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나는 바보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련다.

 

 

 

나는 이 책이 너무나 유명하여 읽을 의욕이 없었다. 그런데 많이도 보아온 이 놈의 책 제목이 어느 순간 뇌리에 각인이 되어 버렸나보다. 어찌 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책이 내 앞으로 왔다. 책이 내 앞에 오고서도 한동안은 열어보기가 싫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서 어떤 리뷰를 남겼는지 아직 하나도 보지 않았지만, 작가의 메이킹 스토리를 죽 읽고나니 이미 진이 다 빠져버렸다고 할까. 책에 무슨 엑기스가 더 이상 남아 있을까...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내 소설이다, 내가 써야 한다. 나밖에 쓸 수없다.” 작가의 확고한 선전포고에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이만큼 으름장을 놨으니 소설은 정말 어려울 거야. 읽어봐야 내가 이해나 할 수 있겠어?

늙은 살인자, 그것도 치매에 걸린 살인자의 회고담이라는데...그 세계에 들어가서 헤엄치다가 내가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올 수 있을까? 물귀신처럼 뭔가가 내 발을 죽 잡아당겨서 ,나, 다시 숨도 못쉬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서둘러 읽을 생각이 나질 않았던 것이다.

 

요즘 들어 계속 그렇다. 베스트셀러 작가니, 작품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고 나는 읽을 생각도 없었는데, 책들은 마구잡이로 내 머릿속으로 걸어 들어오고야 마는 우습지도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책은 제목과 작가만 아는 채,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선물상자를 여는 재미가 있어야만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점점 마음의 풍선이 빵빵해질 것 아니겠는가. 미리 가스를 가득 주입해서 빵빵해진 채로 온 풍선들은 조금만 눌러도 터져버려서 화들짝 놀라기만 하고, 아니 놀라기라도 하면 다행이겠지만, 놀라는 마음이 들기도 전에 푸시시 바람이 새어 버려서 재미가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그렇게 한구석에 다른 책들과 함께 쌓여 있던 책. 잠들기 전에 잠깐 구성이라도 볼까? 하면서 감기던 두 눈을 살포시 열어 몇 줄 읽었는데, 과연~ 이 책은 나를 꽉 잡고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1시간 남짓. 어서 어서 이리로~하는 소리에 이끌려 걸어들어간 그 세계 속에서 자유롭게 거닐었다. 생각한 것만큼 어렵지 않네? 술술 읽히잖아. 시인이자 살인자, 치매환자라는 묘한 조합 속에서 살인자는 유유히 살아 있었다. 철학자 니체와 반야심경, 금강경을 읽는 살인자.

 

 

좀 따라가기 힘든 캐릭터이긴 하지만 재미있네. 그러더니 소설은 어느새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좀 멍~하게 보일지도 모를 표정을 지을 무렵, 잠에 취해서인지 소설에 취해서인지 내 손에서 책이 툭~하고 떨어졌다. 아이고. 잠들 시간을 넘겨 책을 읽었더니 이런 불상사가 생긴다. 그나저나 밤새워 책을 읽게 만든 이 책의 뒤에서 나는 잠을 쫓아버릴 만한 충격적인 구절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

누가 말했건 간에 이 구절을 보게 되자, 잠이 화들짝 깨어 저만치 달아나면서, 책이 “어이구~바보야.”하고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약이 화~악 올랐다. 기껏 잠도 양보해가면서 읽었더니, 뭐가 어쩌고 어째?

 

치매에 걸린 살인자의 회고라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면서 툭 툭 내뱉는 말들을 그냥 저냥 흘려보냈더니 내가 바보가 되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공포체험에 관한 기록이다.-157

라고 해설자가 말했다.

소설을 치밀하게 엮으며 살인자의 정신에 거의 빙의되어서 이만큼 끌고온 작가 김영하는 진짜 대단하다. 한 번 술술 읽고 바보가 되어버린 나는 다시 맨정신으로 책을 잡아야겠다.

 

그러나 작가가 책의 앞에도, 끝에도 갖다 붙인 반야심경의 구절만은 놓지 말아야겠다.

 

 

 

허구로 쌓아올린 소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바보가 되어버렸지만, 반야심경의 구절에 올인하는 한은 정신줄을 놓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작가가 인용한 그 구절을 물고 늘어져 보련다.

그럼...뭔가 도통하게 되지 않을까 하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휘파람을 불면 행복해 스푼북 창작 그림책 2
옌스-외르그 리크 글, 폴커 프레드리히 그림, 임정희 옮김 / 스푼북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휘파람을 불면 행복해>친구와 행복한 웃음을~

 

 

언제 어느때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을 수 있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해도 받아주고 가슴 아픈 얘기를 하며 눈물을 흘려도 묵묵히 들어주는 친구.

