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모 특급 살인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사라진 머리는 어디에? [이즈모 특급 살인]

요시키 형사 시리즈 제3탄

 

 

역에 흘러든 시체 토막.

기괴하고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1984년 4월 20일.

각기 다른 열차의 그물 선반에서 시체의 일부가 든 종이봉투가 하나씩 발견되었다.

두 팔, 두 넓적다리, 두 종아리, 몸통. 모두 7개의 종이봉투가 발견되었지만 신원을 알 수 있는 단서는 없었다.

다만, 몸통 부분에서 대두와 보리의 낱알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달까.

그리고 머리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철도를 이용해 토막난 시신을 여기저기 뿌려댄 형국이다.

옷은 남아 있지만 상표 레이블은 제거됐고, 반지도 손목시계도 없다.

손가락과 발가락의 지문도 황산이 부어져 있어 모두 지워진 상태. 신원불명으로 만들려는 수작이 틀림없다. 사체의 절단면을 랩으로 꼼꼼이 씌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범인은 여자일 가능성이 높다.

 

초반부터 하드한 사건현장이 제시된다.

절단된 사체.랩으로 씌워져 있어 냄새는 덜하다고 하지만, 비닐이 코팅된 종이봉투에서 검은 비닐에 싸여진 사체의 부분이 꺼내어지는 장면을 상상하면...욱.

바로 밥을 먹고 난 후가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한다.

 

형사가 된 지 10년 쯤. 제대로 된 휴가를 얻어 여행을 하려던 요시키는 돗토리 역에서 여기저기 눈에 띄는 제복 경관의 모습을 보고 사건이 일어났음을 감지한다.

때마침 돗토리 현경 형사과에서 근무하던 경찰학교 시절의 친구 이시다를 만나 토막살인의 전모를 전해 듣게 되는데...

고작 아웃라인을 들었을 뿐이지만 형사로서의 감으로 사건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된 요시키는 사체의 발견 시각과 위치를 열차시각표와 꼼꼼하게 대조해 본 뒤 나름의 추리를 세우게 된다.

결국 이 사건은 합동수사로 결정되어 요시키와 이시다의 손에 맡겨지게 된다.

피해자의 머리가 발견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던 중,

신문에 실린 토막살인에 관해 날아든 투서로 피해자가 K대학 역사민족한 교실 조교 아오키 교코임을 알게 되고, 탐문 수사 결과 아오키 교코와 라이벌 관계로 알려져 있던 노무라 미사오라는 여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면 머리를 찾고 나서 그 시체가 아오키 씨라고 증명되면 그 때 찾아오세요. 저는 바빠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192

 

요시키는 이 말을 듣고서 그녀가 범인임을 거의 확신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머리를 찾지 못하면 공범이로 점찍은 그녀의 남동생을 오래 붙잡아둘 수도 없고, 그녀의 범행을 확인할 수가 없다.

 

이즈모 1호와 후지 라는 두 블루트레인을 이용한 살인과 사체유기의 트릭은 전부 요시키가 밝혔다.

열차의 트릭이 밝혀지기까지 특급열차가 달리는 것을 눈으로 좇는 것처럼 박진감이 느껴지는 전개에 사뭇 흥분이 일었다.

이미 용의자로 떠오른 노무라는 트릭이 밝혀지고 요시키가 그걸 밝혔음에도 시체의 머리가 발견되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는지,  섬뜩하고 냉정하게 대처한다.

모두가 그녀를 범인으로 점찍고 마지막 단 하나의 증거를 찾기만 하면, 끄인데도 왠지 그녀는, 자신의 학문적 성과에 흥미를 보여주는 요시키에게 살짝 웃음을 보이기도 할 만큼 여유만만이다.

과연 그녀는 범행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가지지 않을 만큼, 확신에 찬 범행을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요시키가 헛다리를 짚었는지 잠시 멈칫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신화와 전설의 집합체 <고사기>를 연구하며 첨예하게 대립했던 두 여인의 이야기가 주축이 되는 만큼, 옛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표지에 불안함으로 어찌할 줄 모르는 토끼가 왜 등장했는지에 대한 힌트도 역시 이야기 속에 들어 있다.

 

그렇다면 자신은 지금 신의 의지를 거역하고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승산이 없는 허무한 싸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면 나는 하쿠토 해안의 그 흰토끼처럼 가죽이 벗겨져 벌거숭이가 되는 것일까. -372

 

오곡의 기원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사체에 흩뿌려진 낱알들의 의미도 파악하게 되고, 이 낱알들이 나중에 범인을 검거하는 중대한 미끼 역할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살짝 밝힌다.

야마타의 오로치는 옛이야기 속 괴물이지만, 인륜을 비웃는 오만한 괴물은 바로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이 아닌가.

사람이 괴물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마음에 원념이 쌓이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아무리 커다란 원한으로 시작한 일이라도 한 사람의 몸과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되는 것이리라.

신이 내린 벌...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이는 범인의 최후가 왠지 애잔하다.

여자라서 더 철저하고 계획적이고 세밀할 수 있지만, 역시나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가.

그런 그녀를 묵묵히 지켜보는 한 남자의 시선이 있어, 끝까지 악역을 맡고서 저벅저벅 죗값을 치르러 걸어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더욱 아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표지를 벗기면 하드커버가 나오는데, 이 질감이 무척 좋다. 구겨진 무늬가 들어가면서 약간 가슬거리는 게...

무척 마음에 든다.

역시...흰 표지보다 검은 표지가...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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