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노래 [몽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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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노래
들으면 들을수록 멋진 곡이었다. 정신이 함께 울리는 것 같은 착각에 휩싸였다. <힙노틱 서제스천 hypnotic
suggestion>, 최면 암시라고 번역하면 될까, 딱 맞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52
물어보나
마나 처참했을 거다.
북극성이나
샛별같이 완벽하게 제 자리에서 빛을 발하며 반짝이는 것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그래서
할퀴고 후벼파고 야금야금 제 속을 갉아먹었을 거다.
자괴감이라는
것이...
특히나
창작의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이들이라면 궁극의 것을 만들고 싶어 하는 그 마음에 손쉬운 재료를 눈앞에 두고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며, 스스로를
달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느슨한
듯 팽팽한 듯 그 길을 걷기가 어렵다.
곧게
걸으려 해도 곧 미로처럼 엉키고 말리라. 곧 아득히 깊어지는 심연만이 그를 집어 삼킬지도 모른다.
비뚤비뚤한
발자국을 남기며 걷던 욕심쟁이 바보인 그는 제 그림자를 잡으려다 미쳐 날뛰고 결국은 뛰어내렸을지도 모른다.
노란
나팔꽃이 한 송이 나풀. 떨어진다.
도쿄에서
팬드럼이라는 밴드의 키보드를 맡고 있었으며, 거의 팀의 리더 격이었던 도리이 나오토가 자택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흑과
백 위로 떠오른 노란 나팔꽃

두
개의 강렬한 프롤로그로 첫 수가 두어지자, 그 뒤로 흑과 백이 차근차근 집을 쌓아간다.
딱...딱...따닥.
땀이
또르르 흘러내리고 들숨 날숨이 차례로 교차되는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둘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 사이로는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는 한 판
승부의 시간.
흑과
백의 우열은 어디서 갈릴 것인가.
니시오기쿠보독거노인
강도살인사건
도리이
나오토가 자살하고 얼마 후, 할아버지 아키야마 슈지 또한 집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손녀
아키야마 리노는 경황이 없던 와중에 할아버지의 집에서 노란 꽃이 피었던 화분이 사라진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의문을 품는다.
노란
꽃 화분에 의문을 품은 아키야마 리노는 노란 꽃의 존재에 대해 알아보다가 가모 요스케로부터 블로그 답글을 받았고, 그와 좀 더 접촉해서
물어보려다가 거부당하자 요스케의 동생 가모 소타와 의기투합하여 사건을 파헤치게 된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노란 나팔꽃. 몽환화.
꽃잎은
선명한 노란색이었다. 가늘고 긴 꽃잎은 촉수처럼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103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저뿐만 아니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약속해 주십시오. 만약 그 꽃의 씨앗을 발견하면 곧바로
제게 연락해주십시오. 아시겠죠?
그게
싫다면 씨앗은 전부 버리세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117
한
발 앞서 사건을 진행해나가고 있는 듯해 보이는 가모 요스케는 살인사건 자체보다도 노란 나팔꽃과 연관되어 있는 일에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그
뒤를 바짝 추격하는 리노와 가모 소타.
흑과
백은 어느 순간 대립을 멈추고 바둑판을 꽉 채우겠다는 공동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듯하다. 속속 바둑판의 빈틈이 메워지고 집은 완성되어져 간다.
결국은 누구의 승리랄 것도 없이 바둑판을 채운 흑과 백의 돌은 그 자체로 유혹적이고 매력적인 몽환화의 무늬를 또렷이 바둑판 위에 드러낼 뿐이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프롤로그
2에 언급된 어린시절의 가모 소타, 이바 다카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서 이미 슬픈 예감을 했었는데...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는 것인지.
독단적으로
사건의 우위를 점하며 치고 나가고 있는 가모 요스케로부터 MM사건이라는 단서를 들은 가모 소타는 아키야마 리노와 함께 예전의 사건 기록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팬드럼 밴드의 새 키보드 멤버로 들어왔다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종적을 감춘 여성이 첫사랑 이바 다카미가 아닌가...의구심을 품는다. 그녀는 왜
그를 보고 사라졌을까. 그리고 어린 시절 갑자기 만남을 중지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모
소타. 집안의 연례행사로 가족 모두 나팔꽃 시장에 나가 나팔꽃을 보러 다녔던 기억- 이바 다카미 또한 그 꽃시장에서 만났었지. 메일을 주고받으며
한여름 같은 사랑을 키워나갔었는데, 자신의 메일을 보고 만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그 사랑은 곧 끝나고 말았다. 이바 다카미 또한 단칼에 만남을
거부했었는데...
그녀와
나팔꽃은 또 어떤 형태로 연관되어 있을까.
노란
나팔꽃은 에도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의 꽃이기도 하면서 그 신비한 내력을 좀처럼 드러내보이지 않는다. 환상의 꽃, 금단의
꽃.
#어느
집이나 남들이 모르는 사정이 있지
오사카
대학의 물리에너지 공학 제 2과에서 연구하고 있던 가모 소타. 경찰청 생활안전국 범죄억제대책실 실장이라는 형 요스케는 왜 그렇게 데면데면한
것인지. 열 세 살이라는 나이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어머니가 다르기 때문일까.
형은
어머니와 피가 섞이지 않았고, 내가 친자식인데...
집안일로
아무래도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어.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가 없을 것 같아.
원자력
공학에 모든 것을 걸 것인가 하는, 미래가 달린 진로 고민을 하던 차에 알 수 없는 의심쩍은 행동을 하고 다니는 형의 뒤를 좇으며 노란 나팔꽃
사건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되는 가모 소타.
진짜
깜짝 놀랄 만한 일은 남들이 모르는 집안 사정 안에 있었다!!
가모
집안 삼대에 걸쳐 관여해온 문제는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몽환화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던 첫사랑 이바 다카미의 가문 또한 마성의 식물을 확산시킨 자의 피를 이어받은 인간의 의무를 져야 하는 처지였다.
빚이라는
유산을 물려받았고, 의무감의 발로에서든 뭐든 그 빚을 책임감 있게 떠맡은 두 가문의 후계자들은 심히 아름다운 마무리를 함으로써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최고가
되고 싶고, 환상의 소리를 얻고 싶어 금단의 꽃에 손을 댄 자들의 최후는 씁쓸했다.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누출 사건이나 우리 나라의 세월호 사건 또한 어디서부터 잘못을 짚어나가야 할지 알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욕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
뿌리기 시작한 것은 인간이 그러모으고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단순한
진리를 몽환화에 빗대어 나직하게 충고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오랜
기간 추리 소설을 써오면서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그 누구보다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파헤쳐 온 사람이 아닌가.
심혈을
기울여 써 낸 작품이니만큼 전하는 메시지 또한 묵직하다.
꿈과
같은 세계에 집착하다 보면 현실을 망각하게 된다.
단단히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두 눈을 크게 떠야 한다.
뿌리는
사람, 거두는 사람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알게 모르게 조력해온 두 가문처럼 세상을 떠받치는 힘은 여러 개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은 뿌린
자가 거두는 것이 맞다.
강직하고
누구보다 곧았던 슈지 할아버지의 죽음에 애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