그런 친구 하나만 있으면 좋겠네.

 

오랑우탄 실베스터가 주인공인 이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미소를 짓게 만들지만 어른이 읽으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친구.

뭔가 거창하게 친구의 정의를 내리지 않더라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친구의 이상형 하나쯤은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 친구는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유유상종이라 했듯이 친구들은 꼭 나를 닮게 마련인가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그림자 속에서 나를 찾고 위안을 얻으면 그것도 또한 나름,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닌가.

모든 면에서 완전 정반대인 친구를 통해 새로운 것을 얻고자 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친구와 함께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마음의 평온을 얻고자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 어떠한 경우라도 친구가 나에게 해 주는 일은 나도 친구에게 해줄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오랑우탄 실베스터와 제인처럼...

 

서커스의 인기스타 실베스터는 조금 특별한 오랑우탄이다. 펭귄을 높이 던졌다 받고 또 던지는 묘기를 부리는 오랑우탄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공연에서 실베스터는 실수를 해서 펭귄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나이가 많아서 시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란다.

 

 

안경을 쓰고서 공연을 해봤지만 실베스터의 인기는 나날이 떨어졌고 용기를 잃은 실베스터는 결국 서커스단에서 쫓겨나고 만다. (위트있게도 책의 뒤에는 시력검사 용지가 붙어있다. 안경쓰는 우리 딸도, 눈이 건강한 아들도 신이 나서 안과 놀이를 한다.^^)

 

 

갈 곳이 없어 공원의 나무 밑에 앉아 있던 실베스터는 붙임성 있는 소녀 에이프릴을 만나게 되었고 둘은 곧 친구가 된다. 소녀와 오랑우탄의 우정.

덩치 큰 오랑우탄과 소녀의 조합은 왠지 영화 킹콩을 떠올리게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책은 아동용, 우정을 논하고 있다는 거,^^

저녁놀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새소리도 함께 듣는 친구.

실베스터가 휘파람을 불고 에이프릴은 콧노래를 부르고...과자를 흩뿌리니 모여든 새들까지 음악을 선사한다.

여러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실베스터는 친구와 함께 하며 더 이상 슬퍼지지 않았고, 친구들과의 멋진 음악이 탄생하자 에이프릴은 공연을 계획한다.

크리스마스에 맞춰 열린 공연. “실베스터와 작은 새 합창단입니다.”

사람들은 아름답고 신비한 음악에 빠져들었고 큰 소리로 환호했다. 실베스터를 내쳤던 서커스단장은 세계 공연을 제의하지만, 실베스터는 거절한다.

그 이유는?

“이곳을 떠나면 계절마다 공원이 변하는 예쁜 풍경을 볼 수 없잖아. 또 너와 함께 과자를 나눠 먹지도 못하게 될 거야. 난 지금 이대로가 좋아.”

눈밭에 벌렁 드러누워 휘파람을 불려다가 자꾸 웃음이 터져나와 결국 행복한 웃음을 크게 웃고 마는 둘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어른의 기준에서 본다면 바보같은 실베스터의 선택이지만 아이들은 당연히 휘파람을 불며 즐거워하는 실베스터의 모습을 더 좋아한다.

인맥관리 차원에서 친구를 사귀는 어른이 되기 전에, 아직 심장에 따뜻한 피가 계속 돌고 있는 아이의 시절에 “친구란 이런 것이다.”하는 강렬한 메시지가 꽂혔으면 좋겠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o. 97

내게로 온 번호.

 

 

마스다미리 여자공감만화 시즌 2 - 3종 세트

마스다 미리 글그림
이봄 | 2013년 07월

 

 

마쓰다 미리의 “수짱 시리즈”2 세권이 발간되었다.

여자공감단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서포터즈를 발족했는데, 나는 그 중 97번이다.

안타깝게도 100에서 3이 모자란 수이다.

100번이었다면 와! 100점이다. 하며 기뻐했을까?

아니다. 하마터면 100명 안에도 못 들도 떨어질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릴 뻔했다.

100번이 아니라 97번이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휴~

휴~

휴~

겨우겨우 턱걸이로 매달려 공감단에 선정된 걸 기념하며 긴 한숨 세 번 내쉬어 본다.

그러고 보니 <아무래도 싫은 사람>을 읽으면서 공감하다 못해 격한 한숨을 쉬었던 수 와도 거의 일치한다.

