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비운의 조선 프린스
이준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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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세자비, 요양생활 10년

도쿄 | 서의동 특파원 <경향신문, 2013년 1월 9일>

*****왕실생활 스트레스에 따른 ‘적응장애’로 시작된 마사코(雅子·49) 일본 왕세자비의 요양생활이 10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중략>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해외에서 자유분방하게 성장한 마사코에게 전통 준수와 후계 생산을 강요해온 왕실은 ‘창살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궁내청은 마사코 왕세자비가 왕자를 낳지 못하자 해외여행을 규제하려 해 물의를 빚었다. 이에 나루히토 왕세자가 2004년 5월 기자회견에서 “마사코의 경력이나 인격을 무시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폭탄발언’을 해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중략>

아사히신문은 8일 마사코 왕세자비의 병세에 대해 “치료가 해를 넘어 계속된다면 적응장애이 아니라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다”는 정신과 전문의들의 견해를 소개했다. 적응장애보다 더 심각한 단계로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책을 읽기 전에 위 기사를 보았었다. ‘일본 왕실이 이랬었어? 겉으로 보기에 화려해 보이는 왕족들인데 무슨 스트레스?’

이 책<비운의 조선 프린스>를 들추니, 책머리는 일본천왕의 사촌동생 토모히토가 “일본 왕실은 거대한 스트레스 덩어리”라고 폭로한 얘기로 시작하고 있었다. ‘왕비나 왕자나, 배가 불러서는...’

나처럼 <비운의 조선 프린스>라는 제목이 의아한 사람들은, 이 책의 첫 장을 읽거나 미리 이 기사를 읽었다면 왜 <비운>인지 좀 더 수긍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조선왕실 적장자 수난기.

이 책에는 왕이 되지 못한 적장자들이 실려 있다.

➊정종의 아들 불노와 지운(좀 생소하다.)

➋태종의 아들 양녕대군

➌추존 덕종의 아들 월산대군과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

➍선조와 계비 사이에 난 아들 영창대군

➎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가 그들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 동안 왕조를 이어왔다. 신라 시대엔 골품제가 있었고, 고려 시대엔 장자 계승 원칙이 있었지만 적서 차별은 없었다. 그런데 유독 조선 시대에만 적장자 왕위 계승원칙을 내세운 건 무엇 때문인가? 저자는 조선왕조 성립 때 태종 이방원이 정치적 계산의 방편으로 신진 사대부와의 흥정에 내민 카드가 “적장자 계승, 적서 차별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선왕조 27명의 왕 중에 적장자로서 왕위를 계승한 임금은 7명뿐이라고 한다.

아니, 왜? 그건 조선의 정치와 역사가 말해 줄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흥미롭게도 적장자 계승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기에 조선왕조 500년이 이어질 수 있었으리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은 기존의 이미지와는 좀 다르게 그려지고 있다. 불노와 지운은 잘 알려지지 않은 왕자라 그렇다 쳐도, 양녕 대군, 소현 세자는 내가 알던 -왕위에 오르지 못한 불쌍한- 왕자가 아니었다. 실록과 역사서를 근거로 새롭게 구축한 저자의 ‘새로운 인물상’ 탄생이다. 영창 대군은 워낙 어린 나이에 불쌍하게 죽었다 하니, 그런가보다 했고.

어쨌든 왕이 되지 못한 왕자들은 각각의 인생을 살다 갔고 저자의 글솜씨는 각 장마다 새로 만들어진 한 편의 사극을 보는 것 같이 왕자들의 성격과 인생을 생생히 그려주고 있다.

 

나는 사극을 잘 보지 않는다. 무슨 인물이 그렇게 많은지, 또 전하와 신하들은 얼마나 딱딱한 말들을 많이 하는지. 요즘은 퓨전 사극도 많고 여성이 주인공인 사극도 많이 나온다. 그래서 조금 흥미가 생기고 있는 중이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국사는 너무나 간략했고, 인물들의 성격도 나와 있지 않으며 게다가 시험 때만 벼락치기로 외운 지식들은 이미 저세상으로 간 지 오래다.

 그러나 사극은 역사 속의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고 말을 하며 그 인물마다의 철학이 있다. 드라마 작가의 역사 해석에 따라 다른 철학 말이다. ‘내가 배운 인물이 저기 TV에 나와 움직이는 인물이 맞나?’ 할 정도로 파격적인 해석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 많았다.

