다란 입안으로 꿀꺽 삼켜 버렸어요.

일곱마리 아기 염소 집으로 간 늑대.  숨바꼭질 하던 염소들이 책장 위로 뛰어드는 바람에 책장이 흔들거리며 움직였고, 아기 염소들은 소리를 지르며 굴러떨어졌어요. 바로 커다란 늑대의 입안으로요.

돼지네 집으로 도망간 늑대를 쫓아온 사냥꾼. "커다란 나쁜 늑대야. 썩 나와! 넌 벌을 받아야 해!"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오해 받는 일 투성이일까요?

아이들은 불쌍한 늑대가 연달아 오해를 받자 "억울하겠다"며 늑대를 쫓는 사냥꾼이 나쁘다고 합니다.

과연 착한 늑대는 사냥꾼에게 잡힐까요?

 

흥미진진하고 신 나는 한 판.

동화 뒤집기가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늑대가 커다랗긴 하지만 착하다는 설정은 아이들에게도 대단히 새로웠나봐요.

 

 

채원이에게 있어 동생 규원이는 아마도 늑대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좀 가만히 있고 싶어하는 누나를 남동생 규원이는 언제나 못 살게 굴고 귀찮게 합니다.

채원이의 늑대, 규원이.

너도 누나에게 오해받고 싶지 않으면, 착하게 구는 게 어때?^^

 

착한 늑대처럼 표정을 지어보라는 말에 금세 포즈를 취해 주는데요~

요 착해 보이는 모습이 채원이 마음에 들려나 모르겠습니다 .

언제나 엎치락 뒤치락 하지만 남매의 노는 모습은 엄마 눈에는 언제나 귀엽게만 보이죠.

정작 당하는 누나 채원이의 입장에서는 사악한 늑대가 들러붙은 것 같겠지만 말이에요.

 

신 나는 동화 뒤집기 한 판으로 재밌게 놀아보았습니다.

이제 다른 이야기들도 이렇게 엮엇 뒤집어 보겠다고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한동안 또 명작 동화 꺼내들고 둘이서 이렇게 붙이고 저렇게 붙이면서 놀게 하는 것도 재밌을 듯 싶어요.

명작을 명작 그대로 읽히는 것보다 새로운 시각에서 잇고 붙이고 창작하는 즐거움도 꽤 쏠쏠하네요.

마치 현암사에서 나온 "그림 자매"를 짤막하게나마 엿보는 기분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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