수짱의 일상생활을 엮어낸 만화 중에서 이 책을 고른 것은 <아무래도 싫은 사람>이 내 주변에 있기 때문이겠지?^^

귀엽고 앙증맞은 수짱의 카드는 짜증을 날려 보내기에 제격이다.

아무래도 읽은 책의 카드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

귀엽게 감상하시라~~

 

 

 

 

 

 

 

 

 

 

 

 

 

 

얇고 가벼워서 책 사이에 책갈피로 안성마춤이다.

책 속에 들어가 있는 수짱, 구경하실래요?

 

 

 

<아무래도 싫은 사람> 책 속에 <수짱의 연애> 카드가 들어있지만, 뭐 어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무래도 싫은 사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래도 싫은 사람>아~싫다!

 

                  

 

 

나는 뭔가 싫은 것이 있으면 금방 표정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다. 남편은 항상 나의 얼굴을 보면 답이 나온다고 한다. 말보다 표정이 먼저 알려준다고, 그래서 나는 쉬운 사람이라고^^

승진을 해야만 하는 직장생활을 계속했다면 나는 싫은 사람이 있는 경우,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마 금방 뛰쳐나오고 말았을 것이고, 억지로 꾹 참고 일을 했다고 해도 항상 찌푸려진 인상에 아마 위, 아래 사람 불구하고 단단히 찍힌 요주의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절교”라는 말은 입밖에 내어 말해보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그리고 표정으로 “절교”선언한 친구들은 몇 된다.

내 이런 나쁜 버릇은 내 동생들이 잘 알고 있다.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는데...

참으로 이상한 데서 결벽증이 발현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밥 먹으면서 무심코 해대는 버릇이라든지, 그 사람의 몸에 벤 자신도 잘 몰랐을 것 같은 작은 버릇들,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 상처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그게 상처주는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씀씀이 같은 것들이 나를 건드린다.

 

 

남편에게 나는 쉬운 아내가 되어버렸지만, 그래서 남편은 만족하고 살지만, 금세 속마음을 간파당하는 나는 참, 직장인이 아니다뿐이지 또 집안에서 밖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당당하게 그 표정을 숨기기가 쉽지 않아서 알게모르게 미움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례로, 이웃간의 관계에서는 그다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싫은 사람이 생겨버려서 팩 토라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만다.

10층에 사는데, 9층 아주머니와의 관계가 틀어져버린 것이다.

둘이서 엘리베이터에 타게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지만 나는 휴~, 상대방이 알아차릴 정도로 낯빛을 바꾸고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는다. 물론 나도 인간인지라 긴장은 된다. 대놓고 이러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뭐, 싫은 건 싫은 거지.

나와 9층 아주머니와의 관계를 알면서도 남편은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게 되면 항상 인사를 깎듯이 한다고 한다. “인사 안해도 돼. 왜 하는데?”

하자, 눈을 찡긋해 보이며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그게 더 무서운 법이거든. 잘못을 한 쪽이 더 켕기게 되어 있어.”

아이들 교육상, 웃어른에게 인사를 꼬박꼬박 해야한다는 걸 몸소 가르쳐야 할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그 철칙을 어기면서까지 싫은 사람에게 굽히고 싶어하지 않는 나는 도대체 내가 생각해도 참, 구제불능이다 싶다. ‘나는 바담 풍, 하면서 너는 바람 풍, 해라’라는 꼴이지 뭔가. 그래도, 그래도~~

 

마쓰다 미리의 <아무래도 싫은 사람>을 보면 어찌 그리도 내 마음을 그리도 콕 짚어내어 그림으로 옮겼는지...

바로 이 장면, 수짱의 고뇌 장면이 심금을 울린다.

 

 

정말로 나를 괴롭히는 건 "그 지점이 아닌 것 같아."

그런 식의 말을 듣는 것보다 다른 무엇보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던 내 자신.

"난 왜 그 때 실실거리고 웃었던 거야.'그런 식으로 하지 마'라고 말해줬으면 좋았잖아! 최소한 화난 표정이라도 지었어야지."

(...)

"다음에는 꼭, 그래야지"

"아니, 다음이 있다는 게 우울해."-62,63

수짱은 이 책에서 아직 연애도 안하고 있고, 결혼도 안하고 있는 상태다. 마음을 터놓는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생각중인 아카네. 그리고 엄마.

수짱은 2년째 카페 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수짱이 싫어하는 사람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낙하산 직원 무카이. 결정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큰 문제는 없는대도 항상 불평불만을 일삼고,상처주는 말을 하고도 농담이라며 얼버무리는 사람이다. 아~ 정말 싫겠다. 수짱.