 ‘내가 잘못 배운 건가, 모르는 게 많은 건가.’ 사극을 보면서 다시 공부해야 할 판이었다. 애들 앞에서 내 무식이 탄로 나기 전에.

그래서 몇 년 전에 교양을 위해 신명호의 <조선왕비 실록>을 사서 읽었는데, 그 책을 사 두길 잘했지. 사극에 잘 나오는 임금의 옆에 항상 붙어 나오는 왕비들의 이야기여서 역사를 이해하는 데 좀 더 편했고, 책 뒤의 연표는 사극 할 때마다 꺼내 찾아보는 참고자료가 되었다. ‘아하, 이번 사극은 이 시대의 이야기구나.’ <대장금>은 중종, <동이>는 숙종이었던가?

<비운의 조선 프린스>도 왕자 이야기이니 만큼 왕비가 꼭 나온다.

<조선왕비 실록>, <비운의 조선 프린스>두 권을 나란히 두고 같이 읽으니 각 장에 나오는 태조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 태조의 왕비 원경왕후 민씨,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윤씨,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 한씨, 광해군과 영창대군의 이야기에 나오는 선조의 왕비 인목왕후 김씨 등이 죽 나와서 많은 참고가 되었다.

 

이 책을 볼 때 기본적인 왕조 순서는 기억해 두어야 한다.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산-중-인-명-선-광해-인-효>

사극의 해설을 해 주듯이 조그조근 풀어 친근하게 설명해 주는 저자의 문장 실력이 가슴에 와닿았다.

역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과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나름 재미있었고, 과감했었다.

나같이 역사 전공이 아닌 사람도 왕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동감할 수 있게 각 장의 말미에 가계도와 연표가 나와 있어서 이해하기 편했다. 다른 연표엔 잘 안 나와 있는 왕자들의 이름도 나와 있다. 조선왕조 전체 속에서의 왕자들의 위치를 보고 싶으면 <조선왕비 실록>의 연표를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잠시 나의 처지를 잊고 왕자들의 삶에 푹 젖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니 나는 평민이고 호화로운 궁전에 사는 것도 아니지만, 많은 짐을 져야했던 “왕자”의 삶이 부럽지는 않다. 혹시나 “공주”로 태어나면 모를까.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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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오의 하늘 1 -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 다큐멘터리 만화 요시오의 하늘 1
air dive 지음, 이지현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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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시오의 하늘> 1-6권

 

9살 채원이는 다 읽더니 한 마디 한다. “재밌네, 엄마?”

38살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대꾸한다. “그게 다야? 엄마는 너무 슬퍼서 말도 못하겠는데.” 눈물이 방울져 턱까지 흐르다가 말라붙었다. 눈물이 내 얼굴의 온기마저 빼앗아 갔나 보다. 두 뺨이 선득하다.

 

 

요시오는 절망의 ‘하늘’을 희망의 ‘하늘’로 바꾸는 소아뇌신경와과의사다.

 

이 책 <요시오의 하늘>은 실존하는 다카하시 요시오라는 의사와 작은 생명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취재해서 쓴 이야기다. 1권 표지에 채집망을 어깨에 멘 채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서 있는 장난스러운 소년의 모습이 있다고 해서 소년명랑만화 쯤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나 역시 1권 표지모델에 속아 잠깐 시간 때우기 용으로 볼까 하며 집어 들었지만, 곧 깨달았다. 가벼운 책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2권 읽을 때엔 안 울어야지. 빨리 책을 다 읽으려면 말이야.’ 하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 결심은 금세 무너지고 만다. 내가 마음이 약해선가 싶어서 이미 책을 다 읽은 사람에게 물어봐도 역시 “너무 슬프지?”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1권을 보고 안 운 건 우리 남편 뿐이다. “왜 우는데? 뭐가 슬프다고?” 그렇지만 우리 남편 강한 척 하는 걸 거다. EBS명의 할 때는 아픈 애들 링거 맞거나 혹이 부푼 모습 보면 마음 아프다면서 다른 채널로 옮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각 권마다 1화부터 7화까지의 이야기들이 있는데, 1화부터 4화까지는 <어느 한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각각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5화부터 7화까지는 의사 요시오의 <탄생편><소년편><청년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가족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야말로 눈과 코에 고춧가루를 뿌린 듯 얼얼하고 쓰라린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요시오의 이야기로 넘어가서는 빙그레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그 과정의 반복이 저절로 일어나게 된다.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될 것이다. “책을 보더니 완전 맛이 갔구만. 눈물 콧물 비오듯 쏟아내더니 이젠 또 실실 웃네?” 그러나 마음을 다해 읽다 보면 왜 그런 ‘정신 나간 ’ 사람이 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공감하게 될 것이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특히나 아이가 있는 엄마나 아빠라면 누구나.

