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흥망사]
부산의 용두산 공원을 가면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와 꽃시계가 있다. 그 유명하다는 그 곳을 우러르며 한참을 올라왔는데,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무심히 모이를 쪼아대는 비둘기 떼들과 어르신들의 모여앉은 모습이다. 관광 상품을 즐기기 이전에 무심코 드러난 생활의 단면을 먼저
접하게 된다.
한껏 들뜬 마음은 어르신들이 장기판 주변에 모여들어 훈수를 두거나 구경하는 모습, 또는 때가 한참 지난 아코디언의 구슬픈 음색들을 듣는
순간 잘 익은 파김치처럼 팍 수그러들어 묘한 입맛을 남긴다.
비단 용두산 공원 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 어느 한갓진 공터나 마당에서도 어르신들의 시간 죽이기를 만날 수 있다.
파릇파릇한 연예인들의 춤사위를 보는 것처럼 흥이 나는 일이 아니므로 얼른 시선을 회피하고 싶어진다.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비슷한 연배들과 어울려 시간이나 죽이고 있지...싶어 불편한 마음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시시때때로 느끼며 에고 에고 소리를 달고 산 지도 한참 되었는데...
오지 마라고 손사래쳐도 성큼 쫓아오는 게 나이인 것을 왜 그렇게 애써 외면하고 싶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괴물 흥망사]는 부푼 마음을 안고 나들이를 갔다가 그렇게 맞닥뜨리게 되는 불편한 진실을 품고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소설가 김연수는 [청춘의 문장들 +]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에 일본에서 [세계의 끝 여자친구]번역본이 나왔는데, 역시 '한국의 젊은 작가'로 소개됐어요. 100세 시대가 다가오기 때문에 아마도
환갑이 될 때까지는 젊은 작가일 것 같네요.(...)
라고 하면서 박완서 선생님과 자신의 단절은 경험론적인 단절이라고 말했다. 그분은 전쟁을 겪었는데, 저는 안 겪었으니까요. 그 밑의
세대들과도 보릿고개 체험, 농촌 체험 등에서 차이가 나고요. 그런데 1968년생 이후로는 경험이 균질해요.-51
즉, [괴물흥망사]의 작가와 읽는 독자인 나 사이에 김연수가 말한 "경험론적인 단절"이 심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우리 사랑 흘러흘러>, <괴물흥망사>, <광덕의 아내>, <오후의 산책>, <한 여사
연대기> <개가 되어 버린 김씨의 기이한 경우에 관한 사례 보고>, <즐거운 수학여행>, <꿈과 같이> 등
8개의 단편이 묶인 소설집인데 작가의 이력도 그렇거니와 문체에서도 너무나 고색창연한 어투가 묻어나서 도무지 쉽게 와닿질 않았다.
현재 대진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연구와 논문 쓰기를 주로 하던 분이라 문장의 흠결은 따질 수 없으나 요즘 나오는 소설과는
살짝 뭔가가 다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삶과 세계의 구체적 질감을 세밀하게 느끼고 그를 즐기는 르네상스적 감각의 부활을 꿈꾼다 고 했지만, 작가의 꿈은 나와는 너무도 멀리 있어서
쉽사리 그 곳까지 건너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나의 세대에서 느끼지 못했던 그 시절의 흘러간 이야기들을 주워삼기는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한 나절 들었다 생각이 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