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어디든 - 현대문학 창작선
이승우 지음 / 현대문학 / 2007년 9월
품절


결정을 하고 나서 흔들림이 전혀 없었던 건 물론 아니다. 마음을 먹는다는 게 그렇게 무 자르듯 간단하지가 않다. 감정에 따라 비틀거리고 상황에 따라 요동치는 것이 마음 아닌가. 본질적으로 무를 자르지 못하는 것이 마음이다.-10쪽

거침이 없다는 것은 그녀의 매력이고 동시에 결함이었다. 그녀는 도무지 걸리지 않고 걸지도 않는다. 그녀의 생각과 행동을 제약하는 삶의 조건들은 아예 없거나 아주 조금밖에 없다. 욕망이 몸의 기관들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유는 간혹 했다.-13쪽

현재하고 있는 과거는 단순한 과거라고 할 수 없었다. 현재를 마구 휘저으며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과거의 권력. 과거를 이길 수 있는 현재란 매우 드문 것이다. 그 과거가 황폐해져 있다면 그럴수록 더욱 이기기가 힘든 것이다.-25쪽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지만, 다른 사람에게 내가 누구인지 이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둔중한 흉기가 되어 그의 뒷머리를 쳤다.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만 알고 나 외에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면 내가 알고 있는 나가 나라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어떻게 믿게 할 수 있는가‥‥‥. 유는 자기 자신에게 되풀이 질문했다. 이렇게 어이없이, 이렇게 삽시간에 존재가 흐릿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소름을 돋게 했다.-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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