 

 

이 책을 본 후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누구에게? 내 아이들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들. ‘건강하게 자라 주어서 고맙다.’ 아이들의 뇌에 다가오는 그 무시무시한 병은 예고되는 것이 아니기에 나라고 마음 푹 놓고 지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9살, 6살 이만큼이나 자라도록 큰 이상 없이 자신들의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내 주고 있는 아이들이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6권까지 읽는 동안 여러 아이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이 내 가족의 일인 양 몰입해서 읽었다.

 

내 아이가 뇌수종이라면? 작고 가녀린 팔뚝에, 혹은 손등에 주사 바늘을 꽂고 하루종일 병상에 누워 있다면? 너무 어려서 대화조차 나눌 수 없는 작은 아이가 눈으로 말하며 ‘힘들어요’ 신호를 보낸다면? 아님.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컸는데도 온몸의 힘이 빠져, 아니면 병 때문에 말을 못하고 힘없이 쳐져 있다면? 부모인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남편은 일하러 나가 있겠지. 아이가 둘이니, 다른 건강한 아이에게는 신경 쓸 여력도 없겠지. 무수히 많은 가정과 상상 속에서 나는 그저 힘없이 눈물만 줄줄 흘리며 앉아 있는 엄마였다.

 

 

그러나 요시오의 환자들은 씩씩했다. 요시오는 아픈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할 수 있다고 북돋워주고 아이의 아픔 앞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부모를 다독이고 격려한다. 그리고 함께 헤쳐 나가자고 얘기해 준다. 그렇다. 아이들은 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겨내려는 의지가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는 처음엔 마음이 아프고 ‘왜 내게 이런일이?’ 하며 분노하고 울부짖지만 곧 이겨내게 되다. 요시오의 치료를 받으면서 한 줄기 희망을 붙드는 아이가 있는 한 부모는 강해져야만 한다.

 

 

나는 무기력하게 회피하고 외면하는 부모여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은 강하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이를 믿고 함께 헤쳐 나가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설사 아이가 잘못되어 이제는 다시 만나볼 수 없는 저쪽 세상으로 건너갔다고 하더라도 살아있는 부모와 나머지 가족은 살아 내야 한다고 요시오는 말했다.

 

특히, 몇 권에서였던가.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아이가, 조금만 더 견뎌내면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생활 할 수 있었을 아이가 끝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말이다. 젊은 어머니는 오열하며 쓰러진다. 요시오는 “괜찮아. (가족이 올 때까지)내가 같이 있어줄게.”하고 무뚝뚝한 위로를 하며 제단에 향을 피운다. 요시오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을까. 잠시후 바다가 보이는 작은 방에 혼자 남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이 나온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와 계속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젊은 어머니는 이제야 아이를 마음 놓고 안아 본다며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었다.

피에타.

얼마나 성스럽고 거룩한 장면일 것인가.

순식간에 가슴은 먹먹해져 오고, 꺽꺽 내 숨을 막으면서까지 치받쳐 올라오는 오열 때문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얼굴은 일그러지고 눈물에 범벅이 되어 차마 쳐다볼 수 없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을 것이다. 휩쓸리지 않으려는 듯 꼭꼭 구석에 숨어 있던 내 마음의 불순물, 찌꺼기가 다 떠내려 갈 때까지.

마침내 눈물이 그치고 다시 그 장면을 바라보았을 때, 요시오라는 의사는 정녕 한 줄기 빛이었다.

충분히 애도의 마음을 다하고 아이를 떠나보낸 후에는 남은 가족들끼리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시로라는 의사는 실존 인물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고 그걸 실어 나르는 의사가 되었을까?

이쯤에서 요시오라는 의사의 일생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각 권에서 요시오의 탄생기, 소년기, 청년기가 펼쳐지지만 정작 중요한 장면은 1권에 나와 있다. 요시오가 다카시 가족의 차남 코스케에게 수술을 하러 들어가면서 떠올리는 인물-마음 약해지지 않게 기운을 북돋워 주는 인물-들은 바로 그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 큰누나, 작은 누나. 그렇다. 요시오는 바로 가족의 힘으로 매 순간을 사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이렇게도 중요하고 큰 역할을 하는 둥지다. 나는 부모로서 내 아이들에게 어떤 둥지를 만들어 주고 있나? 든든하고 의지할 수 있는 울타리 역할을 해 주고 있나?