 

그래도 누군가 마음을 알아주고 동감해주고 위로를 해주면 가득차올랐던 답답함이 쑥 내려가게 된다. 수짱에게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참,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자의 기억법>-나는 바보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련다.

 

 

 

 

 

 

 

 

 

 

 

나는 이 책이 너무나 유명하여 읽을 의욕이 없었다. 그런데 많이도 보아온 이 놈의 책 제목이 어느 순간 뇌리에 각인이 되어 버렸나보다. 어찌 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책이 내 앞으로 왔다. 책이 내 앞에 오고서도 한동안은 열어보기가 싫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서 어떤 리뷰를 남겼는지 아직 하나도 보지 않았지만, 작가의 메이킹 스토리를 죽 읽고나니 이미 진이 다 빠져버렸다고 할까. 책에 무슨 엑기스가 더 이상 남아 있을까...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내 소설이다, 내가 써야 한다. 나밖에 쓸 수없다.” 작가의 확고한 선전포고에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이만큼 으름장을 놨으니 소설은 정말 어려울 거야. 읽어봐야 내가 이해나 할 수 있겠어?

늙은 살인자, 그것도 치매에 걸린 살인자의 회고담이라는데...그 세계에 들어가서 헤엄치다가 내가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올 수 있을까? 물귀신처럼 뭔가가 내 발을 죽 잡아당겨서 ,나, 다시 숨도 못쉬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서둘러 읽을 생각이 나질 않았던 것이다.

 

요즘 들어 계속 그렇다. 베스트셀러 작가니, 작품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고 나는 읽을 생각도 없었는데, 책들은 마구잡이로 내 머릿속으로 걸어 들어오고야 마는 우습지도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책은 제목과 작가만 아는 채,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선물상자를 여는 재미가 있어야만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점점 마음의 풍선이 빵빵해질 것 아니겠는가. 미리 가스를 가득 주입해서 빵빵해진 채로 온 풍선들은 조금만 눌러도 터져버려서 화들짝 놀라기만 하고, 아니 놀라기라도 하면 다행이겠지만, 놀라는 마음이 들기도 전에 푸시시 바람이 새어 버려서 재미가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그렇게 한구석에 다른 책들과 함께 쌓여 있던 책. 잠들기 전에 잠깐 구성이라도 볼까? 하면서 감기던 두 눈을 살포시 열어 몇 줄 읽었는데, 과연~ 이 책은 나를 꽉 잡고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1시간 남짓. 어서 어서 이리로~하는 소리에 이끌려 걸어들어간 그 세계 속에서 자유롭게 거닐었다. 생각한 것만큼 어렵지 않네? 술술 읽히잖아. 시인이자 살인자, 치매환자라는 묘한 조합 속에서 살인자는 유유히 살아 있었다. 철학자 니체와 반야심경, 금강경을 읽는 살인자.

 

 

 

좀 따라가기 힘든 캐릭터이긴 하지만 재미있네. 그러더니 소설은 어느새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좀 멍~하게 보일지도 모를 표정을 지을 무렵, 잠에 취해서인지 소설에 취해서인지 내 손에서 책이 툭~하고 떨어졌다. 아이고. 잠들 시간을 넘겨 책을 읽었더니 이런 불상사가 생긴다. 그나저나 밤새워 책을 읽게 만든 이 책의 뒤에서 나는 잠을 쫓아버릴 만한 충격적인 구절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

누가 말했건 간에 이 구절을 보게 되자, 잠이 화들짝 깨어 저만치 달아나면서, 책이 “어이구~바보야.”하고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약이 화~악 올랐다. 기껏 잠도 양보해가면서 읽었더니, 뭐가 어쩌고 어째?

 

치매에 걸린 살인자의 회고라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면서 툭 툭 내뱉는 말들을 그냥 저냥 흘려보냈더니 내가 바보가 되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공포체험에 관한 기록이다.-157

라고 해설자가 말했다.

소설을 치밀하게 엮으며 살인자의 정신에 거의 빙의되어서 이만큼 끌고온 작가 김영하는 진짜 대단하다. 한 번 술술 읽고 바보가 되어버린 나는 다시 맨정신으로 책을 잡아야겠다.

 

그러나 작가가 책의 앞에도, 끝에도 갖다 붙인 반야심경의 구절만은 놓지 말아야겠다.

 

 

 

허구로 쌓아올린 소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바보가 되어버렸지만, 반야심경의 구절에 올인하는 한은 정신줄을 놓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작가가 인용한 그 구절을 물고 늘어져 보련다.

그럼...뭔가 도통하게 되지 않을까 하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