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겁쟁이가 아니었지만, 머리를 팔러 다니는 불그스름한 낯빛의 이 악한에 대해서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무지는 두려움의 아버지다. 이 낯선 자 때문에 완전히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나로서는, 솔직히 말해 그가 한밤중에 내 방에 몰래 잠입한 악마만큼이나 무서웠다. 실은 그가너무 무서워서, 그에게 그냥 말을 걸어 그의 이 이해할 수 없는 모습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요구할 정도의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 P71

이보다 더 의미로 가득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설교단이야말로 이땅에서 가장 선두에 자리한 것이며, 나머지 모든 것은 그 뒤를 따르니 말이다. 설교단이 세상을 이끌어나간다. 하느님의 성마른 노여움이 제일 먼저 발견되는 곳이 바로 그곳이니, 뱃머리는 최초의 맹공을 견뎌내야만 한다. 순풍이나 역풍의 신에게 부디 순풍을 보내달라고 처음으로 기원하는 곳도 바로 그곳이다. 그렇다, 세상은 출항한 배와 같고, 그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설교단이 바로 그 배의 뱃머리다. - P99

"아니, 지금 저 인간이 대체 뭐라고 떠드는 거야." 펠레그가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넣은 채 선실을 당당히 가로지르며 외쳤다. "다들 저인간이 하는 말 좀 들어보라고. 한번 생각해봐! 당장이라도 배가 가라앉을지 모르는 판에 ‘죽음‘과 ‘심판‘이라고? 응? 돛대 세 개가 전부 뱃전을 처박아 계속해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대고, 앞뒤 좌우 할 것 없이 사방에서 파도가 우리를 덮쳐오는데, 그 와중에 ‘죽음‘과 ‘심판‘을 생각한다고? 헛소리! 그럴 때 ‘죽음‘에 대해 생각할 여유 따윈 없어. 에이해브 선장과 내가 생각했던 건 바로 ‘목숨‘이야. 어떻게 하면 선원들을 모두 살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임시 돛대를 세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가장 가까운 항구로 갈 수 있을지, 그런 게 내가 생각했던거야." - P186

만일 내가 나자신에게 완전히 솔직했더라면, 배가 망망대해로 나가자마자 철저한 독재자로 변할 사람을 단 한 번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 이렇게 긴 항해에 나선다는 사실이 썩 내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의심이 들더라도, 그 문제에 이미 관여하고 있다면 자기 자신에게조차 그 의심을감추려고 저도 모르게 애쓰곤 하는 법이다. 나의 경우가 딱 그랬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P196

피쿼드호의 나머지 선원들에 대해서는, 오늘날 미국의 포경업계에 평선원으로 고용된 수천 명의 사람들 중 미국 태생은 둘 중 하나도 채 되지 않는 반면, 간부 선원들은 거의 다 미국인이라는 사실만 말해두도록 하자.
이 점에서 미국 포경업계는 미국의 육군과 해군과 상선, 미국의 운하와 철도 건설을 위해 고용된 토목 기술자들의 경우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다를 바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모든 경우에서 미국 토박이들은 관대하게 머리를 제공하고, 나머지 나라 사람들은 아낌없이 근육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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