 

 문득 내 결혼 생활을 돌이켜 본다. 내 육아 방식도 뒤돌아 본다.

 

 

1권 표지 모델로 활약한 개구쟁이 꼬마 소년. 그 소년은 무지무지 뛰어 놀기 좋아하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소년이었지만 심성만은 곧고 따뜻했다. 그리고 곤충 관찰을 좋아해서 한동안은 땅속에서 기어나온 매미 새끼들을 잡아 집 커튼에 붙여 놓고 ‘나와라, 나와라’하면서 탈피하는 모습을 기다리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한밤중에 매미가 부들부들 떨면서 나오는 장면을 목격하다가 매미를 쑥 잡아당겼더니 그만 매미가 거기서 탈피를 중단해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거기서 요시오는 “자연은 있는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고운 심성을 기르고 곤충에게서 교훈을 얻고 그렇게 소년기를 보낸 요시오는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기본기를 갖추게 된 것이라고 본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 반장이었던 소년은 의사가 장래희망이라고 하면서 공부하고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 반해서 요시오는 의적-우리나라로 치면 홍길동이나 을지매 정도?-이 꿈이라는 천진난만한 소년이었다. 이름처럼 義男이 되고자 했던 것인지도.

그래서 반장보다 더 정이 가는 情이 넘치는 아이로 자라나게 된다.

 

 

 

요즘은 아이도 많이 낳지 않아서 한 집에 하나 아니면 둘이다. 부모는 그 아이들에게 모든 정성을 다 기울인다. 그래서 내 아이는 무엇보다 귀중한 존재고 남보다 뒤쳐져서는 안된다. 너무 똑똑한 부모도 많아서  아이들은 일찌감치  '알아서' 똑똑해져야 한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들도 많다.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어려서부터 선물세례를 퍼붓고, 일하느라 늦는 엄마의 아이들은 하루종일 대여섯 군데의 학원을 순례해야 한다. 물론 <언니의 독설>의 저자 김미경처럼 일에서 성공하고 육아에도 성공해서 아이들이 저마다의 꿈을 찾아 걸어가기 시작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워킹맘도 있다.

그이처럼 몇몇의 성공 사례도 있긴 하지만, 그저 나머지 대부분의 대한민국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현실에서 나는 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나는 전업주부이다. 그래서 일하는 엄마만큼 바쁘지는 않다. 그리고 느긋하게 키우려고 마음도 먹었다. 그렇지만 내 주변은 모두들 너무 앞서가고 빨리 나아간다. 예전같으면 초등학교 1학년에 연필잡고 한글 읽고 쓰고 했다. 1학년에 산수 계산도 손가락 꼽아 가며 천천히 세어서 했다. 그런데 요즘은 만 3세부터인가 <연필잡고> 라는 책이 나온다. 애들은 그 때부터 연필을 잡아야 하는 세상인 것이다. 한글을 일찍 떼고 수를 줄줄 세고 학습지 한 두 개는 기본. 대여섯 살 아이들이 학습지에 코를 박고 손가락 셈을 하며 답을 써내려 가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요시오의 어린 시절 하늘은 높고 푸르고 맑았을 것이다.

지금은 아침이면 도시의 빌딩숲, 아파트 숲 사이로 스모그가 낀다. 하늘, 푸른 하늘, 높고 푸른 하늘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내 아이들이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놀다 놀다 지쳐서, 정신의 명랑함이 무르익고 무르익어서 “이제 뭘하지?” 할 때, 공부라는 걸 시작했으면 좋겠다. 요시오처럼.

문제는 '나는 주변의 부모들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내 자신을 바로 세우고 지탱해 나갈 수 있는가'다. 아이들은 강하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부모는 옆에서 거들 뿐. 농구에서 슛을 할 때 왼손은 그저 거들 뿐이라는 명언을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남겼다. 큭큭.

어려서 크게 앓은 경험이 있거나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하던 아이들은 철이 빨리 든다. 애어른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부모를 위로하고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그런 아이들은 밝게 웃으며 숨겨도 티가 난다. 애처롭고 가엾다.

