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사막 펭귄클래식 124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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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는 일정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늘 사랑을 위한 빈자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정치가라도, 정부(情婦)를 위해서라면 세상 전체를 중단시킨다는 것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39-40쪽

쿠레주가의 사람들이 조금 더 예민했더라면, 생명 탄생의 신비 자체는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밤나무의 새싹이 움트고 있는것은 관찰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바로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적을 눈치채지 못했다. 마치 유능한 고고학자의 첫 번째 삽질에, 몇 세기 동안 컴컴한 땅 속에 묻혀 있던 아름다운 석상이 빛을 보는 것처럼, 마리아 크로스의 최초의 눈길이, 꾀죄죄하고 소심한 소년 안에 감춰져 있던 한 남자를 탄생시키는 이 신비로운 기적을. 한 여자의 뜨거운 눈길 아래서 그때까지 버려져 있던 레몽의 육체는, 고대의 숲 속 울퉁불퉁한 나무둥치에서, 잠들어 있던 한 여신이 깨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새로운 모습을 하고 일어섰던 것이다. -66-67쪽

아! 자기에게 전혀 마음이 없는 여자에게 푹 빠진 사람, 보답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불행한 사랑을 선택한 사람은 얼마나 가엾은 존재인가? 그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사랑한다 해도, 그녀는 그가 죽든 살든 관심이 없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이처럼 우리에게 무관심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법이다.-89쪽

"마리아는 정말 누구와도 같지 않은, 희한한 여자예요. 그래서 내가 집을 떠나 있을 때면, 어처구니없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답니다. 종일 꿈만 꾸고, 묘지 아니면 외출도 안하고‥‥‥. 혹시 그게 다 독서의 영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네, 책 때문일지도 모르지요."-131쪽

매일의 노동이 끈난 후 돌아와 이 여자 곁에 드러누울 수 있는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그러나 그때 내 곁에 누운 여자는 지금의 마리아가 아니겠지‥‥‥.아이도 몇 번이나 출산했을테고‥‥‥.몸 전체에, 나날의 하찮은 의무로 과로하고 마모된 흔적이 가득한 여자겠지‥‥‥.더 이상 욕망도 엇이 지겨운 습관만이 있을 거고‥‥‥.아, 벌써 새벽이구나.-188-189쪽

"사랑에 빠지면 고통스러워지고, 그러면 난 화가 나요. 그래서 사랑이 지나가기를 잠자코 기다리지요. 오늘은 그를 위해서 죽을 수 있을 것처럼 굴지만, 내일이 되면 모든 게 변하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될 테니까. 내게 그토록 커다란 고통을 주었던 사람이, 언젠가는 쳐다볼 가치조차 없는 대상이 될 거니까. 사랑하는 것은 끔직하게 힘든 일이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도 수치스런 일이지요."-221-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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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3-05-27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지나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육체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은 참 맹목적이어라.

다락방 2013-05-28 08:45   좋아요 0 | URL
그걸 안다고 멈출 수는 없잖아요, 사랑도 삶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