 나는 내 아이들이 부모를 앞에 두고 애어른이 되는 것이 싫다. 부모 노릇 못한다고 꾸중 듣는 격 아닌가. 아이답게 소리치고 뛰어 놀고 다른 어른들한테 혼도 나보고 했으면 좋겠다. 버릇 없게 키운 거 아니고 나약하게 키운 거 아니면 된다. 그리고 대천천(우리 마을 앞 개천)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늘어지도록 뛰어 놀았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으면 당연히 누리고 살아야 할 아이들의 인생 아닌가. 다른 부모 따라잡으려다 애들 망치기 싫다. 어려서 똑똑하면 뭐하나. 다 키워서 세상 저버리는 마음 병든 아이들이 수두룩한데. 다 커서 부모 원망하고 얼굴도 안 보고 사는 아이들이 또 얼마나 많은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거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가 되는 거다.

 

요시오의 하늘을 읽고 오랜만에 부모 노릇하는 게 어떤 건지 새로이  되새겨 보게 되었다.

7권에서는 요시오와 같은 길을 가는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한다.

이젠 좀 덜 울게 될까.

청년기를 지나 창창하게 전개될 그의 앞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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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독설 - 합본개정판, 흔들리는 30대를 위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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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요새 TV에 무척 많이 나온다. 곧 있으면 자기 이름을 건 토크쇼도 진행할 모양이다. 잘 나가는 사람이다. 부럽다.

 언니는 아픈 독설을 날리지만 대단한 여자야!! 나의 불면증이 다시 시작되었어. 책임져!!어쩔껴!!

 

오늘은 tvN에서 특강을 하더라. 주제어는 “드림워커”, “드림 에이지”다. 실제 나이나 정신 연령에 상관없이, 자기의 진짜 꿈이 무엇인지 찾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때가 드림워커가 되는 때이고, 그 때부터 나이를 매기면 드림 에이지가 된단다. 김미경 본인의 드림에이지는 35세부터 세어서, 그러니까 이제 14세란다. 보아도 14세의 드림에이지, 박지성은...20세쯤.

 

사실 그녀의 책 <언니의 독설>을 읽을 때는, 그래, 성공하고 나니까 글도 쓰고 자랑하고 싶을 만하네. 노력한 게 보이네. 정도의 책이구나 했다. 그리고 읽고 난 후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게 고민거리만 실컷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난 그 동안 참 깊은 생각을 안 하고 살았더랬다. 편하게 살고 싶어서. 애 둘 키우느라 너무 힘들어서. 변명거리는 많다. 애 둘 낳고 키우고 드디어 밤중 수유가 끊기면서 나는 불면의 밤에서 벗어났고, 불면증이 뭐지? 하면서 느긋하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불면의 밤을 며칠 지새우게 되었다.

내 불면의 밤은 레퍼토리가 정해져 있다. 악몽도 꼭 꾸던 것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처럼. 내 불면의 레퍼토리는 임용고시 면접 시험 탈락이다. 꼭 그 장면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그 어렵다는 임용고시 1차에 붙었다. 5명 뽑는 시험에서 4등으로 붙었더랬다. 그런데 2차 시험 세 가지 중에서 논술, 수업 실기를 잘 치르고 3일째 마지막 날, 면접 시험에서 그만...입이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사진으로 찍어 놓은 듯이 그 면접 시험 문제는 선명히 머릿속에 남아서 잊히지도 않는다. <교사가 수업 외에 해야 할 일 5가지를 말하시오.>

아, 쉽네? 말라붙은 입 속에서 침을 끌어모아 혀에 윤기를 더하고서 세 가지를 죽 나열해갔다. 나 기간제 경력도 1년 넘게 있는 사람이거든? 내가 그 동안 고생했던 거, 다 선생님 되려고 해 온 거거든? 그러니까, 선생님이 할 일이 말이지...

그런데 네 번째에서 막힌 거다. 나는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바보가 되었다. 머릿속이 진짜 하얗게 텅 비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2차에서 떨어졌다.

면접관 앞에서 할 말을 잃은 채 답답한 표정을 하는 나.

그리고 그 때의 나는 거미줄에 꽁꽁 묶여버린 한 마리 나약한 곤충.

<시시각각 다가오는 거미의 위협에 겨드랑이에 땀이 흥건해질 즈음이면 나를 옭아매던 그 공포는 사라지고 나는 5가지의 대답을 시원하게 끝내고 홀가분하게 시험장을 나선다.> 는 장면을 억지로 상상해내지 않으면 그 밤은 진짜 돌고 돌고 도는 불면의 밤이 되는 것이다.

 

그래, 김미경의 책을 읽고 내가 며칠 밤을 꼬박 새웠었다.

내 안의 깊은 우울도 슬며시 고개룰 드는지, 오늘 낮에 mbc에서 <廣大戰>이라는 판소리 명창 대회를 하는데, 심청가 심봉사 눈뜨는 대목도 슬프고 춘향이 옥중가 대목도 슬프고, 심지어 흥보가 박타는 대목도 슬퍼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판소리 장르도 대단하고, 그 소리를 그렇게 다채롭게 깊숙하고 절절한 목소리로 연기하고 토해내는 명창들도 대단하다.)

 그래서 <언니의 독설>은 서른 여덟을 맞이하는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야 할 화두를 던져주긴 했으나, 어두운 기억, 불면의 밤을 시작하게 해주었기에 그렇게 좋게 인식되지만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TV특강 하는 걸 보니 독하게 살라는 책의 취지는 있었으나, 주제가 <꿈>으로 바뀌면서 무언가 희망을 전달해주는 기분 좋은 개념의 특강이어서 김미경 언니야를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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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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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2권이 나온 지가 벌써 10년이 다되어 간다.

그럼에도 그의 책은 아직도 유효하며 잘 익은 막걸리마냥 마실수록 더욱 뒷 잔을 거푸 들게 하는 걸걸한 매력이 있다.

1권이 나왔을 때 친구들이 그 책 한 권에 의지해 남도의 땅끝 마을 답사를 대학 졸업여행으로 기획했을 만큼 그 책은 떠나고 싶은 욕망을 부채질하면서 좋은 길라잡이의 역할도 했었다. 1권의 여흥을 이어받아 지금은 7권까지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그 많은 답사 코스 중에서 2권을 골라 들었다.

2권의 답사 코스는 지리산 부근, 경주, 운문사 등 내가 사는 부산에서 가까운 곳도 있고 강원도 철원, 정선과 민통선 부근 철원 등 먼 곳도 있다. 그리고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아도 부산에서 접근하기 힘든 전라도 부안과 고부 등지도 2권 답사 코스에 실려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이 책은 책장을 넘겨보면 그 속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가 가 본 곳과 못 가본 곳이 적절히 섞여 있어서 때론 회상에 잠기기도 하고 때론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여행 앞머리에 슬쩍 띄운 농 하나.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모두 즐길 권리가 있는 탁족. 작자 미상의 <삼복탁족도>를 잘 설명한 유홍준의 글에는 잔잔한, 아니 포복절도할 해학이 녹아 있다.

여기서는 고고한 기품 대신 질펀한 물놀이의 흥겨움이 강조되어 있다. 세 쌍둥이 솥에 끓이고 있는 것은 분명 보신탕일 것이며, 탁족의 경지는 발을 닦는 것을 넘어서 ‘기역받침을 지읒받침으로 바꾸는 차원’으로 들어갔다. 이쯤 되면 탁족은 체모와 격식과 규범으로부터 홀연히 벗어나는 감성적 해방의 즐거움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16

 

시작부터 한바탕 껄껄 웃음을 선사하신다.

 

위치 설정에서부터 다소 드라마틱한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영남의 정자들 중에서 ‘농월정’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곳이다. 나도 다녀온 적이 있지만 잊어버리고 있었던 정자. 월연암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너럭바위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계곡 건너편 저쪽으로 바짝 밀어붙여 세워진 농월정은 유홍준의 호기로운 설명으로 내 기억에서 다시 끄집어내어졌다. 움푹한 바위 웅덩이에 안의마을 양조장에서 받아온 막걸리를 쏟아부어 진달래 꽃잎이나 솔잎을 계절따라 띄우고 한바가지씩 퍼마셨다던 영남대 한문학과 학생들의 “풍류”를 나도 언젠가 한 번 실행해 보아야 할 텐데...

 

아쉬움을 뒤로 접고 호사스런 글솜씨로 나를 이끄는 유홍준 교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이번에 만난 곳은 영주의 부석사. 나는 부석사를 여러 번에 걸쳐 만났다. 호젓하게도 거닐어 봤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도 걸어봤고, 아이들과 떠들썩하게도 다녀봤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부석사는 새벽녘 호젓하게 걸었던 부석사이다. 새벽 이슬 내려앉은 어둑신한 사과밭길을 터덜터덜 걸으며 경건한 마음을 담고 올라선 경내에서 저절로 우러러 보여지던 무량수전. 그리고 살짝쿵 걸쳐진 안양루에서 내려다 본 장대한 산맥의 너른 품. 내 짧은 글솜씨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 없었는데, 유홍준 교수도 그러했는지,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고 최순우 관장의 <무량수전>한 편으로 대변하고 있다.

사무치는 마음. 그도 느끼고 나도 느낀 바로 그 마음이다.

 

내가 분명히 보았으나 찾아내지 못한 것들을 유홍준은 곳곳에서 잡아내고 있다.

운문사며 석굴암 등등.

가까운 곳이라 자주 찾았던 곳인데도 내가 본 것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일제 시대의 해체수리와 1963년의 보수공사로 원래의 아름다움을 잃게 하고 신라인의 과학에도 여러 발 못 미치는 행태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의 바보짓을 일깨우는 석굴암에 대한 이야기도 그러했다.

석굴암이 아니라, 수굴암, 암굴암, 전굴암이라...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체험하고 싶다면 일독을 강추한다.

그리고 미학자의 안목으로 수려한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나는 찬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석불사 석굴의 조각을 보면서 그가 토해낸 감탄을 보라!

그날 내게 다가오는 석불사 석굴의 조각은 맹목적 보편성을 드러내는 아카데미즘이 아니었다. 신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인간적이고 인간적이라고 말하기엔 절대자의 기품이 강하였다. ...본존불의 고전주의적 기품이 중심을 이루면서 10대제자상의 강렬한 리얼리즘이 포진하고 있는가 하면 팔등신의 늘씬한 몸매의 문수·보현, 제석천·범천이 얇은 돋을새김으로 환상적·이상주의적 자태를 보여주며, 11면 관음보살은 여지없는 ‘미스 통일신라’로 석면을 뛰쳐나올 듯한 자세로 다가온다.....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내가 “보지 않은 것은 보지 않아서 말할 수 없고, 본 자는 보아서 말할 수 없다”고 한 것은 그때의 경험이었다. -234

 

국토박물관에 지천으로 널린 볼거리, 느낄거리들을 맛깔나는 해설로 가득히 차려놓은 유홍준 교수의 책.

살아 있는 답사 안내서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아이들이 커서 터벅터벅 걸어... 멀고 긴 길을 걷게 되면 이 책 한 권을 (아니, 시리즈 모두를) 턱 하니 건네주고 잘 다녀오라고 말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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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좀 하십니까
노성진 지음 / 멘토프레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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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좀 하십니까>

 

우스개 소리 하나가 떠오른다.

상과대학 한 강의실에 엄숙함이 감돈다. 중간 고사 당일, 조교가 바야흐로 시험 문제를 칠판에 적으려는 순간이다.

학생들은 이른바 “족보”에서 콕 집어 공부했던 그 문제가 나오길 간절히 빌고 또 빌고 있다. 그 문제는 바로,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모두들 레이저를 쏘듯이 강렬한 눈빛으로 염원을 모아 조교의 손 끝에 초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조교가 쓴 첫 글자는...“도..”

잇새로 장탄식이 튀어나온다. “아...망했다.”

그렇지만, 포기하기엔 이르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 학생들은 끈기 있게 쳐다보고 있다.

그러더니, 곧바로 눈썹 휘날리며 답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문제는? <도! 대! 체!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이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나는 물음의 명제가 나오면 그 물음에 “도!대!체!”를 붙여 읽는 습관이 들었다.

<디자인 좀 하십니까?> 이 책의 제목도 물음표이기에 붙여 읽어 봤다.

<도!대!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디자인 전공의 대학에서 한 번쯤은 시험에 나왔을 법한 문제이지만, 대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디자인 박사학위까지 받고 실무 경험도 다양한 백전노장 작가가 어느 날 대면하게 된 이 문제. 날카로운 비수의 날을 품은 그 질문 앞에서 우리의 작가는 성실함을 다해 답변해 주었다. 힐긋 던진 질문에 대한 답으로 책 한 권이면 성실함을 넘어 우직함을 보여 준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가진 특별한 사람을 경원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미술 전공자들은 색채 감각, 균형감, 통찰력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옷차림 하나만 보아도 대번에 표가 난다. 내 친구 중에 다리가 유달리 짧은 미술 선생이 하나 있는데, 그녀는 너덜너덜한 청바지를 단을 접어 입어도 다리 짧은게 표가 안나고 ‘나도 저렇게 입어봤으면...’싶을 정도로 남다른 패션 감각을 자랑한다. 내가 하면 촌스러울, 아방가르드하게 천연 염색된 물빛 머플러도 그녀가 색깔 맞춰 입은 티셔츠에 척 하고 두른 모습은 패션 화보의 정석, 바로 그것이다. 그녀의 노하우가 궁금해서 물어보면 그녀은 “그냥 되는 대로 입는 건데.”하고 쏘~쿨 하게 대답한다.

아~ 부러워라.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풀어놓은 술술 잘 읽히는 수필 형식의 글들을 읽어 보면 그들-미술 전공자들-의 노하우는 분명, 있긴 있는가 보다, 하게 된다.

이 책에서 작가가 쓴 단어 중에 특히 마음에 드는 말-풍윤함과 허허로움.

대조적인 뜻을 가진 단어들임에도 괜시리 묘하게 어울리면서 한 줄 안에 아울러 쓰이면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공간 디자이너 노성진.

그의 글에서는 풍윤함과 허허로움, 그리고 인문학의 향기가 느껴진다.

세련되고 자로 잰 듯 반듯한 이미지가 느껴지는 디자이너 라는 이름을 달았는데도 그의 이미지는 풍윤함과 허허로움의 사이에 있다.

 

광나루 한강변 작업실에서 양말을 벗어 맨발로 바닥을 밟고, 격식을 차린 거추장스러운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주위를 말끔하게 치웁니다. 그리고 유리작업대 앞에 앉습니다. 이 방식은 나의 아주 오래된 버릇입니다.-36

 

테헤란로 부근의 대치동 뒷골목에 있던 오래된 양옥집을 카페‘하우’로 재탄생시킨 그가 감성노트에 남긴 글을 읽었을 때는 그가 건축 디자이너인지, 문인인지 헷갈릴 정도였으니, 그는 참으로 감수성이 대단한 사람이다. 꽁지머리 늘어뜨린 이외수만 감수성 있는 사람인가, 어디.

처갓집이 있는 여주 용담리에 몸 담았던 시절이 그대로 그에게로 와 안겨 체화되어서인지 시골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을 흙을 품은 연필로 크로키를 그릴 줄 아는 그 사람,

 컴퓨터 작업은 안하고 종이 위에 결과물을 내놓는 그 사람,

 재능기부 프로젝트 ‘팀 10그룹’의 일원인 그 사람.

나는 그 사람의 ‘인간다움’에 흠뻑 매료되었다. 그의 디자인에는 人이 들어 있다.

 

반질거리고 매끄러워야 디자인의 산물인 양 소비자를 현혹하고, 손재주나 쇼맨십이 재물로 연결되는 것이 예술가나 디자이너의 길인 듯 고착화되어 있는 현 풍토에서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181

라는 자기고백은 그의 겸손함이 지나친 대목이다.

 

국민 고향 하동과 에코뮤지엄의 본보기 담양에서부터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강남까지.

도시와 관련해서는 그의 인문학적 글쓰기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그는 박학하다.

그의 집 개울 건너에 살고 있다는 전설적인 인물, 논객 중의 논객, 김년오 선생을 그는 부러운 듯 말하지만, 내게는 그가 바로 김년오 선생 같이 매력 넘치는 이다.

칸딘스키, 아이웨이웨이, 매염방 같은 인텔리겐차를 소개하고, 장예모 감독이 이루어낸 인상 시리즈에서 컬처파워의 중요성을 말하는 그는 현재 우리 디자이너가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직시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미래를 내다보고 집안·건의하며,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에 모두의 목소리와 에너지를 모으고, 그것들이 현실화되도록 지켜나가는 초석이 되는 디자이너가 되라고 조언한다.

 

풍윤함과 허허로움의 사이에서 균형을 지켜나가는 그 사람.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쓰고 제자랑에 요란 떨지 않는 그 사람.

도시와 인문학의 소통에 힘쓰는 그 사람.

그가 남긴 명언을 전한다.

 

과학과 기술 그리고 예술과 디자인은 하나이고,

그것들이 인간의 가치와 풍요를 위해

의도되었거나 상호 보완되었을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배웠습니다.-70

 

디자인 좀 하십니까?

그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기에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즉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이 책을 내기까지 고민을 계속했다.

나는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쉽게 대답하고,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헉~’하고 급습을 당한 듯 당황하게 될까?

‘당신의 집은 안녕하십니까?’ 같은 쉬운 질문에 당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전공을 살린 삶은 못 살더라도 집안 하나만큼은 당당하게 지켜내는 주부가 되겠다.

디자인 좀 하십니까? 작가는 디자인을 생각하고, 나는 그 중에서 人을 생각하겠다.

사람답게 사는 법.

혹시 또 알겠는가?

나도 책 한 권 내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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